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妓生ㆍ기녀(妓女))"는 춤ㆍ노래ㆍ풍류 등으로 "주연석ㆍ유흥장"의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관기(官妓)ㆍ민기(民妓)ㆍ약방기생ㆍ상방기생" 등 "예기(藝妓)"의 총칭이다. "천인 신분"이었지만, 춤ㆍ노래ㆍ시(詩) 등에 능한 "예인(藝人)"이었으며, 대표적인 기녀로는 "황진이"가 있다.
1. 성호사설의 기술
"성호 이익 (星湖 李瀷ㆍ1681~1763ㆍ82세ㆍ조선 영조 때 남인 실학자)"는 저서 "성호사설 (星湖僿說ㆍ문답집을 엮은 저술)"에서 "기생이 양수척(揚水尺)에서 비롯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양수척"은 키나, 고리짝을 만들어 팔던 "유기장(柳器匠)"을 말한다. 이들은 "고려"가 "후백제"를 정복할 때, 가장 다스리기 어려웠던 집단이었다. 이들 가운데,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뽑아, 가무를 가르쳐, "기생을 만들었다"고 한다.
2. 기생의 역사
① 고대 시대
고대 제정일치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무녀"가 "정교(正敎)"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기생"으로 전락했다는 견해도 있다.
② 삼국 시대
지방에서 일어난 "고구려"가 다른 여러 부락의 부족을 정벌하여 자리 잡아갈 때, "피정복 부락"의 부녀자가 "유녀(遊女)"로 전락한 것이 "기녀의 시초"라고 한다. "고구려 벽화"에 남아 있는 "무용도"는 이러한 "유녀"를 시사해 주고 있다. "백제"에서는 "부여성"을 방어하는 군단이 배치되었던 곳에 "꽃쟁취라는 유녀가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는 "화랑제도와 원화(源花)"에서 기녀의 근원을 찾아 볼 수 있다.
"화랑"은 처음에 "원화(源花)"라 하여, "남모(南毛)와 준정(俊貞)" 두 여자를 택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300여 명의 무리를 조직했으나, 이들이 서로 질투하는 폐단이 생겨나 이를 폐지하고, 그 대신 귀족 출신의 청소년 중에서 얼굴이 아름답고, 품행이 바른 남자를 뽑아, "단장"으로 삼았다. 이들 "원화"는 "기생"과 같은 것이고, "원화제도"가 실시될 때에는 "매춘 풍속이 있었다."는 설이다.
③ 고려 시대 : 교방ㆍ지방 관청ㆍ사기(私妓)
이들은 궁중연회, 외교사절의 접대를 위한 연회와 팔관회, 연등회 같은 국가적 의식에 참여하기도 했다. "고려 시대"의 기녀는 "교방ㆍ지방 관청"에 속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시대가 흐를수록 개인이 거느린 "사기(私妓)"도 많이 생겼다.
"고려 시대"에 오면, "기녀"의 신분이 확실해진다. "기생"은 대물림이었다. "기생"은 노비와 마찬가지로 한번 "기적(妓籍)"에 오르면, "천민"이라는 신분적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생ㆍ양반" 사이에 태어난 경우일지라도,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에 따라, "아들은 노비ㆍ딸은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외로 "기생"이 "양민"이 되는 경우는 있었다. "속신(贖身)"이라 하여, 양민 부자나 양반의 소실이 되면, 재물로 그 대가를 치러주고, "천민 신분"을 벗어날 수 있었다. 병들어 제구실을 못하거나, "퇴기"가 되었을 때, 딸이나 조카딸을 대신 "기방"에 들여 놓아야만 했다.
"고려 시대"에는 "기생"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로 "교방"이 있었다. "중국 당나라" 제도를 받아들여, "기생들"이 노래와 춤을 익히도록 설치한 것이다. 이들이 국문학사에 끼친 영향 중 가장 큰 것은, "고려 가요의 전승"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짙은 정한의 "고려 가요"는 대부분 그들의 작품으로 보여 진다.
④ 조선 시대 : 관기(官妓) - 경기(京妓ㆍ서울 거주하는 기녀)ㆍ지방기
"관청"에 속한 기생은 "서울"에 거주하는 "경기(京妓)"와 지방에 거주하는 "지방기"로 나누어졌다. "조선 시대"에 "경기(京妓ㆍ서울 거주하는 기녀)"는 "장악원"에 소속되어, 15세부터 음률을 익히고 춤을 배웠다. 교육은 엄격하였는데, 수시로 실력을 점검하여, 연주가 신통찮으면 종아리를 맞았고, 소질이 없다 싶으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개인적으로 재능이 있으면, 글씨ㆍ그림도 공부했다.
"기녀들"의 철저한 교육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우리의 전통가락과 춤이 전수될 수 있었다. "기생의 길"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일생이 마냥 고달프고 그늘진 것만은 아니어서, "명기"로서 이름을 남긴 기녀들도 많다.
⑤ 일제 시기 : 권번(券番)ㆍ건번(檢番)ㆍ권반(券班)
한말의 "기생학교ㆍ기생조합"이 "권번(券番)"으로 바뀌었다. "권번"은 "서울ㆍ평양ㆍ대구ㆍ부산" 등 대도시에 있었다.
입학생들에게 "교양ㆍ예절ㆍ일본어 학습"을 시켜, "청루"에 내보냈다. 일부 기생들은 "권번의 부당한 화대 착취"에 대항하여, 동맹파업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최소한 자기를 지키는 자존심이 있었다. 또한, 1919년 "3ㆍ1운동" 때, "기생조합 소속 기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참여하여 절개를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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