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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기독교 : 십자가 형 (Crucifixion)ㆍ나자렛 예수

by 당대 제일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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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형 (Crucifixion)"은 로마 제국 시대에서 법정 최고형으로 "치욕ㆍ고통"의 상징이었다. 고대 "로마시대"에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운 "검투사(Gladiator) 노예"였던 "스파르타쿠스 (SpartacusㆍBC 109~ 71ㆍ38세)"도 "십자가 형 "으로 죽었다.

 

1. 십자가 형 (Crucifixion)ㆍ나자렛 예수

"로마 제국 시대" 법정 최고형인 "십자가 형"은 "치욕ㆍ고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십자가는 "희망ㆍ신앙"의 상징이 되기에 이른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ㆍ십자가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극도의 고통을 주면서도, 가능하면 서서히 죽게끔 만들어, 죽음에 이르는 공포의 과정을 극대화 시켜 느끼게 하는 무서운 형벌이 바로 "십자가형"이었다.

커다란 대못이 손발의 살뼈를 뚫고 들어와, 십자나무에 박히게 되고, 그때부터 출혈감염이 작되어 온몸의 힘이 서서히 빠지면서 고열목마름 속에 매우 고통스럽게 죽어가게끔 하는 무서운 형벌이었던 것이다.

십자가1

사람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힌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두기도 하고, 때로는 하루 이상의 시간이 걸려 죽음에 도달하기도 했다보통의 성인 남자는 24시간 이내에 사망하는데, 개인의 체력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2-3일까지 버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십자가2

그래서 "십자가형""로마제국"에서 반란항명과도 같은 "국가반역죄"를 저지른 대역죄인들, 혹은 매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노예들에게만 주어지던 형벌이었다.

"십자가형""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Magnus재위 306~337)"가 이를 폐지하기 전까지 계속 행해졌던 악명 높은 사형제도였던 것이다이는 당시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티나"에서도 시행되었고, "예수" 역시 이러한 "십자가 형벌"로 처형되었다.

고발된 "죽을 죄목의 내용""스스로 메시아라고 함으로써 신을 모독하였다"는 것과 "유다인의 임금"이라고 자처하며 정치적 선동을 함으로써, "로마 황제에게 반역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빌라도(로마제국 총독)" "예수"를 풀어 줄 방도를 찾다가 실패했는데, 유다인들이 다음과 같이 "반역죄"를 암시하며, "사형"을 종용했기 때문이었다"그 사람을 풀어 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요한복음 19,12)

 

2. 스파르타쿠스 (SpartacusBC 109~ 7138)

고대 "로마시대"에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운 "검투사(Gladiator) 노예".

"트라키아(, 그리스 북부~불가리아에 걸친 지역당시에는 그리스와는 구분되어 바르바로이로 불리던 문화권)" 출신"그리스 스파르타"와는 별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불가리아인"들은 3대 조상을 "트라키아인남 슬라브족불가르족"으로 보기에, "트라키아" 출신인 "스파르타쿠스"를 자국의 영웅으로 여긴다.

비참한 운명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 노예 검투사들의 지도자가 바로 "스파르타쿠스"였다.

그들은 전투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며, 많은 다른 노예들을 규합하여 큰 세력으로 성장해나갔고, "로마제국"은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게 된다결국 최후의 전투에서 패하여 그들의 반란은 진압되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체포되었다.

반란을 진압한 이는,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BC 100~44)폼페이우스(PompeiusBC 106~48)" 함께 "로마제국 1차 삼두정치"를 펼친 것으로 유명한 "크라수스(CrassusBC 115~53)장군"이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 진압군"과의 마지막 전투 속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살아남아 체포된 그의 추종자들 6,000여 명은 모두 실제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이탈리아 반도" 동남단의 항구도시 "브린디시(Brindisi)"에서 시작해 "나폴리(Napoli)" 근처의 고대 도시 "카푸아(Capua)"를 거쳐 "로마"로 통하는 "아피아 가도(Via Appia)"의 길가에 6,000기가 넘는 십자가들이 세워지게 되었고, 거기에는 "십자가형"을 당한 노예들의 주검들이 매달리게 되었다.

그들을 진압한 "크라수스 장군"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주검들을 몇 년이고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그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로마제국"을 거역한 반란자들의 운명이 얼마나 비참하게 끝나는지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크라수스""아피아 가도"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노예들이 오랜 기간 고통받다 죽는 모습을 다른 노예들이 보고 반란은 생각도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채찍질을 하지 않고 매달아버렸다.

그러나 반란 노예들은 놀랍게도 "십자가" 위에서도 의연했으며, 심지어 매달린 채로 "로마군"을 조롱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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