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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151

송시열 ② 사상과 신념ㆍ이기 일원론ㆍ"신덕왕후" 복권운동 주관 "송시열 (宋時烈ㆍ1607~1689ㆍ82세)"은 "국문"을 당하기 위해서, "중전 폐비 문제"로 유배된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중, "정읍"에서 서둘러 "금부도사"를 내려 보내 사사하라는 처분을 받게 되었다. 송시열은 "의금부"에 가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죽으리라"고 장담했었다. 그가 서울로 올라와서, 그를 국문시켰을 때의 파장을 우려한 "숙종 (19대ㆍ1661~1720ㆍ재위 1674~1720)"은 그에게 사약을 내린다. "남인"은 그를 "한성부"로 압송해 국문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인"인 "의정부 영의정 권대운" 등이 "굳이 국문할 필요가 없다"면서, "성상께서 참작해 처리하라"고 권하자, "숙종"은 "금부도사가 만나는 곳에서 사사하라"고 명한 것이다. 1. 사상과 신념 ①.. 2022. 11. 20.
송시열 ① (효종ㆍ1607~1689)ㆍ효종 독살 ?ㆍ주자학 대가ㆍ국가스승 "송시열 (宋時烈ㆍ1607~1689ㆍ82세)"은 국가의 스승ㆍ주자학의 대가ㆍ서인의 영수ㆍ노론의 정신적 지주였다. 조선 유학자 가운데 도통을 이은 "성인"을 의미하는 "자(子)"칭호를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조광조ㆍ율곡 이이"의 학풍을 계승한 "김장생"의 제자로, 학식이 뛰어나 문하에 많은 인재 배출했으며, "봉림대군(17대 효종ㆍ인조의 2남)ㆍ현종(18대)"의 사부 (고산 윤선도도 사부임)였고, "송준길(송이창 아들)"과는 동문수학한 친구로, 후에 "양송(兩宋)"으로 불리는 특별한 교분이 있었다. 1. 송시열 (宋時烈ㆍ1607~1689ㆍ향년 82세) 조선 효종 때의 문신(의정부 우의정)ㆍ성리학자ㆍ철학자ㆍ시인ㆍ"효종(1649~1659)"이 갑자기 승하할 때까지, 절대적인 신임 속에 북벌계획을 추진하는 핵.. 2022. 11. 20.
윤선도 (인조ㆍ1587~1671)ㆍ오우가ㆍ어부사시사ㆍ세연정 "윤선도 (尹善道ㆍ1587~1671ㆍ84세)"은 "남인"의 거두로 당쟁 속에 휘말려, 일생을 거의 "유배소"에서 지냈다. "시조"가 뛰어나서 "정철ㆍ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3대 시가인(三大詩歌人)"→ 성호 이익ㆍ채제공으로 전수되었다. 한글시가인 "오우가(시조 6수ㆍ1642년(인조20)ㆍ어부사시사(연시조, 1651년(효종2))"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거부였으며, 최고의 풍류가 (녹우당(사랑채ㆍ해남군 연동)ㆍ세연정(연못 정자ㆍ완도군 보길도))였다. 같은 "세자 시강원 사부"였던 "송시열 (宋時烈ㆍ1607~1689ㆍ82세)"은 정적이자, 경쟁자였다. 1. 윤선도 (尹善道ㆍ1587~1671ㆍ향년 84세) 조선 인조 때의 문신ㆍ시인ㆍ음악가ㆍ"인조(16대) 자제의 스승 : 소현세자(1남)ㆍ봉림대군(효종, 2남.. 2022. 11. 20.
병자호란 : 최명길 (주화ㆍ1586~1647)ㆍ김상현 (주전ㆍ1570~1652) 병자호란 (丙子胡亂ㆍ1636.12.28~1637.02.24ㆍ인조14ㆍ청나라(후금)이 침입하여 조선과 싸움→ 군신의 예) 당시, "최명길 (1586~1647)"의 "주화파"와 "김상헌 (1570~1652)"을 필두로 한 "주전파"가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1. 최명길 (崔鳴吉ㆍ1586~1647ㆍ61세) 조선 중기의 문신ㆍ성리학자ㆍ양명학자ㆍ외교관ㆍ정치가ㆍ나라를 위한 결단(주화론)ㆍ시대의 흐름을 읽어 왕을 지킨 재상ㆍ홀로 적진에 들어가 담판을 짓다. 17살에는 "이항복ㆍ신흠"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그 영민함으로 스승에게 주목을 받았다. "광해군"대에는 "병조좌랑"까지 올랐다가 파직되었으며, 1623년(광해군15) "김류ㆍ이귀" 등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켜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이 되었다. "임진왜란".. 2022. 11. 20.
허균 (광해군ㆍ1569~1618)ㆍ홍길동전 저자ㆍ능지처참형 (혁명) "허균 (許筠ㆍ1569~1618ㆍ48세)"은 조선 천재로, 개혁사상 반영한 "홍길동전(최초의 한글소설)"의 저자로, "서자"를 차별 대우하는 사회 제도에 반대하였다. "재취부인"의 소생으로 "서자"와 비슷ㆍ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한 여성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동생이었다. 조선의 자유주의자ㆍ혁명을 꿈꾸다→ "역적모의를 하였다"고 응하게 되고, 그의 심복들과 함께 "능지처참 형"을 당해, 무려 3,000번 이상 회질이 가해져, "살점"이 도려내진 뒤, 마지막으로 "목"이 잘려, 매우 잔인한 죽임을 당했다. 1. 허균 (許筠ㆍ1569~1618ㆍ향년 49세) 선조/ 광해군 때의 학자ㆍ조선인 최초의 천주교인ㆍ정치가(예조판서)ㆍ시인ㆍ작가ㆍ "왕실의 인척"이기도 했는데. 허균의 조카사위(허성의 사위)가 바로 .. 2022. 11. 20.
이이첨 (광해군ㆍ1560~1623)ㆍ허균 제거ㆍ대북의 영수 "이이첨 (李爾瞻ㆍ1560~1623ㆍ63세)"은 "허균" 제거인물ㆍ"임진왜란" 때의 공로로 "선무원종 공신"에 녹훈되었고, "광해군" 때의 정치활동으로는 "정운공신ㆍ익사공신ㆍ형난공신" 등에 녹훈되었다. 선조 말기, 왕가의 후사문제로 "북인"이 둘로 나뉘자, "대북"의 영수로 "정인홍" 등과 함께 "광해군"을 지지했으며, "영창대군(광해군 이복동생ㆍ선조 적자ㆍ인목대비 아들)"을 세자로 옹립하려는 소북의 계획을 저지하였으며, "광해군" 즉위 이후 "류영경ㆍ소북일파"를 제거하였다. "인목대비의 폐모론"을 주장하여, 폐서인 화하여 "서궁"에 유폐하고, "김제남"을 사사시켰다. "인조반정" 직후, 도피하려다가 "광주의 이보현"에서 반정군에게 잡혀 사형 당했다. 1. 이이첨 (李爾瞻ㆍ1560~1623ㆍ향년 63세).. 2022. 11. 20.
이덕형 (선조ㆍ1561~1613)ㆍ오성과 한음 이야기ㆍ이산해의 사위 "한음(漢陰) 이덕형 (李德馨ㆍ1561~1613ㆍ52세)"은 "오성(鰲城) 이항복 (李恒福ㆍ1556~1618ㆍ62세ㆍ5살 차이)"과의 우정 이야기(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오성대감 이항복" 가문과의 우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항복"과 교대로 "병조판서"를 역임하며, 군사정책을 수행하였다. 1. 이덕형 (李德馨ㆍ1561~1613ㆍ향년 52세)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의정부 영의정)ㆍ조선 최고의 외교가ㆍ학자ㆍ동인과 남인ㆍ1591년(30세), "예조참판"으로서, 조선 최연소의 나이로 "대제학"이 됨. 1598년(37세), 우의정→ 1602년(41세), 영의정 • 출 생 : 한성부 성명방 (서울 중구 남대문~필동 사이) • 사 망 : 경기도 광주부 조안면 사저.. 2022. 11. 20.
이항복 (선조ㆍ1556~1618)ㆍ오성과 한음 이야기ㆍ권율의 사위 "오성(鰲城) 이항복 (李恒福ㆍ1556~1618ㆍ61세ㆍ5살 차이)"은 "한음(漢陰) 이덕형 (李德馨ㆍ1561~1613ㆍ52세)"과의 우정 이야기(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한음대감 이덕형" 가문과의 우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덕형"과 교대로 "병조판서"를 역임하며, 군사정책을 수행하였다. 1. 이항복 (李恒福ㆍ1556~1618ㆍ향년 62세)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의정부 영의정)ㆍ시인ㆍ작가ㆍ권율(도원수)의 사위ㆍ"임진왜란" 때, "이덕형"과 교대로 "병조판서"를 역임하며 군사정책을 수행하였다. 태어나서 사흘 동안은 울지도 않고, 젖을 먹지도 않아, 모두들 걱정을 하였는데, "점성술사"가 보고, "장차 큰 인물이 될 아기"라고 예언을 했다고 한다. • 출.. 2022. 11. 20.
류성룡 (선조ㆍ1542~1607)ㆍ징비록 저자ㆍ이순신 천거 "류성룡 (柳成龍ㆍ1542~1607ㆍ65세)"은 "징비록(懲毖錄)"의 저자이며, "이순신"을 천거(절친인 동네친구)한 인물이다.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던 "청백리"이면서, "조선의 5대 명재상(名宰相)"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591년 "선조"가 "명장"을 천거하라고 했을 때, 류성룡은 "권율ㆍ이순신ㆍ신충원"등을 천거하여, 뒷날에 나라의 간성이 되게 했는데, 이 중 "이순신"은 "전라도"에, "원균"은 "경상도"에 각각 배치되었다. "이순신"과는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절친한 사이로서, 후견인 역할을 하였으며, 이순신의 형 "이요신"과 친구사이기도 하다. 1. 류성룡 (柳成龍ㆍ1542~1607ㆍ향년 65세) 조선 선조 때, 문신(의정부 영의정)ㆍ"징비록(懲毖錄).. 2022. 11. 20.
한석봉ㆍ한호 (선조ㆍ1543~1605)ㆍ서예가ㆍ김정희와 쌍벽 "한석봉ㆍ한호 (韓濩ㆍ1543~1605ㆍ62세)"는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는 "서예가"로, "해서ㆍ행서ㆍ초서" 등 각 "서체"에 모두 능했다고 한다. "작시(作詩)"에 능한 "차천로"ㆍ"작문"에 능한 "최립"과 함께, "송도삼절"로 불린다. "안평대군(安平大君)ㆍ김구(金絿)ㆍ양사언(楊士彦)"과 함께, "조선 4대 서가(四大書家)"로 꼽힌다 "허균ㆍ허봉(허균의 형(홍길동전 저자)ㆍ여류시인 허난설헌(허초희)의 오빠)"의 친구이다. 1. 한호 (韓濩ㆍ1543~1605ㆍ향년 62세) 조선 문신ㆍ서예가(김정희와 쌍벽)ㆍ외교관ㆍ"서예의 명인"이라 불렸으며, 1567년(명종22), 25세 때 "진사시(進士試)"에만 합격한 후, "글씨를 잘 쓴다."고 바로 "사자관"으로 특채됐고, 바로 얼마 후 "중앙"으로 올.. 2022. 11. 20.
허임 (선조ㆍ1570?~ 1647?)ㆍ침술의 대가ㆍ천민 출신ㆍ선조 주치의 "허임 (許任ㆍ1570?~ 1647?ㆍ77세?)은 침술의 대가로,어머니의 병을 고쳐준 의원에게 품을 팔며, 눈썰미로 "침구법"을 배웠다. 관노 집안의 아들로, "허준(許浚ㆍ1539~1615ㆍ동의보감 저술"도 "서얼"이긴 하지만, 양반 출신이다. "허준"과 함께 "선조의 주치의"였던 "허임"은 "관노의 아들"로서 의원이 되었는데, 그의 아들은 의원으로 대를 잇지 않았다. 1. 허임 (許任ㆍ1570?~ 1647?ㆍ향년 77세?) 조선 선조ㆍ광해군 때, 의관(醫官)ㆍ침술의 대가ㆍ"치종교수(治腫敎授)"라고도 표기한 것으로 보아, 외과적인 치료도 겸했음을 알 수 있다. 신통한 침술로 이름을 날렸던 허임은 75세 때에 평생 경험을 집대성하여 "침구경험방"이란 책을 냈다. "이경석(내의원 제조)"은 "침구경험방"에 .. 2022. 11. 20.
허준 (선조ㆍ1539~1615)ㆍ동의보감 저자ㆍ약재의 대가ㆍ서자 출신 "허준 (1539~ 1615ㆍ향년 76세)"은 명문가 서자 출신(서얼이지만, 양반 출신)ㆍ"내의원"에 봉직하면서 명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동의보감"을 저술하여 의학을 "청나라ㆍ일본"까지 과시한 명의ㆍ"동의보감"이 완성된 5년 뒤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동의보감"을 곁에 두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1. 허준 (許浚ㆍ1539~1615ㆍ향년 76세) 조선 선조ㆍ광해군 때, 의관(醫官)ㆍ한의사(韓醫師)ㆍ동의보감(東醫寶鑑ㆍ국보 제319호) 저자ㆍ"선조ㆍ광해군"의 총애를 받았지만, 평생 고난의 삶을 살아야 했는데, "유가 출신" 벼슬아치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동의보감"이 완성한 뒤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의서를 내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선조"의 명을 받아, "임진왜란" 종결 후, 각종 중국 의서ㆍ기존 의서..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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