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공화국"은 "제헌 헌법"에 의해, 1948.08.15일 정부가 수립되어, 1960년 "4ㆍ19혁명"이 발생하기 전까지 지속된 공화헌정체제이며, 집권 여당은 "자유당"이다. 남한만의 정부수립은 1946.06.03일 "이승만의 정읍발언"으로 촉발되었고, 1948.02.26일에 이루어진 "UN 소총회의" 결의에 따라, 남한에서만 "5ㆍ10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구성되었다. 07.17일 "국회"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헌법"을 제정하였다. 07.20일 "국회"에서 "대통령 이승만ㆍ부통령 이시영"이 선출되었고, 08.15일 "이승만"은 정부구성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1. 해방이후, 한국 상황
• 1945.08.15 : 일본 패망→ 소련군(사회주의) : 한반도 북쪽에 주둔→ 바로 한국으로 이동 / 미군 : 위기감을 느낀 일본 주둔 미군이 남한으로 이동 (1945.09)ㆍ미군정시대 (1945.09.09~1948.08.15)→ 미국의 남한지역 군사통치 시대
• 미ㆍ소 군정기 시작 (북위 38도선) : 우리민족 스스로 힘이 없어, 독립 쟁취 불가
• 미군정→ 친일파 경찰ㆍ공무원 등용 (1946년 말, 군정경찰 간부 82%가 일제경찰 출신)ㆍ미국의 적은 소련이었다. 소련과의 대치상황의 수습이 중요하고, 친일청산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 1946.03.20 : "미소공동위원회"- 한반도의 임시정부 수립에 관해, 참여할 수 있는 단체의 범위에 대한 논의를 위한 위원회
• 1946.06.03 : 이승만 정읍발언 →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옳다 → 좌익ㆍ우익ㆍ중도파ㆍ민족주의자 반대 → 미국이 소련에게 제안 (UN의 뜻에 따르자) → 소련 반대 → 미국은 단독으로 UN에 질의
• 1947.11.14 : UN 회신 → 즉각적 독립시켜라, UN 감독 하에 남북한 총선거(국회의원) 결의 (문제 : 남북한 인구비례 국회의원 선거 방식시 남한 200석ㆍ북한 100석 → 미국 승리 예상→ 소련 반대)
• 1948.01 : 소련은 UN 한국임시위원단의 방북거부ㆍ임시위원단의 남한 입국 → 미국이 UN에 재질의 (소련이 거부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1948.03.01 : UN 한국임시위원단 답변 : 38선 이남(실시 가능지역)에서만 UN 감시 하에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라 결정 → 38선 이남만의 정부 (이승만의 정읍발언 현실화) → 김구: 단독선거ㆍ단독정부 수립 반대 운동시작
• 1948.04.19~04.23 : 남북조선제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 → 김구ㆍ민족지도자→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남북조선제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 (이념을 넘어서, UN의 안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자) → 합의내용 :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 반대ㆍ우리 민족은 하나다ㆍ미소는 한반도에서 물러가라
• 1948.05.10 : 남한만의 단독선거 (200개 선거구) → 김구ㆍ민족지도자는 불참ㆍ거부 → 세력 상실 → 사회주의자 활동 : 제주도 선거구 3개구 중 2개구 전소 → 투표율 미달로 선거불발 → 198명 선출 (200개 중) → 제주도는 "사회주의자의 섬(빨간 섬)"으로 낙인
① 왜 유독 "제주"에서만 선거구가 불탔나?
• 조선시대 : 유배지로, "광해군(1637)ㆍ김정희" 등 200여 명의 유배 / 가혹한 진상품ㆍ부역으로 고통
• 일제시기 : 일본과 근접거리 → 징용ㆍ징병으로 인적수탈 → 패방 전, 군사기지화 (지정학적 요충지)→ 강제 노역 (1945년 광복시 → 일본군 5만 명이 제주도 주둔) → 해방이후 : 1945.09 "제주도 인민위원회" 창립
2. 해방직후, 정치세력들
① 김구ㆍ대한민국 임시정부
"3ㆍ1운동" 이후, 중궁에서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온 "임시정부" 요인들로, 핵심인물은 "김구"였다. 민주공화제와 균등사회 건설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삼균주의"를 건국방침으로 내세웠다. 해방후, "임시정부" 요인들은 "미 군정"의 압력 때문에, "개인자격"으로 귀국하였고, 당시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② 이승만ㆍ한국 민주당
일제강점기에 "한민당(한국민주당)"은 일제와 타협하며 생활하였던, 지주ㆍ자본가 등이 중심이 된 정당이었다. 다른 독립운동 세력으로부터 "친일파"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가, 탄핵을 받기도 했는데, 명성과 달리, 국내에 조직기반이 없었기에 "한민당"과 손을 잡았다. "한민당"의 위원장은 "김성수"였고, 정치부장은 "장덕수"였다.
③ 중도세력 : 안재홍ㆍ여운형
중도세력은 해방될 때까지, 주로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하였던 사람들로, 일제가 항복하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가장 발빠르게 움직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여운형ㆍ안재홍"이다. 두사람은 일제가 패망하던 날, 바로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건국 준비 활둥을 주도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후에 진주한 "미 군정"은 이들의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④ 조선공산당ㆍ박헌영ㆍ김일성
국내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사회주의자들은 해방직후, "조선공산당"을 만들었다. "박헌영"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국ㆍ소련"에서 공산당과 손잡고, 일본과 싸우던 이들도
귀국하여 공산당에 참가하였다. "소련"의 지원으로 38도선 이북의 주도권을 잡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1945.10월 "조선 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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