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05.10일, "제헌 국회"를 구성할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최초로 "민주적 선거"가 치뤄진다. 총 198명이 당선되었고, 무소속(85명)ㆍ대한독립촉성국민회(55명)ㆍ한국 민주당(29명)ㆍ대동 청년단(12명)ㆍ조선민족청년단(6명)ㆍ대한독립촉성농민총동맹(2명)ㆍ기타 단체 소속(11명)등이다. (200개 선거구ㆍ제주도 2개구는 "제주 4ㆍ3사태"로 선거 연기ㆍ이승만은 "동대문 갑구"에서 단독 출마)
1. 96 / 198명 = 무소속 (85명) + 기타 단체 소속 (11명)
2. 55 / 198명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獨立促成): 1946.02.08 결성
민족주의 정당들로 구성되었던 "국민운동추진" 단체로, 이승만이 지도하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지방단위들)"과 김구의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가 통합ㆍ개편ㆍ발족
① 독립촉성중앙협의회 (독촉)→ 비상 국민회의 : 1945.10.23~1946.01.18
• "이승만"이 설립한 "좌ㆍ우익"을 망라한 "민족통일기관" 형성을 위해 조직된 정치단체
"조선호텔"에서 각 정당 대표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되었고, "독촉 회장"으로 추대된 "이승만"은 "독촉"이 "좌ㆍ우익"을 망라한 남한 내 유일한 정치체가 되어, 자신이 "민족통일전선"의 최고지도자로 부각되기를 의도했다. 그는 "임시정부 지지"를 내세우면서도, "임정이 정부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임정" 귀국 전까지 "독촉"의 조직을 완성하고, "좌익세력"을 "독촉"에 포섭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1945.11.28~12.13일, "이승만"은 자신이 지명한 "전형위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했다.
"여운형"은 전형위원 7명 중 5명이 "한국민주 당원"이라면서 퇴장했고, "인민당ㆍ조선공산당"은 공산당 측 인사는 1명도 없어, "전형위원회"에 불참하면서, 좌파세력은 "독촉"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임정" 세력 역시, "임정 인사들을 독촉에 참여시킨 후, 임정을 해산한다."는 "이승만"의 계획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특별정치위원회"라는 독자적인 조직화 방안을 모색했다. 그의 계획은 "독촉을 주축으로, 비상정치회의를 흡수해서, 임시정부를 수립한다."는 계획이었다. 1946.01.18일, "독촉"은 "비상 국민회의"로 개칭하고, "이승만"에게 최고위원 선출권을 일임했다. "반탁 투쟁"을 "반소ㆍ반공"과 연결시키면서, "임정 세력"을 흡수하고자 한 것이었다. "독촉"은 "좌ㆍ우익 망라ㆍ임정 포섭" 등 처음 계획에는 실패했지만, 최고지도자로서 "이승만을 부각시킨다"는 프로그램은 성공했다.
②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 1945.12.28~1946.02.08
• "김구ㆍ임시정부" 진영 주도로, "신탁통치 반대"를 표방하며, 결성된 대중단체 연대조직
"김구"를 비롯한 "임정 진영"이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신탁통치 반대활동"을 펼치려는 목적에서 결성한 것이다."임정" 측은 "모스크바 3상회의(1945.12.16~27)의 결정에 따라, 한반도에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미소공동위원회"가 한반도의 "신탁통치 안을 협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945.12.28일 긴급국무회의를 열고, 이어서 각 정당ㆍ종교단체ㆍ언론기관 대표들을 초청하여,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위원회"의 구성을 결의하였다.
"위원회"는 "임정 국무위원회"의 지도를 받도록 배치되었고, 그 "장정위원(章程委員) 9인" 모두가 "임정 요인"이었다. 위원장으로 "권동진", 부위원장으로 "안재홍ㆍ김준연"이 추대되었다. "위원회"는 구성 당일, "연합국 4국 원수"에게 "신탁통치 반대 결의문"을 발송하였고, 12개항의 "반탁국민동원 실행방법"을 결의하고, 이행을 전 국민에게 호소하였다. 다음 날인 1945.12.29일 "중앙위원회의"를 열어, "임정"의 즉각적 주권 행사를 건의하였다. 12.31일에는 "전국적 총파업"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3. 29 / 198명 : 한국 민주당 (KDPㆍKorea Democratic Party): 1945.09.16 결성
• 조선민족당ㆍ한국국민당ㆍ고려민주당 → 조선민족당→ 한국민주당
• 참여 : 송진우ㆍ김성수ㆍ장덕수ㆍ조병옥ㆍ윤보선 등
보수주의적ㆍ부르주아적 자유주의 정치 정당의 하나로, "조선민족당ㆍ한국국민당ㆍ고려민주당"등이 합당하여 조직된 정당, "송진우ㆍ김성수ㆍ장덕수ㆍ조병옥ㆍ윤보선" 등이 참여
① 조선민족당 : 1945년, 창당된 민족진영의 보수정당, "조헌영ㆍ조병옥ㆍ여운형"이 설립
• 참여 : 고려민주당 계(원세훈) + 김병로 계(백관수) + 이인 계(조병옥) + 신간회 경성지회 계(조헌영) + 공산주의자로서, 전향을 표명하고 참가한 "김약수" 등
② 한국국민당 : 1935년, "김구" 등이 임시정부를 옹호하기 위해 조직
• 참여 : 김구 중심ㆍ이동녕ㆍ이시영ㆍ엄항섭 등
"조선민족혁명당(김원봉")이 "임시정부의 폐지"를 주장하자, 대항하여 결성. 중국에 있던 독립운동 7개의 단체 중, 공산주의 전선인 "조선민족혁명당ㆍ조선민족해방동맹ㆍ조선민족전위동맹ㆍ조선혁명자연맹"을 제외한, 민족운동 진영의 "한국국민당ㆍ한국독립당ㆍ조선혁명당"만이 "한국독립당"으로 통합하였다.
4.12 /198명 : 대동청년단(大同) 1947.09.21 결성ㆍ대동청년단(대청) + 서북청년단(서청)→ 대한청년단
반공주의 우익 청년단체로, "지청천(池靑天ㆍ상해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관)"이 32개의 청년단체들을 통합ㆍ결성한 청년단체, 1948.12.19일에 "서북청년회"와 함께 "대한청년단"으로 통합
① 서북청년회(西北靑年會)
1946.11월, 월남한 "청년단체 (대한혁신청년회ㆍ함북청년회ㆍ북선청년회(北鮮)ㆍ황해도회청년부ㆍ양호단(養虎團)ㆍ평안청년회(平安))등이 YMCA에서 창단. 중앙집행위원장 (선우기성(鮮于基聖))으로, 대공투쟁의 능률적인 수행을 위해, 좌익세력에 대한 우익세력의 선봉 역할 자처
5. 6 / 198명 : 조선민족청년단 (족청(族靑)): 1946.10.09 결성
• 참여 : 이범석(단장)ㆍ안호상(부단장)ㆍ전국위원- 김활란ㆍ김관식 외 35명
이범석(광복군 육군중장ㆍ국무총리(초대))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청년단체. 민족정신의 전통을 계승하여, 새 나라의 역군으로 청년들을 양성한다는 목적 하에 조직되었다.
6. 2 / 198명 : 대한독립촉성농민총동맹 (농총ㆍ대한농총): 1947.08.31 결성
• 참여 : 이승만(초대 총재)ㆍ김구ㆍ채규항ㆍ김은석 등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산하의 "농민총국"이 분리ㆍ독립되어, 결성된 "우익 농민운동" 조직. "대한농총"은 좌익단체들을 상대로 반공투쟁을 벌였으며, "이승만"은 이 단체를 자신의 정치기반으로 삼아, 결국 정부수립 후, "자유당의 기관단체"로 "어용 집단"으로 변질되었다.
① 대한독립촉성노동총동맹 (대한노총): 1946.03~1960.11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전신이다. 좌파 노동조합"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에 대항하여, 등장한 대한민국 초기의 "우파의 어용 노동조합"이다. 1959.10월, "대한노총"의 비민주성에 반발한 민주화 세력들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국노협)"을 조직하였다.
②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전평ㆍ全評): 1945.11~1948.08
"허성택"에 의해 세워진, 한국의 초기 "노동조합"으로, "남로당ㆍ좌파 계열"의 노동조합. "남ㆍ북"을 통합한 "인민공화국 제창ㆍ신탁통치 찬성운동"으로 "민족주의 진영"으로부터 반발을 샀고, 1946년ㆍ1947년 2차례에 걸쳐, "대한노총(민족주의 노선의 노동조합)"과 전면전에 들어갔으나, 패배ㆍ소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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