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 (링네임ㆍ김신락 (金信洛)ㆍ力道山 (리키도잔)ㆍ1924~1963 (39세))"은 일본의 프로레슬러로,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1. 역도산 (링네임ㆍ김신락 (金信洛)ㆍ力道山 (리키도잔)ㆍ1924~1963 (39세)ㆍ모모타 미쓰히로)
일본의 첫 프로레슬러(1951~63)ㆍ일본 스모선수(1950~51)ㆍ조선 씨름선수(아마추어)
"북조선"의 민족적 영웅ㆍ"쇼와 시대"의 텔레비전 세계의 영웅ㆍ재팬 드림의 실현자
"2차 대전 전후,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말끔히 씻어준 "일본 프로레슬링"의 영웅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의 기초를 닦았다. 1953년,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를 창설했다.
일본인으로 귀화했으나 한국 민요를 즐겨 불렀고, 재산의 일부를 조국건설에 회사할 것을 희망했다.
• 출 생 : 일제 강점기 함남 홍원군 • 사 망 : 일본 도쿄 • 사 인 : 의료 과실 (복막염)
• 본 명 : 김신락 (金信洛)→ 일본 귀화 : 모모타 미쓰히로 (百田光浩)
• 별 칭 :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ㆍ정의의 상징ㆍ불사신의 영웅
• 신 체 : 181cmㆍ110kg • 활 동 : 1951~ 1963.12 • 처 : 다나카 게이코
• 자 녀 : 딸- 김영숙ㆍ사위- 박명철 (북한 국방위원회 소속 참사) / 아들- 김의호ㆍ모모타 미쓰오 (레슬러)
• 제 자 : 김일 (金一ㆍ1929~2006ㆍ77세)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 (이노키 간지ㆍ안톤ㆍ1943~ ) 프로레슬러ㆍ브라질 상파울로 농민시장 짐꾼
자이언트 바바 (바바 쇼헤이ㆍ1938~1999ㆍ61세) 거구(209cm)프로레슬러ㆍ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
2. 사 망
1963.12.07일, "하마마츠시 체육관"에서 결투를 끝낸 "역도산"은 야간열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1963.12.08일, 심야의 "도쿄도 미나토구 아카사카다이".
아카사카 카바레 "뉴라틴쿼터"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던 중, 폭력단 "스미요시 일가 단원(住吉一家ㆍ대일본흥업사원) "무라타 가쓰시(村田勝志ㆍ25세)"와 말다툼(발을 밟았다ㆍ밟지 않았다)을 벌이다가, "무라타"의 칼에 복부를 찔려 부상을 입었다.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그는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아내 "다나카 게이코"가 다니던 산부인과 "아카사카 산노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고, 수술은 잘 끝났으나, 그는 "복막염"으로 15일 "2차 수술" 후, 수술 후에 생긴 "화농성 복막염"으로 15일 오후 9:50분에 사망하였다. 아내 "다나카 게이코"에 따르면, "역도산"은 2차 수술 전,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3. "역도산"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① 순간적인 살인인가?
범인의 진술에 따르면, "역도산"이 발을 밟고도 안 밟았다고 시치미를 떼었기 때문에 칼로 찔렀다고 했으나, "역도산"과 범인은 이전부터 얼굴을 알던 사이로, 술자리에서 몇 번 티격태격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범인은, "징역 7년형"을 살았다.
② 의료 과실 ?
2003년, 부인 "다나카 게이코"는 "역도산의 사망이 의료 사고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2번째 수술이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설, 수술 후 물을 마시면 안 되는데, 목이 말라 꽃병 속의 물을 마셔버렸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③ 조폭과의 관련성
"서민의 스포츠"로 인기 있는 "프로레슬링 계"의 수입을 "조폭"이 가로채고 있었고, 그 배후에는 "역도산도 있었다."는 설이다. "역도산"은 프로레슬링 뿐만 아니라, "리키 스포츠 팔레스ㆍ클럽 리키ㆍ리키 아파트먼트" 등을 경영하는 실업계의 영웅이기도 했다.
4. 생 애
1924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농부 "김석태"의 3째 아들로 태어났다. 타고난 장골로서 거한이었던 소년시절, 일제치하에서 "함경도ㆍ만주간도"를 떠돌며 생활하던 중, 14세 때, "조선일보" 주최 "전국씨름대회"에서 나가서 우승을 차지했다.
1939년, 16세의 그를 씨름대회에서 처음 본 "일본 스모계"의 거물 "타마노우미 우메키치"는 "일본 스모 계"에 등단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본 사람이 되기 싫다. 고행에서 살겠다."고 항거하여, 폭행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본행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서두르기까지 했으나, "타마노우미 우메키치"의 강제적인 결정으로, 1940년 "일본행"에 몸을 실었다. "시쇼노세끼"의 한 "스모 선수 양육소"에서 "스모 선수"로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일본"에 도착한 그에게 제일 처음 주어진 것은 위조된 호적등본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증명서까지 완벽하게 위조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모모타 미쓰히로(百田 光浩)"가 되었고, 스모선수로는 "역도산(리키도잔)"이라는 이름으로 등단하게 된다. 역도산의 좌우명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였다. "스모"에서 이기기 위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40년, 처음으로 "스모 대회"에 출전하여, 승리를 거듭함으로써, 인기를 손에 쥐고, 승진을 해 나갔다. 1949년, 26세로 "세키와케(關脇)"에 등극하여, 출세의 길을 걸었으나, "내장 디스토마"에 걸려 잇달아 패배하였으나, 쉬지 않고 "스모 대회"에 출전하였고, 그해에 10승5패라는 기록을 남겼다.
스모계에서 빠른 성공을 쥐었으나, 더 이상의 등단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조선인"에 지나지 않았다. 1950.09월 새벽, 그는 자신의 집에서 홀로 "단발식"을 거행했다. 이것은 "스모계의 묵은 인습"에 대한 울분의 폭발이었던 것이었다.
"스모 계"에서 은퇴한 그는 "공사장의 간부"로 전전하던 중,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게 된다.
1951.10월부터 세계적인 프로레슬러인 "브란스(Branth, B)"의 일본원정을 계기로, 1952년 "하와이"로 떠난 그는 "프로레슬러"로 다시 태어났다.
1953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프로레슬링을 텔레비전에 방영하게 하였다.
1954년, 처음으로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를 창설하고, 일본의 첫 프로레슬러로써, "텔레비전 영웅"으로 부상했다.
1954.02월, "미국 샤프형제"를 초청해, 태그매치를 벌였다. "빨간 머리ㆍ파란 눈ㆍ가슴과 배에 텁수룩하게 털이 난 샤프 형제"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인을 때려잡은 미국인의 전형"이었고, "미일전쟁"으로 연출된 첫 싸움에서 "역도산"은 "가라테 촙"으로 상대를 때려눕혔다.
그 뒤 "역도산"은 "반칙을 일삼는 외국 선수에 맞서, 최후에 승리하는 일본 영웅 레슬러"로 각인됐다. 강인한 체력과 태권도의 특기로써, 1957년 세계선수권자인 "루테스(Luthes, J.S)"를 물리쳐 "헤비급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이후 19회에 걸쳐, "선수권"을 방어하였으며, 1958년 "월드리그전(World League)"을 창설하였다.
그 뒤 세계의 프로레슬링 계를 제패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프로레슬링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일본 굴지의 부호가 되었다.
또한 여러 개의 체육관과 흥행장을 설립하였다. 1963년 봄, 귀국하여 한국 체육발전을 위해, "서울"에 스포츠센터의 건립을 약속하였으나, 그해 겨울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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