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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승만ㆍ김구ㆍ박정희ㆍ정당62

독도 문제 ④ 1965.01월, 박정희 대통령의 "독도 밀약" 1965.01.11일, 서울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 자택"에서 "정일권(국무총리)ㆍ우노 소스케(자유민주당 의원)"가 만났다.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ㆍ일 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대원칙 아래, "4개 부속조항"으로 구성된 "독도밀약"이 맺어진다. 1. 독도 밀약 ① 1965.01.11일,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과 체결한 "독도에 관한 밀약"을 말한다. ② "독도밀약"의 내용 "앞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일단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ㆍ일 기본조약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대원칙 아래, "4개 부속조항"으로 구성됐다. • "독도"는 앞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론하는 이의.. 2022. 10. 19.
독도 문제 ③ 독도 폭격 사건 (미 공군폭격대) 1948ㆍ1950 "미국"은 "독도"를 "미국의 폭격 연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1948.06.08일, "미군정"은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아, 결국 조업 중이던 한국 어민들은 "미 공군의 독도 폭격 연습"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 독도 폭격 : "미국 공군 폭격대"가 독도를 폭격한 사건 "미국"은 "대일 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ㆍ1951.09.08)" 이후, "독도"를 "미국의 폭격 연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미군정"은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아, 결국 조업 중이던 한국 어민들은 "미 공군의 독도 폭격 연습"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948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선량한 어민들에 대한 진상 규명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여서, 명확한.. 2022. 10. 19.
독도문제 ② 독도 분쟁 요점 ② 1905년 : 일본의 독도 편입? 1905.01.28일, "일본 정부"에 의해 실시된 "독도의 시마네 현 편입"이 법적으로 유효한가? 아닌가? 가 문제화되어 있다. 한국 측은 "독도의 시마네 현 편입"이 법적으로 불충분한 부분이 있어, 비밀리에 이루어졌던 것이므로, 비합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에 대하여, 일본 측은 "국제 법에 의한 적법한 수속이 이루어졌고, 또한 신문 등에도 보도되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는 지적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다. 1. 관련 연구ㆍ자료 ① 육안관측 불가론 "세종실록ㆍ지리지"의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則可望見(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는 부분과 관련, 여기서 두 섬은 "울릉도ㆍ독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논거의 하나로, 1966년 "가와카미 겐조"의 계산 값을 토.. 2022. 10. 19.
독도 문제 ② 독도 분쟁 요점 ① 송도 (독도)ㆍ죽도 (울릉도) 1696년, "일본 막부"가 내린 "죽도(竹島)도해금지령"은 일본 어민이 "죽도 (울릉도)"로 고기 잡으러 가는 것을 금지한 "막부"의 명령이다. "조선ㆍ일본" 간, "울릉도ㆍ독도" 영유권 논쟁의 마침표를 찍었다고 한다. 한편 "막부"의 이 명령은 "죽도(울릉도)ㆍ송도(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실히 인정하는 문서"로 받아들여진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하는 주장의 근거중 하나로 쓰이는 자료이다. 1. 독도 분쟁 요점 : 송도 (독도)ㆍ죽도 (울릉도) ① 1696년 : "일본정부"가 만든 "죽도(竹島) 도해 금지령"이라는 문서 → "돗토리 시마네 현"을 지배했던 "마쓰타이라 신타료"는 "죽도(당시 울릉도)는 조선 땅이니 접근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 조선에서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권"을 주장하자, "일.. 2022. 10. 19.
독도 문제 ① 독도 강치 (바다사자ㆍ일본 강치) 잡이 "독도 강치 (바다사자)"는 동해의 상징과 같은 동물이었다. "강치"는 "독도"를 포함해, 일본ㆍ러시아 등에서 서식했는데, 1900년대 초반에 수만 마리가 "독도" 인근에서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멸종됐다. 1. 황금 알을 낳아준 "독도 강치 (바다사자)" 일본인들이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시작한 것은 1890년대로 거슬러 간다. "강치"의 가죽ㆍ기름 등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 일본인들이 독도로 몰려들었다. 봄철 산란기 때, 잡은 "어린 강치"는 생후 6개월~1년 사이가 훈련시키기에 좋아, 도쿄ㆍ오사카ㆍ고베 등 일본 전역의 동물원으로 팔려 나갔다. 1903년, 독도 침탈의 원흉 "나카이 요자부로"가 처음 "독도 강치" 조업 개시 그의 첫 시험조업 일지를 보면, 우리 돈 6,.. 2022. 10. 19.
중앙정보부 ⑤ 10ㆍ26 사태 (1979)ㆍ광주 사태 (1980) "부마항쟁" 당시, "인종주의자 히틀러"를 추종하였던 "차지철(청와대 경호실장ㆍ권력의 2인자ㆍ1934~1979ㆍ45세)은 "크메르 루즈의 폴포트는 백만 명을 죽이고도 살아남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냐?"라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한국형 인종주의자 차지철"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 앞에 그 비굴한 삶을 마감했다. 1979.10.26일, "장준하(1918~1975ㆍ57세)"를 존경했던 "김재규(1926~1980ㆍ54세)"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그리고 "유신독재"는 허물어졌다. 1. "차지철ㆍ김재규"의 갈등 74년 : 차지철 경호실장ㆍ육사(12기) 시험에서 낙방 → 육사출신에 반감 → "전두환" 산하 부대원으로, "중령" 예편 후, 국회의원 77년경 : "국기강하 식" 시.. 2022. 10. 6.
중앙정보부 ④ 코리아게이트ㆍ김대중 납치사건 "김대중 납치사건"은 일본에 망명 중이던 정치인 "김대중(金大中ㆍ1924~2009ㆍ85세)"이 1973.08.08일 오후 1시경 "일본 도쿄도"의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이후락 (李厚洛ㆍ1924~2009ㆍ85세)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5일 만인 08.13일에 "서울 동교동 자택" 근처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박정희 (5~9대ㆍ1917~1979ㆍ62세)"의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김대중"을 처리하려 했던 사건이다. 1. 1973.08.08, 오후1시경 : "김대중" 납치사건 • 미ㆍ일 정계를 뒤집어 놓고, 1970년대 내내 "박정희"를 괴롭힌 사건 ("이후락 정보부장"의 정치생명 단축ㆍ유신체제의 명운 단축) → HR 정보부의 최악의 과오 → "박통 지시"가 아닌 HR의.. 2022. 10. 6.
중앙정보부 ③ 유신 쿠데타ㆍ하나회ㆍ11기 (전두환) "중앙정보부 (중정ㆍ남산ㆍ中央情報部ㆍKorean Central Intelligence Agency)"는 한국의 특별 행정기관이자 정보ㆍ첩보ㆍ수사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사정변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입법권ㆍ사법권ㆍ행정권을 장악)의 산하기관"으로 설립되었다. 1. 1967.05.03 – 대통령(6대) 선거 : 지방색이 극명해진 일 • "윤보선 후보"가 116만 표차로 패배 (영남지역에서만 136만 표차 패배) • 67.06.08 : 총선- 총선 1주일 전 야당(신민당) 전국구후보 10번 재일동포 실업인 김재화 구속 후 후보 사퇴 (전국구 의원은 선거 자금원 줄임) → 조총련계 자금 유입으로 "국가보안법ㆍ반공법ㆍ외환관리법" 위반혐의 → 신민당 중앙당 경리장부 압수ㆍ당 간부 조사 → 선거 .. 2022. 10. 6.
중앙정보부 ② 박정희 용인술ㆍ박정희 직속기관 "남산(南山)"은 "5ㆍ16쿠데타"로 태어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속칭이다. "박정희 정권"이래, 30여년간 무소불위의 존재였던 "남산(南山)"은 정치는 물론 경제ㆍ사회ㆍ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개입ㆍ관여해온 권력의 중추요, 핵심이었다. 1. 분할통치 : "박통"의 용인술 요체 (이간질ㆍ충동질을 통한 우려내기) • 5ㆍ16 이후 : 박통(내성적 성격)→ 검은 안경ㆍ눈빛이 매서워 커버한 것임 : 63.08.30 : "육군대장 전역식" 마치고, "공화당 사"에서 입당절차→ 정구영 ( 공화당 초대총재ㆍ박정희 당원의 신원 보증인) • 박관수 : 박통 스승ㆍ반공연맹 이사장 ① 실력자 간 : 실력자간 긴장관계를 조성하여 충성을 발휘하게 하고, 그 위에서 장기집권을.. 2022. 10. 6.
중앙정보부 ① 정치공작사령부ㆍ KCIA "남산의 부장들 : 정치공작사령부(KCIA)"은 1992.11월, "김충식(金忠植ㆍ동아일보 기자출신)"이 쓴 책 (동아일보사 출간ㆍ사진 참조)으로, 중요한 읽을거리가 많지만, 현재는 절판되어 읽기가 쉽지 않음으로, 요약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또한 같은 이름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 (주연 : 이병헌ㆍ이성민ㆍ곽도원)"이 2020년 개봉됐다. 1. 남산의 부장들 : 정치공작사령부 (KCIA) : 김충식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책 "남산(南山)"은 "5ㆍ16쿠데타"로 태어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속칭이다. "박정희 정권"이래, 30여년간 무소불위의 존재였던 "남산(南山)"은 정치는 물론 경제ㆍ사회ㆍ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개입ㆍ관여해온 권력의 중추요, 핵심이었다.그동안 "남산(南山)"과 .. 2022. 10. 6.
1 공화국 ④ 자유당ㆍ공화당 (보수 정당)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의 시작을 1870년대에 태동한 "개화파"로 본다. 1896.07월 한성부에서 "서재필ㆍ이상재ㆍ이승만ㆍ윤치호" 등 개화파가 주도하고, "안경수ㆍ박정양" 등 정부 고위관료와 "남궁억ㆍ안창호" 등 지식인이 참여한 "독립협회"가 결성, 조직되었다. "이완용"도 몸 담았던 적 있으나 제명당하였다. "독립협회"의 결성을 주도한 "개화파"는 "청나라"가 종주권을 주장하던 시기에 "반청(反淸) 입장"에 섰으며, "미국ㆍ일본ㆍ러시아ㆍ프랑스" 등에 우호적이며, 서구의 문물을 적극 수용해야 된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이들은 "정동파ㆍ외국인파"로도 불렸다. 1. 한국의 보수주의 정당 흐름 자유당 (이승만)→ 민주공화당ㆍ공화당 (박정희)→ 민주정의당 (전두환ㆍ노태우)→ 민주자유당 (민자당)→ 신한국당→ .. 2022. 10. 5.
1 공화국 ③ 민주당- 신파ㆍ구파 갈등 (진보정당) "진보주의"는 "마르크스주의ㆍ민주사회주의ㆍ사회민주주의ㆍ좌익 내셔널리즘" 등 다양한 진보적 사조에 기초한 진보적 정치운동을 말한다. 해방 직후, "사회민주주의ㆍ공산주의" 등 수많은 사상을 지향하는 집단으로 퍼져 있었으나, 정부수립을 주도한 세력의 탄압과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사실상 소멸하였다. 이후의 "진보주의"는 1970년대 "통일운동"을 주축으로 등장하였고, 1980년대에는 "마르크스주의" 영향을 받은 학생운동(민족 해방ㆍ민중 민주)의 형태로 등장하였다. 1. 민주당 (民主黨ㆍDemocratic Party) ① "민주당"의 기원은 "한국 민주당(韓國民主黨ㆍKorea Democratic Party)"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민당"은 1945.09.16일에 결성되어, 정부수립 후에도 존속하다가, 1949.02..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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