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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병ㆍ독립운동ㆍ의열단ㆍ김원봉

이상룡 (1858)ㆍ임청각 (99칸 저택)ㆍ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by 당대 제일 202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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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李相龍ㆍ1858~1932ㆍ74세)"은 대표적인 항일운동 가문 (8명의 독립운동가)이며, 노비 408명을 해방시켰다. 생가는 "임청각(臨淸閣보물 제182호)"으로, 왕의 궁궐이 아닌 "사대부 반가"로는 가장 크게 지을 수 있는 "99칸 짜리 집"으로 유명한 고택이다.

 

1. 이상룡 (李相龍1858~1932향년 7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1925.09~1926.01) 박은식(2)~양기탁(4)ㆍ노비(408) 해방ㆍ"이상룡"의 집안은 "이회영허위"의 가문과 함께, 대표적인 항일운동 가문으로, 그를 포함해 2명의 동생 (이상동이봉희)ㆍ아들 (이준형)ㆍ손자 (이병화)ㆍ조카 (3명)이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수여받았다외숙은 "의병장 권세연"이며, 처가 역시 소문난 독립운동 가문이다.

•  출 생 : 조선 경상도 안동군 유림 명문가    •  경 력 : 예비역 대한독립군 준장한국독립당 고문 겸 대표최고위원

•   : 석주(石洲)       •  사 망 : 중국 만주 지방 지린성(吉林省) 쉬란현(舒蘭縣) 소고전자서울 현충원

•  사 인 : 병사 - "국토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내 유골을 고국에 싣고 가지 말고 우선 이곳에 묻어 두고서 기다려라"라는 유언에 따라 가묘를 썼다.

이상룡

경상도 안동의 유림 명문가에서 33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결혼 1년 만인 1873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였다1876,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학자(퇴계(退溪)학맥의 거두)이며, 의병장이었던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제자로서 의병 운동에 참가했으나, 50세 무렵인 1907년경부터 교육의 역할을 중시하는 애국계몽운동으로 방향을 전환, 협동학교 설립 및 대한협회 안동지회 창설, 시국 강연 등을 벌였다.

"유인식김동삼"이 이때부터의 동지들이다. 그러나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고, "대한협회"가 해체되자, "신민회"의 해외 독립기지 설치 방침에 동조하여 1911년 일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했다그는 이곳에서 독립 운동을 위한 자치기구인 "경학사" 조직과 부속 교육기관인 "신흥강습소" 설치에 참여했다. "경학사"는 이듬해 "부민단"으로, 1919"31운동"을 기점으로 "한족회"로 발전된다.

"신흥강습소"는 이후, "신흥무관학교"로 개칭하여 무장 항일 운동가들을 양성하는 기관이 되었다"경학사신흥강습소"는 모두 만주 지역 항일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다"만주"에 군사 기구인 "군정부"를 설립했다가,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치되자 이를 지지하고 "군정부""서로군정서"로 개칭했다"서로군정서" 책임자로서 1921"남만통일회"를 개최하여, "서간도" 일대의 독립 운동 단체를 통합하여 "통군부"를 수립했다.

1925, "대통령 이승만"이 탄핵으로 물러난 후, "박은식"이 제2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나 사퇴하자, 1925.09"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국무령"이자, 3대 수반으로 추대되었다. (4대 양기탁그러나 갈등이 계속되고 내각을 조직할만한 세력을 모으지 못하자, 1926.01"임시정부 수반직"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이후 "정의부신민부참의부"로 나뉘어 있던 무장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1932"지린"에서 병사했다.

2. 안동 임청각 (安東 臨淸閣보물 제182)

왕의 궁궐이 아닌, "사대부 반가"로는 가장 크게 지을 수 있는 "99칸 짜리 집"으로 유명한 고택이다. 이 집은 "영남산(映南山)" 동쪽 기슭에 앉아 낙동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명당 지형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임청각""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낸 바 있는 18대조 "이명(李洺)"1515(중종 10)에 건립한 주택이며,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의 집이기도 하다19대조 "이증(李增)""김종직"의 문하로 "영산현감"으로 있던 중, 1455"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듣고 관직을 버리고 안동으로 내려왔고, 그후 18대조 "이명(李洺)""의흥현감" 직을 버리고 안동에 지은 99칸 대저택이 바로 "임청각"이다.

이 중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보물로 지정된 "군자정""임청각의 별당"으로 조선 중기에 지은 ""평면의 누각형 건물이다. "군자정" 지붕 너머로 "낙동강"이 보인다"앞면 3옆면 2" 크기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중심은 남향의 "대청"이고, 그 서쪽에 이어서 지은 "T자형"의 온돌방이 부설되어 있다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둘레에는 툇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으며, 출입은 2 군데에 마련해 놓은 "돌층계"를 이용하게 되어 있다.

1942년, "중앙선" 철도부설 때, 50여간의 행랑채와 부속채가 철거되어, 현재의 규모로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길에서 보면 맞담 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모습의 행랑채가 이 집이 소위 말하는 99간집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임청각"에서 "이상룡"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을 배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일제가 1942"중앙선" 철도부설 때, "집 앞마당집 일부"를 철거하고, "중앙선 기찻길"을 내는 바람에 현재는 규모가 "70 정도"로 축소된 채, "낙동강 풍경"과도 단절되어 있다. "중앙선 선로"와의 거리는 약 7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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