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ㆍ주점 (酒店ㆍBarㆍPubㆍTavern)"은 "술을 파는 가게"를 뜻하며, 983년(고려 성종2), "송도"에 처음으로 "주점"의 설치를 허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1102년(고려 숙종7)부터는 서민의 주점이 처음으로 곳곳에 생기기 시작했다.
1. "경제개발"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던 시절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모든 부분이 송두리째 변혁을 겪었다. 사람들은 도시로 이동하였으며, 의식주 생활 방식이 달라졌다. "농경문화"에서 "도시산업사회 문화"로 바뀌면서, 사람들은 바빠지고, 평가기준은 능률이나 돈이 되었다.
외국과 무역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들어온 미국식 문화도 사람들의 사고ㆍ행동방식을 흔들어 놓았다. 이런 와중에 "음주문화"도 대변혁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술의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면" 단위마다, "막걸리 양조장"이 들어서고, 생산량이 해마다 늘었다.
1965년부터, 정부의 양곡 정책으로, 쌀ㆍ보리 등의 곡물을 "술의 원료"로 쓸 수 없게 되어, "희석식 소주"가 대량 공급되어, 서민들은 "소주"를 주로 마시게 되었다.
점차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각종 행사에는 "술"을 넘치도록 내놓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주로 마시던 술은 "막걸리ㆍ소주"였다. 1970년대 말, "맥주"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술"과 "고기"는 실과 바늘의 관계이다.) "전통 주막ㆍ소주 집"에서 서구화된 "맥주 집"이 늘어났고, 가정 소비도 꾸준히 늘었다.
1970년대, "요정정치"의 시작으로 "살롱ㆍ스탠드바ㆍ나이트클럽 회관" 등의 고급 서비스 업종이 기승을 부렸고, "음식점 문화"는 "삼겹살ㆍ돼지갈비ㆍ등심ㆍ갈비" 등 "고기 문화"로 전환되었다.
① 극장식당 : 연예인들의 주요 활동무대 (1970년대)
1970년대 유행했던 "극장식당"은 당시 연예인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당시 인기 있었던 곳은 "초원의 집ㆍ무랑루즈ㆍ아마존ㆍ월드컵" 등으로 손님들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쇼"를 보며, 술도 즐기는 즐거움을 가졌다.
② 나이트클럽 : 밴드가 연주하는 곳 (1970년대)
1970년대에 와서, "나이트클럽"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무교동"엔 장안 최고의 "나이트클럽"으로 이름을 날리던 "스타 다스트"가 있었고, "코파카바나"가 경쟁을 했다. 하지만 당시 "나이트클럽"은 지금과 같이 DJ가 있어 다양한 음악을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밴드"가 직접 라이브 음악을 연주했다. 40~50대들이 지금도 기억하는 "사랑과 평화"같은 대중음악 밴드들이 당시 "나이트클럽"에서 활동했다.
③ 학사주점 : 대폿집의 후신 (1970년대)
197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생겨난 "학사주점"은 1960년대의 칙칙한 "대폿집" 분위기에서 발전된 보다 더 세련된 모습의 주점이었다. "막걸리ㆍ동동주"에 "파전ㆍ두부김치ㆍ김치찌개ㆍ참치찌개"등이 가장 사랑 받았던 메뉴이고, 현재도 "대학가"의 먹자골목의 한 귀퉁이에 몇몇 곳이 명맥을 유지하면서,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종로의 "피맛골"은 서울의 대표적인 "학사주점" 골목이다.
④ 맥주 집 : 3저 호황의 최대 수혜자 (1980년대)
"맥주"가 처음 선보인 것은 "일제 식민지 초기"에 일본에서 수입되면서부터였다. "맥주" 소비량은 1976년까지도 "막걸리"의 1/1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맥주시장"이 불붙은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맥주 집"이 생겨나면서부터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에 들어와, "3저 호황"에 힘입은 "소비주의 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 "맥주"의 소비량 증가와 함께 "맥주 집"도 성행을 하게 됐다.
⑤ 스탠드바 : 쇼도 보고 대화도 하는 곳 (1930년대→ 1970년대 유행)
"바"가 들어온 것은 1930년대 무렵인데, "카운터"가 있고, "양주"를 파는 술집을 "바"라고 했다. "스탠드바"는 1970년대에 유행했던 "바"의 형식이다. 주로 음악을 연주하고, 쇼를 보여주는 무대가 앞에 있고, 몇몇의 독립된 마담들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앉아서 술을 마실 수 있다. 손님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마담 테이블"에 앉아, 대화도 하고, 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⑥ 룸살롱 :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곳→ 1970년대 말 유행
"고급 술집"은 "삼국시대"로부터 서민들과는 상관없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이곳에서 "권세가"들이 정치적 담론을 해왔고, 그들만의 여흥을 즐겼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이런 식의 술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 바로 "룸살롱"이다. "특수 계층"만 드나들던 "고급 술집"에 대중이 드나들게 되었다.
2. 1980년대 : 1960~ 1970년대 고도성장의 결실이 맺어지는 시점이기도 하지만, "2저 호황"이라는 국제적인 환경도 뒷받침 된 시기이다. 또한 1980년대에는 "성의 상품화" 현상이 현저해졌다.
1980년대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은 "술집-음향기계와 결합ㆍ술집-노래의 결합ㆍ성인 쇼 술집 확산ㆍ여종업원 술집 대중화ㆍ술집의 주택가 침투ㆍ젊은 세대 전용술집 등장ㆍ술집 인테리어 고급화ㆍ술집 공간구조의 변화" 등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예전부터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저하게 대중화되는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각종 "퇴폐적인 성인 쇼의 범람ㆍ여종업원이 술시중을 드는 카페의 주택가 침투ㆍ술집 여종업원의 출신 성분의 다양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성의 상품화"가 현재해진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된 결과였다.
"야간 통행금지 해제"로 심야영업을 하는 술집이 확산될 수 있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경제적인 소비능력의 향상ㆍ2~3차로 이어지는 음주관행ㆍ기업의 접대문화ㆍ부동산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의 증가ㆍ 여가향유 능력의 미성숙ㆍ성규범의 완화ㆍ쾌락을 추구하는 가치관의 확산" 등의 요인이 복합된 것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 대중주 "막걸리 소비량"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맥주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또한 "진ㆍ보드카ㆍ위스키"의 소비량이 급격히 늘었다. 이때의 특징은 "주류 소비의 고급화"가 진행되었고, "접대주"의 비중이 커진 점이다.
① 카페 : 값싼 "호프집"에서 "최고급 룸살롱"까지 (1980년대)
1980년대 술집 역사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카페"라는 술집이 크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이전만 해도, "카페"는 그저 차 마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정도라고 여겨졌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나타난 "카페"는 "최고급 룸살롱"에 비견할 수 있는 술집이 있는가 하면, 값싼 "호프집"의 형태를 띠는 것도 있고, "파는 술 종류ㆍ안주ㆍ인테리어ㆍ영업장소ㆍ경영방식ㆍ종사하는 여종업원의 유형"도 매우 다양해졌다.
② 가라오케 : 노래하며 술도 마시는 곳 (1980년대 중반~ 1990년대 초반)
80년대 중반부터, 술- 노래가 결합된 형태의 술집이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시발점이 "가라오케"이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술집은 "룸살롱ㆍ스탠드바ㆍ일부 나이트클럽" 같은 데가 있었지만, 이런 곳은 대부분 전문 "악사"들이 "기타ㆍ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데 맞추어, 노래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손쉽게 기계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가라오케"만큼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가라오케"는 1980년대 후반에 번창 일로로 확산되다가, 1990.10월 "6공화국"이 시행한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심야영업 단속"이 이루어지면서 주춤하게 된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노래방"은 "가라오케 술집"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③ 디스코 테크 : 고고장의 후신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중반)
"디스코 테크"는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초반에 걸쳐, "디스코 춤"의 열풍이 밀려오면서, 확산되기 시작한 새로운 유형의 술집이다. 과거 "고고장"이 변형된 이곳은, "음반ㆍ테이프"를 틀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을 갖추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술ㆍ춤"을 즐길 수 있는 장소였다. 초기에는 "약간의 입장료"를 내면, 음료수를 주고, 술 없이 춤만 추는 곳으로서,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술을 판매하는 "디스코 테크"가 증가하면서, 가격도 비싸지고, 기성세대들이 점차 잠식해 들어간다.
3. 1990년대 : 음주 문화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1991년, "주류의 수입개방"으로 세계의 술이 밀려왔다.
"고급 위스키ㆍ브랜디"로부터 "값싼 와인ㆍ맥주"에 이르기까지. 따라서 사람들은 세계 유수의 술에 대하여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해외여행의 자유화"로 사람들이 세계 각지의 음주 문화를 접할 기회도 늘어났다. 즉 우리의 음주 문화도 세계화되어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0여 년간, 성장과 개발 일변도로 치달아 온 국민들은 점차 환경ㆍ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음식"에 대한 인식이 양에서 질로, 영양에서 다이어트로 변화하였다.
술을 마실 때도 건강을 생각해서, 덜 마시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마이카 붐(My car boom)"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정부의 주류 정책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1993년, "알코올 농도"가 17% 이상인 술은 "전파 매체(TVㆍ Radio)"를 통한 광고 선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1996년, 모든 술에는 건강에 대한 경고 문구를 기재하도록, "국민건강 증진법"에 규정하였다.
① 소주방 : 로바다야끼의 후신
"음식 메뉴"에 있어서, 종류ㆍ가지 수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칵테일의 대중화" 전략의 일환으로 "소주"를 이용한 갖가지 칵테일을 개발하여, 보급시킨 것이 한동안 "소주방"이 히트를 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대중 주점인 "소주방"의 활성화 직전에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일본대중주점 형태인 "로바다야끼"인데, "로바다야끼"의 국내 도입이 "소주방" 형태의 주점에 큰 영향을 미쳤다.
② 단란주점 : 노래방(1991년)의 대안
"가라오케"가 쇠퇴하고, "단란주점"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노래방"이었다. 1991년 무렵, "부산"에서부터 등장한 "노래방(노래연습장)"은 급속도로 전국에 확산됐다. 그러나 술을 못 팔게 되어 있는 "노래방"에서, 불법적인 "술 판매ㆍ접대부"까지 고용하면서, 변태영업이 기승을 부리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단란주점"이 등장하게 됐다. 이러한 "단란주점"은 1997년 "IMF 환경" 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경기회복에 따른 과소비 풍조에 편승해, 2000년부터는 신규개업이 크게 늘어났다.
③ 게이 바 (Gay bar) : 이색 지대
"게이 바(gay bar)"는 말 그대로 "남성 동성연애자"들이 출입하는 술집이다. 사회구조가 다양화되고, 개성화 되면서, "동성연애자"들도 서서히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흔히 "동성연애자ㆍ호모"로 불리는 "게이"들이 모여서, 술 마시고 대화할 수 있는 술집이 생겨난 것이다. 1996년, 서울의 경우 약 70여개의 "게이 바"가 성행할 정도로 그 숫자도 많은 편이다. 이들 "게이 바"는 주로 "낙원동(탑골공원 뒷편)ㆍ이태원" 등에 있다.
④ 록카페 : 젊음의 탈출구 (1990년대)
"나이트클럽"에 식상했던 젊은이들은 1990년대 들어와서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됐다. "신촌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게 된 "록카페"는 "부킹하자"고 손목을 잡고, 다른 테이블로 달려가는 웨이터나, 화장실에서 간단한 안마와 수건 제공, 싸구려 드링크의 제공으로 "팁"을 챙기려는 얄팍한 상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양질의 음악"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나이트클럽"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장소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기존 "카페"의 테이블 사이에 공간을 넓히고, 귀청을 찢을 듯 한 "록음악"과 "사이키 조명"으로 분위기를 조성해, 싼값에 앉은 자리에서 술ㆍ춤을 즐길 수 있도록 한 "록카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⑤ 신세대 카페 : 개성의 상징 (1990년대 중반)
이 술집은 어떤 의미에서 신세대의 특징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술집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를 "대학가" 앞에 등장한 "칵테일 전문점ㆍ편의방ㆍ록 클럽ㆍ재즈 클럽"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0년대~ 19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가속화된 "계층차별화 현상ㆍ연령차별화 현상"은 "소비주의"와 접목되면서, 1990년대 중반기에 오면, 더욱 다양한 형태의 술집을 탄생시킨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그것의 상징적인 것이 속칭 "신세대 카페"이다. 이 카페는 "젊은 신세대층"이 주 고객층으로 주로 "외제 면세품 맥주"를 파는 술집이다. "신세대"의 중요한 특징인 "집단주의적인 구속 탈피ㆍ전통주의 거부ㆍ개성존중ㆍ다원주의" 등의 현상이 잘 드러난다.
⑥ 칵테일 전문점 : 취향에 따라 즐기는 곳
"신촌ㆍ압구정동ㆍ홍대 입구ㆍ화양리" 등 유흥가에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칵테일 바"는 예전의 "레게 바ㆍ스포츠 바"를 압도하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능숙한 입담ㆍ현란한 플레어(칵테일을 만드는 손동작) 묘기"로 손님을 끄는 "바텐더"가 신종 인기직종으로 등장했으며, 이런 "바텐더"들이 실력을 겨루는 대회까지 생겨났다. "칵테일 바"의 등장은 기존의 "술 문화"와는 대립적인 어떤 것을 보인다. 즉 전통적인 "술 문화"에 의하면, 술은 취할 때까지 2차ㆍ3차를 가는 것이고, 술잔을 돌려가며, 마시는 것인데, "칵테일 바"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술을 선택하고, 술잔은 돌릴 수가 없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자기개성의 추구"라는 일면이 들어 있는 것이다.
4. 2000년의 출발은 20세기와 결별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 속에 술집들도 대부분 불황을 겪었는데, 일부 호화판 업소(고급 주점ㆍ나이트클럽 등)은 그런 것과는 아랑곳없이 성행하는 대조를 보였다. 젊은 층을 위한 술집은 그들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더욱 세분화 되고 있다.
"소주방"에 이어, "소주 바 스타일"의 업소가 등장했으며, "카페 바ㆍ클래식 바" 등 기존의 요란한 음악 대신,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바"가 선을 보였다. 또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스포츠 바"나, "바텐더"가 마술을 부리며 손님을 끄는 "매직 바", 포장마차 형식의 "텐트 바" 같은 이색바들이 신세대들이 많이 가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기가 바뀌면서, 떠오른 또 다른 키워드는 바로 "복고"이다. "드라마ㆍCFㆍ패션ㆍ상품" 등 전 분야에 걸쳐,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 분위기"가 우리 사회 전반에 유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술집도 "청춘극장ㆍ학교종이 땡땡땡ㆍ장군의 아들" 등 "복고풍"의 이름을 달고, 실내도 1960~ 1970년대 풍으로 인테리어를 꾸민 집들이 많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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