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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물ㆍ악녀 (10인)ㆍ부덕 (6인)99

개화파 : 박영효 (고종ㆍ1861~1939)ㆍ부마(철종 사위)ㆍ이완용 추도사 "박영효 (朴泳孝ㆍ1861~1939ㆍ78세)"는 조선 마지막 부마(철종 사위)ㆍ고종/김옥균의 비문(일본) 작성ㆍ1920년대 이후 "일선 동조론"에 동조했다. 조선 말기의 문신ㆍ급진 개화파ㆍ사상가ㆍ총리대신(2차 김홍집 내각 이후)ㆍ2차 갑오개혁 단행했으며, 태극기 도안자 (1882년, 일본 수신사로 떠나는 일본 배 안)ㆍ명성황후 암살미수ㆍ동아일보 초대사장이었다. 1926.02.12일 "이완용"이 사망하자, 추도사를 낭독하였고, "이완용"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중추원 부의장직"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해 말 다시 공석인" 조선귀족회 회장"에 취임하였다. 1. 박영효 (朴泳孝ㆍ야마자키 에이하루ㆍ1861~1939.09.21ㆍ향년 78세) 은사공채금(은사금) 최고액 수령자ㆍ일본 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조선인 최.. 2022. 11. 22.
개화파 : 유길준 (고종ㆍ1856~1914)ㆍ개화사상 대변인ㆍ흥사단 조직 "유길준 (兪吉濬ㆍ1856~1914ㆍ58세) "은 유길준(개화사상의 대변인)→ 최익현(위정척사파 대표)였다. "갑신정변ㆍ김옥균 (金玉均ㆍ1851~1894.03.28ㆍ향년 43세)의 암살" 이후, "명성황후 (明成皇后ㆍ민자영ㆍ민비ㆍ1851~1895.10.08ㆍ44세)"와는 정적으로 변했다. "김옥균의 비석(아오야마(靑山)의 외인 묘지)"을 직접 석각했다. (박영효가 글을 짓고, 이준용(흥선대원군 적장손)의 글씨체로 썼으며, 유길준이 직접 석각) "안창호"에 의해 "애국자이자, 이상적인 정치 지도자"로 추모하며, 그의 "흥사단"을 본 따, "흥사단"을 재건하였다. 1910.08.29일, "한일병합조약"이 맺어지자, 조약에 대한 반대운동을 추진하다가 체포되었고, "전 국민을 선비로 만든다"는 목적으로 "흥사단.. 2022. 11. 22.
개화파 : 김옥균 ② 여성 편력ㆍ청일전쟁 원인 제공ㆍ김좌진9촌 "김옥균 (金玉均ㆍ1851~1894.03.28ㆍ43세) "은 진보주의자ㆍ갑신정변 주도자(박규수 제자)로, 김좌진과는 9촌 관계이다. 조선 후기 근대화ㆍ개화(개혁)사상을 주장했던 "급진개화파"의 지도자ㆍ풍운아ㆍ혁명가였다. 일본 이름은 "갑신정변" 실패 후 망명하기 전, "스치 후치츠로(천세환의 선원)"이 지어준 것이다. 1. 여성 편력 위장 : 일본 망명 생활시 (1884.12~ 1894.03) 그의 여자관계는 "난잡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 후처1 : 스기타니 다마(오타마(小玉)- 게이샤(24~ 25세 정도의 미인)ㆍ금전적ㆍ정신적 후견인ㆍ후에 실업가의 부인이 됨. • 후처2 : 마츠노 나카(松野なかㆍ게이샤)- 딸 1(사다) • 내 연 : 나미 (망명 직후, 잠시 거주하던 집주인인 야마구치 신타로의 .. 2022. 11. 22.
개화파 : 김옥균 ① (고종ㆍ1851~1894)ㆍ갑신정변 주도자ㆍ부관참시 "김옥균 (金玉均ㆍ1851~1894.03.28ㆍ43세) "은 친일 개화사상가ㆍ진보주의자로, 1884.12.04~12.06일, "우정국 낙성식"을 계기로, "홍영식" 등과 함께 "갑신정변 (甲申政變ㆍ개화당 3일 천하)"을 일으켰으나,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한 이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피신하여 망명생활을 지냈으나, 여러 차례 테러위협에 시달리다가, "청나라"로 망명했다. 1. 김옥균 (金玉均ㆍ이와다 슈사쿠(岩田周作)ㆍ1851~1894.03.28ㆍ향년 43세) • 출 생 : 조선 충청도 회덕군 • 사 망 : 청나라 장쑤 성 상하이 (부관참시 후→ 암장→ 이전) • 묘 소 : 한일합방 이후, 충남 아산군 영인면 아산리 143번지로 이전되었다. • 사 인 : 암살 (홍종우의 리볼버 권.. 2022. 11. 22.
개화파 : 이동인 (고종ㆍ1849~1881)ㆍ승려ㆍ유대치 제자 "이동인 (李東仁ㆍ아사노 도진ㆍ1849~1881.05ㆍ32세)"은 1880.10월, "개화기"에 활동한 인물 가운데, 최초로 "창씨 개명"을 한 사람이었다. 일찍부터 "개화된 승려"였던 "이동인"은 "유대치ㆍ오경석" 등을 통해, "김옥균ㆍ서광범ㆍ윤치호" 등의 청년들을 만나, 새로운 문물을 전달하며, 그들과 교류하였다. 1860년대부터 승려 활동, "범어사(부산)" 승려→ "통도사(양산)" 승려→ "봉원사(서울)" 승려 (본래 "승려"가 아니었으나, 1880년 정식으로 "일본 승려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음.) 1. 이동인 (李東仁ㆍ아사노 도진ㆍ1849~1881.05ㆍ향년 32세) 조선후기 불교승려(개화승)ㆍ외교관(일본통)ㆍ개화 사상가ㆍ"외제 상품(램프ㆍ석유ㆍ잡화 등)"을 들여와서 "왕실ㆍ세도가ㆍ친지"들에게.. 2022. 11. 22.
개화파 : 김홍집 (고종ㆍ1842~1896)ㆍ최후의 영의정ㆍ이시영 장인 "김홍집 (金弘集ㆍ김굉집(金宏集)ㆍ1842~1896.02.11ㆍ53세)"은 조선 후기 문신ㆍ최후의 영의정(250대ㆍ1894~1894)ㆍ총리대신(초대ㆍ동학농민운동 이후)이었다. 청빈한 벼슬아치ㆍ갑오개혁의 총 책임자ㆍ"윤치호"를 통역관으로 채용하였다. 친일 개화사상가 (친일파 애국자)ㆍ"박규수ㆍ오경석ㆍ강위"의 문인이다. 1. 김홍집 (金弘集ㆍ김굉집(金宏集)ㆍ1842~1896.02.11ㆍ향년 54세) • 출 생 : 조선 경상도 경주 • 사 망 : 조선 한성부 • 사 인 : 타살 (아관파천 때, 군중에게 피살) • 호 : 도원(道園)ㆍ이정학재(以政學齋) • 별 칭 : 자- 경능(敬能)→ 개명- 김굉집(金宏集). 원래 이름은 김홍집(金弘集)이었으나, 청나라 고종(高宗)의 휘가 "홍력(弘歷)"이었기에 피하기 위해 .. 2022. 11. 22.
북학파 : 유대치 (고종ㆍ1831~1884)ㆍ유홍기ㆍ한의사ㆍ개화파 영향 "유홍기(劉鴻基ㆍ유대치(劉大致)ㆍ1831~1884ㆍ53세)"는 "갑신정변"실패 뒤, 12.08일 집을 나갔다가,행방불명되었다. 혹시"갑신정변"의 사후처리로,"중도 개화파"가"급진 개화파"에게 대대적인 보복을 행할 때, 암살된 것이아닌가하고 추측된다. 한때"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1894년(고종31)"갑오개혁"으로"갑신정변"과 관련된 인물들의복권이 이루어진 뒤에도 행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갑신정변"으로 그의 문인들이 역적으로 몰리면서,그에 대한 자료들도 대부분 인멸ㆍ실전되었다. 1. 유홍기 (劉鴻基ㆍ유대치(劉大致)ㆍ1831~1884ㆍ향년 53세) 한의사(중인ㆍ역관 집안)ㆍ개화 사상가(개화파의 정신적 지주)ㆍ학자ㆍ정치인ㆍ흔히 "유대치"로 많이 알려졌으며, "개항 이전"에, 이미 "개화"에.. 2022. 11. 22.
북학파 : 오경석 (고종ㆍ1831~1879)ㆍ최초의 개화사상가ㆍ오세창 부친 "오경석 (吳慶錫ㆍ1831~1879ㆍ48세)"은 "한국 최초의 개화사상가" 또는 "한국 개화사상의 비조"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세창 (吳世昌ㆍ1864~1953ㆍ89세ㆍ1919년 "3ㆍ1만세운동"에 참여, 당시 "민족 대표 33인"의 한사람)"의 아버지이다. "박규수ㆍ유대치ㆍ강위" 등과 더불어 초기 "개화 인사"이자, "북학파"에서 "개화파"로 넘어가는 과도기형 인물로 평가된다. "오경석"이 가지고 온 "신서"는 친구인 "유대치"에게 영향을 끼쳤다. 금석학자ㆍ서예가(특히 전서체를 잘 썼다)ㆍ서화가ㆍ고미술품 감정에 조예가 깊었다. 1. 오경석 (吳慶錫ㆍ1831~1879ㆍ향년 48세) 한국 최초의 개화사상가ㆍ조선후기 역관ㆍ외교관ㆍ정치인ㆍ사상가ㆍ작가ㆍ시인ㆍ"유대치"는 "오경석"과 동갑으로 "불심"이 깊고, 다.. 2022. 11. 22.
북학파 : 강위 (고종ㆍ1820~1884)ㆍ김정희 유배수발ㆍ황현의 스승 "강위 (姜瑋ㆍ1820~1884ㆍ향년 64세)"는 한학자ㆍ개화 사상가ㆍ시인ㆍ금석학자(김정희ㆍ오경석과 함께 금석문 연구)로, "김삿갓" 등과 함께, "조선 방랑시인"의 한 사람으로도 꼽힌다. 조선 말의 "3대 시인(김택영ㆍ황현)"이나, "4대 시인(김택영ㆍ황현ㆍ이건창)"으로 부른다. 또한 "매천 황현" 역시 그의 문하생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공자ㆍ맹자" 외에도 "노장사상ㆍ역술" 등에도 학식이 있었고, "선불교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다. 1. 강위 (姜瑋ㆍ1820~1884ㆍ향년 64세) 1883년(고종20), 언론기관인 "박문국(博文局)"을 설치하고, "한성순보(漢城旬報)"를 간행했다. "황성신문"의 발기인 중 한 사람이며, "국문 연구"에도 전력하였다. "박규수ㆍ오경석ㆍ이동인ㆍ최한기ㆍ유대치ㆍ김정호" 등.. 2022. 11. 22.
북학파 : 박규수 (고종ㆍ1807~1877)ㆍ양무운동ㆍ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朴珪壽ㆍ1807~1877ㆍ70세)"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의정부 우의정"에까지 올랐으며, "종묘 고종실"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박지원"의 학문ㆍ사상의 계승자로서, "척화론(斥和論)"에 반대하고,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온 후, "양무운동"처럼 서양기술의 선택적 도입ㆍ국제 통상을 주장했다. "김정희"와 교류가 깊었고, "김옥균ㆍ홍영식ㆍ박영효ㆍ서재필ㆍ박정양ㆍ윤치호"등 "개화파" 청년들을 길러냈다. 1872년(고종9), "철종"에게 "박영효(제자ㆍ일족)"을 "부마"로 추천했다. 1. 박규수 (朴珪壽ㆍ1807~1877ㆍ향년 70세) 문인(홍문관 대제학 겸 우의정)ㆍ외교관ㆍ개화사상가ㆍ철학자ㆍ화가ㆍ지도 제작자ㆍ1863.12월(고종즉위년)," 조대비(趙大妃ㆍ효명세자(익종.. 2022. 11. 22.
북학파 : 박제가 (정조ㆍ1750~1805)ㆍ박지원의 제자ㆍ박규수의 스승 "박제가 (朴齊家ㆍ1750~1805ㆍ55세)"는 서자 출신ㆍ북학파의 거두로, 박지원의 제자ㆍ박규수의 스승이다. "북학파 사상"을 집대성한 실학자이다. 청나라의 선진 문물 수용ㆍ중상주의 경제 정책 주장, "정조"에 의해 "규장각검서관"으로 특채되었다. 그의 학통은 "김정희"를 거쳐서, "흥선대원군"으로 이어진다. 사후 "북학파"는 "박규수ㆍ오경석ㆍ유대치" 등으로 이어지며, "중상주의ㆍ통상론"을 계속 건의하였고, 이는 "김옥균ㆍ서재필ㆍ윤치호" 등의 "노론 출신 개화파"로 이어지게 된다. 1. 박제가 (朴齊家ㆍ1750~1805ㆍ향년 55세) 정치가ㆍ외교관ㆍ통역관ㆍ실학자ㆍ4차례에 걸친, "청나라 사행(使行)"을 통해 100명이 넘는 "중국 지식인"들과 교유하면서, 국제적 안목을 갖춘 "글로벌 지식인"이었다. 한.. 2022. 11. 22.
북학파 : 박지원 (정조ㆍ1737~1805)ㆍ열하일기ㆍ박규수 조부 "박지원 (朴趾源ㆍ1737~1805ㆍ58세)"은 실학자ㆍ사상가ㆍ소설가ㆍ북학파 영수ㆍ열하일기 저술(문체반정)ㆍ한문소설ㆍ물레방아를 설치했다. 1765년 처음 과거에 응시하였고, 고의적으로 낙방했으며, 이후 계속해서 "과거"를 피했으며, 학문 연구ㆍ저술에 전념하였으며, 제자로는 "박제가ㆍ유득공ㆍ이덕무" 등이 있다. 실제로 "박지원"은 "음서"로 관직에 진출해, "안의현감ㆍ면천군수" 등의 관직을 지내긴 했지만, 끝내 "조정의 요직"에는 오르지 않았다.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 1. 박지원 (朴趾源ㆍ1737~1805ㆍ향년 58세) 1777년(정조1), "정조" 측근인 "홍국영"이 세도를 잡으면서 같은 "노론"이지만 "벽파(僻派)"를 "홍국영"에게 "벽파"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1978년 "황해도 김천..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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