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건 (崔庸健ㆍ1900~1976ㆍ76세)"은 "김일성"에게 반말을 할 수 있는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존칭을 쓸 경우에도, "일성 동지ㆍ김 장군"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서 "연합군"에 패배한 장군이다.
1. 최용건 (崔庸健ㆍ1900~1976ㆍ향년 76세)
독립운동가ㆍ"김일성"에 이어, 권력서열 2위ㆍ조선인민군의 총사령관(초대)ㆍ북조선 제2대 국가수반ㆍ"김일성"에게 반말을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군인ㆍ애국자로도 평가된다.
• 출 생 : 평북 태천군 • 사 망 : 평양 묘향산 • 사 인 : 병사 • 학 력 : 중국 운남군관학교 졸업
• 호 : 석천 (石泉) • 별 칭 : 최석천(崔石泉)ㆍ최추해(崔秋海)ㆍ김지강(金志剛)
• 처 : 왕옥환 (중국인ㆍ부잣집 딸ㆍ아버지뻘 되는 나이차) 항일투쟁 시기, 중국인 "왕옥환"과 결혼했다. "왕옥환"은 만주에서 일본군에게 쫓기던 "최용건"을 자기 침소 밑에 숨겨 구원해주면서, 부부가 됐다. 중국 부잣집 딸이었던 그녀는 아버지뻘 되는 "최용건"을 사랑하여,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 자 녀 : 최운주 (정치인)가 아들이라는 설이 있음.
• 경 력 : 1925 : 중국 운남군관학교 졸업ㆍ황푸군관학교 훈련 교관 → 1926 : 중국공산당 입당ㆍ항일 빨치산 활동 → 1927 : 길림성ㆍ흑룡강성에 각종 소학교ㆍ농민학교 설립ㆍ모범소학교 교장 → 1936 : 동북항일연합군 제7군단장으로 항일무장투쟁 참전 → 1942 : 동북항일연군교도려단 (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여단) 부참모장 → 1945 : 조선공작단 결성 (김일성ㆍ김책ㆍ안길과 조선의 해방사업 추진) → 1948~1950 : 조선인민군의 제1대 총사령관 (2대- 김일성) → 1950 :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서 연합군에 패배 → 1955~1958 : 내각부총리 → 1958~1972 : 제2대 국가수반 (1대 : 김두봉ㆍ3대- 김일성) / 국가수반 : 최용건ㆍ부수반 : 홍명희ㆍ총리 : 김일성 → 1972~1976 : 제4대 국가 부주석
• 수 상 : 1955.09- 자유독립 훈장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훈장 제1급(2회 수상) / 1960.06- 노력영웅 칭호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금메달
"조선인민군 총사령관(1948.02~1950.07)ㆍ내각부총리(1955.07~1958.03)ㆍ제2대 국가수반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1958.03~1972.12)"을 역임하였다. "김일성ㆍ김책"과 더불어, "만주 게릴라"의 핵심 트로이카를 이루었고, "황푸군관학교" 훈련 교관을 지내는 등 군사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 뒤, "동북항일연군교도여단(소비에트연방 극동군 제88국제여단)"에 참여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해방 후, 1948.0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창설"과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에 참여하였고, 1948년 "민족보위성상ㆍ인민군 총사령관ㆍ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등을 지냈고, 1958.03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가수반"에 올랐다.
2. 김일성과의 관계ㆍ유언에 따른 평가절하
"박헌영"의 몰락(1955년) 이후부터, 1976년 사망할 때까지, 사실상 "김일성 정권의 2인자"로 계속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김일성"에게 반말을 할 수 있는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존칭을 쓸 경우에도, "일성 동지ㆍ김 장군"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죽으면서 남긴 유언 한마디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잊혀졌다는 설도 있다. "김일성"이 정권을 자신이 지목한 후계자에게 물려주려 하자, "최용건"은 죽기 직전, 부인 "왕옥환"에게 "내가 죽으면 이곳에 있지 말고, 중국에 가서 사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설이 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일성ㆍ김정일"은 대노하여, "최용건"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묻어버리고 일체 공적을 평가하지 않았다.
1976.09월, "최용건"의 장례는 소홀하였으며, TV와 신문은 "최용건"에 대해 단 한 건의 보도도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김일성의 빨치산 선배인 최현이 사망한 후, 영화 "혁명가"를 만들어, 최현의 공적을 선전해준 것과는 대비된다"고 한다. 그러나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최용건"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3. 평 가
"동북항일연군 시절ㆍ88여단 시절"에도 직접적인 군사활동 보다는 "이론가형"으로 정치교육 등, 당 쪽의 고위 직책을 주로 맡았다. 특히 중국의 "주은래ㆍ주덕ㆍ하룡" 등과는 절친한 사이여서, 그는 조선-중국 사이에 불협화음이 발생할 때에는 해결사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공직에 있는 동안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정부 및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장 자격으로 외교 활동과 외국 순방을 하였다. 직접 "중국ㆍ일본ㆍ인도ㆍ말리ㆍ기니ㆍ캄보디아ㆍ이라크ㆍ시리아ㆍ이집트ㆍ알제리ㆍ탄자니아ㆍ소련ㆍ쿠바" 등지를 직접 순방하며, 외교 활동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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