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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병ㆍ독립운동ㆍ의열단ㆍ김원봉

명장 : 홍범도 (1868)ㆍ봉오동 전투ㆍ평민 사냥꾼 출신

by 당대 제일 202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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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洪範圖ㆍ1868~1943ㆍ75세)"는 평민 출신의 의병장으로, "사냥꾼"으로 활동했다. "만주"에서 "대한독립군" 사령관으로, "삼둔자 전투ㆍ봉오동 전투ㆍ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 홍범도 (洪範圖1868~1943향년 75)

일본군 2,000명 사살독립운동가평민 출신의 의병장"사냥꾼"으로 활동ㆍ그는 무척 과묵한 사람으로 말이 없고, 자신의 기분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9살에 고아가 된 머슴출신 평민으로, "머슴사냥꾼건설 노동자종이공장 노동자광산 노동자" 등을 전전하였다. (모친- 출산 후 7일만부친(머슴)- 9살에 사망) (농부머슴나팔수승려"홍범도 일지"라는 "봉오동 전투" 실황을 기록한 자술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를 단지 "봉오동 전투의 일자무식의 장군"이라고 알았을 것이다."라는 시각도 있다.

•  사명 : 나는 한가지만은 똑똑히 알고 있소. 내땅을 남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

•  출 생 : 평남 평양 서문안 문열사 부근 (평남 양덕군? 평북 자성군?)    •  종 교 : 대종교

•  사 망 :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옛 수도 알마티에서 1,100km 떨어진 곳)      •  사 인 : 병사

•  별 칭 : 총알로 바늘귀도 뚫는 사람범도(範道)      •  신 체 :  190cm (당시 남자 평균키 160cm)

•  신 체 : 190cm (당시 남자 평균키 160cm)        •  정 당 : 1927년 - 소련 공산당 입당

•  : 이옥구 (? ~ 1908) 일제 고문으로 순국  / 이인복 (? ~ ? ) 1926(58세 때), "러시아"에서 재혼

•  자 녀 : 1- 홍양순 ( ? ~ 1908) "정평배기 전투"에서 "홍범도"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 / 2- 홍용환 ( ? ~ ? ) 일본군 고문으로 순국

홍범도

1895년경(27)부터, "의병"에 뛰어들어, "함북 갑산무산" 등지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1907,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에 자극을 받아, "갑산"에서 포수ㆍ농민ㆍ해산군인 70여명을 모아 의병을 결성했. "삼수갑산" 등지에서 "유격전"을 펼치다가, "만주 간도"로 건너가, "독립군"을 양성하였다1910, "한일 병합" ,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1919, "간도 국민회의 대한독립군" 사령관이 되어, 국내로 들어와서, "일본군"을 습격하였다

1920.06.04, "북간도 화룡현 삼둔자(三屯子)"에서 "일본군"을 선제공격하여 격멸하였다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것은 06.06~ 07일까지의 "봉오동 전투"지만, 전투의 시작은 3일 전인 06.04 "홍범도(1868~1943)최진동(1882~1945)" 부대의 "함북 종성군 일본군 헌병 초소 습격"이다.

1920, "일본군""봉오동"을 공격해 오자, 3일간의 "봉오동 전투"에서 120명을 사살하고,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이후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 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하였다이후 "독립군 통합운동"을 벌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여, "김좌진"과 함께 부총재가 되었다

1921, "러시아 자유시"에서 "소련"의 해산 명령을 계기로, "독립군" 조직 간에 분열이 발생하여 동족상잔(자유시 참변)이 발생한 이후, "대한독립군""러시아" 적군 소속으로 편입되어, "이르쿠츠크(몽골 위쪽)"로 이동하게 되고, 1927,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7.10,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지역인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 당했으며, 그곳에서 집단 농장에서 일하였고,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인 "알마티"에서 "고려극장 경비(수위장)"로 일하다가 사망했다.

< 연 보 >

 1886(18세): 일찍 부모가 죽자, 여러 가지 막노동을 전전. "제지공장"에서 일하던 중, 친일파인 "공장주"가 7달 동안 품삯을 주지 않고, 도리어 먹고, 입고, 잠잔 값을 받아야겠다고 하자, "공장주"를 살해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이때 산으로 들어가 절에서 "총ㆍ검술"을 익혔다고 한다.

 1895(27세): "을미사변"으로, 전국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나자, "강원도 철령"에서 봉기하였다 1896(28세): 14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함경남도"로 이동하여, "유인석 의병부대"에 합류. "을미의병" 해산 후, "포수"로 위장하여 일제의 추적을 피함.

 1907(39세):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정미의병" 발발. "함병도 갑산 신포계 신포수" 중심으로 의병 조직. 12월, "삼수전투"에서 일본군 "함흥ㆍ북청ㆍ갑산 수비대"를 궤멸시키는 등, 대소 37회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국내에서 무력 투쟁에 한계를 느끼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1919(51세): 10월, "평북 강계 만포진"을 공략하여, 일본군과 3일간 격전을 치러, 70여 명을 살상 1920(52세): 06.04~ 06일까지, "삼둔자 전투(三屯子 戰鬪)에서 "일본군"을 선제공격하여 격멸 (만주 북간도 화룡현(和龍縣) 월신강(月新江)변 삼둔자(三屯子)) 06.06~ 07일까지, "봉오동 전투(鳳梧洞戰鬪)"에서 "일본군" 157명을 살상 (함북 종성군ㆍ중국 지린 성(吉林省) 허룽현 봉오동(鳳梧洞)ㆍ안산ㆍ고려령ㆍ삼도구) 10.21~ 28일까지, "청산리 전투(靑山里 戰鬪)ㆍ청산리 대첩(靑山里 大捷)"에 참여 (지린 성(吉林省) 허룽현 삼도구 청산리 백운평ㆍ천수평ㆍ완루구 골짜기) "북로군정서(김좌진)ㆍ대한독립군(홍범도)ㆍ군무도독부군(최진동)ㆍ신민단" 등이 주축으로 활약한 "만주 독립군 연합부대"가 함께 싸워, "일본군"을 격멸

 1921(53세): "러시아 자유시"에서 "소련"의 해산 명령을 계기로, "독립군" 조직 간에 분열이 발생하여 동족상잔(자유시 참변)ㆍ이후 "대한독립군"은 "러시아" 적군 소속으로 편입되어, "이르쿠츠크"로 이동  1937(69세):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

홍범도2

2. 1937.10: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

고려인의 강제 이주는 소비에트 연방 내의 "고려인 이주"가 목표였다. 1926년에 고안되어, 1930~1937년까지 소련에 의해 시행된 1번째 민족 이주정책이었다.  1937.10월, 소련 극동지방에 사는 거의 모든 고려인(171,781명)이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되었다. 

구소련 스탈린 치하에서 고려인 20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고, 이 과정에서 25,000여명이 숨졌다.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신간회 사건 등으로 연해주(프리모르스키 지구,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하여 활동한다.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에 조선 사람들을 다 없애라"고 지시하여,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다. 강제 이주하기 전, 이 정책에 저항할 만한 독립운동 지도자들 약 2,500명 정도를 처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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