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보부 (중정ㆍ남산ㆍ中央情報部ㆍKorean Central Intelligence Agency)"는 한국의 특별 행정기관이자 정보ㆍ첩보ㆍ수사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사정변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입법권ㆍ사법권ㆍ행정권을 장악)의 산하기관"으로 설립되었다.
1. 1967.05.03 – 대통령(6대) 선거 : 지방색이 극명해진 일
• "윤보선 후보"가 116만 표차로 패배 (영남지역에서만 136만 표차 패배)
• 67.06.08 : 총선- 총선 1주일 전 야당(신민당) 전국구후보 10번 재일동포 실업인 김재화 구속 후 후보 사퇴 (전국구 의원은 선거 자금원 줄임) → 조총련계 자금 유입으로 "국가보안법ㆍ반공법ㆍ외환관리법" 위반혐의 → 신민당 중앙당 경리장부 압수ㆍ당 간부 조사 → 선거 자금 등 경비지출 동결 → 야당 선거 전열 마비시킴.
• 68년 : "김종필 당의장"을 제거하고, "김성곤"으로 교체하기 위한 작업 실행
• 68.01.21 : "김신조 사건"(무장공비 서울 침투사건)으로 "JP 진영"의 반격시작
• 68.05. : 공화당내 "국민복지회" 사건 : 농촌근대화 운동을 하자는 구상 → 송상남(예비역 공군대령) - JP계 최영두ㆍ김용태 면담 → 박통, 대통령을 비방한다고 하여 - JP계 불충 엄단 지시 → 전 현직의원 고문 (최영두 3년 후 사망): 송상남ㆍ최영두ㆍ김용태 의원- 공화당 제명 발표
• 68.05.25 : 제명 5일 후, "김종필" 정계은퇴→ 당의장ㆍ의원직ㆍ당직 버리고, 정치적 자살 선택 → 김형욱 (정보부장)ㆍ이후락(비서실장)ㆍ당내 4인방에 대한 반발
※ 당내 4인방 : 김성곤(재정위원장)ㆍ김재호(사무총장)ㆍ김진만(원내총무)ㆍ백남억(정책위원장)
2. 1968년 : 박통 재가를 받아, 남산주도로 "군납 조합" 설립→ 군납이권에 개입
•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덤핑유발→ 주한미군 군납예산을 모두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음. 2차 세계대전 후, 미군 주둔한 서독ㆍ일본ㆍ이탈리아에 야쿠자ㆍ마피아가 이권 개입하여, 덤핑을 막고 미군예산 과다 사용토록 유도
• 이권을 교통정리하면서, 일정 커미션 착복 : 건설ㆍ물품ㆍ용역분야에 개입 → 박통 통치자금ㆍ중정 자금으로 착복
3. 1969년 : "김형욱" 정보부장 퇴진요구
• 69.06.19 : 김영삼→ 서울 상도동 자택입구에서 3명의 청년으로부터 초산테러
• 69.07.30 : AM 04:40~ 18 시간동안, 공화당 의총 → "3선 개헌" 찬반 토론 (임기 4년제 개헌안) → 이만섭 : 권력형 부정부패 책임자인 "이후락(비서실장)ㆍ김형욱(정보부장)" 퇴진요구 → "김형욱"이 "이만섭" 제거 명령
• 69.09.14 : AM 02:00, "3선 개헌안"은 국민투표 법안과 같이 "국회 3별관"에서 날치기 통과 → 09.22 : 개헌 반대운동 핵심인 "4ㆍ19, 6ㆍ3 범 청년회"(이기택 회장ㆍ최형우 사무총장) → 소탕작전(박희도 주축) → "학비 줄 테니, 유학 가라" → 2년 후인 1971.06월, 8대 국회의원 선거시, 신민당으로 국회의원 당선 후(이기택ㆍ최형우), "김형욱(공화당 전국구)"와 국회에서 조우
• 69.10.17 : "3선 개헌안" 국민투표로 확정 (찬성률 65%)→ 69.10.20 : "이후락(비서실장)ㆍ김형욱(정보부장)" 경질→ 후임 김정렴(재무 상공장관 출신ㆍ연대 졸)ㆍ김계원(육참총장 출신)
4. 1970.3.17.PM 11시 : 정인숙 (정금지) 사건 발생
• 정인숙 (鄭仁淑ㆍ본 명 : 정금지 (鄭金枝)ㆍ1944~ 1970.03.17ㆍ향년 25세)
• 제3공화국 화제 인물ㆍ모델ㆍ배우ㆍ선운각(서울 우이동 고급 요정)에서 활동하던 접대부ㆍ 대구 부시장을 지낸 공직자(정도환)의 딸ㆍ대구 신명여고 졸업 후, 명지대 문리사대 중퇴ㆍ1968년(23세), 아버지 불명(정일권으로 추정)의 사내아이 낳은 미혼녀 (사망당시 3살)
• 1970.03.17일 밤 11시경, "정인숙"은 남산의 "타워호텔 18층 나이트클럽"에서 한 40대 남성과 만나 와인을 마셨고, 그 후 그곳에서 "Release Me ( 제발 날 놓아 주세요ㆍ영국 엥겔버트 험퍼딩크 노래)"를 듣고, 운전수 "정종욱(4째 오빠)"이 운전하는 "코로나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서울 강변 3로(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에서 갑자기 나타난 2명의 괴한들에 의해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2발의 총탄(머리ㆍ가슴)으로 사망하였고, "정종욱"은 1발(넓적다리)이 관통당하였으나 부상당한채 생존해 있었고, 택시기사에게 도움을 청해, 구조되었다.
5. 40대 기수론 - 김영삼(유진산계 황태자ㆍ신민당 원내총무)
• 69.11.08 : 김영삼(유진산계 황태자ㆍ신민당 원내총무) → 대통령후보 경쟁선언 (40대 기수론) → 자신의 보스였던 유진산에게 경쟁선언 → 김대중ㆍ이철승도 후보 경쟁 선언
• 71년 당시: 야당 신민당 5인 체재 (유진산 총재ㆍ고흥문 총장ㆍ이철승 의원ㆍ김대중 후보ㆍ김영삼 총무)
• 유진산 : 당시 야당 최대 정치세력ㆍ신민당 조직의 2/3 을 갖고 있는 현직 당수
• 유진오 : 신민당 총재ㆍ학자 출신ㆍ3선 개헌여파로 병원입원 중
• 윤보선 : 1963년, 1967년 2번의 대통령선거 패배
• 박정희 : 유진산의 독립운동 경력ㆍ나이ㆍ경륜ㆍ밀실타협 가능 성격ㆍ사쿠라적인 대여 뒷거래 가능성등 대통령 선거전에서 싸우기 쉽고, 야당 보스로 계속 유지해 주고픈 상대 → "김계원"에게 유진산 후보 지원지시 (진산은 차선을 쫒는 스타일) → 40대 기수(김영삼ㆍ김대중ㆍ이철승)은 구상 유치한 어린애로 취급 → "유진산- 김성곤" 거래 어색할 경우, "양일동- 김진만"이 매개적 역할 수행
• 70.01.26 : 신민당 전당대회→ "유진산" 당수 선출 (유진오 후임)
• 09.29 :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박통, 정보외교 망 총 동원하고, 정부 훈령지시
• 08. : 유진산을 해외 순방시켜, 이미지 쇄신 → 베트남(티우 대통령)ㆍ필리핀(마르크스 대통령)ㆍ일본(사토 수상) 면담
• 09.21 : 한밤중에 정보책임자가 "유진산 집"에 출입한다는 소문이 나자, "40대 후보 단일화가 되면, 후보 경쟁에 나서지 않는다."고 선언 → 40대 3인과 끝까지 후보경쟁 시, 당이 깨질 수밖에 없어서, 후보는 주고, 당권만 보전하려고 한 것→ 결국, "중정" 공작실패
• 09.28 : 유진산은 "김영삼 후보" 추천 → "김영삼 후보" 옹립을 통해, "당권" 유지 심산 → 1차 투표 : 885명 중, 김영삼(421)ㆍ김대중(382) → 과반수 미달로 재투표 → 김대중이 이철승에게 체제 약속 (김대중 후보ㆍ이철승 당수 체제) → 2차 투표 : 김대중(458)ㆍ김영삼(410) → 뒤집기에 성공 → 김영삼의 방심 (대의원 포섭보다, 수락연설 연습에 치중)
6. 1971.04.27. - 7대 대통령 선거 (직선제)
• 박정희(634) ⇌ 김대중(540만) → 94만표 차 → 박정희 3선 성공 (박정희 : 경북(92만 차)ㆍ경남(58만 차)→ 계 : 150만 차)
• 박정희 : 대선자금으로 700억 사용 (국가예산 5,240억(예산의 13% 사용))
• 유권자- 15,552,236명 (투표율 80%)- 박정희(6,342,828)ㆍ김대중(5,395,900)
• 1969년 : 박정희는 "대통령 3선연임 허용"을 골자로 "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의 토대 마련ㆍ"3선 개헌" 국회 표결도 야밤에 불법으로 결행하여, 헌법에 오점을 남겼다.
• 71.04.18 : 김대중 "서울 장충단공원" 유세→ 80만 명 운집→ 1만 명 "시가행진"으로 유세 과시 :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살겠다. 갈아보자ㆍ논도 갈고, 밭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
• 71.04.18 : 김재규 중장(육군 보안사령관이 "서씨 형제 간첩사건" 발표ㆍ재일교포 대학생 "서승(27세)ㆍ서준식(24세)형제" 등 간첩 10명에 대한 구속영장 (평양 방문(70.08.30~ 09.09), "서승"은 "김상현"집에 10개월 정도 기거→ "김대중"과 관련여부 추궁) : 죄명- 서 승(27세, 서울대대학원 2년): 일본의 "북괴공작 지도원"에게 포섭돼 67.08 첫 입북 이래, "서준식"까지 데리고 입북한 간첩ㆍ서준식(24세, 서울대법대 3년)): 북의 지령 받고, "교련 반대 투쟁"을 배후 조종ㆍ선동한 간첩
• 71.04.25 : "박정희" 후보 연설→ "안보 논쟁" 유발 → 김대중 : 향토예비군 폐지(68.04월 창설) 전면폐지 공약→ "국방부" 이적행위로 규정
7. 71.04.27 대선자금 : 600~ 700억 원 출처
• 67년 : "걸프" 석유사 : 100만 $ 출연→ "유공"과 협력하여, 폭리
• 71년 : "걸프" 석유사 : 300만 $ 출연(최초 1,000만 $ 요청)→ "유공"과 협력하여 폭리
• 71.03월 : "칼텍스" 정유사 : 500만 $ = 100만 $(스위스 계좌) + 400만 달러 → "호남정유"에 대여 → 합작회사 "호남정유" (서정귀 요청)
• 71.04월 : 미국 : 다른 3개 회사의 한국 대리점 : 150만 $ / 일본 : 지하철 전동차 메이커 "미쓰비시" 등 : 120만 $
8. 71.04 (마지막 대통령 선거)~ 72.10월 "유신"까지 사회적 격동
• 72.05.02 : "이후락"의 "김일성" 면담 → 71.07.28 : 사법파동 → 71.08.23 : 실미도 특수군 (209파견대ㆍ 684특공대)
• 71.10.02 : 항명파동 → 71.12.06 : 국가 비상사태 선포ㆍ국가보위법 파동→ 서울 10개 대학 군인 진주ㆍ광주 대단지 소요
• 71.12.25 : 대연각 호텔 화재 (167명 사망) → 72.08.03 : 8ㆍ3 사채동결 조치 (추진자 : 김용환)
① 72.05.02 : "이후락"의 "김일성" 면담
• 05.02 : HR 5일간 평양방문 김일성과 2차례 면담ㆍ김영주(동생ㆍ노동당 조직지도부장) 면담
• 05.29~ 06.01 : "김영주 부장"을 대리해, "박성철 부수상" 방문
• 72.11까지 : "김일성"이 남쪽 대표 면접 → 73년 이후 : 면접시행 안함→ 남북대화가 남한공존 전략에는 도움이 되나, 북에는 소용없는 일이란 판단
• 73.08 :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후, 남북대화 종료 → 08.28 : "김영주" 명의의 성명에서 "이후락"을 "납치주역"으로 지목하고, 대화거절
② 71.07.28 : 사법파동
정치성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 후, 서울 형사지법 판사 42명 중 37명 사표제출 → 법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신청 → 법원 거부→ 법원과 검찰 대립
③ 71.08.23 : 실미도 특수군 (209파견대ㆍ 684특공대ㆍ오소리공작대)
08.23일 06:00~ 14:15 • 북한침투작전을 위해 창설된 실미도 부대에서 공작원 24명이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 서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인천 중구 무의동→ 서울 동작구 대방동 유한양행 앞
④ 71.10.02 : 항명파동
• 당내 4인방 : 김성곤(재정위원장)ㆍ김재호(사무총장)ㆍ김진만(원내총무)ㆍ백남억(정책위원장)
• "4인 체제"와 "오치성(내무장관)"의 대립 → "오치성" 해임 결의안 → 실미도 특수군 난동ㆍ한진빌딩 난동ㆍ광주단지 시위ㆍ기동경찰 총기난사ㆍ무장공비 마을 점거ㆍ독침 및 간첩 자살 등 치안문책 → "오치성" 해임 결의안 시, 박통에 대한 반발로, 야당과 손잡고, 가결 처리
• "4인 체제"의 막강한 세력을 경계하고, 방자함을 치기위해 기용된 "오치성(내무장관)"은 "4인 체제" 조직에 사정 개시 → 내무경찰관료 상당수가 "4인체제"의 영향권에 있었음→ 풍부한 자금으로 관 조직에 금전살포ㆍ"장관" 보다 "4인 체제"에 정보보고를 하는 내부 경찰사조직 먼저 명부작성→ 해임ㆍ좌천 → 71.08.16 : 경찰간부 220명 권고 해임이나,인사이동ㆍ 71.08.19 : 시장ㆍ군수ㆍ구청장ㆍ도청 국ㆍ과장급 204명 인사이동
• 김성곤 : 총리나 국무총리에 대한 야망 → 75년 이후, 박통에게 "대통령 권한"을 축소한 "절충식 내각제" 제의
• 71.10.03 : HR이 김성곤ㆍ김재호ㆍ현오봉ㆍ구태희ㆍ이병옥ㆍ신형식ㆍ김창근ㆍ윤재명ㆍ문창탁 연행 (참고인 - 김재순ㆍ육인수(육영수의 오빠) 연행)
• 김성곤ㆍ김재호→ 탈당계→ 의원직 상실→ "4인 체제" 파워 붕괴 → 박정희 확고한 친정체제 구축 → 유신
9. 72.10.26 : 유신 쿠데타 (암호명 : 풍년사업)→ HR의 전성시대
• "10월 유신"이라 명명 : 일본의 "명치유신"을 본뜬 것
•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선출→ 대통령이 1/3 국회의원 지명권→ "유정회" 국회의원
• 박정희 : "유신헌법"의 산실인 "궁정동 중정 별관"에서 살해당함.
• 이후락 : "윤필용 사건ㆍ김대중 납치사건"으로 권력 직하
• 71.10.02 : 항명이후, 친정체제 구축ㆍ강권 통치 실시 → 10.05 : "윤필용" 수경사령관 부대 ("고려대" 데모 주동자 5명 연행) → 10.15 : "위수령" 발동→ 서울대(김복동 대령)ㆍ연세대(공수특전단장 "정병주" 부대 진주)
① 71.12.06 : "국가 비상사태" 선포 (1차 유신)
• 법적 근거 미약 :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히틀러" 시대의 수권법) → 권력기반 강화 → 야당에 의해 무력화 → 10월 유신(암호명 : 풍년 사업)
• HR이 "평양 방문" 후, "북 체제"는 완벽하게 단단하나, "남쪽"은 민주주의라서, 혼란과 정쟁만 거듭되는 상황에서, "북과 대결할 수 없다"고 박통 판단→ 궁정동 밀실 작업 (3인 회의): 박통ㆍ이후락 부장ㆍ김정렴 비서실장→ 김기춘 검사
• 72.08.03 : 8ㆍ3 사채동결 조치 (추진자 : 김용환): 유신공작과 더불어, 경제의 일대 혁명으로, 고도성장 기업의 과중한 고리사채에 부도가
• 72.10.17 : 오후 7시, 비상계엄선표 → 헌법 파괴 후, "유신헌법"을 위한 형식적 국민투표 시행 → HR의 "유신정부" 선전홍보 시작 → 10.17 : 박통 방일계획(11.13~ 18) 발표 → 10.20 : 방일계획 취소
② 71.10.26 : 국회해산(정당ㆍ정치활동금지)ㆍ국회국정감사(8대)중단→ 16년 후 1988년에 부활
악질 "최형우ㆍ김상현"을 밀실고문ㆍ기타 정치인 가택연금
72.11.03 : 새마을 사업지원금 3,686억 확정 → 11.07 : 박통 → 80년 국민소득 1,000 $, 수출 100억 $ 달성 선포 → 11.16 : 병역 기피자 17,834명 석방 → 11.11 : 남북 비방방송 중지 합의 → 11.22 : 국민투표 (유신 압승) 91.5% 찬성 → 12.23 : 통일주최국민회의→ 장충체육관에서 "박정희" 8대 대통령 선출 (99.99% 찬성) 총 대의원 2,359명 중 2,357명 지지, 2명 기권
10. 윤필용 (8기): HR과 윤필용 관계는 최고였음
• 1972년 말, "박정희 비서실장" 등 15년을 모시고, 육군 방첩부대장(보안사)ㆍ사단장을 거쳐, 수방사령관이 됨
• 1950년대 : 5사단(박정희 소장)과 근무
• 61.05.16 : 5ㆍ16 당시, "윤필용"은 대령, 경호실장 "박종규"는 소령 → 5ㆍ16 이후, "최고회의 박의장 비서실장" 근무 → 전두환 대위ㆍ손영길 대위
• 63년 : 육군 방첩부대장 (정승화 후임) → 68.01.21 : "청와대 습격사건 (김신조 등 북한특공대)"으로 "20사단장"으로 좌천 (후임 김재규 소장) → 68.10.20 : "주월 맹호부대" 사단장으로 파견→ "윤필용" 직계라인 11기와 만남
• 백마사단 29연대장(전두환 대령)ㆍ권익현 중령ㆍ김관중(김우중 형)
• 맹호사단 1연대 3대대장(노태우 중령)→ 박희도 중령
• 김재규(방첩부대장) : 비서실장인 "황인수(12기) 중령"을 "맹호사단 보안부대장"으로 보냄 → 강경대립화 → 김재규 비서실장 + 김복동 중령(육사교장ㆍ중장예편) 김복동 : 80년대, "윤필용의 직계11기와 빗나가는 길을 가게 되는 계기
• 73.03.02 : 박통→ "강창성" 보안사령관(8기)임명→ JPㆍ수도권 부대 체크당부 → 윤필용(8기)조사 지시→ 신범식 (서울신문사 사장), 불경 메모작성→ 박통 보고 → "강창성"이 "전두환 준장"에게 조사 지시 → 윤필용ㆍ이후락 조사
※ 손영길 준장(윤필용 참모장)과 이재걸 실장(감찰실장ㆍHR 오른팔): 울산출신으로 초등학교 이래, 친구 → 밀월은 친위그룹 내무의 질시를 유발
※ 다른 시각 : "손영길 준장"(윤필용 참모장)과 "전두환 준장" 대립→ "전두환" 무사 (윤필용 소장ㆍ박종규 실장의 대리전)
• 72.10.20 : 박통 "방일계획 취소" 등 일방통보 (박종규 경호실장는 파악하지 못함) → 경호실장 박종규가 HR에게 무시당함 → 겉도는 피스톨로 전락
① 윤필용 사건 : HR의 시련 시작ㆍ하나회(군 내부의 사조직)의 실체 확인 사건
1973.04월 : "윤필용 소장"이 "이후락 중정부장"과 술자리에서, 말해서 불거진 사건이다. "각하가 노쇠하시니 청와대를 물러나도록 하고, 건강이 더 약해지기 전에 후계자를 세워야한다. 각하의 후계자는 형님이십니다. 김춘추도 당나라에 갔다 와서,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② 결과 : "하나회" 멤버의 대다수가 "윤필용"을 따름
군내부의 사조직 "하나회" 장교 조사 → 하나회 장교 10명 : 횡령ㆍ직권 남용ㆍ근무지이탈 죄로 구속 (장교 31명 : 예편) → "하나회"와 절친했던 "제일은행 차장 이원조"는 사직→ "윤필용" 제거ㆍ"윤필용과 가까웠던 김연준(한양대 총장)은 구속→ "대한일보" 폐관
※ 김연준 (金連俊ㆍ1914~2008ㆍ94세): 한양대 총장(1959~1973년ㆍ15년간)ㆍ대한일보/기독교신문 창간ㆍ작곡가ㆍ언론인ㆍ교육자ㆍ함북 명천ㆍ연희전문학교 졸업ㆍ동아공과학원 (한양대 전신)을 설립
③ 1973년 "윤필용 사건"에서 수사 도중, "하나회"의 실체가 드러났다.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조사한 "하나회"는 (유사한 "사조직" : 청죽회ㆍ만나회ㆍ알자회ㆍ나눔회)
• 정규 "육사" 출신을 기본, "정원제"로 가입, 10명 내외로 • 회원 다수는 "영남 출신"이 점한다.
• "비밀 점조직 방식"으로 조직하되, 가입 시 조직에 신명을 바쳐, 충성할 것을 맹세하게 한다.
• "고위층"으로 부터 활동비를 지급받거나, "재벌"로부터 자금을 징수
• 회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진급 및 보직 상의 특혜"라고 밝혀졌다.
11. 육사 11기 (육사 정규 1기)
• "정규 1기"라고 뽑아놓고, "육사 11기"로 졸업시킴ㆍ6ㆍ25 전쟁 중, 집안 형편은 어렵지만, 우수한 인재들이 경쟁을 거쳐, 4년제 육사에서 숙식 걱정 없이 공부 (1950~ 60년대의 재력 있는 집안의 우수한 인재는 외국 유학행)
• 명문대 진학자와 동등한 두뇌ㆍ학구열 우수→ 엘리트 의식 (11~ 20기)→ 박통 아이디어ㆍ지시로, 초급장교 시절부터 "검수관"으로 발탁→ 부식ㆍ피복ㆍ탄약 등 보급품 반입ㆍ관리 담당→ 군부 실세로 성장
• 1960년대 말, "육사 11기"가 "김형욱(정보부장)ㆍ김재규(보안사령관)"에게 요주의 감시대상자로 찍히나, "박정희"의 비호로 무사히 넘어감.
① 전두환 (하나회 회장)
• 73.01 : 전두환 준장 진급→ "차지철 경호실장" 밑에서 "작전차장보" 수행ㆍ"차지철"이 "국기 강하식"이란 명목으로, "경복궁"에 고관들을 불러, 사열식을 즐길 때, 제병 지휘는 "전두환"이 수행
• 천하 1사단(문산) 사단장 시절 (1사단 : "박통"과 수도권 안전을 책임지는 사단) : "전두환" 관사에는 "서울직통 다이얼전화" 가설됨→ "전 장군은 박통 양아들"이란 소문
• "전두환(보안사령관 시절) "박통 지시"로, "김재규(중정 부장)ㆍ차지철(경호실장)ㆍ김계원(비서실장)"→ 권력관계 분석 및 부정 비리조사
② 하나회 (신군부(新軍部)) : 중위부터 장성까지 (220명) : 1951년(5성회)→ 1961년(7성회)→ 1963년(하나회ㆍ김복동 탈퇴)
1963년 "전두환(대장ㆍ대통령)ㆍ노태우(대장ㆍ대통령)ㆍ정호용(대장ㆍ국방부장관)ㆍ김복동(중장ㆍ육군사관학교장)" 등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한 "군 사조직"이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의 각 기수를 내려오면서, 주로 "경상도 출신ㆍ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3~ 4명씩 회원을 계속 모집하였다. 1979년, "육사11기ㆍ12기생"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12ㆍ12 군사반란ㆍ5ㆍ17쿠데타"를 주도하고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탄압과정"에도 참가했으며, 1995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핵심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951년, "육군사관학교" 4년제 첫 입학생 중, 영남출신 생도인 "전두환ㆍ노태우ㆍ김복동ㆍ최성택ㆍ박병하" 등 5명이 "5성회"를 조직한 것이 시초이다. 1961년 말, "전두환ㆍ노태우ㆍ손영길ㆍ정호용ㆍ권익현ㆍ최성택ㆍ백운택" 등 "육사11기"들이 친목 모임으로 "7성회"를 만들었다. 이게 나중에 "하나회"로 바뀌었는데, "5성회" 구성원이었던 "김복동"은 그때 탈퇴했다.
"전두환" 주도로 "육군사관학도들"은 "5ㆍ16 군사정변 지지" 시위를 벌였고, 이는 "박정희 소장"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5성회"는 회원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확대 개편 과정을 여러 번 거쳤다. 1963.07.06일을 기점으로 "육사 8기"를 몰아내기 위해 "7ㆍ6 친위 쿠데타"를 기획하였으나 실패하였다 → 동향 출신 세력을 키우고자 한 "박정희"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 4년제 정규 육사출신 : 1992년까지 "대통령(2명)ㆍ안기부장(5명)ㆍ경호실장(4명)" 배출
• "박통"으로부터 인정받고, 성장한 모임, "박통"은 비밀조직 "하나회"를 편애 → 진급자 위한 축하파티ㆍ승용차ㆍ금일봉ㆍ지휘관에게는 군도ㆍ지휘봉 선물
• 1970년대 초 : 군부 실세인 "윤필용 수경사령관"을 맏형처럼 모시게 됨 → 이후락과 윤필용 장군이 친해지자 긴장 → 1973.04월 "윤필용 사건"으로 "박통"으로부터 된서리
• 1973.04월 "윤필용 사건" 이후 : "보안사" 약점이 "수경사"에 포착 (하나회의 반격 시작) → "보안사" 군용기름 유출사건→ 휘발유 잉여분을 "중정ㆍ민간"에 팔아, "군용 수사비"로 전용 (김재규 사령관 시절부터 관행임) → "진종채"(신임 수경사령관)→ "박통" 보고→ "강창성"(보안사령관)은 "3관구 사령관"으로 실각
• 79.10.26 이후 : "하나회"는 다시 뭉쳐,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참총장"을 가두고, 12ㆍ12 사건 주도 → 제거 되었던 "윤필용" 장군 복권→ "강창성" 독직혐의로 체포(80.08.04)
< 후원자 > 윤필용 (8기ㆍ소장) : 방첩부대장ㆍ수도보병사단장ㆍ수도경비사령관ㆍ한국도로공사 사장ㆍ한미친선협회 이사장ㆍ한국전매공사 이사장ㆍ한국담배인삼공사 사장
차규헌 (8기ㆍ대장) : 주월사령부 비둘기부대장ㆍ제7보병사단장ㆍ수도경비사령관ㆍ수도군단장ㆍ사관학교장 ㆍ육군참모차장ㆍ제2작전사령부 사령관ㆍ교통부 장관
유학성 (8기(정훈1기)ㆍ대장) : 100군수지원사령관(십자성)ㆍ제26보병사단장ㆍ전투발전사령관ㆍ동해안경비사령관ㆍ육본 교육참모부장ㆍ제2군단장ㆍ국방부 군수차관보ㆍ제3야전군 사령관ㆍ국가안전기획부장ㆍ국회의원
황영시 (10기ㆍ대장) : 주월사령부 참모장ㆍ3사관학교장ㆍ제1군단장ㆍ참모차장ㆍ제3야전군 사령관 ㆍ참모총장ㆍ감사원장
< 막후 지지자 > 서종철 (1기ㆍ대장) : 육군참모총장ㆍ국방부 장관
< 11기 > 전두환 (대장) :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대대장ㆍ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ㆍ제9보병사단 제29연대장ㆍ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장ㆍ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ㆍ제1보병사단장ㆍ국군보안사령관ㆍ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ㆍ중앙정보부장 서리ㆍ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ㆍ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
노태우 (대장) : 수도보병사단(맹호) 1연대 3대대장ㆍ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ㆍ특전사 제9공수특전여단장ㆍ대통령경호실 행정차장보ㆍ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ㆍ제9보병사단장ㆍ수도경비사령관ㆍ국군보안사령관ㆍ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정호용 (대장) : 특전사 제7공수특전여단장ㆍ제50보병사단장ㆍ특전사령관ㆍ제3야전군 사령관ㆍ참모총장ㆍ내무부 장관ㆍ국방부 장관ㆍ국회의원
김복동 (중장) : 대통령경호실 차장보ㆍ제5보병사단장ㆍ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ㆍ육군사관학교장ㆍ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ㆍ학교법인 한국광산학원 이사장ㆍ민주자유당 당무위원ㆍ민주자유당 국회의원ㆍ자유민주연합 국회의원
권익현 (대령) : 육군참모총장 비서실 보좌관ㆍ제26보병사단 76연대장ㆍ국회의원ㆍ민정당 사무총장
< 12기 > 박희도 (대장) :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장ㆍ제26보병사단장ㆍ특수전사령관ㆍ제3야전군사령관ㆍ참모총장ㆍ한국토지개발공사 이사장
박준병 (대장) :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ㆍ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ㆍ국군보안사령관ㆍ국회의원
박세직 (소장) : 육군사관학교 교수ㆍ대통령비서실 안보담당 특별보좌관ㆍ국방부장관 보좌관ㆍ제3보병사단장ㆍ수도경비사령관ㆍ한국전력공사 수석부사장ㆍ국가안전기획부 차장보ㆍ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ㆍ총무처 장관ㆍ체육부 장관ㆍ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ㆍ국가안전기획부장ㆍ서울특별시 시장ㆍ제14ㆍ15대 국회의원ㆍ재향군인회장
< 16기 > 장세동 (중장) :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ㆍ특전사령부 작전참모ㆍ특전사 제3공수특전여단장ㆍ 대통령 경호실장ㆍ국가안전기획부장
< 17기 > 허화평 (준장) : 제9보병사단 작전참모ㆍ국군보안사령부 비서실장ㆍ대통령비서실 보좌관ㆍ대통령 비서실 제1정무수석 비서관ㆍ국회의원
허삼수 (준장) : 국군 보안사령부 인사처장ㆍ대통령비서실 사정수석비서관ㆍ미국 하와이대학교ㆍ동서문화센터ㆍ일본 교토대학교ㆍ미국 스텐퍼드대학교 객원교수ㆍ민정당 국책평가위원ㆍ한국문화연구원장ㆍ국회의원ㆍ한국청소년연맹 총재ㆍ사단법인 국제장애인협의회 이사장
안현태 (소장) : 대통령경호실장ㆍ국가원로자문회의 사무총장(장관급)
< 18기 > 이학봉 (준장) :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과장ㆍ대공처장ㆍ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비서관ㆍ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ㆍ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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