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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ㆍ조폭ㆍ기생ㆍ연예인

사건- 1986.05 : 윤영실 여배우 실종사건 ㆍ오수미 (윤영희)

by 당대 제일 202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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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05월, 톱 모델이자, 영화배우였던 "윤영실(당시 29)"이 갑자기 실종된 사건으로, 평소 그녀의 행실로 보아, 자살을 한다든지 잠적한다든지 할 이유가 없는데, 갑자기 사라져 충격을 낳았고, 영화배우이자 언니였던 "오수미 (본명 윤영희)" 또한 1992,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해 자매가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아 더욱 충격을 준 사건이다.

 

1. 윤영실 (1956~1986.05 실종 (당시 29) 사건오수미 (본명- 윤영희1950~1992 (42)1973년 신상옥 감독과 불륜) 사건

현재까지 "윤영실"의 생사는 전혀 알 수 없고, 아직도 그녀의 시신은 발견된 바 없다공소시효가 만료된 탓에 결국 "영구 미제 사건"이 되었다1992, "오수미 (윤영희)""하와이"로 여행을 떠났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42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기구한 삶을 살았던 두 자매는 결국, 언니는 젊은 나이에 요절, 여동생은 행방불명되어 현재까지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참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

윤영실

2. 윤영실 (1956~ ?1986.05 실종 (당시 29)서울 출생13녀 중 3째 딸)

원래는 무용을 전공했던 무용학도였으나, 배우였던 언니인 "오수미"를 따라, 1977년 모델로 데뷔하였다1977, 영화배우로도 데뷔하여, 2편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1977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  1982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오수미와 같이 출연) )

키가 크고(174cm), 서구적인 마스크로 세련된 이미지를 드러내어 당대의 톱 모델로 등극했고, 더군다나 언니 "오수미"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지라, 그녀 역시 유명인사가 되었다.

톱클래스의 모델로 활동하면서 영화배우로 인기를 모았던 동생 "윤영실"1986.05월 실종됐다어느 날 갑자기 살던 집에서 사라진 후, 30년이 지난 지금껏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수사기관에서도 "윤영실"의 실종사건과 관련된 수사 과정을 제대로 발표한 적이 없다세월이 지나도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윤영실"의 실종 미스터리에 큰 관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자살설""타살설"로 분분했지만, 남긴 것이 없으니 근거도 없는 뜬소문들만 무성했다한때 이들 비극의 자매는 정지영 감독의 영화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에서 극중 자매로 출연하며 잠깐이었지만, 선망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

3. 윤영실 실종 사건 경위

"윤영실"은 언니 "오수미"가 거주하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부근에서 혼자 자취 중이었다고 한다1986.05, "윤영실"이 며칠 째 연락이 두절되자, 동생이 걱정되었던 "오수미"는 결국 "윤영실"의 집으로 찾아갔으나, 인터폰도 되지 않았으며,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오수미"는 경비원과 기술자를 불러,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그런데 "윤영실"은 집 안에 없었다더욱 놀라운 것은 집 안의 살림살이는 1개도 빠짐없이 모두 있었으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외부에서 누군가가 침입하여, "윤영실"을 납치한 것이라면, 당시 29세의 성인이었던 "윤영실" 저항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고, 그렇다면 집 안은 속된 말로 엉망진창이어야 정상이었다.

납치범이 살림살이를 다시 깔끔하게 정리하고 갈리는 없기 때문이다그 때문에 누군가가 집에 침입해서 납치한 것이라고 보기가 어려웠다그렇다고 그녀가 스스로 잠적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뭔가가 석연찮았다.

그녀는 패션모델들의 산실로 유명한 "모델 라인"의 창시자로 동료 모델과 함께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크게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잠적했다고 보기엔 뭔가가 석연찮았다는 것이다거기다 잠적할 사람이 집 안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갔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결국, 집안 물건이 모두 그대로 있고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는데, "윤영실"만 사라졌다는 미스터리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불안감과 답답함을 느낀 언니 "오수미"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도무지 사건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윤영실"은 당대의 톱모델이었던 인물인데다가, 174cm로 키가 크고 늘씬하며, 서구적인 외모를 하고 있어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외모였다.

그러므로 "윤영실"이 걸어 다녔다면, 사람들이 못 알아봤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도 목격자는 단 1명도 나타나지 않았고, 집 안에는 앞서 말했듯이 어떠한 단서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잡을 수 없었고, 현재까지도 "윤영실"의 생사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이 사건을 마치 "마릴린 먼로 사건"(1962년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부터 지금까지 "케네디 대통령 일가가 마릴린 먼로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의혹이 있음)의 한국 버전인 양, 호들갑을 떨었다희한하게도 이 사건을 수사하는 당시 경찰의 태도도 기묘했다는 게, 그 시절 기자들의 증언이다.

나름 유명한 연예인이 사라졌는데도 기자들에게 별달리 수사의 진행에 대해서 알려주지도 않았고 사건 수사결과에 대해서도 어떤 발표나 브리핑조차도 없었다고 한다유명인이 실종된 일임에도 이 사건이 완벽히 잊혀진 데에는 이런 경찰의 태도도 원인이었던 걸로 보인다물론 경찰도 수사를 진행했지만, 딱히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 경찰이 수사 결과 발표를 꺼린 이유일수도 있다.

 

4. 오수미 (윤영희) 사망사건

1992.06.30, "오수미""하와이 빅 아일랜드"에 있었다친구와 "마우이 산"을 돌아본 뒤, 밴 승합차로 도로를 달리다가 브레이크가 파열되면서, 차는 산 밑으로 굴렀고, "오수미"는 결국 숨을 거뒀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오수미"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5일이 지난 뒤에야 그녀가 한국에서 온 "윤영희"라는 본명의 배우임을 확인했다.

 

5. 오수미 (본명 : 윤영희1950~1992향년 41제주 건입동 출생13녀 중 2째 딸)

1967"세기상사""신인배우 공모"에서 군계일학의 유망주로 선발되면서 영화 "어느 소녀의 고백" 데뷔작으로 "오수미"의 출연 작품은 50여 편에 이른다.

제주에서 태어난 "오수미"1969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1970년 영화 "어느 소녀의 고백"으로 데뷔하여, 1980년대 중반까지 여러 작품을 통해, 이국적인 외모와 매끈한 몸매, 관능적인 얼굴이 뿜어내는 뇌쇄적이고 때론 퇴폐적인 이미지로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영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73"신상옥"감독의 "이별"출연하면서, 배우 "최은희"를 아내로 두고 있던 유부남인 "신상옥"감독과 사랑에 빠져 동거하게 되면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오수미""신상옥" 감독과 동거하면서, 2명의 아이를 낳았다.

결국 1977"신상옥- 최은희 부부"는 이혼했고, "오수미"와의 관계도 노출됐다. 나중에 "신상옥" 감독은 북으로 간 뒤에 "최은희"와 재결합했다.

신상옥 (1926~ 2006향년 79함북 청진) 영화감독  최은희 (1926~ 2018향년 92경기도 광주) 영화배우

짧았지만, 남의 눈을 의식 않고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신상옥" 아내로 떳떳하게 산 것은 1년뿐이었다이 일로 "오수미""한 가정을 파탄 냈다"는 사회적 비난을 받으며, 연기활동에 큰 제약을 받았다.

1979, "신상옥"이 북한으로 납북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신상옥"의 두 아이와 남겨졌고, 이후 "김중만(사진작가)"교수와 재혼했다.  7 뒤인 1986.05월에 여동생인 "윤영실"마저 의문의 실종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1986년 북한에서 탈북한 "신상옥" 감독에게 두 아이를 돌려보내 "신상옥" 호적에 입적시키며, 외로운 삶을 견뎌내야 했다또한 "오수미"는 이 무렵에 "김중만(사진작가)"와도 다시 이혼하게 되었다"김중만(사진작가)"교수는 마음씨 착하고 예쁜 모델출신 아내(이인혜)를 만나,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연달아 안 좋은 일들이 겹쳐서 충격을 받은 탓인지, 재기를 위해 여러 영화 출연을 알아봤지만, 역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오수미"1986년에 연달아 3~4편의 영화를 찍고, 17년 동안 몸담았던 연예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녀의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정신적인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대마초"를 피웠다가 크게 고초를 겪었다그런 후, 그녀는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홀로 생활했다.

그러던 중,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는데, 1992.06.30일 교통사고를 당해 41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교통사고로 숨진 그녀의 시신은 영화일로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신상옥"감독을 대신해 그의 직원과 가족들이 수습해 고향 땅에 묻어주었다.

1970- 어느 소녀의 고백황야의 나이프 장애와 사남 대 여태양은 늙지 않는다여자가 화장을 지울 때벽 속의 여자-2벌거벗은 태양민비와 마검6인의 난폭자

1971 : 인생 유학생아름다운 팔도강산춘색한녀   /   1972 : 잘 살아다오 내 딸들아분노의 세 얼굴

1973 : 이별 (신상옥과 만남오수미- 22신상옥- 46)   /   1974 : 맹물로 가는 자동차

1975 : 춘희 '75장미와 들개   /   1979 : 죽음보다 깊은 잠밤의 찬가

1980 : 세 번 웃는 여자사람의 아들 불새   /   1982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1985 : 색깔 있는 남자   /   1986 : 토요일은 밤이 없다서울 황제몸 전체로 사랑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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