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04.11일 오전 11:20분 경, "김상진(서울대 농과대학 4학년)"이 "유신체제ㆍ긴급조치"에 항거하여 할복자살한 사건으로, 이후 벌어진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1. 1975.04.11 : 김상진 할복사건 (金相鎭 割腹事件)
1975.04.11일 오전 11:20분 경, "김상진(서울대 농과대학 4학년)"이 "유신체제ㆍ긴급조치"에 항거하여 할복자살한 사건으로, 이후 벌어진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04.11일, "서울대 농대(수원)"에 위치한 잔디밭에서 농대생 300명이 모여 성토대회를 가졌다. 이 대회는 1주일 전인 04.04일의 시위에서 "박정희 정권"에 의해 구속된 구속학생을 석방하기 위해 열린 것이었다.
대회에서는 여러 명이 나와서 연설을 했는데, 11: 20분 경에 3번째 연사로 등장한 사람이 "김상진"이었다. 그는 "양심선언문"을 낭독한 뒤, 가지고 있던 과도를 꺼내어 할복했다. 참석자가 병원에 바로 연락하여, 엠블런스로 후송되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면서 친구들에게 "애국가를 불러 달라"고 하였다. 학우들의 애국가를 들으며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수원 도립병원"으로 옮겨져, 2번의 수술을 받았으나, 이튿날인 04.12일 오전 08:55분 즈음, 25살의 나이로 끝내 숨을 거두었다.
사건발생 한 달 후인 05.22일에는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된 가운데, 1,000여 명이 "김상진 열사 추도식 "을 거행한 후, "긴급조치 9호의 철폐"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를 감행했다. 이 시위로 인해, "한심석 서울대 총장"이 사임하고, "치안본부장ㆍ남부서장"이 경질되었으며, 29명의 학생이 구속되었다.
2. 양심선언문 전문
"김상진"이 할복 이전에 작성한 것으로, 이었다. 이외에도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을 써서 "박정희의 퇴진"을 정중하게 요구했는데, 2개 문건을 낭독하여 녹음한 뒤, 그 테이프를 "기독교방송국"에 보냈다.
< 양심선언문 >
더 이상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으며 더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어두움이 짙게 덮힌 저 사회의 공기를 헤치고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대학은 휴강의 노예가 되고, 교수들은 정부의 대변자가 되어가고 어미닭을 잃은 병아리마냥 우리들은 반응없는 울부짖음만 토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이 결코 그릇됨이 아닐진대 우리의 주장이 결코 비양심이 아닐진대, 우리는 어떻게 더 이상 자존을 짓밟혀 불명예스런 삶을 계속 할 것인가. 우리를 대변한 동지들은 차가운 세멘트 바닥 위에 신음하고 있고, 무고한 백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고 있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한다. 들으라! 동지여! 우리의 숭고한 피를 흩뿌려 이 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할 용기를 그대들은 주저하고 있는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 합법을 가장한 유신헌법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비민주적 허위성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고발한다.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금일 우리는 어제를 통탄하기 전에, 내일을 체념하기 전에, 치밀한 이성과 굳은 신념으로 이 처참한 일당독재의 아성을 향해 불퇴진의 결의로 진격하자. 민족사의 새날은 밝아오고 있다. 그 누가 이 날의 공포와 혼란에 노략질 당하길 바라겠는가. 우리 대한 학도는 민족과 역사 앞에 분연히 선언한다. 이 정권, 끝날 때까지 회개치 못하고 이 민족을 끝까지 못살게 군다면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뜨겁게 외치는 이 땅의 모든 시민의 준열한 피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역사는 이러한 사태를 원치 않으나 우리는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을 것임을 재천명한다.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라. 우리는 이제 자유와 평등의 민주사회를 향한 결단의 깃발을 내걸어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국가가 도래했음을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발코자 한다.
이것이 민족과 역사를 위하는 길이고 이것이 우리의 사랑스런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며 이것이 영원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 것 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 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없는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1975. 4. 11 서울농대 축산과 4년 김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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