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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ㆍ조폭ㆍ기생ㆍ연예인

사건- 1970.03 : 정인숙 (정금지) 사건 ① 범인은 친오빠?

by 당대 제일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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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공화국 시절, 엄청난 미모로 최고 권력층의 실세와 유력한 정치인들을 두루 섭렵하고 다니면서 큰 위세를 떨쳤던 고급요정 종업원 출신 "정인숙 (鄭仁淑ㆍ1944~ 1970.03.17ㆍ향년 25세)"은 "박정희ㆍ정일권ㆍ박종규이후락" 등 대다수 5ㆍ16 주체세력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1. 정인숙 (鄭仁淑ㆍ본 명 : 정금지 (鄭金枝)1944~ 1970.03.17ㆍ향년 25세)

3공화국 화제 인물모델배우선운각(서울 우이동 고급 요정)에서 활동하던 접대부ㆍ 대구 부시장을 지낸 공직자(정도환)의 딸대구 신명여고 졸업 후, 명지대 문리사대 중퇴ㆍ1968(23), 아버지 불명(정일권으로 추정)의 사내아이 낳은 미혼녀 (사망당시 3)

•  정인숙과 관계 : 박정희정일권박종규이후락

•  자 녀 : 정성일 (68.06월생기업인부친- 정일권 설)

•  생부 논란 : 정일권박정희박종규이후락기타 정부 각료 설 등이 유력하고, 유족들은 처음에는 "정인숙의 배다른 동생"이라 하였다가, 중에는 "정일권의 친자"라고 주장하였다.

•  신체 일부 :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에 방부 처리되어, 보존시각적인 "과부재"로 활용

•  관 할 서 : 마포 경찰서장 (이거락- 이후락 동생)

•  별 명 : 혜미

•  외 모 : 166cm의 키, 얼굴은 "계란형"얼굴은 "미인 형"이라 할 수 있을 뿐, "절세가인" 축에는 낄 수 없는 평범한 여자

•  출 생 : 대구 남산동 (쌍둥이로 금지(金枝)옥지(玉枝1년 반 만에 병사))

•  사 망 : 1970.3.17.PM 11시 서울 강변3(합정동 절두산 근처)ㆍ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용미리 공원묘지에 안장

•  사 인 : 교통사고 (?)를 가장한 총상

•  학 력 : 대구 신명여고 졸업명지대 문리사대 중퇴

•  부 모 : 정도환 (대구 부시장 역임)전덕조 사이의 42

•  동 거 : 장사공 (張史公1933~ 사망? )영화 시나리오 작가

정인숙

1970.03.17일 밤 11시경, "정인숙"남산의 "타워호텔 18층 나이트클럽"에서 한 40대 남성과 만나 와인 마셨고, 그 후 그곳에서 "Release Me ( 제발 날 놓아 주세요영국 엥겔버트 험퍼딩크 노래)"를 듣고, 운전 "종욱(4째 오빠)"이 운전하는 "코로나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서울 강변 3(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에서 갑자기 나타난 2명의 괴한들에 의해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2발의 총탄(머리가슴)으로 사망하였고, "정종욱" 1(넓적다리) 관통당하였으나 부상당한채 생존해 있었고, 택시기사에게 도움을 청해, 구조되었다.

"정종욱"을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나중에 다른 인물로 밝혀졌으며, 배후는 여전히 미궁이다.

"정종욱""정인숙 살해 혐의"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뒤, 1989년 가석방(20감옥)"에서 풀려난 후, 당초의 진술을 번복했는데, "국무총리실에서 심부름 왔다는 저격수에게 동생이 살해당했다(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인터뷰)"고 주장했다.

 

2. 1970.3.17.PM 11시 : 정인숙(정금지) 사건 요지

① 정인숙(정금지)

선운각(서울 우이동 고급 요정)에서 활동하던 요정 접대부

대구 부시장을 지낸 공직자의 딸대구 신명여고 졸업 후, 명지대 문리사대 중퇴

당시, 소지가 힘들었던 "회수여권(복수여권)"소지자

1968(23세 때) 아버지 불명의 사내아이 (정성일 (68.06월생, 부친- 정일권 설) 낳은 미혼녀 : 신생아와 함께, "미국워싱턴일본도쿄" 전전

1970년 귀국 후, 서울 강변3(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근처 도로)에서, 그녀 차의 운전수인 "정종욱(4째 오빠34, 20년 형)"이 쏜 45구경 권총에 맞아, 25살 나이로 피살

 

② 모델ㆍ배우 지망생이었으나, 선운각(서울 우이동 고급 요정)의 종업원이 되어, 제3공화국 당시의 정계 거물들을 상대했다. "정일권"의 내연녀로 아이를 임신했으나, 불문율에 붙여졌다.

박종규(경호실장): "선운각" 몸빼 마담으로부터, "정인숙" 소개받음

정일권(국무총리): "한일의원"연맹 파티 때, "선운각"에서 파트너4대 독자였던 그는 딸만 3명이었기에, 모친의 아들 독촉이 아주 성화였다고 함.

정치 권력형 섹스 스캔들 : 박정희 대통령 포함, 세도그룹(재계) 인원 27명 관련

주한 외교관과도 스캔들 : 영어회화 유창

1968(23세 때) 사내아이를 낳은 이후, "청와대"를 자주 귀찮게 함.

박종규 : "정인숙""미국"으로 보냈으나, 자꾸 귀국하겠다고 하여, "일본"에 거주하게 함.

""에 있던 친한 "정건영(마치이재일교포)"에게 "정인숙 모자" 부탁

정건영 : 교포사업가이며, 암흑가의 신사(긴자의 호랑이)라 불린 사람

55년 우익 폭력단체 동성회 조직 한국계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척살ㆍ "정인숙"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사업자금을 도쿄의 외환은행에서 차용토록 주선요청ㆍ 68년부터~ 92.10월까지 원리금 합쳐, 365억 엔 x 6.3 = 2,359억 원 사용

김형욱박정희의 반응

"김형욱(중정부장)"은 회고록에, "정숙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밤이면 밤마다 성욕에 미친 여자"로 혹평했고, "대통령총리재벌 회장고위 관료들"이 모두 연루되어 있어, "김형욱의 중정"에서조차 처치가 곤란해서, 쩔쩔맸다고 한다.

박정희 : 일본 육사출신일본군 정신이 배어 있어, 섹스에 관한한 자신과 부하에게 관대

"사나이 세계에서 관능의 발산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일본적인 섹스관 : 배꼽 아래에 인격이 있나?

사건 이후, 사회

당시 유행가인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으로 개사하여 확산되었으며, "아들의 아버지가 박정희 대통령이라든지, 정일권 총리라든지, 이후락 중정부장이라든지"하는 소문이 무성하기도 했다.

유행어 : 강변 3로 조심오빠 조심명함 조심

사건 이후, 정치계

70.05 : 사상계"시인 김지하"의 풍자시 "오적" 발표사회 상층부의 부패상 고발→ 서울 장안에 "재벌국회의원장성장차관고급공무원" 등 다섯 도둑이 살았더라는 설화조로 시작되는 시

70.06.01 :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 10만부씩 찍어 팔아김지하의 풍자시 "오적" 기재박통 : 반공법 위반으로 조사 지시문공부가 등록말소사상계 절판(70.06)

중정의 판단 : 건드리면 커지는 사건이고, 정권차원의 망신이니 소리 없이 묻어두자고 판단→ 당시 한국은 6법의 시대가 아니고, 7법의 시대정치범이나 괘씸죄(상부 지시나 관심)

사상계 : 장준하부완혁이 꾸린 잡지  /  후원자는 신민당 전국구 "김세영"(함태탄광을 가진 야당의 드믄 재력가금전 줄)

 

2. 선운각 (고급요정서울 강북구 삼양로173223)

선운각

 

3. 의혹논란

당시 경찰 발표에 의하면, "정인숙이 요정에 나가면서 많은 남자와 사귀었고, 심지어 아들까지 낳아 기르는 등 사생활이 좋지 않아 운전을 하던 오빠(정종욱씨)가 권총으로 살해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은 오빠인 "정종욱"을 범인으로 지목해 누이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동생의 문란한 행실을 보다 못한 오빠 "정종욱"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 동생을 죽이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것이다당시 사건 수사가 "정인숙" 주변에 대해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빠의 범행동기가 석연치 않았으며 중요한 범행현장인 사고 차량은 사건 발생 몇 시간 만에 다른 곳으 치워버렸다. 무엇보다 범행도구인 권총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은 오빠 "정종욱" 형을 마치고 교도소에서 출감한 뒤에 기자 인터뷰에서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나는 범인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내 동생을 죽일 수는 없다. 그리고 내 동생 아들 성일이는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아들이 확실하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누명을 벗을 것이다."  동생과 관계했던 고위층이 뒤를 봐준다고 했다는 아버지(정도환)의 회유로 거짓 자백을 했을 뿐, 집 앞에 있던 괴한들이 동생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억울해서가 아니라면 수감생활까지 다 마치고 나와, "내가 쏘지 않았다"고 얘기 하겠냐", 그의 결백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장했다7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재심청구를 통해서라도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19년 만에 출소한 "정종욱""정일권"찾아가 만나겠다고 했으나, 면담 거부로 문 앞에서 나왔다.

그 뒤에도 "정종욱"은 여러 번 "정일권"을 만나자고 했으나,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정일권" 비서로부 3,500만원을 생활비로 받아냈다. 이후 "정일권" 비서로부터 몇 번의 생활비를 얻어냈다.

이런 숱한 의문점 때문에 "정인숙 사건"은 단순 살인사건이라는 수사기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권력기관에 의한 살인"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잠재우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아있다.

 

4. 사건 검증 결과, 저격수의 존재 의혹

정인숙 살해 혐의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뒤, 1989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정종욱은 당초의 진술을 번복했는데,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인터뷰에서 "국무총리실에서 심부름 왔다"는 저격수에게 동생이 살해 당했다"고 주장했다.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2010.03.20) "나는 여동생을 쏘지 않았다- 정인숙 피살사건 미스터리"라는 주제로 정인숙 사건의 실체를 다시 추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검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당시 수사기록의 공개를 요청, 현장감식 기록, 그리고 피해자 정인숙의 부검기록 등을 입수했다아울러 의문의 총기사진을 바탕으로,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권총을 둘러싼 의혹을 추적해 나갔다.

사건 검증 결과 직접 차량 안에서 총격을 가하지 않고도 정인숙을 저격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제작진은 이를 근거로 오빠 정종욱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만든 결정적인 증거였던 탄도검사와 화약흔 반응 등이 또 다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봤다.

당시 수사기관은 소매 끝에서 나온 화약흔 반응을 근거로 총을 쏘지 않았다면, 오빠의 소매 끝에서 화약흔이 나올 리 없다며, 오빠 정종욱씨의 범행을 확신했다하지만 제작팀이 당시 사고 차량의 내부와 동일한 크기의 세트를 바탕으로 총기발사 실험을 한 결과, 정종욱씨의 주장처럼 직접 총을 쏘지 않은 상황에서도 화약흔이 검출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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