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이후, "모스크바 3상회의 협정"에 따라,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미국ㆍ소련"의 의견 대립으로 회담은 결렬되고, 정부 수립 문제는 UN으로 이관되었다. 1947.11월 UN 총회에서는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의 통일안"이 가결되었으나, "소련"의 반대로 남한에서만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1948.05.10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총선거"가 실시되어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마침내 1948.08.15일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였다. < 독립기념관 공식 소개문 >
1. 제1공화국의 문제점
• 현실적 문제 : 건국 초기 혼란, 6ㆍ25전쟁의 전후복구
• 집권당(이승만 중심)은 전후 복구보다는 "장기 집권"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
2. 1945 해방ㆍ미군정기
① 1948 (1대) : 05.10 총선거
• 1948.07.17 : 헌법제정 (제헌헌법): 제헌국회선출 (국회의원은 2년)ㆍ4년 중임제 (미국대통령도 워싱턴ㆍ제퍼슨은 지키고, 루즈벨트는 4선 연임)
• 이승만 대통령 (4선 연임): 1948→ 1952→ 1956→ 1960 ㆍ1919 (위임통치 청원사건)ㆍ1925 (임시정부 대통령 탄핵)
• 1948 : 반민족행위 처벌법
• 1949 : 농지개혁법ㆍ귀속재산처리법
• 1950.05 : (1대) 국회의원 선거 : 독립총성중앙협의회(이승만 지지세력)ㆍ한국 민주당→ 낙선
• 1950.06 : 6ㆍ25전쟁 (1950.06~1953.07)
② 1952 (2대): 1차 개헌→ 발췌개헌→ 국회선출로 가면, 대통령이 불가할 것으로 예상
• 부산(임시수도)에서 야당 국회의원의 통근버스를 헌병대가 크레인으로 끌어냄 → 개헌→ 직선제로 변경하는 발췌개헌(대통령 선거 부분만 발췌해서 변경) 시행
• 1954.05 : (2대) 국회의원 선거 → 부정선거 시작(정치깡패의 등장)→ 이승만의 자유당 대승
• 1954 : 2차 개헌→ 3선 개헌 (사사오입 개헌)ㆍ"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제"를 폐지(3번째 대통령에 출마)ㆍ총통제 도입ㆍ국회의원 수 (203명) x 2/3 ≑ 135.33 (136표 가결)ㆍ무기명 투표 (자유당의 자신감) 135표가 나오자, 부결처리 되려하자, 서울대 수학과 교수가 사사오입이니, 135표가 가결 숫자라며, 통과시킴
③ 1956 (3대): 한국 민주당→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 민주당 : 못 살겠다. 갈아보자.
• 자유당 : 갈아봤자. 더 못산다 → 민주당 : 설마 이보다 더 못 살까?
• 결 과 : 이승만 자존심 손상(500만 표)→ 신익희 추모표(100만) + 조봉암(200만)= 300만 표
• 조봉암 : 나는 선거에 이기고, 개표에 졌다(개표를 믿지 않는다)
• 1958 : 진보당 사건 → 조봉암이 창당 → 조봉암이 대선에 나오는 것 자체가 싫음 → 진보당은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간첩당"이다→ 1959년 조봉암 사형
④ 1960(4대): 조병옥이 병으로 미국에 수술하러 가자, 5월에 하기로 한 선거를 3월로 조정함
이승만이 85세라, 문제 발생하면 "장면"이 정권을 이어 받아, 정권교체가 가능해짐 → 무조건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켜야 함→ 부정선거 발생
• 1960.04.19 : 반공체재 강화→ 자유민주주의 강조→ 실제의 민주주의와 다름→ 중ㆍ고생이 주도
3. 정치적 사건
① 1948.04.03 : 제주 4ㆍ3 사건 (1948.04.03~ 1954.09.21ㆍ30,000명 학살 (당시 제주인구의 10%)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 일본 패망 후 한반도를 통치한 미군정에 의한 친일세력의 재등장과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남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사건
② 1948.10.19 : 여수ㆍ순천 사건 (1948.10.19~27ㆍ3,400여 명 사살)
"전남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 "제주도 4ㆍ3사건" 진압출동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저지하기위해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
③ 1949.06 : (남로당) 국회 프락치사건
1949.03월. 제헌국회 내, "민족자결주의"의 이름 아래, 외국 군대철수안ㆍ남북통일 협상안등 공산당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을 한, 당시 "김약수 (국회부의장)"등 13명을 공산당과 접선했다는 이유로 1949.05월~ 08월까지 3차에 걸쳐 검거한 사건
④ 1950.04 : 대한정치공작대사건 조작
"김성수ㆍ조병옥" 등이 간첩과 접선하여, 정부전복을 꾀하였다는 사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우세가 예견되던 상황 속에서 집권당의 하수인 단체가 정치적 조작극을 꾸며, 당시 제1야당인 "한국민주당"을 붕괴시키려던 정치사건
⑤ 1950.06 : 국민보도연맹 사건 (20만 명 학살)
1949.06월, "좌익계 인물"들을 전향시켜, 별도로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조직되었던 단체로,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정부 주도"로 할당제인 "보도연맹"에 가입되었고, 1950년 6ㆍ25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원"들은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학살되어, "보도연맹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6ㆍ25한국전쟁" 초기, 후퇴 과정에서, 정부ㆍ경찰은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檢束)ㆍ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ㆍ25한국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⑥ 1951.01 : 국민방위군 사건 (12만 명 학살)
한국전쟁 중인 1951.01월 1ㆍ4후퇴 때, "제2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ㆍ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여 착복함으로써, 1950.12~1951.02월 사이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이들 가운데, 아사자ㆍ동사자가 약 9~ 12만여 명에 이르렀던 사건을 말한다.
단지 1달여의 행군 끝에 9만 명이 목숨을 잃고도 아무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던 희대의 사건인 국민방위군 참사는 한국전쟁 기간 중 보도연맹 사건과 더불어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3개월 동안 55억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방위군 고위 간부층"이 착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⑦ 1951.02 : (경남) 거창ㆍ산청ㆍ함양 양민학살사건 (934명 학살)
"경남"에서 공비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국군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이다.
• (경남) 거창 양민학살사건 : 1951.02.09~11일 : 양민 548명
• (경남) 산청ㆍ함양 양민학살사건 : 1951.02.07일 06~18시까지 : 양민 386명
⑧ 1952.05 : 부산 정치 파동
2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재집권하기 위해, "직선제 개헌안"을 강압적으로 통과시키려 한 "이승만 정권"의 폭력행위로 일어난 일련의 사태. 자신의 재선을 확실히 하고, 독재정권 기반을 굳히기 위해, "한국 전쟁" 중에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폭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국회의원을 연행하고 구속한, 일련의 정치적 파행이다.
• 국회해산 요구 : 땃벌떼ㆍ백골단ㆍ민족 자결단 등 정체불명의 단체 동원
⑨ 1952.07 : 계엄령 선포 하에서 "발췌 개헌안"을 통과
"장택상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라회(新羅會)"가 주축이 되어,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정부안과 내각 책임제를 골자로 하는 국회 안을 발췌하고 혼합한, 이른바 "발췌개헌안"을 마련했다.
07.04일, 군경(軍警)들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가운데, 국회의원들은 기립하는 방식으로 투표하여 출석 의원 166명 중 찬성 163표ㆍ반대 0표ㆍ기권 3표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⑩ 1952.06 : 국제구락부 사건
"이시영ㆍ김성수ㆍ장면" 등 81명의 인사가 "부산의 국제구락부"에 모여, 정부 측이 내놓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에 반대하여, "반독재 호헌구국선언"을 꾀한 사건
⑪ 1952.06 : 중석불 사건 (重石弗ㆍ중석불 불하사건ㆍ중석불 파동)
정부가 중석불을 외국에 팔아 벌어들인 달러를 민간 기업체에 불하하여, 밀가루ㆍ비료를 수입하게 하고, 이를 농민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 피해를 입힌 사건
⑫ 1953.10 : 뉴델리 밀회설 (조병옥의 의심)
"신익희"는 05월 "김동성"과 대한민국 대표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에 참석하였다. 10월, "신익희(민주국민당 대표)"가 대관식에 참석하고, "인도 뉴델리"를 순방하던 중, 북한의 "조소앙"을 만나, 영세중립화 음모를 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⑬ 1954.11 : 4사 5입 개헌파동
이승만의 대통령 3선ㆍ자유당 장기 집권을 목적.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자유당이 "사사오입(반올림)"을 내세워, 당시 정족수 미달이었던 헌법안을 통과시킨 "제2차 헌법 개정"에 붙은 별칭이다.
⑭ 1956 : 국방부 원면유출사건
정ㆍ부통령선거의 자금마련을 위해, "미국이 제공한 "국군 월동용 원면" 50만$를 팔아먹은 사건
⑮ 1956.09 : 장면(張勉) 9ㆍ28 저격사건
09.28일에 발생한 공관저격 사태의 배후로 "이기붕"을 지목했고, 1960년 재수사 결과 "이기붕"의 측근들이 개입한 것으로 확인
⑯ 1957.05 : 장충단 집회방해사건
05.25일, 제1공화국 자유당의 독재를 성토하기 위해, "장충단 공원"에서 "조병옥ㆍ장택상ㆍ김두한ㆍ민관식ㆍ전진한" 등 야당의 국민주권옹호 투쟁위원회 주최로 열린 야당 정치인들의 시국강연회를 방해
⑰ 1958.01 : 진보당사건ㆍ조봉암 사형
"양명산(상인)"을 통해, 북한의 정치자금을 건네받았다는 혐의로 연루되어, 평화통일을 정강으로 내세운 "진보당" 간부들을 구속하고,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간첩혐의로 사형
⑱ 1958.12 : 2ㆍ4 정치파동ㆍ보안법 파동
자유당이 "대공 사찰 강화"와 "언론 통제"를 내용으로 하는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300명의 무술경위를 국회의사당에 투입, "자유당" 의원만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사건
⑲ 1960.03 : 3ㆍ15 부정선거
40% 사전투표ㆍ3인조 또는 5인조에 의한 반 공개투표ㆍ유령 유권자의 조작ㆍ기권 강요ㆍ기권자의 대리투표ㆍ내통식 기표소의 설치ㆍ투표함 바꿔치기ㆍ개표 때의 혼표와 환표ㆍ득표수 조작발표 등
⑳ 1960.04 : 4ㆍ19혁명
4ㆍ18 고려대 학생 데모대 습격, 4ㆍ19 데모대 발포 사건 : 폭도 규정
㉑ 기타ㆍ사회적 사건
• 정치깡패 행패 : 이정재ㆍ임화수
• 국회 불온문서사건 조작 : 야당계 인사들을 모함하기 위한 것
• 언론 탄압 : 경향신문 폐간ㆍ동아일보 1개월 정간ㆍ대구매일신문사 습격
• 가짜 "이강석 (李康石)" 사건
• 1955.05 : "박인수 (朴仁秀)" 댄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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