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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건106

사건- 1873~1896 : 대원군ㆍ민비 대결- 2 (집권ㆍ실각) "흥선대원군 이하응 (興宣大院君ㆍ李昰應ㆍ1820~1898ㆍ향년 77세)"은 일본인과 결탁하여 며느리 "명성황후 (明成皇后ㆍ민자영ㆍ민비ㆍ1851~1895.10.08.ㆍ43세)"의 암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유길준"에 따르면 "대원군은 차라리 명성황후를 제거해 달라"고 "일본 공사관"에 수시로 부탁했다고 한다. (을미사변의 조선인 주요 협력자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명성황후ㆍ민씨 일족ㆍ고종"을 폐출하고, "완흥군ㆍ이재선" 등을 조선 군주로 옹립하려는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실패하였고, 이후 손자 "영선군 이준용"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여러 번 정변을 기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1. 대원군 집권 (3차): 대원군 (73세) ① 1894 : 동학 농민운동 발생 • 민씨 정권은 "청"에 파병 요청 → "일본"도 ".. 2022. 9. 26.
사건- 1873~1896 : 대원군ㆍ민비 대결- 1 (집권ㆍ실각) "흥선대원군 이하응 (興宣大院君ㆍ李昰應ㆍ1820~1898ㆍ향년 77세)"은 1864.01~1873.11월까지 조선 국정을 이끌었었다. 직접 며느리 "명성황후 (明成皇后ㆍ민자영ㆍ민비ㆍ1851~1895.10.08.ㆍ43세)"을 간택하였으나, 도리어 "명성황후"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었다. 1873.11월 "명성황후ㆍ유학자ㆍ신 안동 김씨ㆍ풍양 조씨ㆍ여흥 민씨" 등에 의해 축출된 이후, "명성 황후"와 권력투쟁을 벌였다. 1. 흥선대원군 ⇌ 민비ㆍ고종의 끝없는 대결 • 흥선대원군 이하응 (1820~ 1898ㆍ향년 77세)ㆍ석파ㆍ민비 사망 후 3년 뒤 사망 • 고종 (1852~ 1919ㆍ향년 67세ㆍ재위 1863~1907(11세))ㆍ인평대군(인조의 3남)의 7대손 • 명성황후 (1851~ 1895ㆍ향년 43세)ㆍ.. 2022. 9. 26.
사건- 1897.11 : 독립문ㆍ매국노 "이완용"의 글씨? "독립문 (獨立門ㆍ1897.11.20)"은 사대외교(事大外交)의 상징인 "중국의 국사신 (國使臣)"을 영접하던 "모화관 (慕華館)"의 정문인 "영은문 (迎恩門)"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운 것으로, 한국 근대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19C 말의 "자주민권ㆍ자강운동"의 한 기념물이다. "이맛돌 상단", 앞뒤로 한글ㆍ한자 글씨(독립문)은 "이완용"이 썼다. 1. 독립문 (獨立門ㆍ1897.11.20ㆍ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941ㆍ사적 제32호 (1963년 지정) "이맛돌 상단", 앞뒤로 한글ㆍ한자 글씨(독립문)은 "이완용"이 썼으며,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한 현판석을 달아놓았다. "갑오개혁 (1894~1896ㆍ내정개혁,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던 개혁운동)"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 2022. 9. 24.
사건- 1896.07 : 독립협회 → 만민공동회 "독립협회 (獨立協會)"는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로 "민권ㆍ참정권"을 주장하던 "서재필" 등의 "개화파"와 정부의 외세 의존 정책에 반대하는 "지식층" 등이 참여하여, "지주ㆍ자본가"의 입장에서 개화를 추진하여, "민중계몽단체ㆍ근대적인 정치단체 및 근대적인 정당"으로 발전하였다. 1. 독립협회 (獨立協會) →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ㆍ관민공동회 (官民共同會) 초기에는 사교클럽 형식으로 출발하여, "고급 관료들"이 대거 가담하는 등 각 계파가 혼재되어 있었으며, "일반시민" 계층보다는 고급 관료들이 주도하는 "사교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후에 "집권 관료층"이 이탈해간 반면, "신지식인 계층"이 점차 전면에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1898.11월 정부의 외곽단체인 "황국협회" 등의 무고로 ".. 2022. 9. 24.
사건- 1895.04 : 시모노세키 조약 → 3국 간섭 (러ㆍ독ㆍ프) "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전쟁 (1894.07.25)"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이 "청나라"와 맺은 청ㆍ일간 강화조약이며, 이 조약을 통해 "일본"은 식민지를 소유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고자 하였다. 1. 시모노세키 조약 (일청강화조약ㆍ하관조약 (下關条約)ㆍ마관조약 (馬關條約)) 1895.03.20일부터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시"에서 열린 "청일전쟁의 강화회의"로 체결된 조약으로, 조약은 5개 항목으로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간섭을 물리치고, "일본"이 조선과 만주까지 지배력을 뻗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몇 년 뒤, 조선에서는 "청나라"가 물러나고 "명성황후"의 요청에 지원받는 "러시아"가 새로 들어와, 일본의 "조선 지배욕"을 방해하게 된다. • 일 시 : 1895.04.17 • 체 결 : 이.. 2022. 9. 14.
사건- 1894.07.25 : 청ㆍ일 전쟁 (→ 시모노세키 조약→ 신해혁명) "청ㆍ일 전쟁 (淸日戰爭)"은 "청나라ㆍ일본 제국"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쟁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주도권은 "중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옮겨졌으며, "청나라" 조정과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에 치명타를 주었으며, 이러한 경향이 이후 "신해혁명"으로 이어졌다. 1. 청일전쟁 (淸日戰爭ㆍ1894.07.25~1895.04.17)→ 시모노세키 조약→ 신해혁명 중일갑오전쟁 (中日甲午戰爭→ 중국)ㆍ일청전쟁 (日淸戰爭→ 일본)ㆍ제1차 중일 전쟁 (First Sino- Japanese War→ 서양)이라고도 부른다. "청나라"의 퇴보ㆍ무력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양무운동"의 한계를 보여준 전쟁이었으며,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화가 "중국의 양무운동"에 비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였다. 동아.. 2022. 9. 13.
사건- 1894.07.23 : 갑오왜란ㆍ경복궁의 변 → 갑오개혁ㆍ청일전쟁 1894.07.23일, 일본군 약 1,000여 명이 "경복궁"을 기습한다. "경복궁" 내에는 500명의 조선군이 있었는데, 숫자는 적지만 "독일제 총"으로 무장한 정예 병사였는데, "동학농민군"을 상대하기 위한 파병이 있어서, "경복궁" 내에는 500명의 조선군만이 남아 있었다. 1. 갑오왜란ㆍ경복궁의 변ㆍ일본군의 경복궁 강제점령ㆍ갑오사변ㆍ제2의 임진왜란 1894.07.23일, 일본은 "경복궁"을 강제 점령함으로써, 조선의 정국을 전환시켰다.이후 "교정청"을 폐지하고, "흥선대원군"을 내세워, "김홍집 (교정청 출신)"과 친일인사로 "갑오개혁"에서 내정을 간섭하자 "동학 농민군"은 외세를 몰아낼 목적으로 다시 봉기하여, 서울로 북상하였다. "경복궁"을 점령한 뒤, "일본"은 "흥선대원군"과 입궁, "고종.. 2022. 9. 12.
사건- 동학 이란? ( 천도교ㆍ東學 ) "동학 (東 學)"의 근본사상은 "인내천(人乃天)"으로, 이것은 "인본주의"를 강조하면서, 성실ㆍ신의로써 새롭고 밝은 세상을 만들자는 외침이었으며, 어지러웠던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사상이었다. 또 모든 사람은 평등함을 주장하였다. 1. 동학 (東學) • 교 리 : 인내천ㆍ후천개벽ㆍ시천주 • 경 전 : 동경대전 (최제우 저)ㆍ용담유사(최제우 저)ㆍ해월신사 법설ㆍ의암성사 법설 • 깃 발 :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일본ㆍ서양" 세력을 배척하고, "의"를 내세운다. • "유불선(儒佛仙)"의 장점을 융합하여, 인간 중심을 내세운 종교ㆍ나라와 시대의 모순을 고민하는 보국(保國) 종교 • "민족자주ㆍ인간존중ㆍ만민평등"을 바탕으로 한 "민본주의" 사상 • 사상 - 인내천 (人乃天) - 사람이 곧 하늘이다. 만민평등.. 2022. 9. 11.
사건- 1894.02 : 동학 농민 운동- 2 : 주요 전투ㆍ진행 내용 "우금치 전투 (牛禁峙)"에서 "동학 농민군"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데, 전투에 동원된 회선포ㆍ기관포ㆍ야포는 모두 관군이 가져온 것이지만, 전투 지휘를 주도한 지휘관은 "일본 육군 후비 보병" 중대와 동행한 "19대대장 미나미 고시로 육군 보병 소좌"였다. 1. 주요 전투 ① 황토현 전투 (1894.05.11): 관군을 무찌르고 첫 승리를 거둔 전투→ 진주로 진격 • 장 소 : 전북 정읍 황토현 일대 • 결 과 : 동학 농민군의 대승리 • 지휘관 : 농민군- 전봉준ㆍ손화중ㆍ김개남ㆍ최경선 • 병 력 : 농민군- 4,300명 / 진압군- 1,300명- 감영군(700)ㆍ향군(600) ② 황룡천 전투 (1894.05.27) : 동학 농민군의 승리 ③ 전주성 전투 (1894.05.31) ④ 이인 전투 ⑤ 금.. 2022. 9. 11.
사건- 1894.02 : 동학 농민 운동- 1ㆍ천도교 (東學)→ 청일 전쟁 발발 "동학 (東學) 농민운동"은 1894년, 동학지도자ㆍ동학교도ㆍ농민들에 의해 일어난 "민중의 무장봉기"로, "제1차 농민봉기"는 기존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진 농민들이 주도한 "무장개혁 운동"으로서, 기존의 "민씨 척족 정권"을 무너뜨리고, 개혁하자는 운동이었다. 1. 동학(東學) 농민운동ㆍ동학농민혁명ㆍ동학혁명ㆍ갑오 동학농민전쟁 → 청일전쟁 발발 • 1차- 1894.02.15 : 고부 봉기 (전북) → 고부군수 조병갑 (탐관오리) 탐학 • 2차- 1894.05.11 : 백산 봉기 (전북)ㆍ3월 봉기 → 이용태 (안핵사)가 "동비(동학비적)"로 규정 → 총대장 (전봉준- 서당훈장)ㆍ장령 (김개남ㆍ손화중) → 전주화약 • 3차- 1894.10 - 삼례 봉기(전북)ㆍ9월 봉기 • 장소 : 충청도ㆍ전라도 • 구호.. 2022.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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