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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병ㆍ독립운동ㆍ의열단ㆍ김원봉34

사건- 23.01 : 국민대표회의→ 주도권 싸움→ 김구 해산명령 "국민대표회의"는 1923.01.03~06.07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한국 독립운동 계파간의 회의"를 말한다. 독립운동사에 무려 "135개 독립단체"가 난립하여, 효과적인 투쟁을 못한 이유도 "주도권 싸움"이었다. 여기에는 "국내ㆍ상하이ㆍ만주ㆍ북경ㆍ간도ㆍ노령ㆍ미주" 등의 135개 독립운동단체, 158여 명의 대표들이 모였으며, 최종적으로 "125명의 대표"가 확정되었다. 1. 국민대표 회의 (임시의장 : 안창호ㆍ의장 : 김동삼ㆍ부의장 : 안창호/윤해) 이 회의에 모인 국내외 단체의 대표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진로를 비롯한 독립운동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임시정부가 "임시정부를 새로 창조하자(창조파)"와 "구조만 수정하자(개조파)"의 논쟁 장으로 변하자, "김구"는 "내무부령 제1호"를 내려.. 2022. 10. 24.
사건- 21.06 : 자유시 참변 (흑하사변) → 독립군단 와해 "자유시 (自由市) 참변ㆍ흑하사변 (黑河事變)"은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비극ㆍ불상사"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소련 영토인 "스보보드니(이만ㆍ연해주 자유시)"에서 "붉은 군대"가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포위ㆍ사살한 사건으로, "고려 공산당"의 "이르쿠츠크 파ㆍ상해 파" 간의 정면 대결로 발생한 것이다. 1. 자유시 참변 (自由市慘變)ㆍ흑하사변(黑河事變) → 군권 장악ㆍ통수권 갈등 "사할린 의용군(이항군)"이 "볼셰비키 군(임시 고려군정회ㆍ자유대대)"의 포위ㆍ집중공격에 쓰러진 참변이었지만, "이르쿠츠크 파 고려공산당ㆍ상하이 파 고려공산당" 간의 대립투쟁이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수많은 부대가 총 집결한 "대한독립군단" 내부에 "군권 장악"과 관련한 권력투쟁이 발생한다. "자유시"에 집결한 한인 독립.. 2022. 10. 24.
사건- 21.04 : 북경군사통일회의→ 국민대표 회의 "북경군사통일회의 (北京軍事統一會議)"는 각지의 "무장 독립단체들"을 통일하고, 이를 기반으로 "임시정부"를 개편하기 위한 회의였다. 1. 북경군사통일회의 (北京軍事統一會議)→ 국민대표 회의 "독립군 부대의 지휘통솔권"에 대해서는 기존 "상하이 임시정부의 통솔권"을 부인하고, "국민대표대회"를 소집해, 새로운 "정부 수립"을 모색하기로 결의했다. 독립투쟁 지휘권을 "임정 군무부ㆍ군사통일회의" 어느 쪽에 두느냐의 "지휘권 문제"ㆍ"이승만"의 위임통치문제ㆍ"임정ㆍ의정원"을 부인하는 문제 등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기들만이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여, 광범위하게 토의할 문제라고 여기고, "국민대표대회 준비위원"으로 "박용만ㆍ신숙ㆍ박건병ㆍ남공선ㆍ배천택" 등 5명을 선출하고, 이를.. 2022. 10. 24.
사건- 20.12 : 대한 독립군단→ 자유시 참변 후, 분할 재편 "대한독립군단 (大韓獨立軍團)"은 1920.12월 "중·소 국경" 부근인 "밀산(密山ㆍ중국 흑룡강성 계서시 (鷄西市)에 위치한 항일 투쟁지)"에서 "독립군 세력"을 하나로 통합한 "연합부대"이다. 1. 대한독립군단 (大韓獨立軍團) : 총 병력 : 3,500여 명 1920년, "봉오동 전투(1920.06)ㆍ청산리 전투(1920.10)" 등에서 "독립군"에게 참패를 당한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작전을 대대적으로 단행하면서, "간도 참변(1920.10)"을 일으켰다. 이에 "북로군정서" 등 독립군 세력들은 "노령(露領) 연해주(沿海州)"로 건너가 "장기 항일전"을 준비하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독립군"들은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동 중 1920.12월 "중·소 국경" 부근인 "밀산(密山ㆍ중국 .. 2022. 10. 24.
사건- 20.10 : 간도참변ㆍ경신참변 (학살) ← 혼춘참변 "혼춘참변(琿春慘變)ㆍ혼춘 학살사건"은 1919년 "3ㆍ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방"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독립군 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1920년, "일본군"이 "만주"로 출병하여, 무고한 "재만 한인" 조선인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이다. 1. 혼춘참변 (琿春慘變)→ 간도참변 (間島慘變ㆍ학살)ㆍ경신참변 (庚申慘變) 1920년, 일본 제국이 "봉오동 전투"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중국 마적단"과 내통해, 고의로 "일본 관공서"를 습격한 사건으로, "일본군"은 이를 핑계로 "함북"에 주둔하는 "나남사단(제21사단)"의 1개 연대를 출동해서, "훈춘"에 입성해, 주변의 한인 인사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 일 시 : 1920.10.02. / 청산리 전투(10.21~ 28) 이후 3~ 4개월 •.. 2022. 10. 24.
사건- 20.06 : 의병 전투- 삼둔자ㆍ봉오동ㆍ청산리 "삼둔자 전투 (三屯子 戰鬪)"는 1920.06.04~06일까지벌저인 독립군의 첫 "국내 진공 시도"로, "일본군"을 선제공격한 사건이다. 소규모 "국내 진입 작전"의 도화선이 됐으며, "일본 육군"이 최초로 "중국 대륙"을 침공한 사건이다. 1. 독립군 지역ㆍ지도자 2. 1920.06 : 삼둔자 전투 (三屯子 戰鬪) 독립군의 첫 "국내 진공 시도"로, "일본군"을 선제공격한 사건ㆍ소규모 "국내 진입 작전"의 도화선이 됐으며, "일본군 육군"이 최초로 "중국 대륙"을 침공한 사건ㆍ"홍범도의 대한북로독군부"의 독립군 연합부대와 "이흥수의 신민단" 예하 독립군 1개 중대가 연합, "북간도 삼둔자(三屯子)"에서 "일본군 남양수비대(南陽守備隊)" 예하 1개 중대(지휘- 니히미 지로 중위)를 격파한 소규모 전투였.. 2022. 10. 24.
사건- 20.01 : 철혈광복단 사건(간도 15만 원 사건)ㆍ일본 밀정 "철혈광복단 (鐵血光復團) 사건"은 1920.01.04일, 북간도의 "윤준희ㆍ임국정ㆍ한상호ㆍ박웅세ㆍ김준ㆍ최봉설" 등 "철혈광복단" 6명이 일제가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북간도 용정촌지점"으로 운송중이던 "일본화폐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으로,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엄인섭"이 "일제의 밀정"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진 계기이다. 1. 철혈광복단 (鐵血光復團) 사건ㆍ간도 15만 원(150억) 사건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은 1919년 "윤준희ㆍ임국정ㆍ한상호" 등이 "중국 젠다오(間島)"에서 조직한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로, 1920년 대부분의 단원이 당시 "남만주"에 본거를 두고 있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입하면서 이 단체 역시 이곳에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말, "김하석(金.. 2022. 10. 24.
사건- 1908 : 신돌석 의병장 사망사건ㆍ최초 평민의병장 "신돌석 (申乭石ㆍ본명 : 신태호(申泰浩)ㆍ1878~1908ㆍ30세)"은 구한말의 의병장으로, 최초의 평민 의병장ㆍ주로 강원도/ 경북의 태백산ㆍ소백산 주변에서 활약하였다. 초기 의병 운동이 주로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최초의 평민 의병장으로 유명하다. 1. 신돌석 (申乭石ㆍ본명 : 신태호(申泰浩)ㆍ1878~ 1908ㆍ향년 30세) • 출 생 :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 사 망 : 경북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 (訥谷) • 종 교 : 유교 (성리학) • 사 인 : 암살 (도끼에 의한 타살) • 계 급 : 13도 창의군 교남창의 대장 (13도 창의군 지휘 의병장) • 별 명 : 태백산 호랑이 • 별 칭 : 신돌석(申乭石ㆍ申乭錫)ㆍ신태을(申泰乙)ㆍ신태홍(申泰洪)ㆍ신대호(申大浩) • 처 : 한재.. 2022. 10. 24.
사건- 1919 : 임시 정부ㆍ상해(19~32)ㆍ이동(32~40)ㆍ충칭(40~45) "임시 정부 (臨時政府)"는 1932.04.29일, "홍커우 공원"에서 벌어진 "윤봉길(尹奉吉ㆍ1908~1932ㆍ24세ㆍ총살형) 의거"를 계기로 포악해진 일제를 피해, 1932.05~1940년까지 8년 동안, "항저우(杭州)ㆍ난징(南京)ㆍ창사(長沙)ㆍ광저우" 등 10여 곳을 전전하며 남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1. 임시 정부 (臨時政府) : 1919.04.11~ 1945.11 (27년간) 임정 27년 : ①기 상해시대 (1919~32)ㆍ②기 이동시대 (1932~40)ㆍ③기 충칭시대 (1940~45) • 1919.04.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 수립ㆍ선포 (국호ㆍ헌장 제정ㆍ반포) 이후 1945.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일제의 강제점령을 거부하고 국내외를 통할ㆍ통치했던 3권 분립의 민.. 2022. 10. 23.
사건- 1907 : 의병ㆍ13도 창의군 (十三道 倡義軍) 1907.11월, "이인영 (1868~1909ㆍ41세ㆍ구한말 의병장)"의 비밀격문ㆍ통문에 따라, 각 도 의병장들은 11월에 "양주"로 집결했는데, 이때 참여한 총병력은 1만여 명에 이르렀으며, 의병운동사상 가장 크고 강력한 의병군이었다. 1. 13도 창의군 (十三道 倡義軍) 그러나 "전국연합 의병부대 재편성" 착수 과정에서, 당시 일본군경의 가장 두려운 대상이었던 "신돌석과 평민출신 홍범도ㆍ김수민" 등과 같은 의병장이 이끄는 부대는 제외되었다. 이들 평민출신의 의병장은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배제되었기 때문에, 이후 의병부대의 대중적 기반을 넓히지 못하고, 전략적으로도 투쟁성과 기동전술이 미비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처음부터 연합부대는 "양반ㆍ유생"을 중심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의병.. 2022. 10. 23.
사건- 1895 : 의병ㆍ을미의병ㆍ을사의병ㆍ정미의병ㆍ13도 창의군 의병 (義兵)은, 국내외 각지에서 한민족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독립운동의 무대가 되는 광범위성을 가졌고, "대한제국"의 "전제군주국"으로 국권을 회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국가" 즉 "민주공화국"으로 새롭게 독립하려는 "근대성"을 가졌다. 1. 의병(義兵)ㆍ창의군(昌義軍) • 을미의병 (1895)ㆍ을사의병 (1905)ㆍ정미의병 (1907)ㆍ13도 창의군 (1907) → 독립운동 • 정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병"을 뜻하는 말 • "임진왜란ㆍ정유재란ㆍ병자호란"과 같은 외적의 침략에 맞서, 자발적으로 구성된 민간 무장 조직 • "대한제국" 시기, "의병" 역시, 이들은 변변한 무기도 갖추지 못하였으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2. 의병투쟁 → 독립운동으로ㆍ의열 투쟁과 테러의 구분 .. 2022. 10. 23.
의열단 ④ 윤세주 (석정)ㆍ조선의용대 최고 이론가 "약산 (若山) 김원봉 (金元鳳ㆍ1898~1958.11(?)ㆍ60세)"의 "밀양" 동향사람으로, 3살 위인 "김원봉"과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지금도 "밀양시 내이동"의 두 사람의 생가 자리가 서로 10m 거리에 마주보고 있다. 본디 겸손한 성격이었으나 가슴 속에는 뜨거운 애국심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경술국치" 당시에는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1. 윤세주 (尹世胄ㆍ본명 : 윤소룡ㆍ1901~1942ㆍ향년 41세) 독립 운동가ㆍ"약산 김원봉(윤세주가 3살 아래)"의 동향 사람으로, 함께 "의열단"에서 활동ㆍ"조선의용대"에서 손꼽히는 이론가ㆍ1919년, 3ㆍ1운동 때, "밀양 장터"의 만세시위 주동, "백범일지"에는 "석정"으로 기록되어 있다. • 출 생 : 경남 밀양 • 사 망 : 중국..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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