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은 "목포" 출신 조직폭력배들의 사소한 분쟁이 "희대의 집단 살인사건 (4명 살해)"이 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한국유도대학"은 "조폭양성소"라는 비난을 들었으며, 교명을 "용인대학교"로 개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 (4명 살해)
1986.08.14일, "서울 강남구"의 대형 룸살롱인 "서진회관"에서 일어난 "집단 살인" 사건
• "박영진 (가해 조직원)"은 출소 후, 사건 당시 동료 조직원 "장진석"의 누이인 "장우순 (결혼당시 20대 아들이 있는 미혼모)"와 결혼하였다. 피해조직원 "고용수(28세ㆍ사망)"와 "장우순"이 사귀었다는 기사도 있다. • 피해자인 "조원섭"은 "서울ㆍ목포"에 이름난 싸움꾼"으로 "비트(허영만의 만화)"에도 언급된 바 있다.
• 일시 : 1986.08.14일 (목), 오후 10:30 • 장소 :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대형 룸살롱인 "서진회관 17호실" (현, 봉은사로 신논현 마에스트로 오피스텔 자리)
• 피해자 : 맘보파 (목포 출신)ㆍ8명 중 4명 살해됨ㆍ"김태촌"의 "범서방파"의 방계조직
조원섭 (사망/ 행동대장/ 유명한 싸움꾼/ "비트 (허영만의 만화)"에도 언급)ㆍ고용수 (사망)ㆍ송재익 (사망)ㆍ장경식 (사망)ㆍ천종갑ㆍ이왕규ㆍ차권ㆍ오재홍 (맘보파 두목/ 별명이 "맘보"였기에 "맘보파"로 불렸다. 사건 발생 이전, "김태촌"을 만나러 먼저 자리를 떴기에 화를 피했다)
• 가해자 : 서울 목포파 11명ㆍ용인 유도대 (용인대) 선후배 사이ㆍ주범 2명 (김동술ㆍ고금석)은 사형
정요섭 (두목/ 41세)ㆍ장진석 ( 무기징역/ 26세 / 부두목)ㆍ김동술 (사형/ 23세/ 주범/ 행동대장)ㆍ고금석 (사형/ 22세/ 주범)ㆍ김승길 (무기징역/ 27세)ㆍ유원희 (28세)ㆍ박영진 (28세)ㆍ양회룡ㆍ강정휴ㆍ홍성규ㆍ김경만ㆍ나석호 (나머지는 가담 정도에 따라, 유기징역)
2. "서울 강남구"의 대형 룸살롱인 "서진회관"
사건이 발생한 "서진회관"은 "서울 목포파"에서 보호하고 관리하던 업소였다. "서울 목포파"라는 이름은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붙임 이름이고, 원래는 "유도대학교" 출신 젊은 20대 청년들이 "논두렁 무리식"으로 어울리던 무리들이었다.
"김태촌"의 "범서방파"의 방계조직으로 "강남 일대"에서 세력을 과시하고 있던 "맘보파"는 "대학생" 중심의 "서울 목포파"를 무시하고, "서진회관"을 축하파티 장소로 정했던 것이다.
사건 발생 후, 수사 과정에서 일부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당시 무장한 상태에서, "맘보파"의 옆방에 있었던 것은 "상대방이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진술했다. "김태촌"의 부하 중 한사람인 "오재홍"의 별명이 "맘보"로 따로 관리한 조직이었다.
이 사건으로, 약 3개월 전에 발생했다가 쉬쉬해 버렸던, "김태촌"과 "고위 현직검사"가 연루된 "뉴 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건"으로 불똥이 튀어버렸고, "김태촌"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서진 룸 사건"으로 조직원을 잃어 피해를 본 것은 "김태촌"인데, 궁지에까지 몰린 것이다.
3. "법원판결문"에는 범행과정에서 차이가 있다.
시비가 붙어, 양측이 "홀"에서 대치한 상태에서, "고금석"이 먼저 "조원섭"을 찔렀고, "조원섭ㆍ송재익"은 화장실로 피했고, "고용수ㆍ장경식"은 "17호실"로 피신하였다.
"김동술ㆍ고금석"이 주동이 되어, 먼저 화장실에서 "조원섭ㆍ송재익"을 칼로 찌르고, 방망이로 때려 살해했으며, 다음 "17호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고용수ㆍ장경식"을 역시 살해하였다.
나머지 피해조직원은 부상당한 건 아니고, "1명(이왕규)"은 카운터에 있다가 도망갔고, "1명(차권)"은 "악사 대기실"에 숨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았고, "1명(오재흥이나 천종갑)"은 일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서, 화를 면 했다.
가뜩이나 "유도대 출신" 조폭들이 많았던 터라,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유도대학교"는 "서진룸살롱"으로 학교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고, 결국 "용인 유도대학교"라는 이름을 버리고, "용인대학교"로 이름을 변경하게 된다.
4. 사건 개요
1986.08.14일 오후 10:30, "서진회관 17호실"에서 "목포"출신 조직폭력배인 "맘보파" 조직원 7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낸 뒤,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조직원 "고용수(28세)"의 석방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바로 옆방인 "16호실"에서는 "용인 유도대학(현, 용인대)" 선후배 사이로 스스로를 "서울 목포파"로 부르던 8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창 흥을 돋우며, "조직원 출소"를 축하하던 "맘보파 일행" 사이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술시중을 들던 "남자 웨이터의 태도가 기분 나쁘다"며, 일행 중 1명이 마구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다른 조직원들이 말린 후, "웨이터"를 밖으로 내보냈는데, 구타당한 채 울면서, 방 밖으로 나오던 "웨이터"를 화장실에 다녀오던 "서울 목포파" 조직원이 발견하고, 이유를 물었다. 자기들이 아끼던 동생 같은 "웨이터"가 얼굴이 부은 채, 울면서 나오는걸 보고,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이 "왜 그러냐"고 따져 묻자, "17호실"에 있던 "맘보파 행동대장"이자, "전라도 싸움꾼"으로 널리 알려진 "조원섭"에게 얻어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자신들을 무시하고 깔봐왔던 "조원섭"이 자신들이 봐주는 가게에서 그랬다는 사실을 안 "서울목포파" 조직원들은 분노했다.
때마침 화장실로 가려던 "조원섭"이 나오게 되고, 앞에서 "웨이터"와 같이 있는 "서울 목포파"를 마주치게 된다. 당시 "서울 목포파"의 고참 격이던 "김승길"은 "조원섭"을 마주치자, 넉살 좋게 인사를 건냈다. ("김승길"은 "조원섭"의 고향 후배였다) 허나 "김승길" 옆에 있던 "고금석"은 달랐다.
이미 열이 받을 대로 받은 "고금석"은 "조원섭"을 노려 보았고, "조원섭"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한참 어린 "고금석"이 노려보자, 열이 받은 "조원섭"은 "고금석"을 일방적으로 사정없이 구타했다. 당시 "유도대 선출"로 은메달까지 딴 실력자였던 "고금석"이였지만, 실전 싸움에서 잔뼈가 굵은 "조원섭"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일이 벌어지자, "김승길"은 급히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을 불렀고, 밖에서 소란이 나자, 룸에 있던 "맘보파" 조직원들도 쏟아져 나왔다.
허나 "서진룸 살롱"은 "서울 목포파"가 상주하던 곳으로, 전부다 회칼과 도끼로 무장을 하고 있었으나, 그에 비해 "맘보파" 조직원들은 맨몸으로 그들과 대치하게 된다."서울목포파"가 전부 무장한 걸 본 "조원섭"은 열이 받을 대로 받아서, "덤빌테면 덤벼 보라"고 소리쳐 댔다. 무장을 하고 있었으나, "조원섭"의 싸움실력을 익히 들어온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섣불리 달려들 수 없었고, 분명히 자신들보다 실전 경험도 많고, 센 상대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주저했다.
그 모습을 본 "조원섭"은 비웃으며 말했다. "근본도 없는 유도대 양아치 새끼들"
자신들이 숫자도 많고, 무장을 하고 있음에도 무시를 당하자, 열이 받은 "서울 목포파" 조직원 "김동술"이 도끼로 "조원섭"을 내려찍으면서, 공격이 시작됐다. 이때 공격으로 팔이 잘린 "조원섭"은 급히 자신들의 방으로 후퇴하고, "맘보파" 조직원들은 문을 가로 막으며, 필사적으로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을 막았다.
허나 칼과 도끼로 무장한 "유도대 출신들"을 숫자가 적었던 "맘보파" 조직원들이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문이 뚫리며,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이 방으로 들이 닥치게 되었으며, 룸을 피로 적시며, "맘보파" 조직원들과 "조원섭"을 칼과 도끼로 난도질 하게 된다.
때마침 화장실에 갔다가, 광경을 목격한 "맘보파" 조직원 1명과 문이 뚫리면서 운 좋게 도망간 2명을 제외한 "조원섭"과 "맘보파" 조직원 3명은 무참히 살해된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 한 "조원섭"을 향해 공격이 집중되었고, 닥치는 대로 칼과 방망이를 휘둘렀다. "맘보파" 조직원 7명 중 4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나머지는 "중상"을 입었다. "광복절 특사"로 출소, 축하받던 "고용수" 역시 처참하게 피살당했다.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이미 사망한 4명의 시신을 "차"에 싣고, 20분 거리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정형외과 수술실" 앞에 내려놓고는 "교통사고 환자요!"라고, 소리치고 달아났다.
일을 벌린 "서울 목포파" 조직원들은 시체들을 인근 병원에 던져놓고,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전부 검거하게 된다. 범행 직후, 도주했던 조직원들은 사건의 파장이 예상보다 커지고,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하나 둘, "경찰"에 자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 사건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관계도 없는, 주변 인물들을 위장 자수하게 하는 등 수사에 혼선을 빚기 위한 "꼼수"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 사이에 주범인 "김동술(행동대장)ㆍ고금석"은 "전북 임실"에 있는 한 저수지 안 "외딴 섬"에 숨어들어가, 낚시꾼으로 위장한 채 은둔했다.
"경찰"은 "위장 자수한 자"들을 솎아내고, "가담자"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달아난 주범 "김동술ㆍ 고금석"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망을 총동원했다. 결국 수배자들의 위치를 알아낸 "경찰"은 "5명의 무술고단자 형사"를 현장에 급파했다. "독 안의 쥐"가 된 주범 "김동술ㆍ고금석"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형사"들의 접근을 눈치 챈 두 사람은 "칼ㆍ낚시 도구" 등 흉기들을 들고, 끝까지 저항했다. 그러나 결국 노련한 "형사"들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검거되었다.
5. 판결ㆍ사형집행
서울로 압송되어 온 "김동술ㆍ고금석"은 TV 카메라 앞에서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허세는 오래 가지 못해서, 재판에서 "검사"가 "사형"을 구형하자, "엉엉 울면서 죽을죄를 졌다"고 하소연하는 등 처량한 모습으로 돌변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총 2개 폭력조직 12명의 조직원들이 구속되었고, "항소ㆍ상고"를 거쳐, 1987.10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주범인 "김동술ㆍ고금석"은 "사형", "김승길ㆍ장진석"은 "무기징역", 나머지 조직원들에게는 각 가담 정도에 따라, "유기 징역형"이 내려졌다. "김동술ㆍ고금석"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1989.08.04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김동술"을 집행할 때, 버튼을 눌렀는데도 바닥이 내려가지 않아, "김동술"을 옆에 두고, "교수대"를 수리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일제 시대에 제작된 상태 그대로 줄곧 사용되었다고 하며, 심지어 그때까지 교수형 밧줄까지도 교체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김동술"은 45분 동안 덜덜 떨면서 누워 있다가, 재 집행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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