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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건106

사건- 73.04 : 윤필용 사건ㆍ하나회 → 김대중 납치사건 "윤필용 사건 (권력 스캔들)"은 1973.04월, "쿠데타 모의 혐의"로, "윤필용(수도경비사령관)"과 장성ㆍ장교 등 13명을 처벌한 사건이다. 당시 "윤필용(수도경비사령관)"이 이후락(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므로, 형님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윤필용과 그를 따르던 군 간부들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구속되어 처벌받은 사건이다. 1. 윤필용 사건 (권력 스캔들) HR의 시련 시작ㆍ하나회(군 내부의 사조직)의 실체 확인 사건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는 "박종규ㆍ이후락ㆍ윤필용ㆍ강창성"이 서로 권력을 견제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이후락ㆍ윤필용"이 가까워지자, 권력의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한 "박정희"가 "윤필용"과 그 추종세력을 제거한 사건이라는 해석도 있다.. 2022. 11. 14.
사건- 75.04 : 김상진 할복사건 (서울대 농과대학 4학년) 1975.04.11일 오전 11:20분 경, "김상진(서울대 농과대학 4학년)"이 "유신체제ㆍ긴급조치"에 항거하여 할복자살한 사건으로, 이후 벌어진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1. 1975.04.11 : 김상진 할복사건 (金相鎭 割腹事件) 1975.04.11일 오전 11:20분 경, "김상진(서울대 농과대학 4학년)"이 "유신체제ㆍ긴급조치"에 항거하여 할복자살한 사건으로, 이후 벌어진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04.11일, "서울대 농대(수원)"에 위치한 잔디밭에서 농대생 300명이 모여 성토대회를 가졌다. 이 대회는 1주일 전인 04.04일의 시위에서 "박정희 정권"에 의해 구속된 구속학생을 석방하기 위해 열린 것이었다. 대회에서는 여러 명이 나와서 연설.. 2022. 11. 14.
사건- 68.08 : 통일혁명당 사건ㆍ신영복 교수ㆍ처음처럼 (소주) 포장 "통일혁명당 사건"은 1968.08.24일,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지하당 조직사건"이다. 158명이 검거되어, 50명의 구속자를 낸 1960년대 최대의 공안 사건으로 "김종태"를 비롯한 주범들은 사형을 언도받았다.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1992년)ㆍ민족민주혁명당 사건(1999년)ㆍ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2013년)" 등과 함께 실체가 있는 대표적인 공안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김종태ㆍ이문규ㆍ김질락"이 사형을 선고 받았다. 1. 통일혁명당 (統一革命黨) 사건 • 일 시 : 1964.03.15~1968.08.20 • 혐 의 : 국가보안법 위반ㆍ반공법 위반ㆍ내란음모 • 피 고 : 김종태 ( ? ~ ? ㆍ통일혁명당 서울시당 위원장ㆍ2째 형 김상도 국회의원의 비서로 정치 입문)ㆍ김질락 (1.. 2022. 11. 14.
사건- 68.04 : 실미도(684) 부대 ② 사건 정리ㆍ창설ㆍ작전 취소 "684 부대 (실미도 부대ㆍ2325부대 209파견대) 부대원"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침투하여,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철저한 인민군 식 실전 훈련을 받았고, 훈련 과정에서 7명이 사망하였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북파가 가능한 "인간병기"로 만들어진 이들은 3년 가까이 "북파 명령"을 기다렸으나, 1971년 국제적인 긴장완화와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작전 자체가 불확실해졌다. 1. 당시 상황ㆍ창설 "케네디"의 사망으로 부통령직에서 대통령 직을 계승한 "미국 제36대 대통령" "린든 B. 존슨"은1964.08.02일, "통킹 만 사건"이 발생하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할 것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 세계 최강의 미국이 전쟁에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 2022. 11. 13.
사건- 68.04 : 실미도(684) 부대 ① → 자폭사건 발생 (71.08.23) "684 부대 (실미도 부대ㆍ2325부대 209파견대)"는 "김형욱"이 창설했으며, "684 부대"는 공식적으로 "2325부대 209파견대"로 1968.04~ 1971.08월까지 존재하던 대한민국 "공군의 북파공작 부대"였으며,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건의로 창설, 훈련 과정에서 7명이 사망하였다. 1971.08.23일, 공작원(24명)이 탈출 후, 부대원 대부분이 "유한양행 앞(영등포구 대방동)"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하고, 생존자 4명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1972.03.1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1. 684 부대 (실미도 부대ㆍ2325부대 209파견대ㆍ김형욱이 창설) ① 기 간 : 1968.04~ 1971.08.23 (실미도 사건 발생일) ② 부대 명 : 684 부대 (부대창설 월인 1968.04월을.. 2022. 11. 13.
사건- 68.01 : 1ㆍ21사태ㆍ김신조 사건 → 실미도(684) 부대 "1ㆍ21사태ㆍ김신조 사건"은, "김일성"의 명령으로 1968.01.21일, 북조선 "민족보위성 정찰국의 124부대"소속의 군인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당시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1968.05월, "간첩 식별을 용이하게 한다."는 이유로 개정되어, 18세 이상의 국민들에게 12자리 번호가 새겨진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다. 1. 1ㆍ21사태ㆍ김신조 사건 생포된 무장공비 "김신조"는 기자회견에서 침투 목적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기를, "우리 31명의 임무는 "박정희 모가지 뗄 임무이다." 이후 경기도 일원에 걸쳐 "군경합동수색전"을 전개, 01.31일까지 28명을 사살했다. 나머지 2.. 2022. 11. 13.
사건- 67.07 : 동백림 (東伯林) 간첩단 사건ㆍ동베를린 사건 "동백림 간첩단 사건 (동베를린 사건)"은 1967.07.0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간첩단 사건)으로, "동백림 (東伯林)"은 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 베를린"을 말한다.1. 동백림 (東伯林) 간첩단 사건ㆍ동베를린 사건 (The East Berlin Affair)• 발 생 : 1967.07.08~ 1969.03.31      • 장 소 : 베를린 (당시 동독의 동베를린)     • 성 격 : 공안사건 • 관 련 : 천상병(시인ㆍ37세)ㆍ윤이상(50ㆍ재 서독음악가ㆍ전 서독한인회장)ㆍ이응로(63ㆍ재불 화가)ㆍ민족주의비교연구회(서울대 문리대)학생 등 104명 구속 /  천상병 (千祥炳ㆍ1930~1993ㆍ63세ㆍ호: 심온(深溫)ㆍ시인ㆍ문학평론가)ㆍ윤이상 (尹伊桑ㆍ1917~1995ㆍ78세ㆍ.. 2022. 11. 13.
사건- 64.08 (1차)→ 74.04 (2차) : 인혁당 (인민혁명당) 사건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도예종(都禮鍾ㆍ52ㆍ삼화토건 회장)ㆍ여정남(呂正男ㆍ32ㆍ전 경북대 학생회장)" 등의 인물들이 기소되어, 무려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날조사건으로, 국가가 법을 이용해 무고한 국민을 살해한 "사법살인 사건"이자,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인권 탄압" 사례로 알려져 있다. 1. 인혁당 사건(人革黨)ㆍ인민혁명당 사건(人民革命黨) ① 제1차 사건 (1964.08) : "반공법" 위반 등으로 기소 ② 제2차 사건 (1974.04) : "국가보안법ㆍ대통령 긴급조치 4호" 위반 등으로 기소ㆍ1975.04.08일,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후,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재심의 소"는 사형 집행 후 30.. 2022. 11. 13.
사건- 64.06 : 63항쟁ㆍ63시위ㆍ한일협상반대운동 "63항쟁ㆍ63시위ㆍ한일협상반대운동"은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상"에 반대하여 일으킨 운동으로, 1964.06.03일 저녁 6시 30분, "박정희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여, "한일국교 정상화회담 반대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학생ㆍ정치인ㆍ언론인 등 1,120명 검거되었고, "이명박(고대 상과대학 학생회장)ㆍ이재오ㆍ손학규"등 348명은 "내란 및 소요죄"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게 된다. 1. 63항쟁ㆍ63시위ㆍ한일협상반대운동 • 일시 : 1964.06.03~07.29 (서울 시내에 경찰ㆍ계엄군 투입ㆍ시위 진압) • 원인 : 박정희 정부의 한일협상 시도 • 인원 : 학생 총 30,000여 명 • 검거 : 학생ㆍ정치인ㆍ언론인 등 1,120명 검거 • 한일굴욕외교 반대 투쟁위원회 : .. 2022. 11. 12.
사건- 64.06 : 한일 회담ㆍ김종필- 오히라 메모 → 6ㆍ3항쟁 "한일회담 (韓日會談)"은 1951~1965.06.22일,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이 타결되기까지, 14년간 총 7차례에 걸쳐 있었던 "한국ㆍ일본" 간의 일련의 협정을 말한다. "5ㆍ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1964.03월부터 본격화한 "한일회담" 타결 움직임은 학생을 중심으로 극렬한 반대를 불러왔고, 1964.06월 반대시위가 절정에 이르러, "6ㆍ3항쟁"을 초래하게 된다. 1. 협상 결과 총 8억 $ : 무상기금 3억 $/10년간 지불 + 정부유상차관 2억 $/연리 3.5%ㆍ7년 거치 20년 상환조건 + 상업차관 3억 $ 1960년(총리 장면) 23억$ 배상금 요구→ 1961.11월 박정희ㆍ이케다 회담→ 1962.11.12일 김종필(중앙정보부장)ㆍ오히라 마사요시(외상) "김ㆍ오히라 메모.. 2022. 11. 12.
사건- 61.05 : 5ㆍ정수장학회ㆍ부일장학회 (김지태) 부일장학회(釜日奬學會ㆍ1958)→ 5ㆍ16 장학회(1962)→ 정수장학회(正修奬學會ㆍ1982) "박정희(正)ㆍ육영수(修)"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정수장학회"가 된다. 1958년, 부산 최고 갑부인 "김지태 (金智泰ㆍ1908~1982ㆍ향년 74세)"가 자신의 재산을 출연해 만든 "부일장학회(釜日奬學會)"를 토대로,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설립한 단체이다. 1. 부일장학회 (釜日奬學會ㆍ1958)→ 5ㆍ16 장학회 (1962)→ 정수장학회 (正修奬學會ㆍ1982) 1962년,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에 의해, 강제로 "부일장학회"를 국가에 헌납하게 되고, "부일장학회"는 해체되었다. 국가에 헌납했다던 "부일장학회"를 이어받은 "정수장학회"는 현재 "박근혜 측근"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장학금을 현재 .. 2022. 11. 12.
사건- 61.05 : 5ㆍ16 당시, 윤보선 대통령의 생각 "윤보선"은 "정신적 대통령은 나"였다. "쿠데타" 당시만 해도 "박정희(朴正熙ㆍ다카키 마사오ㆍ1917(경북 구미)~ 1979.10.26(서울)ㆍ 62세)"에게 밀리는 듯했던 "윤보선 (尹潽善ㆍ1897~1990ㆍ향년 93세)"은 "청와대"를 나온 뒤, "박정희" 그늘에서 벗어난 뒤로는 "박정희"가 감당하기 힘든 존재가 됐다. 1. "윤보선"은 "박정희"에게는 일종의 "천적"이었던 셈이다. "박정희"는 "윤보선"과의 관계에서는 곤란을 겪거나,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자주 나타났다. 그런 "윤보선" 앞에서 "박정희"는 "딸 바보" 못지않은 "윤보선 바보"가 되어야 했다. 처음에는 당하는 듯했지만, 나중에는 "박정희"를 골탕 먹인 "윤보선"은 "박정희"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뒤에도 천수를 누리며 살다가, 19.. 202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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