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金正日ㆍ1941~2011ㆍ향년 70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ㆍ국방위원회 위원장이다. 아버지 "김일성 (金日成ㆍ김성주(金成柱)ㆍ1912~1994ㆍ82세)"과 어머니 "김정숙 (金正淑ㆍ1917~1949ㆍ32세)" 사이에서 태어난 1째 아들이다.
1. 홍일천 (洪一茜ㆍ1942~ ㆍ혁명가 유자녀ㆍ기간 : 1966~1969)
•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문학부ㆍ김정일과 대학동기 • 자 녀 : 딸(1) : 김혜경
"김정일"과 1966년 결혼하여, 1번째 아내가 된 인물이다. "김혜경"이라는 딸을 낳았으나, "김정일"이 "성혜림"과 가까워지면서, 3년 후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1.09월 "김형직 사범대학 학장"에 임명된 이후, 지금까지 그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1980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7대ㆍ8대)"을 지낸 바 있으며, "정무원 보통교육부 부부장 (문교부 차관)"을 지낸 바 있다. 1993.01월부터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조선측본부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성혜림 (成蕙琳ㆍ1937~2002ㆍ향년 65세ㆍ경남 창녕ㆍ기간 : 1969~1974)
• 평양연극영화대학ㆍ영화배우ㆍ김정일의 동거녀 (김정일보다 4살 연상)ㆍ심장질환 • 배우자 : 리평(李平)ㆍ김정일 • 자 녀 : 딸(1)ㆍ아들(1) : 리옥돌(리평의 딸)ㆍ김정남 (1971~2017ㆍ46세)
김정일과 만나기 전, 1960~70년대 초 북한 영화계를 주름잡은 최고의 여배우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경남 창녕군에서 대대로 갑부였던 "성유경ㆍ김원주"의 1남 3녀 중 2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서울사대 부속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풍문여중"으로 진학했다. 좌익계열 지식인인 아버지 "성유경"은 1948년이나, 한국전쟁 무렵, 가족을 이끌고 북조선으로 갔고, 오빠 "성일기"는 성인이 된 뒤, 북조선을 탈출했다. 1951년, "평양 제3여자중학교"를 졸업한 뒤,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에 만들어진 "온정령ㆍ백일홍"에 등장하기도 했다. 소설 "땅"으로 알려진 월북작가 "리기영(李箕永ㆍ전 문예총위원장)"의 1째 아들인 "리평(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와 결혼하였다. 1960년대 말 문예부문을 지도하던 "김정일"의 눈에 들게 되어 "리평"과 이혼하고, 미혼이자 연하인 "김정일"과 동거했다. "이혼녀 신분"으로 1971년 "김정일"과 사이에서 장남 "김정남"을 낳았으나 평생 숨겨진 여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성혜림"은 "김일성"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김정일"은 "김일성"이 내정한 "김영숙(조선로동당 간부 딸)"과 결혼했다. "김정일"의 관심에서 멀어진 "성혜림"은 심한 우울증에 빠져, 1974년 이후, 신경쇠약ㆍ신경성 질환ㆍ당뇨병 등 여러 지병으로, "소련 모스크바"에서 요양하며 외롭게 살았다고 한다. 북한은 그녀의 장례식에 아무도 보내지 않았고, 장남 "김정남" 부부가 모친을 임종을 지켰다고 한다. 언니 "성혜랑"은 1996년 "미국"으로 망명해 살고 있다. "성혜랑"의 아들 "리일남"은 한국에 망명해서 결혼해 거주하다가 암살되었다. "성혜랑"이 1996년 망명하면서 "김정남"의 위상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3. 본처 : 김영숙 (金英淑ㆍ1947~ ㆍ기간 : 1974~2011)
• 김정일의 본처 (3번째 아내)ㆍ조선노동당 중앙당의 김일성 집무실 타자수 출신 • 자 녀 : 딸(2) : 김설송(1974)ㆍ김춘송(1975)
"함북 안전국 전화교환수"로 일하다가, "중앙당"으로 와서 "김정일"을 만나게 됐고, 결혼했다. "김일성"이 정해준 공식 여인이며, "김일성"이 맺어준 인연으로 결혼하였으며, 딸의 이름 "설송"은 "김일성"이 직접 지어줬다고 한다. 다른 동거녀들과 달리, 뛰어난 예술적 재능이 없고, 착하기만 한 순종적인 시골여인으로, "김정일"의 바람기를 견제하거나, 속앓이를 드러내지 않고,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인 봉건시대의 전형적인 내조자라 할 수 있다. 두 딸만 둬서, 공식 부인으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고, "김정일"의 관심에서도 완전히 멀어졌다.
그러나 "성혜랑"은 그의 책 "등나무 집"에서 "김영숙은 아버지 앞에 합법화된 여자라는 의미 외에는 없다. 가계는 공민증(남한의 주민등록증에 해당)도 없다. 그 어떤 법적 수속도 문서도 없다"면서, "누구를 아내로 인정하는가는 법 위에 군림한 최고 수반 자신의 인정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4. 고용희 (高容姬ㆍ본명 : 고희훈(高姬勳)ㆍ1952~2004ㆍ향년 52세ㆍ기간 : 1974~2004)
• 조선계 일본인 무용수(재일교포)ㆍ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 출신ㆍ암 (심장마비) • 김정일이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여인ㆍ김정은의 생모 • 자 녀 : 아들(2)ㆍ딸(1) : 김정철(1981)ㆍ김정은(1984)ㆍ김여정(1988)
"일본 오사카시 이쿠노" 출신이지만, 북조선에서는 "제주도 북제주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2000년대에는 질병으로 "프랑스"를 방문하였고, "프랑스" 의료진이 "평양"에 오기도 했으나, "프랑스 파리"의 병원에 입원한 끝에 사망하였다. 1960년대, 재일교포의 대규모 북송 때, 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간 뒤,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하던 1970년대 중반, "김정일"과 동거에 들어가, 2004년 "유선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줄곧 "김정일"과 함께 살았다.
1974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선출된 이후부터, 권력 강화를 위해 측근들과 비밀연회를 가졌는데, 이때 이후의 "기쁨조의 원조격"으로 "만수대 예술단"에서도 가장 미모와 재능이 뛰어난 여성들을 "공연조"로 뽑아 연회에 참석시켰고, 이 때 뽑힌 "고용희"가 "김정일"의 눈에 들어 "김정일"의 옆자리에 앉는 고정 파트너가 되었고, 이후 함께 드라이브를 하면서 밀회를 즐기는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차안에서 즐겨 들었던 노래가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고, 이후에도 "고용희"는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한다.
1976년 동거를 시작해, "성혜림"의 뒤를 잇는 "김정일"의 비공식 부인이 된다.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김정일 요리사)"는 수기 "김정일의 요리"에서 "고영희를 알고 난 뒤부터 김정일의 여성 편력이 줄었다"고 말할 정도로, "고영희"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째 아들 "김정철"과 3째 "김정은"을 낳아,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자리를 굳혔다.
1998년 경, "유선암"을 진단받아, 한쪽 유방을 떼어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으나, 유방 절단이 "김정일"의 여인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 것으로 판단, 의료진의 만류에도 절단 대신 항암치료를 선택했다. 이것이 결국 5년여 뒤 재발을 불러와, "파리"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그녀는 아들 중, 1명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세우려고 장남 "김정남"과 세력을 견제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김정남의 후계자" 선정을 견제하기 위해, 위조여권으로 일본을 방문한다는 정보를 흘리도록 했다는 얘기도 내놓고 있다.
아들 "김정은"을 낳고나서는 "김정은"을 "스위스"로 유학 보냈고, "김정은"을 최고지도자로 만들기 위해서 군대로 내보내서 빡세게 군 생활을 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일찍 사망하면서 아들이 최고지도자로 등극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김정은"이 "원산시"를 관광도시로 개발시키는 이유도, 유년기를 "원산"에서 보낸 기억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녀의 사후에는 "김정일"의 개인비서였던 "김옥"이 사실상 차기 부인이 되었다.
5. 김옥 (金玉ㆍ1964~ ㆍ기간 : 2004~2011)
• 김정일보다 23살 연하ㆍ왕재산경음악단 (피아니스트)ㆍ평양음악무용대학 (피아노 전공) • 자 녀 : 딸(1): 2008년 생 • "김정일"에게 걸핏하면 마구 반말을 퍼붓고, 거리낌없이 신경질도 부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킨 최후의 여인이다. 1980년대부터, "김정일"의 개인비서(서기실 과장)을 맡아, "김정일"의 업무를 특별 보좌해왔으며, "고용희" 사후, 2006.07월 "김정일"과 동거하고 있는 것이 보도되었다. "김옥"을 추천한 사람은 "고용희"로 알려져 있는데, "고용희"가 자신의 아들을 돌보기 위해 발탁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고용희"는 사망 직전, "김옥"에게 "김정철ㆍ김정은"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6차례)ㆍ러시아 방문(3차례)"에 동행했고, 2005년과 2009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났을 때, 모두 배석하는 등 "김정일"의 여인 중 유일하게 외교활동에 직접 동석한 여인이다. "마커스 놀랜드 박사(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위원)"는 "김옥이 김정일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며, "김정일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2009년 당시, "김정일"의 병상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었던 인물은 "아들들ㆍ김정일 주치의ㆍ 김옥ㆍ장성택" 정도였다.
"고영희" 사망 이후, 사실상 "북한 퍼스트레이디"가 된 그녀는 권력기관의 주요 인사를 "김정일"에게 직접 건의해 관철하고, 2006년부터 "김정일"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하자, 김 위원장을 대신해 각종 서류에 결재를 하는 등 국정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2008.08월 중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김옥"의 위세는 "중국 마오쩌둥 공산당 주석"의 3번째 부인 "장칭(江靑)"을 방불케 했다는 것이 대북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더욱이 "김정일"은 나이가 들수록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김옥"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져 "김옥의 베개 밑 송사"가 잘 통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김옥"도 "김정일"이 갑자기 쓰러지자, 국정 장악에 한계를 드러내며, 병상의 남편을 회복시키는 데 급급하는 등 평범한 여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대북소식통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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