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곽 (遊廓)ㆍ홍등가 (紅燈街)ㆍ집창촌 (集娼村)ㆍ윤락가 (淪落街)ㆍ창녀촌 (娼女村)ㆍ사창가 (私娼街)ㆍ공창가 (公娼街)" 등은 각 단어별로 뜻이 조금씩 다르다.
1. 유곽(遊廓)ㆍ홍등가(紅燈街)ㆍ윤락가(淪落街)ㆍ집창촌(集娼村)ㆍ창녀촌(娼女村)ㆍ사창가(私娼街)ㆍ공창가(公娼街)
• 유곽 (遊廓) : 공창들을 집창(集娼) 방식에 의해, 일정구역 내에 집단적으로 거주시키던 장소
• 홍등가 (紅燈街) : 홍등은 "붉은 등"이 켜져 있는 거리라는 뜻인데, 붉은 불빛 아래에서는 특히 사람이 생기 있고 예쁘게 보이기 때문에 유곽이 생긴 이후로 사창가에는 "붉은 등"을 밝혀놓았다.
• 집창촌 (集娼村) : 매춘이 이루어지는 거리. 성매매를 할 수 있는 업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말한다.
주로 붉은 등을 켜고 영업해서 홍등가(紅燈街), 사창가(私娼街)라고 부르며 속어로는 빡촌이나 창녀촌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정육점"이란 은어도 있다. 둘 다 붉은 불을 켜 놓고 무언가를 파는 것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2. 일본 유곽 (遊廓ㆍBrothel)
158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1930년ㆍ511개 유곽ㆍ5만 여 명의 공창→ 1956년 폐지ㆍ주위를 도랑이나 울타리로 에워싸고, 출입구를 1곳으로 제한하여,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한 경우가 많았던 것에서 비롯한다. "유곽"이란 단어는 본래 일본어로서 "유카쿠(遊廓)"가 원 발음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성 판매 여성의 등록과 성병 검진, 거주 제한을 중심으로 한 근대 공창제가 시행되면서 "에도시대"의 유곽은 근대 일본의 "대좌부 (貸座敷)" 설정 지역으로 개편되었다. 동시에 "유녀(遊女)"는 "창기(娼妓)"로 명칭이 바뀌었다
일본에 "유곽"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 그는 1585년 "오사카(大阪)의 게이세이초(傾城町)를 유곽으로 공인했으며, 다음해에는 "교토(京都)에도 유곽을 허가했다. 이를 이어받은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 시대"에는 25개의 유곽이 있었으며, 특히 "에도(江戶)의 "요시와라(吉原)에는 2,000명이 넘는 공창과 다수의 고용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 "교토의 시마바라(島原)ㆍ오사카의 심마치(新町)" 등도 유명했는데, 이들 유곽은 일본의 문학작품과 "우키요에(浮世繪)"의 창작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메이지(明治) 정부" 하에서도 유곽은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계속 존속했는데, 1930년에는 511개의 유곽에 50,000여 명의 공창이 있었다.
그러나 1956년 국회에서 통과된 매춘방지법이 1958년 4월에 발효되면서 유곽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의 유곽은 단순한 매춘지대에 불과하지만, "에도시대(江戶時代)"의 유곽은 연극과 함께 오락의 2대 기관이었으며, "연극ㆍ사미센(三味線)음악ㆍ문학ㆍ회화"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당시 유곽에는 "무사ㆍ관리ㆍ호상" 등이 출입했으며, "유녀(遊女)"들에게도 높은 교양을 요구했는데 "유녀"의 최고지위인 "타유(太夫)"는 용모보다도 기예와 지식이 자격요건으로 더 중요시되었다.
"유녀"와의 술자리에는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가 준비되고, 고대의 시가가 암송되는 등 일본의 유곽은 중세의 귀족적 고전문화를 계승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3. 한국 유곽 : 1902년ㆍ부산→ 1947년 폐지
한국에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함께, 1902년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역에 "유곽"이 처음 생기면서 "인천ㆍ원산ㆍ서울" 등으로 퍼져나갔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전국의 도시에 유곽이 성행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와 같은 문화적 기능은 전혀 없었으며, 단지 창녀를 모아놓은 "집창 구역"에 불과했다.
한국의 유곽은 1947.10월 "미군정청"의 공포한 "공창폐지령"에 따라서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1948년 수립된 정부도 매춘을 금지했으나, "역 앞ㆍ옛 유곽터ㆍ기지촌" 등에서 사창(私娼)이 생겨났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인, 1953년부터 크게 늘어났다. 과거에 일본 제국이 남기고 간 "유곽"의 뒤를 이은 "미군 상대 기지촌" 등으로 출발해서 급격한 경제성장과 상대적으로 쫓아가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사회의식의 오묘한 밸런스의 수혜를 받아서 엄청나게 성업하였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안마방"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고, "오피스텔ㆍ조건 만남" 등 성매매 루트가 다양해지면서 급격히 몰락하였다.
4. 집장촌 위치
① 서울 (사라진 곳) : 서울역 건너편 (양동)ㆍ청량리 588ㆍ용산역 건너편ㆍ화양동ㆍ신림동ㆍ충무로 ㆍ구 신촌 시외버스터미널 뒷편
• 종삼 (종로3가) : 집창촌의 원조
파고다공원(탑골공원)낙원동 종로5가까지 넓게 퍼졌다. 동서로 1km, 남북으로 200m에 달했다. 종삼은 문학작품의 단골소재였다. "최일남"이 "소설문학(1983.05월호)"에 실은 단편 "서울의 초상"에는 당시 종삼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1968.09.26.일 오후 세운상가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가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골목에서 한 윤락녀로부터 "아저씨, 놀다가요"라며, 소매를 잡혔다. 김 시장은 즉시 종로구청장실로 가서, 시 관계자들과 경찰간부 등을 긴급소집, "종삼 소통"을 위한 "나비(사창가를 찾는 사람) 작전"을 세웠다.
• 미아리 텍사스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있다. 다른 집창촌과 달리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가게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 천호역
천호역 5번 출구로 나와 현대백화점 천호점, 이마트 천호점 뒷골목으로 가면 2001아울렛 천호점이 나오는데 그 바로 뒷편에 있다. 정확히는 2001아울렛 천호점 바로 뒷편과 동서울시장 사이가 집창촌이다.
• 영등포역
수도권 전철 1호선 영등포역 지하상가 2번 출구로 나와 왼쪽 골목길로 진입하면,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및 쇼핑몰 타임 스퀘어 바로 앞에 집창촌 거리가 있다. 신기한 것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파출소가 있고, 쇼핑몰, 역사 바로 앞이라는 노골적인 위치임에도 대놓고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지역은 여전히 상기한 "휘파리"가 아예 텐트를 쳐 놓고,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 이태원
이태원 소방서 뒷쪽으로 조금 올라가보면, "야고만두"라는 가게가 나오는데, 그 옆 골목에 소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정확히는 소방서 위로 올라가다가 가장 먼저 나오는 옆 골목이다. 이른바 후커 힐(Hooker Hill)이라 부르는 곳. 과거엔 기지촌들의 업소들처럼 주한미군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던 업소들이었으나 지금은 좀 변한 듯하다.
외국인들이 많은 특성상 외국인 여성들이 많이 있고 또한 트랜스젠더도 많은 이태원 특성상 트랜스젠더들도 많으며, 아예 트랜스젠더 전용 업소도 있는데다, 이 동네는 유리방이 아닌 "주점 형태"로 되어 있다.
• 북창동
서울시청 앞 프라자호텔 뒤편에 위치해 있다. 수십 개의 룸살롱과 단란주점이 밀집한 곳으로, 일본ㆍ아시아 각국의 언론에 소개될 만큼 유명해 "관광특구"로 지정돼 있다. 단순한 "유흥가"로서 "관광특구"이다.
② 부산 (사라진 곳) : 시민공원 자리ㆍ감전동ㆍ부전역 300번지ㆍ범전동 300번지
• 완월동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 1번 출구" 또는 버스 7ㆍ9ㆍ16ㆍ17ㆍ61ㆍ161번을 타고 "충무동 교차로에서 내려, "송도윗 길", 즉 "천마로" 방향으로 들어오면 그곳이 바로 "완월동"이다. 정확히는 "천마로 205번 길ㆍ201번 길" 쪽이다. 동네 이름 자체가 부산지역 집창촌의 대명사격으로 사용되면서 동네 인식이 나빠지자 공식 행정구역명을 "충무동"으로 개명해, "충무동"이랑 통합되어, 행정상 의미로는 "충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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