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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460

학살- 1951.01 : 국민 방위군 사건 (12만명 사망) "국민방위군 사건"은 "6ㆍ25 전쟁" 중인 1951.01월 1ㆍ4후퇴 때, "제2 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ㆍ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여 착복한 사건이다. 1. 국민방위군 사건 (國民防衛軍 事件) 전쟁 중인 1951.01월 1ㆍ4후퇴 때, "제2 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ㆍ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여 착복한 사건으로, 단지 1달여의 행군 끝에, "약 9만~ 12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희대의 사건으로, "한국전쟁" 중, "보도연맹 사건"과 더불어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국민방위군" 부대의 운영을 "이승만의 친위조직"인 "대한청년단"과 그 "청년단"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청년방위대"에게 맡겼기 때문에 저질러진 사건이었다. 징집된 .. 2022. 9. 10.
학살- 1950.06 : 국민 보도연맹 사건 (20만 명 사망)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6ㆍ25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원"들은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학살되어, "보도연맹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6ㆍ25한국전쟁" 초기, 후퇴 과정에서, 정부ㆍ경찰은 이들에 대한 무차별 "검속(檢束)ㆍ즉결처분"을 단행함으로써, "6ㆍ25한국전쟁" 중 최초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1. 국민보도연맹 (國民保導聯盟ㆍ보도연맹) 1949.06월, "좌익계 인물"들을 전향시켜, 별도로 관리하려는 목적에서 조직되었던 단체로,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정부 주도"로 할당제인 "보도연맹"에 가입되었고, 이들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07~8월경 "군ㆍ경찰ㆍCIC(방첩대)"에 의해 "경찰서ㆍ각 지서"에 예비검속(혐의자를 미리 잡아 가두어 놓는 일)"되었다. "연맹원"들.. 2022. 9. 10.
학살- 1948.10 : 여수ㆍ순천사건ㆍ여수14연대 반란 (3,400명 사망) "여수ㆍ순천사건"은 "제주도 4ㆍ3사건" 진압출동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저지하기위해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으로, 1948.10.19.~ 10.27일까지 계속된 "무장봉기군ㆍ진압군" 사이의 전투이다. 1. 여수ㆍ순천사건 (여순사건ㆍ여순반란사건ㆍ여수14연대 반란사건ㆍ여순봉기ㆍ여순항쟁ㆍ여순군란) "제주 4ㆍ3사건"과 함께,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ㆍ우익의 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사의 비극 흔히 "여순 반란사건"이라고 하였으나, 해당지역 주민들이 반란의 주체라고 오인할 소지가 있다 하여 1995년부터는 "여수ㆍ순천사건"이나 "여수ㆍ순천 10ㆍ19사건"이라고 사용한다. "전남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소속의 일부 군인들(약 2,000명)이 일으킨 사건. "제주도 4ㆍ3사건.. 2022. 9. 10.
학살- 1948.04 : 제주 4ㆍ3사건 (3만 명 사망ㆍ제주인구 10%) "제주 4ㆍ3 사건"은 1948.04~ 1954.09에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ㆍ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이후 1948.10.19일 "여수ㆍ순천사건"을 발생하게 한다. 1. 제주4ㆍ3사건 (제주도 민중항쟁)→ 여수ㆍ순천사건(1948.10.19) 발생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ㆍ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광복 후, 한반도를 통치한 "미군정"에 의한 "친일세력의 재등장"과 "남한단독 정부수립"에 "남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사건 이후, 희생자 가족들은 죄의 유무에 관계없이 당시 "군경 토벌대에 처형됐다"는 이유만으로 이른바 "빨갱이" 딱지가 붙어, 피해를 대물림하였다. • 일 시 : 1948.04.03 ~ 1954.09.21...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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