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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건ㆍ전쟁ㆍ혁명ㆍ학살44

전쟁- 1524~1525 : 독일 농민전쟁 ② 마르틴 루터ㆍ장 칼뱅 "95개조 반박문"은 1517.10.31일, "면죄부 문제"에 관한 논쟁을 위해,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ㆍ1483~1546ㆍ63세ㆍ독일)"가 "비텐베르크 (Wittenbergㆍ독일 동부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도시)"의 성곽 교회인 "슐로스키르헤 문(門)"에 라틴어로 써서 붙인 글이다.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신학교수이던 그는 "95개 논제"를 내세우며, 본격적으로 종교 개혁을 주도하였다. 그가 "95개 논제"를 문에 써 붙인 "성벽 교회", 그가 강론한 "시립 교회", 그가 살았던 "수도원" 등이 남아 있으며, "비텐베르크 대학교"는 "할레 대학교"와 합병하여, 현재 "할레"에 있는 "할레 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교"로 남아 있다. 이들 "종교개혁" 관련 유적지들은 그의 고향 "아이.. 2022. 12. 30.
전쟁- 1524~1525 : 독일 농민전쟁 ① 토마스 뮌처 (반란 지도자) "독일 농민 전쟁ㆍ농민 대 전쟁ㆍ농민 대 항쟁"은 1524~1525년 사이, "중부 유럽의 독일어 권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던 농민들의 항쟁이다. 전쟁에 가담한 30만여 명의 가난한 소작농 가운데, 10만여 명이 귀족들에게 학살되어, 진압되었다. 1. 독일 농민 전쟁ㆍ농민 대 전쟁ㆍ농민 대 항쟁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독일 농민전쟁"을 "계급투쟁"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도 "뮌처의 독일 농민전쟁"에 대해, "사회주의 혁명"의 전통이 "뮌처"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분드슈 운동ㆍ후스 전쟁"과 함께, 16C "독일" 지역의 경제적ㆍ종교적 운동의 일부로 파악되기도 한다. • 일 시 : 1524~1525 • 장 소 : 독일ㆍ오스트리아ㆍ스위스ㆍ알자스ㆍ체코 일대 • 결 과 .. 2022. 12. 30.
전쟁- 1517~1712 : 유럽의 종교전쟁 (200년 간) 요약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 1517 : 종교개혁 직후 1517.10.31일 : 95개조 반박문- 마르틴 루터(1483~1546)에 의한 종교 개혁 ① 1522~1523 : 기사 전쟁 "독일 라인(Rhein)" 지방의 "인본주의자 기사ㆍ개신교도"들이 "프란츠 폰 지킹겐"을 지도자로 하여, "로마 교회ㆍ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상대로 일으켰던 반란 →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에 자극 받은 몰락한 기사들이 전날의 영광스럽던 "중세 제국"의 재건을 노리고 일으킨 것으로, "대 제후들"에 의하여 진압되었다. 이 반란은 비교적 짧은 시일 내에 진압되었으나, "독일 농민전쟁"을 발생시키는 단초를 제공.. 2022. 12. 30.
전쟁- 1455~1485 : 장미전쟁ㆍ영국왕권 내란ㆍ랭카스터 가ㆍ요크 가 "장미전쟁 (薔薇戰爭ㆍWars of the Roses)"은 1455~1485년에 있었던 잉글랜드 왕권을 둘러싼, "랭커스터 가(붉은 장미 家)ㆍ요크 가(흰 장미 家)"가 대립해 벌어진 영국의 내란이다. "장미 전쟁"의 이름은 "랭커스터 가"가 "붉은 장미"를, "요크 가"가 "흰 장미"를 "가문의 문장(紋章)"으로 삼은 것에서 유래하였다. 내란의 본질은 "귀족전쟁"이라는 점에 있다. 1. 장미전쟁 (薔薇戰爭ㆍWars of the Roses) "요크 공(公) 리처드"는 "헨리 4세(랭커스터 가)"가 "플랜태저넷 왕가"의 "리처드 2세"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것이므로, "요크 공 리처드"가 "랭커스터 왕조" 이상으로 "왕위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헨리 6세" 때, 궐기하였다. 여기에 귀족간의 싸움이 결.. 2022. 12. 30.
전쟁- 1337~1453 : 백년전쟁 ② 쟌다르크ㆍ경과ㆍ오를레앙 포위전 "잔 다르크 (Jeanne d'Arcㆍ1412~1431ㆍ19세)"는 "성녀 요안나 아르크ㆍ오를레앙의 성처녀"라고도 불린다. "세례명으로 쓸 때는 "요안나"라고 명한다. 흔히 깃발을 들고 백마 위에 올라탄 여기사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1. 경 과 ① 배경ㆍ시작 "잉글랜드"를 견제할 세력이 필요했던 "프랑스 필리프 6세"는 "잉글랜드"에 쫓겨, 산악지대로 들어갔던 "스코틀랜드 왕국"에 주목했다. 당시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또, "필리프 6세"는 "잉글랜드 에드워드 3세"의 신종서약에 트집을 잡고, "잉글랜드 국왕"의 봉토였던 "아키텐 령"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1337년에는 "아키텐 령"의 몰수를 선언하였다. 또 "노르망디 해안"에는 함대를 보내, ".. 2022. 12. 29.
전쟁- 1337~1453 : 백년전쟁 ① 116년간 전쟁ㆍ프-영 전쟁 (1차) "백년전쟁 (百年戰爭ㆍHundred Years War)"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중 하나로, 서유럽에서 가장 넓은 땅의 왕위를 두고, 두 왕조가 5대 116년에 걸쳐 싸운 장대한 전쟁이다. "영국 왕국의 플랜태저넷 가"와 "프랑스 왕국의 발루아 가" 사이에 "프랑스 왕위계승 문제"를 놓고 일어난 일련의 분쟁들을 말하는 것으로, "플랜태저넷 가와ㆍ발루아 가" 양측 모두 여러 동맹자들을 전쟁에 끌어들였다. "기사의 최고 전성기"이자, 동시에 "기사계급의 쇠퇴"가 시작된 시기이다. "영국ㆍ프랑스" 양국 모두 전쟁으로 인해, 강고한 국민정체성이 싹트게 되었다. 1. 백년전쟁 (百年戰爭ㆍHundred Years War) • 일 시 : 1337~1453년까지 (5대 116년 동안) • 장 소 : 프랑스ㆍ.. 2022. 12. 29.
전쟁- 1095 : 십자군 전쟁 (1095~1456)ㆍ십자군 (8전1승6패1무) "십자군 전쟁 (Croisade)"은 1095~1456 (361년간)년까지, "기독교ㆍ이슬람교"의 "종교ㆍ문명"의 충돌로, "서양의 중세사"에 가장 큰 의미를 가진 전쟁이다. 11C부터 14C까지 감행된, "중세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에 대항한 행해진 대규모의 군사 원정이다. 1. 십자군 전쟁 (Croisade): 1095~1456 (361년간)ㆍ십자군(8전 1승 6패 1무)ㆍ회교도 • 기 간 : 1095~ 1456년까지 (약 361년 동안) • 11C~ 14C에 걸친 "회교도"에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유럽 그리스도 교회"가 주도한 수차례의 원정 전쟁 • 십자군의 전적 : 8전 1승 6패 1무ㆍ1차전 (1.. 2022. 12. 29.
전쟁- BC 31 : 악티움 해전 (로마)ㆍ안토니우스ㆍ클레오파트라 "악티움 해전 (Battle of Actium)"은 "로마의 2차 삼두정치"가 붕괴된 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BC 83~ 30ㆍ53세ㆍ장군ㆍ로마 공화정 시대의 정치가)"와 "클레오파트라 여왕 (CleopatraㆍBC 69~30ㆍ39세ㆍCleopatra VII Philopatorㆍ이집트 여왕)"의 연합 함대와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ㆍ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BC 27~AD 14))"의 함대 간에 "로마의 패권"을 두고 겨룬 해전이다. 1. 악티움 해전 (Battle of Actium) "로마"의 경우, "해전"에 상당히 취약했으며, "악티움 해전"의 경우에도 "해전을 육전화"한 로마 식의 전투가 벌어졌다. "해전" 자체는 별 특징이 없이, "옥타비아누스 측"의 승리로 끝났다. "옥타비아누스"의 .. 2022. 12. 29.
전쟁- BC 264~146 : 포에니 전쟁 ② 한니발 (Hannibal) "한니발 (HannibalㆍBC 247~ 183(181)ㆍ64(66)세)"은 고대 "카르타고(튀니지)"의 군사 지도자로, 대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령관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소아시아(터키 영토에 해당하는 반도로 아나톨리아ㆍ소아시아(Asia Minor)로 불림)"으로 도망쳤다가, 수년 후, 공을 세우고 싶어 하는 "로마인 백인대장"이 자신을 찾는 것을 알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독"을 마셔, 자살을 하였다. 1. 한니발 바르카 (Hannibal BarcaㆍBC 247~ 183(181)ㆍ향년 64(66)세) "한니발"은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 사령관"이었던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제로는 "마고 바르카ㆍ하스드루발 바르카"가 있었다. 또 .. 2022. 12. 29.
전쟁- BC 264~146 : 포에니 전쟁 ① 로마ㆍ카르타고ㆍ120년간 "포에니 전쟁 (Poeniㆍ포이니)"은 BC 264~146년 사이, "로마ㆍ카르타고"가 벌인 3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포에니 (Poeniㆍ포이니)"라는 말은 "라틴어(Poenicus)"에서 나왔는데, 이는 "페니키아 인"의라는 뜻으로 "카르타고"가 "페니키아"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다. 1. 포에니 전쟁 (Poeniㆍ포이니) "포에니 전쟁"의 주요 원인은 당시 "지중해" 패권을 잡은 "카르타고"와 새로 떠오르는 "로마"의 이해관계가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로마인"들은 원래 "시켈리아(시칠리아, 당시 이 섬은 여러 문화가 뒤섞인 곳이었다)"를 통해, 영토를 확장하는 데 관심이 있었는데, 이 섬 일부 지역을 "카르타고"가 지배하고 있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 2022. 12. 29.
전쟁- BC 431~404 : 펠로폰네소스 전쟁 (27년)ㆍ스파르타 (Sparta) "펠로폰네소스 전쟁 (Peloponnesian War)"은 BC 431~404 (27년간)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각각 자기 편 동맹시(同盟市)들을 거느리고 싸운 전쟁으로, 그리스에서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1. 펠로폰네소스 전쟁 (Peloponnesian War)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으나, "고대 그리스" 쇠망의 원인이 되었다. "아테네"는 "민주정치"를, "스파르타"는 "과두정치(寡頭政治)"를 각각 대표한 폴리스였다. 따라서 이 전쟁은 두 정치체제의 싸움이기도 하였고, 각 폴리스 내부에서도 두 정치체제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아테네 출신 장군이며, 훗날 역사 연구에 유용한 기록을 많이 남긴 역사가로 유명한 "투키디데스 (T.. 2022. 12. 28.
전쟁- BC 490~449 : 페르시아 전쟁ㆍ마라톤 전투ㆍ살라미스 해전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ㆍ그리스 전쟁)"은 최초로 "동ㆍ서양 문명"이 충돌한 전쟁으로 평가된다. "페르시아"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 (아테네ㆍ스파르타 중심)"이 벌인 전쟁으로, "아테네"의 급성장을 일궈낸 전쟁이자,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평가받는 전쟁이다. 1. 페르시아 전쟁 (그리스ㆍ페르시아 전쟁) "그리스 원정" 실패로 서아시아 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BC 4세기 말 "알렉산드로스"에게 멸망하였다. 반면,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낸 "그리스"는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그리스" 문화와 정치 체제는 "페르시아 제국"이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그리스 세계"의 확대는 "오리엔트"에 대제국을 건설하고, 서쪽으로 팽창하는 "페르시아"와의 ..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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