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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 현대사)/친일파 • 안중근 • 이토히로부미 • 총독부

사건- 1876 : 통신사 → 수신사ㆍ신사유람단 구분

by 당대 제일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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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는 "조선 태종"때부터,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조선"에서 "일본"으로 "통신사 (通信使)"를 보낸 것처럼, "일본"에서도 "조선"으로 "사신단"이 왔지만, "한양"까지는 가지 않고 "부산 동래부"까지만 왔다가 갔다. "임진왜란"의 기억으로 "일본 사신단""한양"으로 가면서 지리를 익혀둘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조선"은 사신을 맞이하는 "동래부""도호부"로 높여 중요시했다.

 

1.  조선 통신사 (통신사ㆍ朝鮮 通信使)→ 강화도 조약 (1876.02)  수신사(修信使)

 1876.02.27(고종), "강화도 조약" 체결 이전까지, "조선""일본"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 (조선이 문물을 주는 입장)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준비 : 당시 금화로 100만냥 지출(현 시세 6,000)한해 예산의 1/3 사용

전기 : 1420(세종2)1428(세종10)1439(세종21)1443(세종24)1590(선조23)1596(선조29)

 후기 : 1607(선조40)1617(광해군9)1624(인조2)1636(인조14)1643(인조21)1655(효종6)1682(숙종8)1711(숙종37)1719(숙종45)1748(영조24)1763(영조39)1811(순조11)

통신사

2. 수신사 (修信使)

 1876.02.27(고종13),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부터, "조선""일본 제국"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 (조선이 문물을 받는 입장)

 1876~ 1882년까지, 3차에 걸쳐서 파견1(1876, 김기수)2(1880, 김홍집)3(1882, 박영효/김만식태극기가 처음 사용?)

 조선책략 (朝鮮策略)  : 청국인 "황준헌 (黃遵憲황쭌센일본주재 청나라 공사관의 참사관)"1880년경에 저술한 외교문제를 다룬 "외교 방략서"이다 원명은 "사의조선책략 (私擬朝鮮策略)"으로, 이 책의 내용은 "김홍집박영효" 등이 공동으로 정리한 "수신사일기" 2권에 따로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수신사

3. 신사 유람단 (紳士遊覽團)사 시찰단 (朝士視察團)

 1881.04.10.(고종18), "김홍집"의 주장에 따라, "수신사"에 이어, "일본 제국"에 파견되었던 집단

② 과거에는 "신사 유람단 (紳士遊覽團)"이라고 지칭하였으나, "한국사 용어 수정안"에 따라, "조사 시찰단 (朝士視察團)"으로 바꾸어 부른다.  "신사 유람단"이라는 명칭은 당시 "조선" 내에서 "외래 문물 수용"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하여 사용된 명칭이다.

4. 보빙사 (報聘使)

1883.05, 조선에서 최초로 "미국" 등 서방 세계에 파견된 외교 사절단

민영익(정사)홍영식(부사)서광범(서기관)수행원(변수유길준남아서 유학)

5. 조선 사절단

 1896.05.26,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조선 사절단"을 파견 (니콜라이 2: 1894~1917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마노프 왕조의 14번째 군주1917 혁명으로 퇴위1918년 총살)

 민영환(민씨 일족)윤치호(영어 통역)김득련(중국어 역관)김도일(러시아 통역)손희영(몸종)

후에 "윤치호"가 평하기를, "민영환은 옷양말단추 조차 혼자 하지 못하고, 몸종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자 밥은 먹을 수 있는지 조차, 의심이 드는 인물이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김득련(중국어 역관) 대동한 것도 한문으로 기록을 하기 위해서, 김득련의 기록에 자기 이름만 넣어, 기행문을 만들었다. 김득련은 쩝쩝거리면서, 식사하여, 같이 있기 창하였다. 김도일(러시아 통역)은 조선어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한 자로, 한문도 몰랐다. "황태후""황제 에미" 통역하는 사람이었다 손희영(몸종)온화한 청년으로, 그가 가장 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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