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 1517 : 종교개혁 직후
1517.10.31일 : 95개조 반박문- 마르틴 루터(1483~1546)에 의한 종교 개혁
① 1522~1523 : 기사 전쟁
"독일 라인(Rhein)" 지방의 "인본주의자 기사ㆍ개신교도"들이 "프란츠 폰 지킹겐"을 지도자로 하여, "로마 교회ㆍ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상대로 일으켰던 반란 →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에 자극 받은 몰락한 기사들이 전날의 영광스럽던 "중세 제국"의 재건을 노리고 일으킨 것으로, "대 제후들"에 의하여 진압되었다. 이 반란은 비교적 짧은 시일 내에 진압되었으나, "독일 농민전쟁"을 발생시키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② 1524~1525 : 독일 농민 전쟁
"중부 유럽의 독일어 권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던 농민들의 항쟁ㆍ전쟁에 가담한 30만여 명의 가난한 소작농 가운데, 10만여 명이 귀족들에게 학살되어, 진압되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독일 농민전쟁"을 "계급투쟁"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도 "뮌처의 독일 농민전쟁"에 대해, "사회주의 혁명"의 전통이 "뮌처"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분드슈 운동ㆍ후스 전쟁"과 함께, 16C "독일" 지역의 경제적ㆍ종교적 운동의 일부로 파악되기도 한다.
농민들의 주장 가운데, 일부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농민 전쟁"을 비난하고, "귀족의 편"에 섰다. "농민군"들은 "마르틴 루터"의 지지를 열렬히 원했으나, "마르틴 루터"는 그들을 "기독교도가 아닌 자들(unchristian)"이라 규탄하고, 탄압하였다.
2. 1529~1555년
1529~31 (카펠 전쟁) → 1534~35 (뮌스터 반란) → 1535 (재세례파 폭동) → 1537 (비갓의 난) → 1546~47 (슈말칼덴 전쟁) → 1549 (기도서 반란) → 1552~55 (제후 전쟁) → 1555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3. 16C 종교전쟁 : 1562~1614
1562~98 (위그노 전쟁) → 1568~1648 (네덜란드 독립 전쟁) → 1583~88 (쾰른 전쟁) → 1592~1604 (슈트라스부르크 주교 전쟁) → 1598~99 (지그문트 폐위 전쟁) → 1609~14 (이윌리히 계승 전쟁)
4. 30년 전쟁 : 1618~1648
1567~1648 (헤센 전쟁)→ 1618~20 (보헤미아의 난)→ 1618~23 (보헤미아ㆍ팔츠 전쟁)→ 1621~29 (위그노의 난)→ 1625~29 (덴마크 전쟁)→ 1625~30 (잉글랜드ㆍ스페인 전쟁 (2차))→ 1630~35 (스웨덴 전쟁)→ 1635~48 (프랑스ㆍ스웨덴 전쟁 (1차))→ 1635~59 (프랑스ㆍ스페인 전쟁 (2차))→ 1643~45 (토르스텐손 전쟁)→ 1648 (베스트팔렌 조약)
5. 삼왕국 전쟁 : 1639~1651
1639~40 (주교 전쟁)→ 1642~51 (잉글랜드 내전 (1차ㆍ2차ㆍ3차) = 영국내란 (청교도혁명))→ 1644~51 (스코틀랜드 내전)→ 1641 (아일랜드 반란)→ 1642~49 (아일랜드 맹방 전쟁)→ 1649~51 (크롬웰의 아일랜드 정복)
① 삼왕국 전쟁 (三王國 戰爭ㆍWars of the Three KingdomsㆍBritish Civil Wars)
삼왕국 (잉글랜드 왕국ㆍ아일랜드 왕국ㆍ스코틀랜드 왕국)에서 벌어진 전쟁ㆍ1628년, "잉글랜드 의회"가 "찰스 1세"에게 "권리청원"을 제출했다. 1642년,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가 "왕당파"를 물리친 "잉글랜드 내란"이 발발했다.
• 일 시 : 1639~1651 • 장 소 : 그레이트브리튼 섬ㆍ아일랜드 섬 • 결 과 : "잉글랜드 의회파"가 나머지 파벌에게 모두 승리→ 잉글랜드 연방의 설립ㆍ아일랜드 독립파의 패배ㆍ스코틀랜드 장로파의 패배ㆍ국왕 찰스 1세의 처형ㆍ세자 찰스 2세의 망명
6. 베스트팔렌 체제 : 1648~1700
1655~90 (사보이아 발도파 전쟁)→ 1656 (빌메르겐 전쟁 (1차))→ 1665~67 (영국-네덜란드 전쟁 (2차))→ 1688~97 (9년 전쟁)→ 1701~14 (스페인 계승 전쟁)→ 1702~10 (카미자르의 난)→ 1712 (빌메르겐 전쟁 (2차))
①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phalia)
오스나브뤼크와 뮌스터(각각 1648.05.15일과 10.24일)에서 체결되어, 프랑스어로 조문이 쓰인 "평화 조약"을 일컫는다. "웨스트팔리아 평화회의"를 "국제법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이 조약의 원인이었던 "30년 전쟁"을 "최초의 국제전쟁"이라고 부른다. "국제법의 아버지"인 "네덜란드 그로티우스"가 사망한 지 3년 후의 시점이다. • 결 과 : "신성로마제국"에서 일어난 "30년 전쟁(1618~48)ㆍ에스파냐-네덜란드 공화국간의 "80년 전쟁"이 끝났다. • 오스나브뤼크 (Osnabrück): 니더작센 주에 있는 독일의 도시 / 뮌스터(Münster)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독일의 도시
이 조약에는 "에스파냐ㆍ프랑스ㆍ스웨덴ㆍ네덜란드"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3세(합스부르크 가)"와 각 동맹국 제후들ㆍ신성로마제국 내 자유도시(Freie Reichsstadt)들이 참여했다. 이 조약은 최초의 "근대적인 외교 회의"를 통해 나온 것으로, "국가 주권 개념"에 기반을 둔 새로운 질서를 중부 유럽에 세웠다. 1806년까지, 이 규정은 "신성로마제국 헌법"의 일부였다. "프랑스-에스파냐 전쟁"을 종식한 "피레네 조약(1659)"도 종종 여기에 포함하기도 한다.
외교 사가들은 "근대 외교조약의 효시"를 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인정하고 있다. "30년 전쟁"이 "로마 가톨릭교회-개신교간의 대립"이라는 종교적 문제를 명분으로 발발했지만, 이후 전개 과정에서는 "종교"보다는 "왕조와 국익"을 앞세워 길어진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인 전쟁이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교회 국가"인 "부르봉 왕가의 프랑스"가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를 지원하다가 후반기에는 직접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ㆍ에스파냐" 등과 전쟁을 했다는 사실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 조약을 통해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개신교 국가"들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탄압"에서 벗어나 생존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역사에서 처음으로 "프로이센이 왕국"으로 등장하였다. "네덜란드ㆍ스위스"는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프랑스"는 이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 조약 이후, 서쪽의 "프랑스", 동쪽의 "스웨덴"이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한 1648~1700년을 "베스트팔렌 체제(Westphalia System)"라고 한다. "베스트팔렌 체제"는 "스페인 계승 전쟁"으로 "서유럽 패권"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넘어가고, "대 북방 전쟁"으로 "동유럽 패권"이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면서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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