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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친일파ㆍ안중근ㆍ이토히로부미ㆍ총독부75

사건- 1866~1896 : 요약 ③ 갑오경장ㆍ청일 전쟁ㆍ아관파천 "시모노세키 조약 (1895.04.17)"은 "청ㆍ일 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해,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청(이홍장)"과 "일(이토 히로부미)"가 체결한 강화조약ㆍ"일본"은 승전대가로 거액의 배상금(2억 냥ㆍ청국 1년 예산의 2.5배)과 "청"의 영토인 "랴오둥반도ㆍ타이완ㆍ펑후섬"을 할양받았다. 1. 1894.06 : 갑오경장 (甲午更張ㆍ갑오개혁)← 동학혁명 운동(1894)의 간접적 성과 1894 (고종31), 조정이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통해, 재래 문물ㆍ제도를 버리고, 근대적인 서양의 법식(法式)을 본받아, 새 국가체제를 확립하려던 것ㆍ"친일 내각(김홍집ㆍ어윤중ㆍ박영효ㆍ서광범)"은 "일본"의 입김 아래 일련의 개혁조치 시행 • "관제개혁"은 "왕실사무ㆍ국정사무"를 분리하여, "궁내부(宮內府).. 2022. 10. 14.
사건- 1866~1896 : 요약 ② 갑신정변ㆍ동학농민운동 1882~1884년경 조선의 사회정치세력은 "5대 세력(급진개화파(개화당)ㆍ온건개화파ㆍ민씨 수구파ㆍ대원군수구파ㆍ위정척사파) 등으로 분화되어 있었다. 1884.12월 발생한 "갑신정변 (甲申政變ㆍ개화당 3일 천하)"은 "급진개화파"가 "민씨 수구파(청국과 결탁)"에 대항하여, 일으킨 정치투쟁이었다. 비록 "3일 천하"로 끝나 버렸지만, "근대국민국가"의 수립을 지향한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1. 1884.12.04~12.06 : 갑신정변 (甲申政變ㆍ개화당 3일 천하)→ 한성조약ㆍ텐진조약 • 1884.12 (고종21), "개화당 (開化黨ㆍ김옥균ㆍ서재필ㆍ박영효)"이 "청국 속방화 정책"에 저항하여, 조선의 완전 자주독립과 자주 근대화를 추구하여, 일으킨.. 2022. 10. 14.
사건- 1866~1896 : 요약 ① 병인양요ㆍ강화도조약ㆍ임오군란 1876.02월, 일본은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나자, 일본은 아예 본심을 드러내고서, "식민화 정책"을 가속화시켰고, 마침내 "군ㆍ정치ㆍ경제" 등을 장악해 국권을 빼앗기에 이르렀다. 이후 조선은 "일본"을 견제하려는 "청나라"의 주선으로 "미국"과도 통상 조약을 체결하고(1882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과 우호 통상 조약을 맺기 시작했다. 1. 사건 요약 ① 1866.10 : 병인양요 (丙寅洋擾) : (고종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ㆍ탄압에 대항→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 ② 1871.04 : 신미양요 (辛未洋擾) : 04.03(고종8), "미국 군함"이 "강화도"에 쳐들어와 일어난 사건 ③ 1876.02 : 강화도 조약 : (고종13), "강화도"에서 "조선- 일본.. 2022. 10. 14.
사건- 1880 : 통리기무아문 (군사ㆍ일반 국정 총괄) 1880.12.21(고종17)에 만들어진 "통리기무아문 (統理機務衙門)"은 조선 최초의 근대적 기구로, "군국기무 (軍國機務)"를 총괄하는 관청이었는데, "군국기무 (軍國機務)"란 국가의 군사 업무와 일반 국정을 의미한다. 1. 통리기무아문 (統理機務衙門) 조선 최초의 근대적 기구로, "청나라의 총리각국사무아문 (總理各國事務衙門)"을 본뜬 것이다. 변화하는 국내외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의 "군국기무 (軍國機務)"를 총괄하는 업무를 관장하던 "정1품 아문관청(正一品 衙門)"이었다. 정부가 대외 개방을 통해 서구의 문화ㆍ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사시찰단의 조사들"이 "통리기무아문의 당상"에 임명된 사실은 개화정치 세력의 성장에 중요한 의미를 갖.. 2022. 10. 14.
사건- 1876 : 통신사ㆍ수신사ㆍ신사유람단 구분 통신사는 "조선 태종"때부터,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조선"에서 "일본"으로 "통신사"를 보낸 것처럼, "일본"에서도 "조선"으로 "사신단"이 왔지만, "한양"까지는 가지 않고 "부산 동래부"까지만 왔다가 갔다. "임진왜란"의 기억으로 "일본 사신단"이 "한양"으로 가면서 지리를 익혀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조선"은 사신을 맞이하는 "동래"를 "도호부"로 높여 중요시했다. 1. 조선 통신사 (통신사ㆍ朝鮮通信使)→ 강화도 조약 (1876.02)→ 수신사(修信使) ① 1876.02.27일(고종), "강화도 조약" 체결 이전까지,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 (조선이 문물을 주는 입장) ②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준비 : 당시 금화로 100만냥 지출(현 시세 6,000억)ㆍ한해 예산의 .. 2022. 10. 14.
경성제대ㆍ경성제국대학ㆍ게이조 제국대학ㆍ조다이(城大) "경성제대 (1924.05~1945.10)"는 "경성부"에 있었던 대학으로 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한반도 최초의 대학기관으로, 일제 강점기 때, 민간인들의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막으려고 1924년에 "일본제국"의 6번째 제국대학으로 설립되었다. 일본제국의 패망과 함께 광복된 후 "경성대학"으로 전환되었다가, "미군정"에 의해 폐교되었다. 이후 "서울대학교" 설립과정에서 "경성제국대학"의 시설들을 활용하였다. 1. 경성 제국대학 (京城帝國大學)ㆍ게이조 제국대학ㆍ경성제대ㆍ조다이(城大) 1923년, "이상재"를 대표로 하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의 발기 총회가 개최되어 거국적인 "민립대학 설치운동"이 일어나게 되자, 이에 자극받은 일제는 이를 저지하는 한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경.. 2022. 10. 13.
조선 신궁 (신사)ㆍ남산 신사 "조선신궁 (朝鮮神宮)"은 일제 강점기 "경성부의 남산"에 세워졌던 "신토의 신사"이다. 1910년, "한일병합 조약"이 체결된 후, "조선총독부"는 각 지역에 "관립 신사"를 세우고, "민간 신사"도 지원하는 방식으로 "신토"를 장려했다. 조선에서 일본의 "식민행정ㆍ황민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 조선신궁 (朝鮮神宮) : 조선 신사 → 조선 신궁 • 창 건 : 1925년 (1920~1925까지 건립) • 규 모 : 대지 43만m2 (여의도 면적 2배)ㆍ15개 건물 • 위 치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경성부 남산 (현, 서울 용산구 후암동) • 참 배 : 1940년대 연간 200~ 250만 명이 참배 (1일 평균 5,000~ 7,000명) • 제 례 : 10.17일 • 제 신 : 아마테라스.. 2022. 10. 13.
조선총독부 ③ 관저 (3곳?)ㆍ왜성대ㆍ용산ㆍ경무대 "조선총독부 (朝鮮総督府)"는 1910년부터 "남산 왜성대"의 "일본 공사관"을 "관저"로 사용하였고, 1908년에 건립된 "용산의 관저"를 별도로 운용하였으며, 1937년, "경복궁 북쪽"에 "경무대 총독 관저"를 신축하였다. 1. 남산 왜성대 관저 (통감 관저 → 총독 관저) • 건 축 : 1893 • 사 용 : 1906.02~1939.09.20 • 파 괴 : 언제 철거되었는지는 알 수 없음. • 위 치 : 남산 왜성대 (현, 서울 중구 예장동 2-1ㆍ서울종합방재센터 다목적 광장 (?)ㆍ"서울종합방재센터"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다목적 광장"이 건물의 위치로 추정된다) 일본은 "갑신정변"의 결과로 체결된 "한성조약 제4조"에 의거해, "공사관 부지ㆍ건물의 공사비"를 "조선 정부"에 요구했다. 18.. 2022. 10. 13.
조선총독부 ② 청사 (2곳?)ㆍ남산 왜성대ㆍ경복궁 청사 "조선총독부 (朝鮮総督府)"는 1905.11.17일,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12.20일에 "통감부 및 이사청" 관제를 공포하였다. 1906.02.01일, "통감부" 개청식을 열었고, "광화문 육조거리"의 "대한제국의 외부(外部)청사"를 "통감부 청사"로 사용하다가, 1907.02.28일에 "남산 왜성대"에 "르네상스" 양식의 "2층 목조건물"로 "통감부 청사"를 건립하였다. 1. 남산 왜성대 (통감부 청사 → 총독부 청사) • 건 축 : 1907.02.28 • 위 치 : 남산 왜성대 (현, 중구 예장동 8번지 일대ㆍ서울 애니메이션센타 자리) • 사 용 : 1907.02.28~ 1926.01 • 파 괴 : 1950년 6ㆍ25전쟁 1905.11.17일,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12.20일.. 2022. 10. 13.
조선총독부 ① 총독ㆍ직제ㆍ조선인 귀족원 의원 "조선총독부 (朝鮮総督府)"는 "일본 제국"이 한반도에 대한 통치를 위해, 운영하던 직속기관으로, 1910.10.01일 (한일병합조약 체결일)~ 1945.09.02까지 존속되었다. 1. 조선총독부 (朝鮮総督府): "일본 제국"이 조선 통치를 위해, 운영하던 직속기관 • 일 시 : 1910.10.01일(한일병합조약 체결일)~ 1945.09.02 • 본 부 : 경기도 경성부 (현, 서울) 1905년 (광무8), "대한제국" 시기에 설치된 "한국통감부 (韓國統監府)"를 전신으로 하여. 1910년 "한일병합조약" 직후에 출범하였으며, 초대 "조선총독"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 (寺內正毅)"가 취임하였다. 1914.03.0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1913.12.29일 공포)를 통해, 지방 행정 조직을 대대적.. 2022. 10. 13.
일제강점기 ② 내선일체 (內鮮一體)ㆍ총독부의 식민 정책 "내선일체 (內鮮一體)"에서, "내 (內)"라 함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전, 그들의 해외식민지를 "외지 (外地)"라 부른 데 대한 일본 본토를 가리키는 "내지 (內地)"의 첫 자이며, "선 (鮮)"이란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ㆍ조선이 "일체(하나)"라는 뜻이다. 1. 내선일체 (內鮮一體): 1937년 일제가 전쟁협력 강요를 위해 취한 조선 통치정책 그들은 이미 1931년 만주사변 때, "일만일체(日滿一體)"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37년 일본이 중국 침공을 개시하자,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지로(南次郞)"는 이 대륙 침공에 조선을 전적으로 동원ㆍ이용하기 위한 강압정책으로 "내선일체"라는 기치를 들고 나섰다. 한민족의 저항을 초기부터 말살, 차단하려는 철저한 민족 말살정책이었다. 이른바 .. 2022. 10. 13.
일제강점기 ① 주요사건ㆍ시기별 특징ㆍ대동아공영권 "일제 강점기 (日帝强占期)" 36년 동안,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는 시대에 따라 다소 정책의 변동이 있었으나, 일관된 정책은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한 탄압ㆍ영구예속화를 위한 고유성(固有性) 말살 및 우민화(愚民化)ㆍ철저한 경제적 수탈" 등이었다. 1. 주요 사건 ① 1912 : 조선 태형령 : 조선인 만을 대상으로 한 태형을 규정하는 법 ② 1920~1934 : 산미증식계획 : 일제가 조선을 식량공급지로 만들기 위해 실시한 정책 ③ 1923 : 관동 대학살 (간토 대지진ㆍ關東大地震) 학살 1923년, "일본 간토(關東ㆍ도쿄/요코하마 중심)"에서 발생한 "대지진"의 수습과정에서, "조선인"들에 대한 유언비어가 조장되어 "조선인 대량학살"로 이어진 사건ㆍ전국적으로 조직된 3,689개의 일본인 자경..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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