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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 현대사)/사건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① 민족 대표 33인 (48인?)

by 당대 제일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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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은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자 계획을 세웠다. 33명의 대표는 1919.03.01"태화관 (요릿집)"에서 회동을 가졌으며, "한용운""독립선언서(최남선이 초안 작성)"를 낭독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자진 투옥되었다.  "탑골공원"에서는 "정재용""팔각정 단상"에서 낭독하였다.

 

1.  3ㆍ1 독립선언서 (獨立宣言書)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으며,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 1919"31" , "민족대표 33"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1919.02.10, "최린최남선"등이 협의하고, "최남선" "독립선언서"를 초안하여 제출하자, "손병희오세창권동최린" 등은 함께, "독립선언서 내용"을 검토하고, 동의한다.

1919.03.01., "파고다공원(, 탑골공원)"에서 "민족 대표종교계 대표학생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할 것을 알고,  5,000명의 학생들과 함께 참석하였다이날 "민족대표들" "독립선언식 장소" "인사동 태화관"으로 옮기고 나타나지 않아, 군중들이 혼란에 빠지자, "정재용" "팔각정 단상"으로 올라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이에 격앙된 수천 명의 학생과 군중들은 만세를 외치며,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낭 독 : 태화관 (한용운)탑골공원 팔각정 단상 (정재용)

작 성 : 최남선 (초안) → 손병희ㆍ오세창ㆍ권동진ㆍ최린 (검토 동의)

인 쇄 : 02.26"보성사"에서 20,000여 장 인쇄02.28일 학생들에게 분배(1,500여 장)나머지는 각 지방에 분배

참 여 : 전국적으로 202만 명 이상

사 상 : 사망 (7,000명 이상)부상자 (45,000명 이상)체포자 (49,000명 이상)

원 인 : 대한제국의 국권 피탈조선의 민족주의고종 독살설28 독립 선언파리 강화 회의

목 적 : 조선의 독립 (비폭력 운동)

결 과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국외 무장 독립 투쟁 촉진→ 일제의 무력진압일제의 문화 통치 시작54 운동을 비롯한 세계 독립 운동에 영향

만세 : 아우내장터(04.01충남 천안유관순의 ()유중권/ ()이소제가 총에 살해)사천장터(03.04평남 강서군)전북 군산(03.05)만주 용정(03.13)삼진 의거(03.28경남 창원)전북이리장날 만세(04.04)

학살 : 제암리 학살(04.15경기도 화성29명 살해)사천교회 학살(03.03평남 강서73명 살해)곽산 학살(03.06평북 정주50명 살해)천 학살(03.22경남50명 살해)남원 학살(04.03전북8명 살해)화수리 학살(04.11경기도 수원수십 명 살해)맹산 학살(평남60여 명 살해)대구 학살(113명 살해)

정재용 (鄭在鎔1886~197690당시33독립 운동가)

1919.08월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서 26월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하였다. 출옥한 뒤, "의용단(독립운동 단체)"에 참가하여, "서광신이기춘" 등과 함께 항일운동에 진력. 

서울 북한산(836m삼각산(三角山))"백운대(白雲臺836m)인수봉(810m)만경대(799m)" 3개의 최고봉 꼭지점을 연결시켜 지은 것이다 "백운대"에는 한자 69자가 "해서체"로 암각 되어 있는데, 바위 네 귀퉁이에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늘을 우러르고 사람을 사랑한다)"의 네 글자를 파 놓고,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210일 육당 최남선이 썼고, 31일 탑골공원에서 정재용이 독립선언 만세를 이끌었다."라는 내용을 한자로 새겨놓았다. (시기는 광복 이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1운동

2. 민족대표 33(31: 김병조 (망명)양한묵 (구금 중 사망) 제외)

1918.11, "윌슨(미국 대통령)"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손병희최린권동진"등과 함께 "조선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우선 동지를 포섭하기로 한다또한 일부 "천도교" 연락원들이 "기독교 지도자" 일부와 합의하자, 범 거족적인 만세 시위 개최에 동의한다.

1919"31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을 가리킨다종교별로 나누어, 대표를 선정하여, "천도교(15)기독교(16)불교(2)" 참가했다.

이 가운데 "기독교계 4(길선주유여대김병조정춘수)"1919.03.01일 약속 장소인 "태화관"에 나오지 않았다1919.03.01오후 2시에 모이기로 했던 "조선의 민족대표 33"은 늦게 온 사람이 있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기독교계 4" 제외한 29인이 모였다.

약속 시간 : 1919.03.01오후 2실제 모임은 오후 3~4시 무렵

 약속 장소 : 태화관 사교 1호실 ("태화 빌딩하나로 빌딩" 자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2529)

참 석 : 29(민족대표 33 - 4) : 천도교(15)불교(2)개신교(16)

불 참 : 4- 기독교계 4(길선주유여대김병조정춘수)

"손병희(천도교 3대 교주)"의 영향으로 "태화관""독립선언서" 낭독 장소가 되었다. "손병희" "주옥경ㆍ주산월(朱山月)ㆍ태화관(명월관의 별관) 마담"과 결혼했으므로, 인맥으로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를 마련한 것이었다. "손병희""태화관" 주인 "안순환"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 손님 30명이 간다고 했다.

"태화관"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모든 행사가 끝난 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당시, "민족대표들""기미독립선언서" 낭독 후, "만세 삼창"을 불렀다. ("낭독"을 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는 소수설도 있다.)

"태화관" 주인 "안순환"을 불러, "야마가타 이자부로(총독부 정무총감)"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고, "일본 경찰"에게 연행되어 갔다. 당시 헌병과 순사들이 "태화관"에 올 때, "인력거"를 가지고 오자, "자동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고, "택시 7"에 나눠 타고, "남산 경무총감부와 지금의 중부경찰서"로 연행되어 갔다.

3(김병조 (상하이로 망명해 체포를 피함)길선주(무죄 판결)양한묵(체포 직후 구금 중에 사망)) 제외하고는, 모두 이 사건으로 징역 16개월~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이들 중 "손병희" 등은 복역 후, 병사하였다.

• 망명 : 김병조 (1877~1948ㆍ71ㆍ평북 정주) 기독교 계ㆍ상해로 망명ㆍ임정 활동

• 무죄 판결 : 길선주 (1869~1935ㆍ66ㆍ평남 안주) 기독교 계 장로교 목사

• 재판 중 사망 : 양한묵 (1862~1919ㆍ57ㆍ전남 해남) 천도교 계ㆍ천도교 도사

변절자 (3)

최 린 (1878~195880함남 함흥) 보성고보 교장"기미독립선언서" 기초자로 최남선 추천ㆍ나혜석과 연애 (당시 최린은 50나혜석은 32세)

박희도 (1889~195263황해 해주)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목회자동광(동양지광)의 창립인

정춘수 (1873~195380충북 청원) 남 감리교 목사친일행적으로 감리교 목사직 파면

 

3. 민족대표 명단 (33)복역 내용

천도교 (15)

재판 중 사망 : 양한묵 (1862~191957전남 해남) 천도교 계천도교 도사

징역 3년  :  손병희 (1861~192261충북 청원) 천도교 3세 교주병보석 출감 후 사망

징역 3년  :  오세창 (1864~195389한성) 천도교 도사ㆍ서예가ㆍ전각가ㆍ금석학ㆍ역사가ㆍ정치가

징역 3년  :  최 린 (1878~195880함남 함흥) 보성고보 교장"기미독립선언서" 기초자로 최남선 추천

징역 3년  :  권동진 (1861~194786충북 괴산) 천도교 도사신간회/광주학생운동 관련 1년 복역

징역 3년  :  이종일 (1858~192567충남 태안) 천도교 월보과장(보성사 사장)2의 독립선언문 작성

징역 2  임예환 (1865~194984평남 평양)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나인협 (1872~195179평남 성천)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홍기조 (1865~193873평남 남포)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박준승 (1866~192761전북 임실)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권병덕 (1867~194477충북 청원)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김완규 (1876~194973한성) 천도교 전제관장

징역 2년  :  나용환 (1864~193672평남 성천)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이종훈 (1856~193175경기 광주) 천도교 장로

징역 2년  :  홍병기 (1869~194980경기 여주) 천도교 장로고려혁명당 관련 징역 2년 형

불교 (2)

징역 3년  한용운 (1879~194465충남 홍성) 신흥사 승려신간회/사회계몽

징역 16월  백용성 (1864~194076전북 장수) 해인사 승려임정 지원

개신교 (16)

무 죄  :  길선주 (1869~1935ㆍ66ㆍ평남 안주) 장로교 목사

망 명  :  김병조 (1877~1948ㆍ71ㆍ평북 정주) 기독교 계상해로 망명임정 활동

징역 3  이승훈 (1864~193066평북 정주) 장로교 장로오산학교 운영

징역 26월  이갑성 (1889~198192경북 대구) 세브란스의전부설병원 사무원임정/흥업구락부 사건 연루 7개월 형

징역 2년6월  :  오화영 (1880~196080황해 평산) 남 감리교 목사광주학생운동/흥업구락부 사건 연루 옥고

징역 2년6월  :  김창준 (1889~195970평남 강서) 북 감리교 전도사신학 공부

징역 2년  박희도 (1889~195263황해 해주)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목회자동광(동양지광)의 창립인

징역 2 :  최성모 (1874~193763황해 해주) 북 감리교 목사

징역 2  : 이필주 (1869~194273한성) 정동교회 목사

징역 2  : 신석구 (1875~195075충북 청원) 남감리교 목사

징역 2  : 박동완 (1885~194156경기 포천) 기독교 신보사 서기신간회

징역 2  : 신홍식 (1872~193967충북 청주) 북 감리교 목사

징역 2  : 양전백 (1869~193364평북 선천) 장로교 목사

징역 2  : 이명룡 (1872~195684평북 철산) 장로교 장로

징역 2  : 유여대 (1878~193759평북 의주) 목회 활동

징역 16월  정춘수 (1873~195380충북 청원) 남 감리교 목사친일행적으로 감리교 목사직 파면

 

4. 민족대표 (33)17인 : 31 + 17 = 민족대표 (48)이라고도 함

천도교 (5)

징역 16 : 이경섭 (1874~ ? ?황해 곡산) 천도교 봉훈

징역 1: 김홍규 (1876~195983전북 김제) 천도교 신자 (보성사 공장 감독)

무 죄 : 박인호 (1864~194076충남 예산) 천도교 4세 교주

 한병익 (1895~ ?  ?황해 수안) 천도교 신도

노헌용 (1866~ ? ?황해 곡산) 천도교 중앙총부 금융관장

개신교 (5)

징역 3: 함태영 (1873~196491함북 무산) 세브란스예배당 조사

징역 2: 김원벽 (1894~192834황해 은율) 연희전문 3년생

 무 죄 : 김도태 (1891~195665평북 정주) 명신학교 교사친일 행적

 안세환 (1892~192735평남 평원) 평양 기독교서원 총무 복역 후유증으로 사망

 김세환 (1889~194556경기 수원) 삼일여학교 학감

일반인 (7)

징역 26 : 최남선 (1890~196777한성) 출판업 변절

징역 2: 강기덕 (1886~ ? ?함남 원산) 보성법률상업전문 3년생

무 죄 : 임 규 (1867~194881전북 익산) 경성부 일본어 교사

 송진우 (1890~194555전남 담양) 중앙학교 교장

 현상윤 (1893~195057평북 정주) 중앙학교 교사 변절

 정노식 (1891~196574북 김제) 재일 유학생

 김지환 (1892~197280평북 정주) 일본 유학 후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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