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1740

정도전 ④ 건국 : 주요 인물은 누구? (이성계ㆍ최영) "태조 이성계 (太祖ㆍ1335~1408ㆍ재위 1392~1398(6년)ㆍ73세)"는 당시 "신흥 무인"의 대표였고, 고려 말, "급진 사대부"의 수장이었고, 이에 비해 "최영 (崔瑩ㆍ1316년~1388ㆍ72세)"은 고려 정통 귀족가문의 후예였고, 권문세족과 깊이 연관된 "친원파"였다 1. 이성계 - 최영 관계 "이성계"는 당시 "신흥 무인"의 대표였고, 고려 말, "급진사대부"의 수장이었다. 이성계 조상은 본래 "전주"에서 살다가 "강원도"를 거쳐 "함경도 지방"으로 옮겨가 그 지역의 유력자로 성장했다. 그러나 "원나라"가 그 지역을 공격했을 때, "이안사(이성계 고조부)"는 이에 항복했고, 그 후 대대로 "원나라"의 관리를 지냈다. 그러나 "원" 쇠퇴기에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아버.. 2022. 10. 7.
정도전 ③ 관계 : 정몽주ㆍ이방원ㆍ이성계 "정도전 (鄭道傳ㆍ1342~ 398ㆍ56세)"은 "정몽주 (鄭夢周)"와 함께, "조선 주자학 (朱子學)"의 첫머리에 놓이는데, 그는조선 건국을 설계한 기획자이자, "역성혁명 (易姓革命)"을 주도한 혁명가였고, "주자학 (朱子學)"을 통치 원리로 세운 "유학 (儒學)"의 대가였다. 그러나 그는 "조선왕조" 500년 내내, "간신 (奸臣)"으로 낙인찍혀 배척당했고, 조선 건국세력과 대립한 "정몽주"는 뒷날 "조선 주자학 (朱子學)"의 우두머리로 등극한다. 1. 정도전의 개혁ㆍ이방원의 개혁① 정도전의 개혁정도전은 "정치의 근본이 민(民)"이라고 했다. "유교정치"의 원리인 셈이다. 권력이 이곳에서 출발하고, 통치자가 민심(民心)을 잃으면 덕(德)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넘긴다. 그래야만 "이성계"가 국왕.. 2022. 10. 7.
정도전 ② 평가ㆍ경복궁 (근정전ㆍ강녕전) 뜻 "정도전 (鄭道傳ㆍ1342~ 398ㆍ56세)"은 조선 건국 직후부터, "참모" 역할을 버리고, 실질적 "주상의 길"을 걸은 것, "주원장"과의 대결에 집중하느라, "이방원"의 야심을 확실히 견제하지 못한 것들이 건국 6년 만에 그가 허무하게 무너지게 만든 핵심 요인들이었다. 1. 평 가① 역사에서 보기 드문 "참모"였다."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창업했을 뿐만 아니라, 새 왕조의 "건국이념ㆍ대외관계ㆍ경제체제ㆍ정치체제ㆍ사회체제ㆍ종교철학ㆍ도시구조" 등을 거의 혼자 힘으로 설계했다. 그는 중국의 전설적 참모인 "주공단ㆍ장량(장자방)ㆍ주은래(저우언라이)"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어쩌면 이들보다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정도전"처럼 국가의 구도를 전면적으로 설계하지는 못했다. 이들이 더 나은 .. 2022. 10. 7.
정도전 ① 조선의 설계자ㆍ밀본 (密本)ㆍ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鄭道傳ㆍ1342~ 398ㆍ56세)"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격동의 시기에 역사의 중심에서, 새 왕조를 설계한 인물로, "조선의 설계자ㆍ최고의 혁명가"이다. 그러나 자신이 꿈꾸던 "성리학적 이상세계"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끝내는 정적인 "태종(이방원)"의 칼에 단죄되어, 조선 왕조의 끝자락에 가서야, 겨우 신원(伸寃)되는 극단적인 삶을 살았다. 1. 정도전 (鄭道傳ㆍ1342~ 1398ㆍ향년 56세ㆍ호 : 삼봉 (三峰)) 이성계 (1335~1408ㆍ73세)ㆍ정몽주(1337~1392ㆍ55세)ㆍ이방원 (태종ㆍ1367~1422ㆍ55세)조선개국(1392)시, 50세ㆍ고려 말~조선 초 문신ㆍ유학자ㆍ외교관ㆍ정치가ㆍ사상가ㆍ혁명가ㆍ조선 초기 성리학자(性理學者)의 한사람ㆍ유학(儒學)의 대가(大家)ㆍ지방 향.. 2022. 10. 7.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⑤ 유관순 열사가 받은 고문 독립 운동가 "유관순 (柳寬順ㆍ1902~ 1920ㆍ18세)"열사는 검거 당시에 16세였으며, 18세 생일을 맞이하기 3개월 전, "경성부 서대문형무소"에 사망하였다.1. 유관순 (柳寬順ㆍ1902.12.16~1920.09.28ㆍ향년 17세)1916년, "미국인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초등부 3학년"에 편입하고,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하였다. 1919년 3ㆍ1운동에 참여하고, 03.05일의 만세 시위에도 참여하였다."총독부"의 휴교령으로 "천안"으로 내려와, 후속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고,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었으나, "법정모독죄"가 추가되어, 5년형으로 늘어났으며, 교도소.. 2022. 10. 6.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④ 보성사 (독립선언서 인쇄) "보성사(普成社)"는 1919년 3ㆍ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곳이다. "사장 이종일ㆍ공장감독 김홍규ㆍ총무 장효근"이 1919.02.27일 밤에 35,000매를 인쇄하였다. 1919.06.28일 밤에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1. 보성사 (普成社)보성사는 "30평 2층 기와벽돌집"으로 "전동 보성학교" 구내(현재 홰나무가 있는 조계사 경내)에 있었으며, 보성사의 소유주이기도 했던 "천도교 교주" "의암 손병희"의 특명으로, "육당 최남선"이 초안을 집필하고,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넘겨받아,"사장 이종일ㆍ공장감독 김홍규ㆍ총무 장효근"이 1919.02.27일 밤에 35,000매를 인쇄하였다. 일본 측의 형사에게 발각되는 위기도 있었으나, "족보책"이라고 위장하여 위기를 넘겼다.03... 2022. 10. 6.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③ 당시 세계 정세 요약 "일본 메이지 유신ㆍ명치유신(明治維新)ㆍ 1868~1889 "의 과정은 개국ㆍ도쿠가와 막부의 붕괴ㆍ천황 중심 통일국가의 형성과 그에 따른 신정책의 실시로 나누어볼 수 있다. "막부체제"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통일권력의 확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변혁 과정을 총칭한다. 1. 1868~1889 : 일본 메이지 유신ㆍ명치유신(明治維新)ㆍ1912년 메이지 천황사망"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친정형태의 통일국가를 형성시킨 근대 일본의 정치ㆍ사회적 변혁이다. "메이지 유신"의 과정은 개국ㆍ도쿠가와 막부의 붕괴ㆍ천황 중심 통일국가의 형성과 그에 따른 신정책의 실시로 나누어볼 수 있다. "막부체제"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통일권력의 확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변혁 과정을 총칭한다."메이지.. 2022. 10. 6.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② 민족자결주의 (미대통령 우드로 윌슨) "민족자결 (民族自決ㆍSelf- determination)"이란, 각 민족은 그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가져야 하며, 다른 민족의 간섭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서, 원래 유럽 내에서 "오스트리아" 또는 "투르크 제국"의 판도(版圖) 내에 있었던 소수민족이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제창했던 것이다. 1. 민족 자결 (民族自決ㆍSelf- determination)각 민족 집단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귀속ㆍ정치 조직ㆍ정치적 운명을 결정하고, 타민족이나 타국가의 간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집단적 권리를 말한다.※ 토머스 우드로 윌슨 (Thomas Woodrow Wilsonㆍ1856~1924ㆍ68세)미국의 28대 대통령 (1913~1921)ㆍ독실한 장로교도ㆍ역사가ㆍ정치학자ㆍ민족자결주.. 2022. 10. 6.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① 민족 대표 33인 (48인?) "손병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자 계획을 세웠다. 33명의 대표는 1919.03.01일 "태화관 (요릿집)"에서 회동을 가졌으며, "한용운"이 "독립선언서(최남선이 초안 작성)"를 낭독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자진 투옥되었다.  "탑골공원"에서는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서 낭독하였다. 1.  3ㆍ1 독립선언서 (獨立宣言書)"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으며,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로, 1919년 "3ㆍ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1919.02.10일, "최린ㆍ최남선"등이 협의하고,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초안하여 제출하자, "손병희ㆍ오세창ㆍ권동진ㆍ최린" .. 2022. 10. 6.
특수부대 ④ 국군기무사령부 (DSC)ㆍ보안사ㆍ기무사 "국군 기무사령부 (기무사ㆍ보안사ㆍ國軍機務司令部)"는 "국방부" 직할의 수사정보 기관으로,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ㆍ군사 보안ㆍ방첩/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한다. "기무 (機務)"는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ㆍ중요하고 기밀한 정무" 등을 뜻한다. 1. 국군 기무사령부 (기무사ㆍ보안사ㆍ國軍機務司令部ㆍDefense Security CommandㆍDSC)• 임 무 : 군내 군사기밀의 보안/ 관리ㆍ군 내 주요 범죄 수사ㆍ군사 정보/ 정보 보안 및 방첩업무ㆍ군 관련 첩보의 수집/ 작성/ 처리ㆍ정보 작전 방호 태세 및 정보전(情報戰) 지원ㆍ통신 감청 업무ㆍ군사법원법 제44조제2호에 규정된 범죄의 수사에 관한 사항ㆍ정보통신기반 보호법 제8조에 따라 지정된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 중 국방 분야 주요정보통신기반시설의 보호지원•.. 2022. 10. 6.
중앙정보부 ⑤ 10ㆍ26 사태 (1979)ㆍ광주 사태 (1980) "부마항쟁" 당시, "인종주의자 히틀러"를 추종하였던 "차지철(청와대 경호실장ㆍ권력의 2인자ㆍ1934~1979ㆍ45세)은 "크메르 루즈의 폴포트는 백만 명을 죽이고도 살아남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냐?"라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한국형 인종주의자 차지철"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 앞에 그 비굴한 삶을 마감했다. 1979.10.26일, "장준하(1918~1975ㆍ57세)"를 존경했던 "김재규(1926~1980ㆍ54세)"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그리고 "유신독재"는 허물어졌다. 1. "차지철ㆍ김재규"의 갈등 74년 : 차지철 경호실장ㆍ육사(12기) 시험에서 낙방 → 육사출신에 반감 → "전두환" 산하 부대원으로, "중령" 예편 후, 국회의원77년경 : "국기강하 식" 시행.. 2022. 10. 6.
중앙정보부 ④ 코리아게이트ㆍ김대중 납치사건 "김대중 납치사건"은 일본에 망명 중이던 정치인 "김대중(金大中ㆍ1924~2009ㆍ85세)"이 1973.08.08일 오후 1시경 "일본 도쿄도"의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이후락 (李厚洛ㆍ1924~2009ㆍ85세)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5일 만인 08.13일에 "서울 동교동 자택" 근처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박정희 (5~9대ㆍ1917~1979ㆍ62세)"의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김대중"을 처리하려 했던 사건이다. 1. 1973.08.08, 오후1시경 : "김대중" 납치사건• 미ㆍ일 정계를 뒤집어 놓고, 1970년대 내내 "박정희"를 괴롭힌 사건 ("이후락 정보부장"의 정치생명 단축ㆍ유신체제의 명운 단축) → HR 정보부의 최악의 과오 → "박통 지시"가 아닌 HR의.. 2022. 10. 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