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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승만ㆍ김구ㆍ박정희ㆍ정당

중앙정보부 ② 박정희 용인술ㆍ박정희 직속기관

by 당대 제일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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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南山)"은 "5ㆍ16쿠데타"로 태어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속칭이다. "박정희 정권"이래, 30여년간 무소불위의 존재였던 "남산(南山)"은 정치는 물론 경제ㆍ사회ㆍ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개입ㆍ관여해온 권력의 중추요, 핵심이었다. < 홍인근동아일보 편집국장 >

 

1. 분할통치 :  "박통"의 용인술 요체  (이간질ㆍ충동질을 통한 우려내기)

 516 이후 : 박통(내성적 성격) 검은 안경눈빛이 매서워 커버한 것임 : 63.08.30 : "육군대장 전역식" 마치고, "공화당 사"에서 입당절차→  정구영 (화당 초대총재박정희 당원의 신원 보증인) • 박관수 박통 스승반공연맹 이사장

 실력자 간 : 실력자간 긴장관계를 조성하여 충성을 발휘하게 하고, 그 위에서 장기집권을 노린다.

 중간보스의 일정한 파워게임을 유발하고, 특정 보스를 키우고, 다시 자른다.

 김재규  차지철의 대립 (파워게임의 극한 : 김재규의 "1026 총성" 박통 최후)

 516 ~ 유신 말기까지 : 육사 8  JP측 주류5  비주류 4인 체제  / 이후락(비서실장)김형욱(정보부장) 연합  비주류 4인 체제

 당내 4인방 : 김성곤(재정위원장)김재호(사무총장)김진만(원내총무)백남억(정책위원장) /  "김성곤" "4인 체제"를 형성하고, "내각제" 개헌을 꿈꾸며, "유진산(야당 보스)"과 내통. 그러나, "박통" 뒤에서 권력에 기생하고, 개헌의 주역은 언제나 "박통"

⑤ 정치자금 3대 인물 : 이후락ㆍ김형욱ㆍ김성곤

1억 $ 로 예상되는 개인 비자금 축재 : 80년 신군부(6ㆍ18 계엄사) 권력형 부정축재자 색출→ 이후락 196억김진만 103억

 이후락김성곤김진만(3): 반도호텔(롯데호텔 자리)로 기업인 불러 모금(20%이상 떡고물)

 김형욱박종규 : 개별적으로 기업인과 1:1 모금 울면 깎아주고, 깎은 금액을 50%는 상납

 이후락 : "스위스"에 비밀 정치자금 예치관리

 김형욱 : 수표를 현금화하고, 현금으로 지불되는 정치자금 수집

 김성곤 : 수표로 지불되는 정치자금 수집 "공화당" 정치자금 SK 퇴진 후 "김진만"이 관리

2. 중앙정보부(중정) 주체 세력 : 대통령 직속기관치외 법권의 권력

 부 지 : 남산1호 터널 입구정치정보 수사ㆍ이문동 해외 대공정보

공수단 (수사기록 한줄 못 쓰는 완력 팀): 대위 차지철 + 동료 10명이 주축이 된 GD중정소속

+ CIC (방첩대) 출신HID(첩보부대)출신

+ 육본 정보국공군 정보국해군 정보국경찰경력 파

+ 일경 : 정보 경찰특고 출신일경 출신 (일제시기 : 수사취조고문 기술자 / 1945.08.15 이후 : 이승만 반공제일주의에 편승좌익토벌정보부에 편입 /  1950.06.25 사변 시 : 반공투사로 변신 정보부에 편입)

중정 직업 수사관 : 전직 사찰계 형사방첩부대 문관헌병하사관조선인 헌병밀정

신직수 : 박정희 5사단장시 법무참모1961.07.21~ 63.07.14 최고회의 의장 법률고문

김용태 : 민간인경제고문쿠데타 자금동원과 연락책임ㆍ5선 의원

3. 정권 친위대 : 궁정동 (중앙정보부)통합병원 (보안사(기무사령부)

: 기무사령부 (과거 방첩대특무대보안사) / 민간 : 국가정보원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 경찰 : 보안과 (과거 사찰과정보과)

청와대서 볼 때, 오른쪽 : 궁정동 (중앙정보부) 왼쪽 : 통합병원(보안사 (기무사령부))2개의 칼로 서로 충성을 겨루고, 싸우도록 긴장 유도

보안 사령관 출신 : 정승화윤필용강창성김재규  /  보안사 : 대통령 (2): 전두환노태우  중정부장(3): 김재춘김재규전두환 / 육참총장(2): 정승화이종구

4. 파워게임 : 장도영 의장 5박정희 부의장JP8

1961.06.03 : JP 주도의 "국가재건 비상조치" 법안

JP 정보부8기생은 "전리품을 승자(주체)의 몫"으로 바꾸고자 함 "장도영" 권한약화국방장관육참 총장계엄사령관등 군을 통솔할 수 있는 실권을 빼앗음 "JP8" 독주는 "장도영인연이 깊은 5(장군대령)의 무력 동원저항을 불러옴. ( 5기생 : 공수단장 박치옥 대령헌병감 문재준 대령최고의원 송찬호 준장 등)

반혁명 사건 (장도영등 44)

1961.07.03 PM 04:30 : "장도영" 사임성명 박정희(최고회의의장내각수반)송요찬(국방부장관)

1961.07.09. : "장도영" 중심으로 44명 장교민간인이 정부 전복음모주체세력 암살시도ㆍ반혁명 음모실패59기 권력투쟁에서 제거정보부 작성, 성명서에 서명

"장도영5""JP 제거작전" 계획JP 제거실패 시 : JP 중정직책 박탈JP 체포박정희 거세 (내각수반 : 비서실장 이회영병력동원 : 공수단장 박치옥 대령헌병감 문재준 대령담당)

 실패 이유 : 헌병감 문재준(병력 막강)공수단은 덕수궁 포진하였으나,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 9기 신윤창 중령에게 암시

장도영 사건 : 법정 입정 시, "방첩대 노태우 대위"가 호송ㆍ검찰관중 1인인 "배명인 검사"향후, "노태우 정부" "안기부장"이 됨 - 1962: 장도영은 미국으로 쫓겨나, 교수되어, "미시건주 웨스턴미시건 대"에 있었음.

5. 1962년 : JP(정보부장)ㆍ오히라(외상) 메모 - JP 주도의 한ㆍ일 협상

61.1062년 말 : 박정희 밀명을 받고, JP(35) 도일  62.11 : 박정희 8$ 요청지시6$로 결정

1962.11.12 PM 8~12(4시간 회의): "오히라" 8천만$ 제시JP 6$ 요구6$로 결정

일본 당시 외화보유고 : 14억 $ (43%선) 청구권 자금 : 무상 3억 + 장기저리차관 2억 + 민간베이스 차관 1억 = 6억 $ (현재 30~40억 $로 추정립 축하금 형식으로 제공한다는 것)

64.06.03 (63 사태): 학생데모 유발 군정이후 최초 서울지역 위수령 발동

64.06.05 (63 사태 2일 후): JP "공화당의장" 사퇴 (JP 2번째 외유)

JP  1번째 외유

61.01 : JP와 김재춘(육사 5기ㆍ3대 정보부장ㆍ군경검 합동수사본부장ㆍ방첩대장)과 JP 알력

62.05 : JP- 공화당 사전조직 작업 →  62.07.08 : JP- 박정희와 각 시도 간부소집 인사소개

62.12.14 : JP- 군정에서 민정으로 "권력 이양" 방침 발표 → 62.12.17 : JP- 3공화국 헌법국민투표로 확정

62.12.23 : JP- 5ㆍ16 주체들을 상대로 브리핑→ "공화당" 설립 / JP 주도 시, 장래가 불 확실시 되는 "최고의원 장군들" 반발→ 최고 의원직ㆍ공화당 발기인 사퇴→ 박정희 위기

63.01.07 : 박정희, JP를 희생양(정보부장에서 경질)으로 "공화당" 분규 수습 → 63.01.07~ 02.21 : 김용순 (2대 정보부장)

63.02 : "공화당" 사전조직 파동→ 혼란야기→ 박정희, 정치수습 방안발표(9개항)

63.02.23 : 김재춘(5기ㆍ3대 정보부장)ㆍ8기생 중심→ JP계 31인 경질

63.02.25 : JP- "순회대사" 자격으로 동남아 유럽 여행 (JP 1번째 외유)→ 63.02.26 : JP 딛고, "공화당" 창당

63.03.06 : 김재춘→ "타도 JP"를 위한 "4대 의혹사건" 발표

63.04.08 : 박의장 - 자유 민주세력이 뭉친 범국민적 정당 필요 - 정책소위원회ㆍ범당 구체화  /  강경파( J P 계)→ 공화당(김홍길 라인)- 김형욱ㆍ홍종철ㆍ길재호 / 온건파(김재춘 계)→ 자민당(유양수 라인)- 유병헌ㆍ박태준

63.06.27 : 증권파동 관련자 무죄

63.07.13 : "김재춘"이 사랑한 육사11기(반 JP성격)→ JP계 제거, 친위쿠데타 시도하다 실패→ "김재춘" 경질김재춘(정보부장)ㆍ정승화(방첩대장)전두환(소령ㆍ정보부)ㆍ노태우(대위ㆍ방첩대)

6. 63.03.06 : 김재춘"타도 JP"를 위한 "4대 의혹사건" 발표

증권파동(62.04) - 창당과정 자금동원

"중정""통일증권일흥증권동명증권"을 설립하여, 주식을 마구 사다 들인 뒤, 그 후 결제를 못하자, "증권파동"이 일어났고, "3개 증권회사일반투자자"의 재산 손실을 초래

회전 당구기 사건

"회전 당구"516이전 도입된 것이나. "혁명 정부"의 금수품목인 "회전 당구대"를 재일교포의 재산반입 명목으로, 880대를 "면세"로 수입허가 "임시국무회의" 의결로 "빠징코" 폐지 조치함 → "빠징코(34개소)8,000만원의 시설비선불세금의 피해를 봄 정부는 3개월의 전업기간을 준 후, 폐업 조치함.

워커힐 사건

워커힐은 주한미군의 휴양을 위해, 또 외화를 벌기위해, 워커힐 호텔(서울 광진구 광장동) 건설한 것으로, "자금난"에 휩싸이자, 막대한 돈을 주어, 건설 추진ㆍ""에서 장비 등을 지원해 주고, 자금 일부를 유용하거나, 여러 가지 부정적인 행동을 한 것.

새나라 자동차 사건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새나라 자동차(, GM DaeWoo)" 설립했는데, "일본자동차"의 수입과정에서 벌어진 부정으로 일어난 사건

7. 주체세력 내분

북 대결 : "영남 인맥"의 승리 

장군영관급(대령-중령) 대결 : "장도영" 사건 이후 박정희8기가 주도권

박정희는 8기의 세력이 커지자, 육사(4년제)를 마친 "영남출신 중심의 11"를 총애 : 오성회칠성회 조직 후, 용성(전두환)관성(노태우)여성(김복동)혜성(최성택)손영길으로 호칭 : 육사11기는 8기와 나이차이 거의 없음- 김재춘(27년생)김종필(26년생)박종규(30년생)차지철(31년생)전두환(31년생)노태우(32년생)권익현(34년생) : 4년제 정규 육사출신이라는 자부심주체(몇 살 차이 안 남)는 최고위원이나 진급혜택 덕도 보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63.07.06 : "육사11""공화당 요인(40)"제거하여, 박통 정치기반을 굳히는 친위쿠데타 시도 

63.06 : 손영길 소령(박의장 전속부관)+ 노태우 대위(육군 방첩대) 김재춘(정보부장) 면담

63.06.27 : "증권파동 무죄판결"로 거사 계획    제거 대상자 : 공화당 사전 조직의 핵심 + 4대 의혹사건 관련요인 + 최고회의 파견 요인 중 부정부패 표본 = 40 "치안국정보국"이 초긴장 사태    치안국서울시경 비상소집 후, "정보부" 동향 파악    정승화(방첩부대장)민기식(참모총장)이 긴급수사 착수    김재춘은 실행 안 된 "76거사"이므로, 마무리하자고 주장"무 입건"으로 박의장에게 보고  박정희 : 전두환노태우 구속 포기

 김재춘 : 거사설일 뿐이다책임지고 부작용 막겠다.사의표명무임소 장관발령, 1달 뒤 "송요찬김준연""자민당" 창당 작업박통세력 무력화

8. 김형욱 (1925~197954): 육사 8중령중앙정보부장(4)국회의원(8)미국 망명 이후, 행방불

황해도 신천군 온천면 출신 친분 있는 사람에겐, 이권도 주는 의리의 사나이 어린 시절 집안이 매우 빈한하여, "초등학교"만 졸업 1943, "베이징"에서 "일본군 헌병보" 전력 때문에 "공산당"에 혼쭐 서울로 남하한 후 군에 입대

48.12 : 육사 8기생으로 입교 시 "육군 상사" 동기생 1,000명 가운데, 최하위권 성적으로 졸업

63.07~ 69.10 (육사8기 핵심JP와 더불어 3선 개헌 마무리3공 정권 기틀장악) : 저돌적인 추진력 : 남산 멧돼지돈까스 : JP에게, "정보부장" 되도록 해달라고, 애걸복걸JP 후광으로 "부장"이 됨.

"JP 라인"이지만, "JP 하수인"이길 거부JP계 인사 배척  : 박통과 직거래로, 신뢰관계 구축  : 신직수(7)차장 기용 : 박통 5사단장일 때, "법무관"으로 보좌, "최고회의 의장" 법률고문

박 정권 매도 증언회고록 집필유신정권 결정타 : 79.10 (54): 회고록 완성될 즈음, 파리에서 "영원한 실종"

63.10.15 : "대통령 선거(5)"에서 "박정희" 당선

63.08.08 : "송요찬(전 내각 수반)- "박정희 의장"에게 보내는 공개장 광고 (동아일보에 광고 "박정희 의장은 물러서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63.08.11 : 살인살인 교사혐의 구속, 경무대 앞 발포사건 / 625 당시, 명령 불복종으로 "조영구 중령" 즉결 처분

63.09.15 : "송요찬" 기호 2번으로 "자민당" 후보로 옥중 출마

63.08 : "김재춘(자민당 최고의원) 이후락정보부 입회하에 기자회견 후, 해외로 추방

63.10.07 : "송요찬" 대통령 후보 사퇴 11.02 : "송요찬" 자민당 탈당 성명 (옥중) 11.11 : 육본 보통군법회의(김계원 재판장)병보석 결정

"김형욱"의 미국 망명

71.05 :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 진출 (순번 : 김종필정일권백두진길재호김형욱)

72.08.03 : "83 사채" 동결조치 김형욱이 자본 이용하여, 상당액을 익명으로 기업체에 빌려주었는데, 채권신고 시 실명이 드러나기 때문에, 돈을 전부 떼이고 만다 "대통령 긴급조치권"에 따라, 기업-채권자의 채무채권 관계를 08.03일자로 무효화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하는 충격적인 경제 조치  무신고 할 경우, "사채 청구권담보권" 모두 소멸

73.03 : "유정회" 의원 명단작성 시, "김형욱"을 배제 졸지에, 무직자 신세1971년 김대중 정치자금유신정권의 부정축재자 색출 등에 따른 불안감 미국으로의 망명 결심

73.04.15 : "중화 학술원"의 명예박사 학위수여식 참석을 이유로, "외교관 여권"으로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대만 행"

73.04.21 : "대만"에서 "도쿄" 경유하여, "뉴욕 행" ("김계원""대만"에서 "김형욱"을 배웅함)

76년 까지 : 침묵도박으로, 세월 허송

77: "미 하원""박동선 사건" 청문회 때, "유신체제" 비판, "김경재(재미 반유신세력 핵심인물)와 같이, "박정권 타도"를 위한 회고록 집필  79.10 : 회고록 완성될 즈음, 파리에서 "영원한 실종"

19717대 대통령 선거 : 김형욱의 "김대중 후보" 지원

1971: 비밀리에 "김대중 후보" 선거자금도 헌금자기 사무실도 무상임대 "3억 원을 밀어주었다"고 최고 "중정부장"으로 컴백하는 것이 꿈

"김상현(김대중 비서실장)" "중정"시절 잘 통한 기업인(특히 이북출신)과 상견례 시키고, 정보 제공

박통에 대한 반감야당 보복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 / "4인 체제"와 통하는 "유진산 계김영삼"을 누르기 위함.

1973.04, 미국에 망명하는 계기 "김상현""유신선포" , "중정"에서 사경에 이르게 맞으면서, "대통령 선거자금 출처 추궁" 당하게 되는 원인이 됨.

7대 대통령 선거 (직선제) : 1971.04.27

박정희(634) 김대중(540) 94만표 차 박정희 3선 성공 / 박정희 : 경북(92만 차)경남(58만 차): 150만 차

박정희 : 대선자금으로 700억 사용 (국가예산 5,240(예산의 13% 사용))

유권자- 15,552,236(투표율 80%)- 박정희(6,342,828)김대중(5,395,900)진복기

1969: 박정희는 "대통령 3선연임 허용"을 골자로 "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의 토대 마련ㆍ자신들이 만든 "3공화국 헌법"에 대통령 임기는 "1공화국 헌법"과 같이 "재선"으로 제한을 했는데 "3선 개헌"을 꿈꾸고 있었고, "3선 개헌"을 위해 "중정"을 비롯한 기관에서 비밀리에 공작을 했으나, 당시 "김종필" 등 다수가 반대하였다. 그러나 회유에 그만 찬성하고 말았다 "3선 개헌" 국회 표결도 야밤에 불법으로 결행하여, 헌법에 오점을 남겼다.

김대중(신민당) 패인 : 김종필의 유세가담박정희의 마지막 출마공약ㆍ신민당 중진들의 태업엄창록의 막판 배신

9. 1964년 6사태 이후 (주요 지역에 "대공 분실" 설치)

 64.06.03 :  6ㆍ3사태부터, "김형욱"이 JP 제거 작업

→ JP 당의장에서 축출 : "김형욱"이 앞장서고, "김재규"가 실행함 → 박 통 : 외부적으로 헌정 수호를 위한 데모 엄단 /  내부적으로 "정권도전 세력"으로 떠오른 "JP"를 당의장에서 축출

② YTP 학생 린치 사건

"송철원(서울 문리대 정치학과)"이 "정보부"에 협력하였다가 변심, "민비연(민족주의 비교 연구회)학생과 데모 앞장→ 김형욱이 하수인 시켜, 린치 실행 → JP가 "정부부장 교체"를 "박통"에게 건의  → 김형욱이 코너에 몰림

• 64.06.03일 09:50 : 학생 데모로 수도 서울 치안 마비상태김형욱 : 트럭 1,000대 징발하여, 데모주동자를 서해 무인도로 격리하자고 주장 → 비상계엄령 선포ㆍ수경사 산하 3개 사단 병력 → 서울 진주 (계엄군 책임자 : 김재규 소장(6사단장)ㆍ육군 참모차장 : 김계원 중장)

③  JP 당의장, 사퇴 2번째 외유

• 64.06.04 : "김재규 소장"은 계엄령에 의해, "덕수궁"에 있었음. "이만섭 의원"(김재규가 대구대륜중 체육교사 시, 제자)에게 요청 → JP에게 공직 사퇴 권유 → JP의 공직사퇴ㆍ외유만이 사태수습책이라 역설 → 박통ㆍJP와 담판 (64.06.18 : JP 당의장 사퇴 2번째 외유)

• 64.06.04 : "앵무새(정부비판 동아방송 인기프로)" 프로그램 관계자 → 전원 연행 구속 06.06 : 경향신문 "이준구 사장손충무 기자"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06.08 : "1공수단 장교" 동아일보 난입폭언 11월 : 황용주(문화일보 사장)선우휘(조선일보 편집국장)리영희 기자(, 한양대 명예교수)  반공법위반 혐의로 구속

• 65.07.31 : 김대중(40세ㆍ재선의원) 73년 도쿄 피랍사건ㆍ80년 지하실 구금ㆍ사형 선고 → 김형욱 부장ㆍ중정 성토(한일협정 비준동의안 심사특위 시)

 67년 총선(6ㆍ8 국회의원선거): 박통- 목포를 정책지구로 정했으나, 김대중 낙선작전 실패

• 67~ 69 : 김형욱 3선 개헌작업→ 개헌완료 후, 김형욱이 정치의 짐이 됨→ 결국 김형욱은 용도 폐기됨.

10. 김형욱 (정보부장)윤필용 (방첩부대장) : 한국 공포 정치의 연출자

1960년대 후반 : 정보부방첩부대가 테러 범인은 잡히지 않음

주요세력 제거 : JP (집권 공화당 당의장테러용 사제폭탄 제조)ㆍ김재춘 (혁명동지전임 중정부장)ㆍ윤보선 (야당 대통령후보)ㆍ이준구 (경향신문 사장사내 반공법 연류회사 강탈)

64.08 : 김형욱 정보부 "인혁당 사건" 발표 64.06.03 사태 배후를 캐는 과정에서 비롯 → 국가보안법 위반 (도예종혁신계인사언론인교수학생 등 41명) 이용춘(부장판사)여운상(검사)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의견 사표수리  1- 2명 유죄나머지는 무죄 국회진상조사

65.07.07 : 변영권(동아일보 편집국장 대리)집 대문 폭파   09.08 : 조동화(동아일보 제작과장)폭행   09.09 : 유옥우(민중당 중앙상임위원)집 폭발테러

65.08.26 : 서울 위수령"한일협정" 파문으로 민중당 61명 의원 사직서 제출서울 학원가 데모

66.04.25 : 최영철(동아일보 정치부 기자)폭행협박장 "펜대 조심해라. 너의 생명을 노린다."   06.09 : 박한상(야당 의원) 괴한에게 뭇매     07.20 : 권오기(동아일보 정치부 차장) 폭행(전치 10)

11. 김형욱 (정보부장)ㆍ윤필용 (방첩부대장) : 과잉충성

1964: "정승화"로부터 "방첩대장(자유당시절 "김창룡 특무대장" 정권의 하수기구로 운영) "인수→  정부 전복 음모 적발 (보안사기무사의 전신)

65.05 : 원충연 대령(정훈학교 부교장)박인도 대령(2군단 포병사령관)이모 소령(결의사항을 녹음기 채록"방첩부대"에 밀고)

65.09 : 고다마 사건 (박종규 실장 : "사설 정보대" 두고, 첩보수집 JP"김용태석정선"이 일본 정상 "고다마"와 만나, "한국에서 뭘 하려면 실권자 JP 손잡아야한다. JP가 있으니 박통이 있다."는 내용을 "종규 실장" 도청

고다마 요시오(1911~1984): 극우 운동가CIA 요원폭력조직 금정회(후의 도천회) 고문정재계의 흑막결사우익의 거괴

67.07 : "정보 보고"에 따른 "김형욱박종규" 갈등 시작"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김옥희(박종규 여비서)"구속 "종규 실장""김형욱 부장"에게 석방요구

67.07.08 : 동백림 간첩단 사건, 동베를린 사건 (동베를린 간첩단동베를린 거점 대남간첩단)

발생 : 1967.07.08~ 1969.03.31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 (간첩단 사건))

 장소 : 동 베를린 (동독)

 관련 : 천상병(시인)윤이상(50재서독음악가전 서독한인회장)이응로(63재불 화가)민족주의비교연구회(서울대 문리대)학생 등 104명 구속 / 천상병-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심한 고문옥고로 몸마음이 깊이 상해, 가난방탕주벽으로 일관한 삶을 살았고, 많은 일화를 남겼다. 6개월 구금(전기고문 등)행려병자로 서울 시립정신병원에 유치. 생사를 몰라, 친구 시인들이 "" 라는 유고시집 발간

68: 총선(6) 당시, "경호실 간부(7)비서실 비서관(10) "청와대 요원(20)"이 입후보할 궁리만 한다고 박통에게 보고 실제는 2(박종규 실장이후락 비서실장 견제)

 12.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ㆍ국회 오물투척 사건

1966.05.24,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정부 정치자금과 관련해, 건설자재로 가장하여, "사카린 2,259 포대(55t)"를 대량으로 밀수입하려다 발각된 사건

결 과 : 한국비료 국가 헌납삼성 이병철의 은퇴국회 오물투척 사건 발생

파 문 : "박정희 정부"가 외친 구호가 "구악일소(부패척결)"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정권의 모순이 드러났다. / 당시 "삼성"에서 "중앙일보"를 세우고, 언론계에 진출할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는 점인데, 그래서 "사카린 사건"에 대한 경쟁 언론사들의 공격이 따가웠던 것이다.

1966.09.22,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대정부 질의 도중, "김두한 의원"이 국무위원 석에 앉아 있던 "정일권 국무총리장기영 부총리" 등 여러 명의 각료들을 향해, "인분"을 투척하는 사건 발생

 10.05, "장준하(사상계 사장)""민중당 대구 유세"에서 "박정희 대통령""밀수두목"으로 규탄했고, 이 발언의 책임을 물어 "김두한(09.24)장준하(10.26)"에 구속되었다,

김두한의 "국무위원에게 인분 끼얹은 사건" "김형욱""JP 지시"로 한 것으로 "박통"에게 보고 "박통" "김두한" 자백 받아내라고 지시 "김두한""중정"에서 고초 후에 폐인 인분 투척사건 후, 실직불우한 생활72년의 김두환- 이권에 관여하는 브로커로 생활

13. 정구영 의원 (공화당 초대총재ㆍ변호사): 공화당내 "개헌 반대" 진원지

차지철 (공화의원) 결혼 주례자ㆍ1969년 여름 : 반 개헌 JP계의 캠프는 "정구영 집" (북아현동)

아들 : 3형제는 북에 있었음.ㆍ1째 아들(진영): 625때 월북 김일성 대학교수ㆍ4째 아들(만영): 김재규의 친구육사 2: 박정희김재규정만영이 동기 여순 반란 사건에 가담 불명예제대 후, 625 이후 행방불명ㆍ5째 아들(춘영): 김항규(김재규 동생)의 친구

"정구영"에게 "개헌 동참"이나, "탈당"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이유 : 63.08.30- "박정희는 "육군대장 전역식" 마치고, "공화당 사"에서 입당절차. "박정희" 당원의 신원보증인이 "정구영"(보증인을 핍박하고, 탈당압력의 패륜과 우격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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