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농민 전쟁ㆍ농민 대 전쟁ㆍ농민 대 항쟁"은 1524~1525년 사이, "중부 유럽의 독일어 권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던 농민들의 항쟁이다. 전쟁에 가담한 30만여 명의 가난한 소작농 가운데, 10만여 명이 귀족들에게 학살되어, 진압되었다.
1. 독일 농민 전쟁ㆍ농민 대 전쟁ㆍ농민 대 항쟁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독일 농민전쟁"을 "계급투쟁"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도 "뮌처의 독일 농민전쟁"에 대해, "사회주의 혁명"의 전통이 "뮌처"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분드슈 운동ㆍ후스 전쟁"과 함께, 16C "독일" 지역의 경제적ㆍ종교적 운동의 일부로 파악되기도 한다.
• 일 시 : 1524~1525 • 장 소 : 독일ㆍ오스트리아ㆍ스위스ㆍ알자스ㆍ체코 일대 • 결 과 : 농민반란의 진압ㆍ관련자 처형 • 교 전 : 농민 반군 / 슈바벤 동맹 • 병 력 : 300,000여 명 / 미상 • 피 해 : 100,000여 명 / 미상
• 지 휘 : 토마스 뮌처 (Thomas Münzerㆍ1489?~1525ㆍ향년 36세) "종교개혁" 시기에 활동한 독일의 급진 종교 개혁가ㆍ재세례파 지도자ㆍ민중이 압제자에게서 해방된 "신정 정치"를 실현하려고, "농민 반란"을 이끌었다.
16C "독일 사회"는 "자본주의"의 진행으로, "유산계급ㆍ무산계급"으로 구분되고 있었는데, 농민들은 "무산계급"에 속해있었다. 그들의 삶은 "유산계급(부르주아ㆍ영주)"의 착취인 "과다한 소작료ㆍ세금"으로 인하여, 갈수록 피폐해져갔다. 농민들의 주장 가운데, 일부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들은 "마르틴 루터"가 주도하는 "종교개혁"이 "오직 성경으로"를 부르짖으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불공평한 사회가 개혁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농민 전쟁"을 비난하고, "귀족의 편"에 섰다. "농민군"들은 "마르틴 루터"의 지지를 열렬히 원했으나, "마르틴 루터"는 그들을 "기독교도가 아닌 자들(unchristian)"이라 규탄하고, 탄압하였다. "토마스 뮌처"가 이끈 "농민군"들은 "마르틴 루터"를 따르는 "영주들ㆍ귀족들ㆍ유산계급ㆍ부르주아"에 의해서 학살당했고, "뮌처"도 05.25일 처형되었다.
농민들의 "사회개혁 의지"는 1524년, "독일 농민들"이 "영주들"의 착취에 맞서 싸운 "민중 항쟁"인 "독일 농민전쟁"으로 실천되었고, "종교개혁자"인 "토마스 뮌처"가 "민중항쟁"을 이끌었다. "독일 남서부"에 해당하는 "알자스" 인근 지역에서 개별적인 항쟁으로 시작되어, "동부"로 확산되어 "오스트리아"에 해당하는 지역까지 전파되었고, "스위스"의 여러 주에도 영향을 주었다. 농민들은 포병도, 기병도 없이 빈약한 무기를 들고 있었으며, 군사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고, 지휘체계를 갖추지도 못했기 때문에, "귀족들의 군사"를 당해낼 수 없었다.
2. 1522~1523년 : 기사 전쟁
"독일 라인(Rhein)" 지방의 "인본주의자 기사ㆍ개신교도"들이 "프란츠 폰 지킹겐"을 지도자로 하여, "로마 교회ㆍ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상대로 일으켰던 반란이다.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에 자극 받은 몰락한 기사들이 전날의 영광스럽던 "중세 제국"의 재건을 노리고 일으킨 것으로, "대 제후들"에 의하여 진압되었다. 이 반란은 비교적 짧은 시일 내에 진압되었으나, "독일 농민전쟁"을 발생시키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3. "마르틴 루터"의 현실 권력과의 결탁
"루터의 종교개혁"은 "지배 계급들"과의 결탁에 의해 진행되었으므로, "독일 농민들"이 "제후들"의 착취에 대항하여 "민중항쟁"을 벌이자(독일 농민전쟁), 제후들에게 서신을 보내 "진압해야 한다"고 선동하였다.
"루터"는 "농민항쟁" 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후들의 착취에 맞서, 계급투쟁을 벌이는 농민들을 "사회를 위험하게 하는 폭도"라고 비방하였지만, 실제로는 제후들과의 결탁이 유지되지 않으면, "종교개혁이 진행될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에서 "농민항쟁 진압"을 주장하였다. 즉 "루터"에게는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지배질서로부터 민중을 구원하는 성서의 하나님보다, 현실권력인 제후들과의 결탁을 통한 "종교개혁 진행"이 중요했던 셈이다.
이는 "개신교"도 기존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종교와 정치 간의 "결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 침례교"에서는 종교와 정치 간의 분리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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