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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병ㆍ독립운동ㆍ의열단ㆍ김원봉

맹장 : 오동진 (1889)ㆍ광복군 총영장ㆍ고려혁명당 조직

by 당대 제일 202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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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吳東振ㆍ1889~1944?ㆍ55세)"은 "김좌진(金佐鎭ㆍ1889~1930ㆍ41세)ㆍ김동삼 (金東三ㆍ1878~1937ㆍ59세)"과 함께 "3대 맹장(猛將)"으로 불린다. "일제 관공서" 100여 차례 습격하여, 살상한 사람이 900여 명에 달한다.

 

1. 오동진 (吳東振1889~1944 ?향년 55)

일신학교(민족주의 사학) 설립고려혁명당 조직ㆍ"일제 경찰"의 통계에 따르면, 1927년까지 "오동진"은 연인원 10,000명이 넘는 부하를 이끌었고, "제 관공서"100여 차례 습격하여, 살상한 사람이 900여 명에 달한다. 사망 시기에는 이설이 있는데, 1927.12193019361944.05.20일 경으로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  출 생 : 평북 의주         •  : 송암 (松菴)    •  수 상 : 1962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  최 후 : 1927.12, 옛 동지인 "김종원"의 밀고로, "김덕기(신의주의 조선인 형사)"에게 체포압송되었고, 이후 "정신병 진단"과 함께, "무기 징역형" 선고 받아, 정신병자들을 수용하는 "공주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법정 투쟁과 단식 투쟁"을 하던 중, "고문"으로 정신병 진단을 받고 "공주 형무소"에서 옥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3420년으로 감형되기도 하였으나, 모진 고문 끝에 1944.05"공주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오동진

2. 만주에서의 독립운동

"안창호"가 세운 "평양의 대성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민족주의 사학 일신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계몽 운동을 벌였다1919, "31운동"때는 "일신학교" 설립자인 "유여대"가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참가하면서, "의주 지역"에서 "경성부"와 동시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그는 이 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령을 피해, "만주"로 망명했다.

이후 "만주"에서 "윤하진장덕진박태열" 등과 함께 "광제청년단(1919.06), "안병찬김찬성 김승만" 등과 함께 "대한청년단연합회(1919.11)"를 결성하였다이듬해 "광복단(1920.03)"을 조직하고, 이후 "광복군총영(1920.07)"으로 개편하여, "오동진""총영장" 맡았다.

그 해에 "미국의 의원단"이 시찰단으로 국내에 입국할 때에는, 이들에게 독립 의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박희광김광추김병현안경신정인복임용일" 등을 국내 각지에 파견하여, "기관 파괴 테러" 기도했다이 사건으로 그는 궐석재판을 통해,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한편, 1920.07.26, "대한민국 임시정부""대한광복군 참리부 규정대한광복군 사령부 규정 대한광복군영 규정" 제정하고, 08.01일을 시행일로 삼아, "광복군사령부"를 조직하였다하지만 산하 "무장 독립군"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광복군 총영""임시정부 조직개편"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계속 활동하였다.

1922년 경 부터, "만주 지역"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 단체들""단체 통합" 움직임이 있었다"오동진""양기탁"의 통합 제안에 찬성하여, 연합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통의부"를 조직하여, "통부장재무부장"을 맡았으며, 1924"임시정부"의 특명으로 "통의부 5중대 소속 3인조 암살단"으로 알려진 "박희광김광추김병현"에게, 첩자이며 "여순조선인회(旅順朝鮮人會) 서기"인 악질 친일파 "정갑주(鄭甲周)"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1924.06, "일진회(一進會)"으로 국권 침탈에 앞장섰던 친일파 거두 "최정규(崔晶奎)"와 이등박문의 수양녀이자, 매국녀인 "배정자(裵貞子)" "암살 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1924.07.22.일경, "임시 정부"와 공모로 "일본 영사관" 파괴 명령을 내렸으나, "박희광"이 투척한 폭탄이 불발로 실패했다.

1925, "통의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단체들이 연합 결성한 "정의부"에서 "군사부위원장 겸 사령장"으로 활동했다1926, "양기탁천도교 혁신파소련지역의 독립 운동가들" 규합, "고려혁명당"을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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