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계의 판도를 바꾼 상징적 혈전으로 알려진 "명동 사보이호텔 커피숍"에서 발생한 "조폭 혈전(명동 사보이호텔 기습사건)"이다. "신상사파(신상현)"이 "조양은"에게 패배하거나 칼에 맞아 은퇴했다는 잘못된 설이 있다.
1. 1975.01.01일 : 명동 사보이 (Savoy) 호텔 기습사건
그동안 이 사건은 "범 호남파"에서 활동하던 "조양은(후 양은이파)"이 부하들과 함께, "생선회 칼ㆍ야구방망이"로 무장하고, 당시 폭력계의 대부 "신상현"이 이끌던 "신상사파"의 신년회장을 기습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며, "조양은"은 이 사건으로 주먹계 "패권"을 장악한 인물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1975년, 이 사건으로 "조양은"이 이끄는 "양은이파"가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한다. 또한 "김태촌"의 "서방파"도 "광주"에서 상경, "주먹의 한 축"을 담당한다. "조양은"은 언론에 알려지기로는 "김두한 시절"의 낭만파 주먹의 계보를 끊고, 속칭 말하는 조폭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사시미 칼"을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조양은"은 "김태촌이 처음으로 "칼부림을 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조폭의 무기사용은 해방 이후부터 흔했다. 소위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를 존중했고, 무기를 안 쓰고 1대1 주먹 싸움만 했다느니, 하면서 "낭만파 주먹"이라 하는 것은 모두 후대의 미화이다. 오히려 해방 직후부터, "제1공화국 자유당 시절"에는 칼ㆍ손도끼는 물론, 총격전도 서슴지 않았으니 오히려 군사정권 시절에 조폭들의 무기사용이 줄어든 셈이다.
"조양은"은 1969년부터 서울에서 세력을 키우다가, "조창조→ 오종철" 세력에 편입된다. 1975년, 그들의 지령을 받고, "사보이 호텔"에서 "신 상사"를 습격했으나, 맹렬한 반격을 받아 전쟁은 실제로는 결국 "조창조ㆍ오종철ㆍ조양은" 세력의 완패로 끝나고 만다. 이 일로 "조양은"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 도망 다니게 된다. "조양은"의 자서전에 따르면, 3년간 도망 다니면서, 보디가드를 50명씩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조양은ㆍ김태촌"은 서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으나, 1978년 결국 화해하고 "조창조"가 "신상사"에게 함께 데려가서, 사과를 시켰다고 한다.
※ 조양은 (1950~ ㆍ전남 광주) : 양은이파 두목ㆍ개신교(장로회)
김태촌 (1948~2013ㆍ65세ㆍ최양석ㆍ전남 담양) : 범서방파 두목(전남 광주)ㆍ개신교(장로회)
이동재 (1951~ ㆍ전남 광주) : OB파 두목(전남 광주 조직)ㆍ조폭 3대 패밀리
"조양은ㆍ김태촌"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있었는데, 나이는 "김태촌"이 조금 더 많지만, "조양은"조양은이 더 빨리 상경해서 전국구 조폭이 되었으며, 특히 "신상사"와의 싸움으로 "조양은"이 세력도 커지고 적도 많아지면서, 조폭계의 핫 아이콘이 되자, "김태촌"은 호남계 선배들의 힘을 업고 "조양은"을 치게 된다.
여기에 "김태촌"을 견제하기 위해 불러들인 "이동재"가 "OB동재파"로 성장하면서, 1980년대를 주름잡게 되는 3대 조폭의 항쟁이 시작된다.
한참 후의 각자의 회고담도 웃긴데, "조양은"은 자기가 주도해서, "김태촌ㆍ이동재"와 만나, 자기가 큰 형, 이동재가 2째, 김태촌이 3째가 되기로 하고 항쟁을 끝내자고 했으나, "김태촌"의 배신으로 계속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김태촌"은 자기가 나이가 가장 많고, "이동재"는 한참 어린데, 무슨 큰형이 "조양은"이냐면서 그때의 만남은 호남조폭 선배가 불러서 얼굴 한 번 봤을 뿐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0년, "조양은"은 "신군부"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15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다.
교도소에서 감히 "고래회"도 먹는 등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김대중" 아들과 통방했다고도 하는데, 또한 "순천교도소"에서 난동도 부리는 등, 수감 생활은 그리 얌전하게 보내지는 않았던 듯 하다. 1995.03월에 출소하게 된다.
2. "오종철 (범 호남파 두목)"이 말하는 사건의 진상
내가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의 모든 것을 지시했다. (오종철 (범 호남파 두목) )
"지금까지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나와바리(조폭들의 활동영역)를 둘러싸고 두 조직이 갈등을 벌이다, 조양은이 신상사파를 급습한 뒤 범 호남파가 패권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수사기관과 언론에서 "명동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왜곡시켰다. 소설처럼 과장된 부분도 많다. 사건의 발단은 "복수"였다." 오 씨는 1970년대 당시 주먹계에 대한 상황부터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서울은 "신상현"이 이끌던 "신 상사파"와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한 "호남파" 간의 양자대결 구도였다. "신상사파"는 이미 "명동" 등 서울 중심부를 장악하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 권력"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겨울에는 "기름"을, 여름에는 "얼음"을 공급했고, "술ㆍ안주 일체"에 대한 독점 공급체계를 확립했다.
오 씨가 주도했던 "범 호남파"는 "호남지역(광주ㆍ전주ㆍ목포ㆍ여수)" 출신 주먹들이 주축이 됐다. "박종석 (번개), 조양은"은 이 부류에 속했다. ("무교동"은 유흥업소가 많았고, "조창조→ 정학모→ 오종철→ 조양은"으로 계보가 이어졌다)
"범 호남파"는 "서울 무교동" 유흥가를 무대로 세력을 키웠다. "무교동"에 이어, "충무로ㆍ퇴계로"에 이르기까지 세력을 확장하며,"명동"의 "신 상사파"에 위협적인 존재로 급성장했다. "나와바리"를 둘러싸고, 두 조직 간의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오 씨의 절친한 친구인 "이 모"씨가 "신 상사파"로부터 끔찍한 폭행을 당한 것이다.
"이 씨는 주먹을 아주 잘 쓰는 학사건달이었죠. 경희대 체대를 졸업하고 모 금융권 인사의 보디가드를 맡고 있었는데, 돈 문제로 그 인사를 경호하며 서울에 올라왔다가 신상현을 만나게 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친구 녀석은 자신의 의뢰인을 끝까지 보호하려다 시비가 붙었고, 결국 폭행을 당하게 된 것이다." 오 씨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명동 사보이호텔 725"호에는 "신 상사파 신상현"을 비롯해 부산에서 알아주는 주먹 "정경식ㆍ구달홍ㆍ일본 야쿠자" 등 5명 정도가 있었다. 호텔 방안에서 주먹다짐이 여의치 않았던 탓일까.
"정경식"은 "이 씨"에게 맞대결을 제안했고, "이 씨"는 "정경식ㆍ구달홍"과 함께 호텔을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호텔 문을 벗어나는 순간, 각목ㆍ쇠파이프 등을 든 무리들이 "이 씨"에게 덤벼들기 시작했고, 수적 열세에 밀린 "이 씨"는 속수무책으로 구타를 당해야 했다.
"그날이 1974년 12월 마지막 날이었다. 사보이호텔에서 멀지 않은 뉴 서울호텔에 이 씨가 엎어져 있었다. 이름을 부르니까 힘겹게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데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정말 끔찍했다. 분노와 울분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참을 수 없었다." 오 씨는 만신창이가 된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며,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내 친구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현장에 있진 않았지만 실질적인 지시와 지휘는 내가 했다. 지금에야 폭력사건이 발생하면 고소고발하면 되겠지만, 가난해도 믿을 건 "주먹"뿐 이었던 시절, 건달에게 고소 따위는 수치라고 생각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우정)"을 만신창이로 만든 만큼 똑같이 복수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명동 사보이호텔 습격"을 지시한 것도 이날이다. 그는 자신의 오른팔이던 "은석"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소집을 명령했고, "신상현"을 칠 것을 지시했다. 오 씨에 따르면, 당시 "신상현"을 공격하기 위해 3개조가 편성됐다.
"사보이호텔"의 3개의 출입구에 각각 1개조씩 투입, "도주로를 봉쇄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설명.
"조양은(후, 양은이파 두목)ㆍ노현구ㆍ김철"이 각조의 조장을 맡았다. "조양은"에겐 "김수일(신상현 매제ㆍ최측근)"을 처리하는 일이 주어졌다.
"노현구"는 "신상현"을, "김철"은 "또 다른 핵심인물"을 처리하라는 임무가 내려졌다. "은석(오 씨의 오른팔)"은 "박종석(번개)"를 보호하는 일을 맡겼다. "신상현"에게 충성하고 있지만, 한때나마 자신과 함께 "범 호남파"의 주축세력이었던 점이 마음에 걸렸던 탓이라고 했다.
이들은 "신상현"이 "사보이호텔"에 자주 드나든다는 점을 노렸다. 그리고 1975.01.01일 "거사(?)"가 치러졌다.
낮 12시가 넘을 즈음, "신상현ㆍ구달홍ㆍ박종석(번개)ㆍ정경식" 등 8명이 "사보이호텔"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되자 곧바로 습격이 시작됐다. "조양은"은 자신의 임무대로 "김수일(신상현 매제ㆍ최측근)"을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은석(오 씨의 오른팔)" 역시 보스의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하지만 정작 "목표(?)"였던 "신상현"은 당시 현장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 씨는 이 사건으로 도피생활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경찰의 수사력이 집중됐고, 이에 따라 오 씨의 도주 기간도 길어졌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난 1976.03월, 오 씨는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인근에서 자신을 미행하던 "김태촌(서방파)"로부터 습격을 당하게 된다. 당시 "김태촌"은 "박종석(번개)"의 소개로 알게 된 "신상현"의 사주를 받고, 오 씨를 공격했다.
"김태촌ㆍ조양은"이 3년간 쫓고 쫓기는 혈투를 벌인 것도 이 사건 때문이다.
큰 부상을 입은 오 씨는 결국 1년 8개월 가량의 도피생활을 접고, 그해 가을 경찰에 자수했다. 하지만 현장에 없었던 점을 들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검찰" 문을 나서면서, "신상현에 대한 복수"를 꿈꿨다고 했다. 그는 조직을 재정비하고 복수의 기회를 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상현"과 단 둘이 만나 복수할 기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도피생활을 하면서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이 문득 떠올라 그 마음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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