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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ㆍ불가사의 (7대)ㆍ로마ㆍ신화

고대 로마 ② 황후 : 메살리나 (타락한 성의 상징ㆍ17(20)~48)

by 당대 제일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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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살리나 (Valeria Messalinaㆍ17(20)~48)"는 로마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3번째 황후로, 과도한 허영심과 물욕으로, 마음에 드는 재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었으며, 지나친 성욕으로 불륜을 저지르는가 하면, 밤에 몰래 궁을 빠져 나와, "매음굴의 사창가"에서 몸을 팔아 쾌락을 즐겼다. 

 

1. 메살리나 (Valeria Messalinaㆍ17(20)~48ㆍ향년 31(28)세ㆍ재위 41~48)

① 로마의 황후ㆍ로마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3번째 아내딸 : 옥타비아 (Octavia)

로마의 명문가 귀족 출신으로, 16세에 50세의 즉위 전의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하여, "옥타비아 (Octavia, 네로 황제의 아내)"와 "브리타니쿠스(Britainnicus)"를 낳았다.

② 고대 로마의 "타락한 성의 상징" : 방탕한 성생활 (로마 1개 군단 상대 가능)

고대 로마시대의 "타락한 성의 상징"으로 허영심ㆍ물욕ㆍ성욕의 화신이다.  현대 이탈리아어로 "메살리나"라는 이름은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아무 남자와 동침하는 몸가짐이 헤픈 여자"를 의미하고 있다. 

③ 측근과 함께 남편을 선동하여, "반대파 원로원 의원"을 처형하게 하고, 공포정치로 몰고 가는 권력을 행사하였다.

과도한 허영심과 물욕으로, 마음에 드는 재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었으며, 지나친 성욕으로 불륜을 저지르는가 하면, 밤에 몰래 궁을 빠져 나와, "매음굴의 사창가"에서 몸을 팔아 쾌락을 즐겼다.  이후 "황실 의사이며, 원로원 의원"인 "집정관 가이우스 실리우스 (Caius Silius)"와 사랑에 빠져, 황제가 없는 틈을 타 궁궐 내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기행을 일삼기도 하였다.  이 일로 로마인들의 거센 항의가 일어나자, 황제는 "실리우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고, "메살리나"의 간청으로 처벌이 지연되자, 황제의 측근인 "나르키소스 (Narcissus)"는 "루쿨루스 별장"에 숨은 그녀를 살해하였다.

2. 클라우디우스 (Claudius재위 41~54ㆍ4대황제ㆍ아우구스투스 양손자)

"클라우디우스"는 어릴 적부터 황가(皇家)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좌우가 비틀린 작은 키에 다리를 질질 끌며, 건들건들 걸었으며, 말까지 더듬었고, 병약했다.  반면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 "칼리굴라"가 황제로 즉위한 후, 원로원에 의해 "칼리굴라"와 함께 "집정관"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41.01.24일 "칼리굴라"가 암살되면서다.  겁에 질린 채 궁정 안에서 벌벌 떨고 있던 그를 근위대장인 "카이레아"가 연행하다시피 끌고 가, 01.25일 황제로 옹립했고, 재임시절에는 훌륭한 정치력을 보여줬다.

"국세조사"를 통해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반로마" 저항이 극렬했던 유대의 통치문제 등을 해결했으며, 능력이 있는 "해방노예"를 등용해 정무를 보좌하게 했다.  서기 54.10.12일, 로마 제국의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사망한다.  "독버섯"에 중독돼 사망했다고 하지만, 4번째 아내인 "소(小) 아그리피나"에게 암살됐다는 게 정설이다.

※ 대(大) 아그리피나 : 칼리굴라 (율리우스 카이사르ㆍ3대 황제)의 어머니  /  소(小) 아그리피나 : 네로 (루키우스ㆍ5대 황제)의 어머니ㆍ칼리굴라의 여동생ㆍ칼리굴라와 성관계

3. 클라우디우스 (4대)네로 (5대)의 관계

네로 (루키우스ㆍ재위 54~68) : 로마 5대 황제ㆍ아내 : 옥타비아(메살리나 황후의 딸)네로의 엄마 :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4번째 부인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한다)

"아그리피나"는 전 남편 사이의 아들인 "네로"를 "로마 황제"로 만들기 위해,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먹을 "버섯 요리"에, 독살 전문가 "로쿠스타"의 독약을 넣어 암살에 성공했다.  "클라우디우스"는 그를 무너뜨린 것은 욕심 많은 아내들이었다.  클라우디우스가 50세 때, 16세의 어린 나이로 그의 3번째 아내가 된 "메살리나"는 "옥타비아(네로 황제의 정실)"를 낳았지만, 과도한 허영심과 성욕으로 물의를 빚었다.  전대미문의 성적 방종에 빠진 "메살리나"는 심지어 "황실 의사이며, 원로원 의원"인 "집정관 가이우스 실리우스(Caius Silius)"와 궁궐 내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기행을 일삼다가, 황제의 측근인 "나르키소스(Narcissus)"에게 "루쿨루스 별장"에서 살해되었다.

이후 원로원과 시민들의 강요에 의해, "클라우디우스"는 형인 "게르마니쿠스"와 "대(大) 아그리피나"의 장녀인 "율리아 아그리피나"와 혼인하는데, "소(小) 아그리피나"는 정치적 야심이 큰 여자였다.  자신의 핏줄인 "네로"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기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했다. 

"네로의 성인식"을 14세에 치루고, "예정 집정관" 권리를 부여했으며, "황태자" 칭호를 요구해, 황제의 친아들인 "브리타니쿠스"의 존재감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후계자 승계 작업"이 마무리돼가던 54년, 마침내 "클라우디우스"를 없애고, "네로"를 황제에 즉위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그리피나"의 마지막은 불운했는데, 포악한 친아들 "네로"의 명령을 받은 노예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됐기 때문이다.

황제가 된 "네로"는 자신의 취미, 애인과의 관계에까지 간섭하는 "아그리피나"에게 질렸다고 한다.  일설에는 자신의 세력을 유지할 수단을 거의 잃게 된 "아그리피나"가 마침내 자신의 육체로 "네로"를 유혹했지만, 결국 비정상적인 관계에 두려움을 느낀 "네로"가 "아그리피나"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고도 한다.  일설에는 "네로"의 "애첩"이었던 "포파이아"의 입김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그리피나"가 살아있는 한, "네로"가 "옥타비아"와 헤어지고, 자신이 "황후"로 맞아 들여질 가능성이 없음을 잘 알았던 "포파이아"가 "네로"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4. 소(小) 아그리피나 : 네로 (루키우스ㆍ5대 황제)의 어머니ㆍ칼리굴라의 여동생ㆍ칼리굴라와 성관계

역사에는 "근친상간ㆍ간음ㆍ권력주의자ㆍ잔인함" 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1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의 증손으로 태어났고, 3대 황제 "칼리굴라"의 여동생이었다.  대(大) 아그리피나 : 칼리굴라 (율리우스 카이사르ㆍ3대 황제)의 어머니

첫 번째 남편은 로마에서 악명으로 이름을 떨치던 군사지휘관 "도미티우스"였다.

성격이 포악하고 비열했던 그는 의외로 능력이 출중하여,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고 영웅으로 불리며,군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지만, 황가의 피가 흐르던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던 당시 2대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결국은 영웅에서 도망자로 전락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로인해 "아그리피나"는 "도미티우스"의 씨앗인 아들 "네로(Nero)"만을 가진 채 과부가 되었다.  오빠인 "칼리굴라"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뒤를 이어, "로마 황제"로 등극하고, 15살 때에 "칼리굴라"에 의해 강간을 당하고, 남매지간끼리 "근친상간"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녀는 정욕과 권력욕이 넘쳐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오빠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칼리굴라"의 동성애 파트너였던 "레피두스"를 끌어들여, "칼리굴라"를 전복시키고, 모든 권력을 가지길 원했지만 결국에는 탄로나, "레피두스"는 처형당하고, 그녀는 로마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 취급했던 "칼리굴라"는 결국 참수를 당하고, 그의 뒤를 이어 "칼리굴라"의 숙부인 "클라우디우스"가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클라우디우스"는 어렸을 때부터 장애가 있었고, 멍청하기로 유명해서, 전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칼리굴라"의 폭정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여, 운 좋게 황제로 등극하게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클라우디우스"로 인해, "아그리피나"는 다시한번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②  "클라우디우스"의 특별사면으로 로마로 다시 돌아오게 된 그녀는 대부호 "크리스푸스"와 2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대부호이지만 평민 출신인 "크리스푸스"는 상류사회에 발을 딛길 항상 원했었는데, 미인에다가 황가의 자손이었던 그녀는 그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여자였다.  "아그리피나"의 입장에서도 다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돌아가서, 황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크리스푸스"가 꼭 필요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결혼이었기에, 순탄한 결혼생활이 진행되었는데, "크리스푸스"의 자금으로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푸스"는 사망하게 되는데, 기록에는 "자연사"라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까지 많은 역사가들은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을 하고 있다.

당시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왕후 메살리나"는 멍청한 "클라우디우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시리우스"와 사랑에 빠졌다가, "루쿨루스 별장"에서 살해되었다.  그로인해 비어있던 "왕후"자리를 "아그리피나"의 뛰어난 정치력과 음모를 통해 그녀가 차지하게 된다.  서기 49년, 로마제국의 왕후로 등극한 그녀는 바보인 "황제 클라우디우스"를 이용해,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의 양자"로 받아들이게 하고, "황제의 딸"이었던 "옥타비아"와 결혼을 시키게 된다.  결국 "네로"는 "로마제국의 계승자"로 정해지게 되고,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결국 이용만 당한 채, 그녀에 의해 독살 당하게 되고, "네로"는 "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③  "네로"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태후"가 된 "아그리피나"는 "섭정정치"를 시작했다.

그녀는 남자를 학대하는 것을 통해, 성적 만족감을 느끼는 변태였는데, "황태후"가 되면서 포악함은 더 커져만 갔다.  "형락궁"이라는 형장을 만들어서, 자신에게 반하는 관리들을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에 이르게 잡아들여서 가혹한 행위를 하기를 즐겼다.  시각과 청각적 자극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그녀가 개발한 고문기술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했다고 한다.  그녀의 42살 생일잔치에서는 200명의 남자를 잡아들여, 하루 종일 자신만의 세계에 빠졌기도 했다.

이러한 엄마 밑에서 자랐던 "네로"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여,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이름뿐인 "황제"의 자리에 앉아, 기계처럼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고, 가출을 시도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네로"는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원망하기 시작했고, 그 모든 원인을 자신의 엄마인 "아그리피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끊임없이 반목하던 "네로"는 결국 "엄마"를 죽이기로 결심했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아그리피나"는 쉽게 죽어주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시도로 결국에 그녀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아들 "네로"의 명령을 받은 노예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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