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상 (曺秉相ㆍ1891~ 1950?)"은 "박석윤 (朴錫胤ㆍ1898~1950ㆍ52세)ㆍ박두영"과 함께, "만주"에서 활동했던 "민생단"(일본 제국의 간첩 조직ㆍ독립 운동을 방해하기 위한 밀정 조직)"을 조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1. 조병상 (曺秉相ㆍ1891~ 1950?)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ㆍ교육자ㆍ 친일기업가(경인기업 사장ㆍ편창생명보험주식회사 조선지사장ㆍ남대문상업학교 간사)ㆍ "태평양 전쟁" 중, 장남을 "지원병"으로, 차남을 "학병"으로 참전시켰다.
"박두영ㆍ박석윤"과 함께, "만주"에서 활동했던 "민생단"(일본 제국의 간첩 조직ㆍ독립 운동을 방해하기 위한 밀정 조직)"을 조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만주"에서 "민생단" 사건을 직접 겪은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통해, "조병상"을 "박석윤ㆍ전성호ㆍ김동한"과 함께 "애국애민을 부르짖는 민족주의자ㆍ혁명가로 자처하였으나, 예외 없이 일제가 오래전부터 손때를 묻혀 길들여온 반역자였다."고 평가했다.
• 사 망 : 1950년 북한으로 납북된 것으로 추정 • 학 력 : 선린상업학교 • 수 상 : 쇼와대례기념장
• 경 력 : 1920~1936 : 교사ㆍ경성부 협의원과 경기도 도의원 → 1924 : 동민회 이사 → 1925 : 갑자구락부 위원 → 1936~1945 : 조선총독부 중추원 주임 참의 → 1936 : 조선지원병후원회 이사 → 1940 :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 1942 : 흥아보국단 발기위원ㆍ조선임전보국단 이사ㆍ종로구 경방단의 단장 → 1943 : 조선식량영단 감사 → 1944 : 국민동원총진회(관변 단체) 이사 → 1945 : 대화동맹 이사
2. 태평양 전쟁 기간
여러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경성부 협의원ㆍ경기도 도의원"을 지냈다. 1936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주임참의"로 발탁된 뒤 한차례 연임하여 1945년 광복 시점까지 재임했다. 1924년 "동민회" 이사, 1925년 "갑자구락부" 위원이 된 시작으로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에는 전쟁 지원을 역설하며, 기고문 투고와 시국 강연을 위한 지방 순회 연설에 가담했다.
1942.09월 전시 비상 동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종로구 경방단의 단장"에 임명되었고, 1944년 관변 단체로 "이성환"이 주도해 설립한 "국민동원총진회"에 "김동환ㆍ손영목"과 함께 이사로 참여한 기록도 있다. "내선일체ㆍ반공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은 조병상의 이러한 활동에 대해, 일본 정부는 "쇼와대례기념장" 등을 수여했으며, 1940년 2600주년 기원절 행사에 초대한 약 300명의 조선인에 "손영목"을 포함시켰다.
특히 태평양 전쟁 중, 장성한 아들 중 장남을 "지원병"으로, 차남을 "학병"으로 참전시킨 뒤,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학도특별지원병 제도 실시가 상류계급의 애국심을 재는 잣대가 될 것"이라며, 전쟁 지원을 독려했고, "베이징" 등 북중국 지역의 일본군을 직접 위문하기도 했다.
3. 광복이후, 사망
광복 후, 일본행 여행권을 신청한 것이 언론에 보도될 만큼 "거물 친일파"로 관심을 모았고,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면서, 1949년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반민법정"에서는 징역 7년형이 구형된 뒤,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1950년 "6ㆍ25 한국전쟁" 때, 실종되어 북한으로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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