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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현대사)/사건106

사건- 1931.09 : 만주사변 → 중국과 "15년 전쟁"의 시작 "만주 사변 (滿洲事變, 9ㆍ18사변)"은 1931.09.18일, 일본 제국이 "류탸오후 사건 (柳條湖事件ㆍ만철 폭파 사건)"을 조작해,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중국 침략을 위한 전쟁의 병참 기지로 만들고, 식민지화하기 위해 벌인 침략 전쟁을 말한다. "만주 사변"은 1945년까지 계속된 중국과의 "15년 전쟁"의 시작이며, 제2차 세계대전의 서곡(序曲)을 이룬다. 1.  만주 사변 (滿洲事變, 9ㆍ18사변ㆍ1931.09.18~1932.02.18ㆍ15년 전쟁의 시작)•  일 시 : 1931.09.18~ 1932.02.18         •  장 소 : 만주ㆍ중국 •  결 과 : 일본 승리         • 교 전 : 중화민국(국민혁명군) - 일본제국 육군 • 지 휘 : 중화민국- 장쉐량ㆍ마잔산ㆍ펑잔하이 -.. 2022. 10. 8.
사건- 1929.11 : 광주학생 독립운동 "광주학생 독립운동"은 1919년 "3ㆍ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대중적 항일 운동"으로 꼽힌다. (3ㆍ1운동 10년 후) 1953.10월, "국회 본회의"에서 "윤택중 의원 (한국민주당)"의 제안으로, "만장일치"로 "학생의 날"이 가결되었고, 2006년, 11.0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1. 광주학생 독립운동ㆍ광주학생 항일운동1929.11.03일,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일본 학생"의 "한국 여학생 희롱"으로 일어난 "조선 학생ㆍ일본 학생" 간 충돌로 시작되었다. 1929.11.12일, "광주지역학생 대시위 운동"을 거쳐, "호남지역" 일대로 확산되고, 다른 한편으로 "서울"을 거쳐, 1929.11월 말에서 1930.03월이나 05월까지 "전국"으로 확산된 "학생독.. 2022. 10. 7.
사건- 1927.02 : 신간회 (新幹會)→ 좌ㆍ우익 내부분열로 해산 "신간회 (新幹會)"는 "좌ㆍ우익 (민족주의ㆍ사회주의) 세력"이 합작해 결성한 대표적인 "항일단체"로, "민족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조선민족 운동의 대표단체"로 발족하여, 독립운동 가운데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일제"로부터 탄압받아 해산된 것이 아닌, "좌ㆍ우 내부분열에 의해 해산되었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1. 신간회 (新幹會) : 1927.02.15~ 1931.05.15본래 "지하 비밀결사 단체"가 아닌, "합법적으로 항일독립"을 전개한 단체로, 합법 단체인 까닭에 "일제 당국"의 탄압 하에서, 기대한 만큼의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할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좌ㆍ우익"의 갈등은 적잖게 있었다. "비타협 민족주의자ㆍ사회주의자ㆍ천도교(구파)ㆍ기타 종교계" 등 각계각층.. 2022. 10. 7.
사건- 1926.06 : 6ㆍ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6ㆍ10 만세운동 (병인만세운동)"은 "3ㆍ1운동"을 잇는 전국적ㆍ전 민중적인 항일운동으로, "학생"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독립운동이며,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1926년이 간지로 "병인년"이므로, "병인만세운동"으로 불리기도 한다. 1.  6ㆍ10 만세운동 (六十萬歲運動ㆍ병인만세운동)학생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계획ㆍ추진된 운동으로, "3ㆍ1운동" 이후 꾸준히 다져온 "결사ㆍ동맹휴학ㆍ계몽활동" 등의 학생운동이 결집된 결과로 나타난 항일운동이었다. 침체된 "민족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안겨주었고, "3ㆍ1운동(1919년)"과 "광주학생운동 (1929년)"의 교량 구실을 담당하여, 꺼지지 않는 민족 독립운동사의 큰 횃불이 되었다."군중의 호응"으로 시위가 확대되었으나, 조직 사이의 유대 결여ㆍ민족진영의.. 2022. 10. 7.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⑤ 유관순 열사가 받은 고문 독립 운동가 "유관순 (柳寬順ㆍ1902~ 1920ㆍ18세)"열사는 검거 당시에 16세였으며, 18세 생일을 맞이하기 3개월 전, "경성부 서대문형무소"에 사망하였다.1. 유관순 (柳寬順ㆍ1902.12.16~1920.09.28ㆍ향년 17세)1916년, "미국인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초등부 3학년"에 편입하고,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하였다. 1919년 3ㆍ1운동에 참여하고, 03.05일의 만세 시위에도 참여하였다."총독부"의 휴교령으로 "천안"으로 내려와, 후속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고,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었으나, "법정모독죄"가 추가되어, 5년형으로 늘어났으며, 교도소.. 2022. 10. 6.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④ 보성사 (독립선언서 인쇄) "보성사(普成社)"는 1919년 3ㆍ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곳이다. "사장 이종일ㆍ공장감독 김홍규ㆍ총무 장효근"이 1919.02.27일 밤에 35,000매를 인쇄하였다. 1919.06.28일 밤에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1. 보성사 (普成社)보성사는 "30평 2층 기와벽돌집"으로 "전동 보성학교" 구내(현재 홰나무가 있는 조계사 경내)에 있었으며, 보성사의 소유주이기도 했던 "천도교 교주" "의암 손병희"의 특명으로, "육당 최남선"이 초안을 집필하고,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넘겨받아,"사장 이종일ㆍ공장감독 김홍규ㆍ총무 장효근"이 1919.02.27일 밤에 35,000매를 인쇄하였다. 일본 측의 형사에게 발각되는 위기도 있었으나, "족보책"이라고 위장하여 위기를 넘겼다.03... 2022. 10. 6.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③ 당시 세계 정세 요약 "일본 메이지 유신ㆍ명치유신(明治維新)ㆍ 1868~1889 "의 과정은 개국ㆍ도쿠가와 막부의 붕괴ㆍ천황 중심 통일국가의 형성과 그에 따른 신정책의 실시로 나누어볼 수 있다. "막부체제"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통일권력의 확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변혁 과정을 총칭한다. 1. 1868~1889 : 일본 메이지 유신ㆍ명치유신(明治維新)ㆍ1912년 메이지 천황사망"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친정형태의 통일국가를 형성시킨 근대 일본의 정치ㆍ사회적 변혁이다. "메이지 유신"의 과정은 개국ㆍ도쿠가와 막부의 붕괴ㆍ천황 중심 통일국가의 형성과 그에 따른 신정책의 실시로 나누어볼 수 있다. "막부체제"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통일권력의 확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변혁 과정을 총칭한다."메이지.. 2022. 10. 6.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② 민족자결주의 (미대통령 우드로 윌슨) "민족자결 (民族自決ㆍSelf- determination)"이란, 각 민족은 그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가져야 하며, 다른 민족의 간섭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서, 원래 유럽 내에서 "오스트리아" 또는 "투르크 제국"의 판도(版圖) 내에 있었던 소수민족이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제창했던 것이다. 1. 민족 자결 (民族自決ㆍSelf- determination)각 민족 집단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귀속ㆍ정치 조직ㆍ정치적 운명을 결정하고, 타민족이나 타국가의 간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집단적 권리를 말한다.※ 토머스 우드로 윌슨 (Thomas Woodrow Wilsonㆍ1856~1924ㆍ68세)미국의 28대 대통령 (1913~1921)ㆍ독실한 장로교도ㆍ역사가ㆍ정치학자ㆍ민족자결주.. 2022. 10. 6.
사건- 1919.03 : 3ㆍ1운동 ① 민족 대표 33인 (48인?) "손병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자 계획을 세웠다. 33명의 대표는 1919.03.01일 "태화관 (요릿집)"에서 회동을 가졌으며, "한용운"이 "독립선언서(최남선이 초안 작성)"를 낭독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자진 투옥되었다.  "탑골공원"에서는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서 낭독하였다. 1.  3ㆍ1 독립선언서 (獨立宣言書)"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했으며,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로, 1919년 "3ㆍ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한 글이다.1919.02.10일, "최린ㆍ최남선"등이 협의하고,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초안하여 제출하자, "손병희ㆍ오세창ㆍ권동진ㆍ최린" .. 2022. 10. 6.
사건- 1911.09 : 신민회 (新民會) 란? "신민회 (新民會)"는 1907.02월, "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가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배양 필요성"을 역설하는 강연회를 열고, 동지를 모으면서 만든 조직이었다. 1907.04월, "안창호"의 발기에 의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과 "서울 지역"의 인사들이 주동하여, 창립했다. 1. 신민회 (新民會)1907.02월, "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가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배양 필요성"을 역설하는 강연회를 열고, 동지를 모으면서 만든 조직이었다. 1907.04월, "안창호"의 발기에 의하여,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과 "서울 지역"의 인사들이 주동하여, 창립했다.1907.04월, 서울에서 조직된 민족 운동을 위한 "비밀결사 단체"로, "비밀 항일 독립운동 단체"이다. "공옥학.. 2022. 10. 5.
사건- 1911.09 : 신민회 사건 (105인ㆍ안악) "신민회 사건 (新民會)"은 1911.01월에 발생한 사건으로,  "1심 공판"에서 105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하여, "105인 사건"이라고 한다. 1910.11월 "안명근"이 "황해도 안악"지방에서 "서간도"에 세우려고 한 무관학교의 설립자금을 모집하다가 검거된 사건으로, "신민회 사건(105인 사건)"의 발단이 된다. 1. 신민회 사건 (新民會)ㆍ105인 사건ㆍ안악 사건ㆍ안명근 사건ㆍ총독암살 사건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 (3대 한국통감ㆍ초대 조선총독ㆍ1852~1919ㆍ67세)1910년경, "신민회ㆍ서북지역(평안도ㆍ황해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이 지역의 "배일적 운동"을 뿌리 뽑기 위해,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잡힌 "안명근 사건"을 확대ㆍ날조하고 .. 2022. 10. 5.
사건- 1904.02 : 러일전쟁→ 포츠머스 조약→ 적백내전 "러ㆍ일 전쟁 (露日戰爭)"은 무너지고 있던 "러시아 제국"의 싸움이었지만, 모두가 "러시아 제국"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전투 끝에, 주변국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일본 제국"이 승리하였고, 일본 은 일순간에 동아시아의 판도를 크게 뒤바꾸면서,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1. 러일전쟁 (露日戰爭ㆍ1904.02.08~1905.09.05)→ 포츠머스 조약→ 적백내전러시아 제국ㆍ일본 제국이 만주ㆍ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쟁취하려는 욕망이 충돌하여 발생하였다. 만주ㆍ한반도 일대의 권리를 점유하고자 하였으나, 서구열강(미ㆍ영ㆍ프)들의 러시아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발생했다. 러시아는 해군ㆍ해상 무역을 목적으로, "태평양" 연안에 있는 "부동항"을 얻으려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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