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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대ㆍ불가사의 (7대)ㆍ로마ㆍ신화

고대 그리스 ② 델포이 신탁 (Delphoe)ㆍ퓌티아ㆍ피티아

by 당대 제일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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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 (Delphoe)"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독수리 2마리를 각각 동쪽ㆍ서쪽에 놓아주면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날아가게 했더니 2마리가 "델포이"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 지점은 "돌멩이"로 표시되어 있고, 그 돌을 "옴팔로스"라 했으며 그 주위에 신전을 지었다.

 

1. 델포이 (Delphoe) :  그리스 중부의 포키스 지방에 위치

코린트 만에서 약 9.65㎞쯤 떨어진 파르나소스 산의 험준한 단애(斷崖) 중턱에 있다.  "델포이"는 "인보동맹"에서 중심역할을 했다.  이무렵 "델포이 신탁소"의 명성은 절정에 이르러, 사사로운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델포이 신탁소"의 조언을 청했다.  "델포이 유적지"에는 19C말까지 "카스트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러다가 1890년 마을이 가까운 지역으로 옮겨지고, 이곳은 "델포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2. 델포이 신탁

고대 그리스 도시인 "델포이"에 있던 "아폴론의 성소"에서 "아폴론"이 내리던 예언을 지칭한다. "신탁 (oracleㆍoraculum(라틴어)" 자체뿐만 아니라 신탁을 받아 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델포이의 신탁"을 받아 전하던 여사제를 "피티아ㆍ퓌티아(헬라스어)"라고 부른다. "퓌티아"라는 명칭은 "아폴론"에게 죽은 괴물 뱀의 이름인 "퓌톤"으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다. 이 뱀은 "아폴론 성소" 자리에 있던 동굴에 은거하면서, "파르나수스 산" 주변 지역 주민들을 두렵게 했다. 한편 "델포이 시"의 이름이 "아르카이크 시대"에는 "퓌토"라고 불렸으므로, "퓌티아"란 명칭은 이 옛 지명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3. 퓌티아의 선택역할

"신탁"을 구하는 많은 청원자들에게 응하기 위해서, "델포이 성소"에는 3명의 "퓌티아", 즉 2명의 "정식 퓌티아"와 1명의 "보조 퓌티아"가 동시에 그 직을 수행하였다. "퓌티아"는 역사적으로 "고대 지중해"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 종교인이었다. "퓌티아"의 경력에 대해서는 자유ㆍ보상이 공적ㆍ사적으로 제공되었다. "퓌티아"는 "델포이의 사제들"에 의해서 신중하게 선택되었는데, 이 사제들은 "퓌티아"가 받은 신탁을 정리하고 해석하여 전달하는 자들이었다.

"퓌티아"는 합법적인 출생자여야 했으며, 검소한 양육 속에 자라나서 그것이 몸에 배어 있어야 했다. 처녀이거나 혹은 적어도 임명된 뒤에는 "신의 배우자"로서 독신ㆍ정절을 유지해야 했다. 사제들은 가난한 집에서 자라난 여자들 중에서 "퓌티아"를 구했는데, 이는 "퓌티아"가 신이 말하는 대로 따라서 말할 줄 아는 것 외에는 세상만사에 대해 무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르카이크 시대"에는 "순결의 상징"으로서 젊은 처녀가 "퓌티아"로 뽑히는 전통이 세워졌으나, 이 기준은 점차로 폐기되고, 정절의 모델이 되는 한 혼인 여부 및 연령에 관계없이 선택되었다.

당시 "플루타르코스(46~11973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저자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정치가작가)"는 "델포이의 아폴론 사제"였던 "퓌티아 선택"의 규칙을 언급하였다. "퓌티아는 가장 정직하고도 가장 존경받는 가정 출신으로서 그 자신이 아무런 책 잡힐 것이 없는 삶을 살았어야 한다. 그는 예언의 자리를 계승하면서, 어떤 기술이나 또는 그 외의 지식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아야 했다. 그는 오직 처녀의 영혼만을 가지고 신에게로 다가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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