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1898.11 : 만민공동회 ← 황국협회 기습공격
"만민 공동회 (萬民 共同會)"는 1898년, 열강의 이권 침탈에 대항하여, "자주 독립의 수호ㆍ자유 민권의 신장"을 위해 조직ㆍ개최되었던 민중 대회ㆍ민중 운동으로, 1898.12.13일, 마침내 "고종"은 "군대 동원"의 결단으로, "시위대"에 의한 "만민공동회의 해산"을 명하였다."수구파들"은 "시위대"에 술을 먹이고, "만민공동회"를 향하여 진격하게 하였다. "보부상"까지 "시위대" 뒤를 따라, 공격하여 왔다. "만민공동회" 시민들은 "시위대의 총검ㆍ보부상의 몽둥이"에 쫓겨, 해산하였다. 1.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ㆍ관민공동회 (官民共同會)"수구파들"은 "시위대"에 술을 먹이고, "만민공동회"를 향하여 진격하게 하였다. "보부상"까지 "시위대" 뒤를 따라, 공격하여 왔다. "만민공동회" 시민들은..
2022. 10. 5.
사건- 1898.06 : 황국협회 (보부상의 정치ㆍ경제 단체)
"황국협회 (皇國協會)" 창립은 "독립협회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개화파"가 조직한 "독립협회"의 혁신적인 요구에 맞서, "수구파 관료들"의 후원 하에 결성되었기 때문이다. 1898.11월, "황국협회 (정부의 외곽단체)"등의 무고로 "이상재ㆍ남궁억" 등 "독립협회" 간부 17명이 검거 투옥되고, "황국협회"의 사주를 받은 1,000여 명의 "보부상"들이 "독립협회"를 습격했다. "고종"은 칙령으로 "양회 해산"을 명령하였다. 1. 황국협회 (皇國協會)대한제국의 "근왕적 관료들"이 "독립협회"를 견제하기 위해, "보부상들"을 내세워 조직한 정치ㆍ경제 단체, "정부 고관"이 후원하고, "대한제국 황실"에서도 1,000원을 하사했다."발족식"은 "훈련원"에서 거행되어, 정부 측의 전폭적인 지원..
2022.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