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자 계획을 세웠다. 33명의 대표는 1919.03.01일 "태화관 (요릿집)"에서 회동을 가졌으며, "한용운"이 "독립선언서(최남선이 초안 작성)"를 낭독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자진 투옥되었다. "탑골공원"에서는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서 낭독하였다.
1. 3ㆍ1 독립선언서 (獨立宣言書)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으며,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로, 1919년 "3ㆍ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
1919.02.10일, "최린ㆍ최남선"등이 협의하고,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초안하여 제출하자, "손병희ㆍ오세창ㆍ권동진ㆍ최린" 등은 함께, "독립선언서 내용"을 검토하고, 동의한다.
1919.03.01.일,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에서 "민족 대표ㆍ종교계 대표ㆍ학생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할 것을 알고, 약 5,000명의 학생들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날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식 장소"를 "인사동 태화관"으로 옮기고 나타나지 않아, 군중들이 혼란에 빠지자,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으로 올라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에 격앙된 수천 명의 학생과 군중들은 만세를 외치며,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 낭 독 : 태화관 (한용운)ㆍ탑골공원 팔각정 단상 (정재용)
• 작 성 : 최남선 (초안) → 손병희ㆍ오세창ㆍ권동진ㆍ최린 (검토 동의)
• 인 쇄 : 02.26일 "보성사"에서 20,000여 장 인쇄→ 02.28일 학생들에게 분배(1,500여 장)ㆍ나머지는 각 지방에 분배
• 참 여 : 전국적으로 202만 명 이상
• 사 상 : 사망 (7,000명 이상)ㆍ부상자 (45,000명 이상)ㆍ체포자 (49,000명 이상)
• 원 인 : 대한제국의 국권 피탈ㆍ조선의 민족주의ㆍ고종 독살설ㆍ28 독립 선언ㆍ파리 강화 회의
• 목 적 : 조선의 독립 (비폭력 운동)
• 결 과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ㆍ국외 무장 독립 투쟁 촉진→ 일제의 무력진압ㆍ일제의 문화 통치 시작ㆍ54 운동을 비롯한 세계 독립 운동에 영향
• 만세 : 아우내장터(04.01ㆍ충남 천안ㆍ유관순의 (부)유중권/ (모)이소제가 총에 살해)→ 사천장터(03.04ㆍ평남 강서군)→ 전북 군산(03.05)→ 만주 용정(03.13)→ 삼진 의거(03.28ㆍ경남 창원)→ 전북이리장날 만세(04.04)
• 학살 : 제암리 학살(04.15ㆍ경기도 화성ㆍ29명 살해)→ 사천교회 학살(03.03ㆍ평남 강서ㆍ73명 살해)→ 곽산 학살(03.06ㆍ평북 정주ㆍ50명 살해)→ 합천 학살(03.22ㆍ경남ㆍ50명 살해)→ 남원 학살(04.03ㆍ전북ㆍ8명 살해)→ 화수리 학살(04.11ㆍ경기도 수원ㆍ수십 명 살해)→ 맹산 학살(평남ㆍ60여 명 살해)→ 대구 학살(113명 살해)
※ 정재용 (鄭在鎔ㆍ1886~1976ㆍ90세ㆍ당시33세ㆍ독립 운동가)
1919.08월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서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감옥생활을 하였다. 출옥한 뒤, "의용단(독립운동 단체)"에 참가하여, "서광신ㆍ이기춘" 등과 함께 항일운동에 진력.
서울 북한산(836mㆍ삼각산(三角山))은 "백운대(白雲臺ㆍ836m)ㆍ인수봉(810m)ㆍ만경대(799m)" 3개의 최고봉 꼭지점을 연결시켜 지은 것이다. "백운대"에는 한자 69자가 "해서체"로 암각 되어 있는데, 바위 네 귀퉁이에 "경천애인(敬天愛人ㆍ하늘을 우러르고 사람을 사랑한다)"의 네 글자를 파 놓고,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2월 10일 육당 최남선이 썼고, 3월1일 탑골공원에서 정재용이 독립선언 만세를 이끌었다."라는 내용을 한자로 새겨놓았다. (시기는 광복 이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 민족대표 33인 (31인 : 김병조 (망명)ㆍ양한묵 (구금 중 사망) 제외)
1918.11월, "윌슨(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손병희ㆍ최린ㆍ권동진"등과 함께 "조선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우선 동지를 포섭하기로 한다. 또한 일부 "천도교" 연락원들이 "기독교 지도자" 일부와 합의하자, 범 거족적인 만세 시위 개최에 동의한다.
1919년 "3ㆍ1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을 가리킨다. 종교별로 나누어, 대표를 선정하여, "천도교(15명)ㆍ기독교(16명)ㆍ불교(2명)"이 참가했다.
이 가운데 "기독교계 4명 (길선주ㆍ유여대ㆍ김병조ㆍ정춘수)"는 1919.03.01일 약속 장소인 "태화관"에 나오지 않았다. 1919.03.01일 오후 2시에 모이기로 했던 "조선의 민족대표 33인"은 늦게 온 사람이 있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기독교계 4명"을 제외한 29인이 모였다.
• 약속 시간 : 1919.03.01일 오후 2시 → 실제 모임은 오후 3시~4시 무렵
• 약속 장소 : 태화관 사교 1호실 ("태화 빌딩ㆍ하나로 빌딩" 자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25길ㆍ29길)
• 참 석 : 29명 (민족대표 33 - 4) : 천도교(15)ㆍ불교(2)ㆍ개신교(16)
• 불 참 : 4명 - 기독교계 4명 (길선주ㆍ유여대ㆍ김병조ㆍ정춘수)
"손병희(천도교 3대 교주)"의 영향으로 "태화관"이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가 되었다. "손병희"가 "주옥경ㆍ주산월(朱山月)ㆍ태화관(명월관의 별관) 마담"과 결혼했으므로, 인맥으로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를 마련한 것이었다. "손병희"는 "태화관" 주인 "안순환"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 손님 30명이 간다고 했다.
① "태화관"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모든 행사가 끝난 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당시, "민족대표들"은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후, "만세 삼창"을 불렀다. ("낭독"을 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는 소수설도 있다.)
② "태화관" 주인 "안순환"을 불러, "야마가타 이자부로(총독부 정무총감)"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고, "일본 경찰"에게 연행되어 갔다. 당시 헌병과 순사들이 "태화관"에 올 때, "인력거"를 가지고 오자, "자동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고, "택시 7대"에 나눠 타고, "남산 경무총감부와 지금의 중부경찰서"로 연행되어 갔다.
③ 3명 (김병조 (상하이로 망명해 체포를 피함)ㆍ길선주(무죄 판결)ㆍ양한묵(체포 직후 구금 중에 사망))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사건으로 징역 1년6개월~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들 중 "손병희" 등은 복역 후, 병사하였다.
• 망명 : 김병조 (1877~1948ㆍ71ㆍ평북 정주) 기독교 계ㆍ상해로 망명ㆍ임정 활동
• 무죄 판결 : 길선주 (1869~1935ㆍ66ㆍ평남 안주) 기독교 계 장로교 목사
• 재판 중 사망 : 양한묵 (1862~1919ㆍ57ㆍ전남 해남) 천도교 계ㆍ천도교 도사
④ 변절자 (3명)
• 최 린 (1878~1958ㆍ80ㆍ함남 함흥) 보성고보 교장ㆍ"기미독립선언서" 기초자로 최남선 추천ㆍ나혜석과 연애 (당시 최린은 50세ㆍ나혜석은 32세)
• 박희도 (1889~1952ㆍ63ㆍ황해 해주)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ㆍ목회자ㆍ동광(동양지광)의 창립인
• 정춘수 (1873~1953ㆍ80ㆍ충북 청원) 남 감리교 목사ㆍ친일행적으로 감리교 목사직 파면
3. 민족대표 명단 (33인)ㆍ복역 내용
① 천도교 (15명)
재판 중 사망 : 양한묵 (1862~1919ㆍ57ㆍ전남 해남) 천도교 계ㆍ천도교 도사
징역 3년 : 손병희 (1861~1922ㆍ61ㆍ충북 청원) 천도교 3세 교주ㆍ병보석 출감 후 사망
징역 3년 : 오세창 (1864~1953ㆍ89ㆍ한성) 천도교 도사ㆍ서예가ㆍ전각가ㆍ금석학ㆍ역사가ㆍ정치가
징역 3년 : 최 린 (1878~1958ㆍ80ㆍ함남 함흥) 보성고보 교장ㆍ"기미독립선언서" 기초자로 최남선 추천
징역 3년 : 권동진 (1861~1947ㆍ86ㆍ충북 괴산) 천도교 도사ㆍ신간회/광주학생운동 관련 1년 복역
징역 3년 : 이종일 (1858~1925ㆍ67ㆍ충남 태안) 천도교 월보과장(보성사 사장)ㆍ제2의 독립선언문 작성
징역 2년 : 임예환 (1865~1949ㆍ84ㆍ평남 평양)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나인협 (1872~1951ㆍ79ㆍ평남 성천)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홍기조 (1865~1938ㆍ73ㆍ평남 남포)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박준승 (1866~1927ㆍ61ㆍ전북 임실)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권병덕 (1867~1944ㆍ77ㆍ충북 청원)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김완규 (1876~1949ㆍ73ㆍ한성) 천도교 전제관장
징역 2년 : 나용환 (1864~1936ㆍ72ㆍ평남 성천) 천도교 도사
징역 2년 : 이종훈 (1856~1931ㆍ75ㆍ경기 광주) 천도교 장로
징역 2년 : 홍병기 (1869~1949ㆍ80ㆍ경기 여주) 천도교 장로ㆍ고려혁명당 관련 징역 2년 형
② 불교 (2명)
징역 3년 : 한용운 (1879~1944ㆍ65ㆍ충남 홍성) 신흥사 승려ㆍ신간회/사회계몽
징역 1년6월 : 백용성 (1864~1940ㆍ76ㆍ전북 장수) 해인사 승려ㆍ임정 지원
③ 개신교 (16명)
무 죄 : 길선주 (1869~1935ㆍ66ㆍ평남 안주) 장로교 목사
망 명 : 김병조 (1877~1948ㆍ71ㆍ평북 정주) 기독교 계ㆍ상해로 망명ㆍ임정 활동
징역 3년 : 이승훈 (1864~1930ㆍ66ㆍ평북 정주) 장로교 장로ㆍ오산학교 운영
징역 2년6월 : 이갑성 (1889~1981ㆍ92ㆍ경북 대구) 세브란스의전부설병원 사무원ㆍ임정/흥업구락부 사건 연루 7개월 형
징역 2년6월 : 오화영 (1880~1960ㆍ80ㆍ황해 평산) 남 감리교 목사ㆍ광주학생운동/흥업구락부 사건 연루 옥고
징역 2년6월 : 김창준 (1889~1959ㆍ70ㆍ평남 강서) 북 감리교 전도사ㆍ신학 공부
징역 2년 : 박희도 (1889~1952ㆍ63ㆍ황해 해주)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ㆍ목회자ㆍ동광(동양지광)의 창립인
징역 2년 : 최성모 (1874~1937ㆍ63ㆍ황해 해주) 북 감리교 목사
징역 2년 : 이필주 (1869~1942ㆍ73ㆍ한성) 정동교회 목사
징역 2년 : 신석구 (1875~1950ㆍ75ㆍ충북 청원) 남감리교 목사
징역 2년 : 박동완 (1885~1941ㆍ56ㆍ경기 포천) 기독교 신보사 서기ㆍ신간회
징역 2년 : 신홍식 (1872~1939ㆍ67ㆍ충북 청주) 북 감리교 목사
징역 2년 : 양전백 (1869~1933ㆍ64ㆍ평북 선천) 장로교 목사
징역 2년 : 이명룡 (1872~1956ㆍ84ㆍ평북 철산) 장로교 장로
징역 2년 : 유여대 (1878~1937ㆍ59ㆍ평북 의주) 목회 활동
징역 1년6월 : 정춘수 (1873~1953ㆍ80ㆍ충북 청원) 남 감리교 목사ㆍ친일행적으로 감리교 목사직 파면
4. 민족대표 (33인)외 17인 : 31 + 17 = 민족대표 (48인)이라고도 함
① 천도교 (5명)
징역 1년6월 : 이경섭 (1874~ ? ㆍ ?ㆍ황해 곡산) 천도교 봉훈
징역 1년 : 김홍규 (1876~1959ㆍ83ㆍ전북 김제) 천도교 신자 (보성사 공장 감독)
• 무 죄 : 박인호 (1864~1940ㆍ76ㆍ충남 예산) 천도교 4세 교주
• 한병익 (1895~ ? ㆍ ?ㆍ황해 수안) 천도교 신도
• 노헌용 (1866~ ? ㆍ ?ㆍ황해 곡산) 천도교 중앙총부 금융관장
② 개신교 (5명)
징역 3년 : 함태영 (1873~1964ㆍ91ㆍ함북 무산) 세브란스예배당 조사
징역 2년 : 김원벽 (1894~1928ㆍ34ㆍ황해 은율) 연희전문 3년생
• 무 죄 : 김도태 (1891~1956ㆍ65ㆍ평북 정주) 명신학교 교사→ 친일 행적
• 안세환 (1892~1927ㆍ35ㆍ평남 평원) 평양 기독교서원 총무→ 복역 후유증으로 사망
• 김세환 (1889~1945ㆍ56ㆍ경기 수원) 삼일여학교 학감
③ 일반인 (7명)
징역 2년6월 : 최남선 (1890~1967ㆍ77ㆍ한성) 출판업→ 변절
징역 2년 : 강기덕 (1886~ ? ㆍ ?ㆍ함남 원산) 보성법률상업전문 3년생
• 무 죄 : 임 규 (1867~1948ㆍ81ㆍ전북 익산) 경성부 일본어 교사
• 송진우 (1890~1945ㆍ55ㆍ전남 담양) 중앙학교 교장
• 현상윤 (1893~1950ㆍ57ㆍ평북 정주) 중앙학교 교사→ 변절
• 정노식 (1891~1965ㆍ74ㆍ전북 김제) 재일 유학생
• 김지환 (1892~1972ㆍ80ㆍ평북 정주) 일본 유학 후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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