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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 현대사)/사건106

사건- 1907.06 : 헤이그 회담 → "고종" 폐위 "헤이그 회담 (네덜란드 수도)"은 1899년ㆍ1907년에 2차례 열린 "국제 평화 회담"이다. "3차 회담"은 1914년에 열리기로 하였으나, 1915년으로 조정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1. 헤이그 회담 (Hague Conventions)ㆍ만국평화회의 (萬國平和會議)"헤이그(네덜란드 수도)"에서 1899년ㆍ1907년에 2차례 열린 "국제 평화 회담"이다. "3차 회담"은 1914년에 열리기로 하였으나, 1915년으로 조정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헤이그 회담(1899ㆍ1907)"은 전쟁 행위를 천명한 최초의 "다국적 조약"이었으며, 대체로 "리버 법전"을 기반으로 했다. "헤이그 회담"의 많은 규제들은 이 법전에서 차용한 것이었다."네덜란드".. 2022. 10. 5.
사건- 1898.11 : 만민공동회 ← 황국협회 기습공격 "만민 공동회 (萬民 共同會)"는 1898년, 열강의 이권 침탈에 대항하여, "자주 독립의 수호ㆍ자유 민권의 신장"을 위해 조직ㆍ개최되었던 민중 대회ㆍ민중 운동으로,  1898.12.13일, 마침내 "고종"은 "군대 동원"의 결단으로, "시위대"에 의한 "만민공동회의 해산"을 명하였다."수구파들"은 "시위대"에 술을 먹이고, "만민공동회"를 향하여 진격하게 하였다. "보부상"까지 "시위대" 뒤를 따라, 공격하여 왔다. "만민공동회" 시민들은 "시위대의 총검ㆍ보부상의 몽둥이"에 쫓겨, 해산하였다. 1.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ㆍ관민공동회 (官民共同會)"수구파들"은 "시위대"에 술을 먹이고, "만민공동회"를 향하여 진격하게 하였다. "보부상"까지 "시위대" 뒤를 따라, 공격하여 왔다. "만민공동회" 시민들은.. 2022. 10. 5.
사건- 1898.06 : 황국협회 (보부상의 정치ㆍ경제 단체) "황국협회 (皇國協會)" 창립은 "독립협회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개화파"가 조직한 "독립협회"의 혁신적인 요구에 맞서, "수구파 관료들"의 후원 하에 결성되었기 때문이다. 1898.11월, "황국협회 (정부의 외곽단체)"등의 무고로 "이상재ㆍ남궁억" 등 "독립협회" 간부 17명이 검거 투옥되고, "황국협회"의 사주를 받은 1,000여 명의 "보부상"들이 "독립협회"를 습격했다. "고종"은 칙령으로 "양회 해산"을 명령하였다. 1.  황국협회 (皇國協會)대한제국의 "근왕적 관료들"이 "독립협회"를 견제하기 위해, "보부상들"을 내세워 조직한 정치ㆍ경제 단체,  "정부 고관"이 후원하고, "대한제국 황실"에서도 1,000원을 하사했다."발족식"은 "훈련원"에서 거행되어, 정부 측의 전폭적인 지원.. 2022. 10. 5.
사건- 1949.12 : 적산(귀속재산)ㆍ적산가옥ㆍ귀속재산 불하 적의 공적 재산ㆍ사유 재산을 "적국 재산 (적산ㆍ敵國財産)"이라 한다.  1948.09.11일, "한국ㆍ미국" 정부 간에 체결된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 협정"에 의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넘겨진 광복 이전, "일본인"이 소유였던 재산으로,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보다는 "수탈당한 재산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재해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적산 불하 (敵産 拂下)가 나라를 망치다.독립군과 자손들은 "빈곤"ㆍ일제 협력자와 자손들은 "부자"가 되는 원인 제공"적산기업"은 당시 한국 기업의 85%를 넘는다고 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전 자산의 80%라 한다. "이승만 정권ㆍ미군정"은 압류한 적산재산 대부분을 친일파ㆍ직접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절차를 거쳐 나누어준다."불하"에.. 2022. 10. 4.
사건- 2004.03 :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건 "노무현 대통령 (16대) 탄핵 소추 사건"은 2004.03.12일, "국회"에서 "노무현의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여당인 "열린 우리당"이 반발하는 가운데 "새천년민주당ㆍ한나라 당ㆍ자유민주 연합"의 주도하에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대통령을 대상으로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킨 사건을 말한다. (당시 "김기춘"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을 주도하였다) 1.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건2004.03.12일,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했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2004.05.14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되며, 노무현은 다시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였다.이 사태는 여ㆍ야가 합의점.. 2022. 10. 3.
사건- 1979.10 : 10ㆍ26 사태- 3 (김재규의 오판?) 결국 거사에 성공한 "김재규"가 이동한 곳은, 엉뚱하게도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였다. 만약 "김재규"가 거사 후 "중앙정보부 (남산)"으로 향했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도 중론이다. 그런 후. 사태 수습을 빌미로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써갈 수도 있었다. "박정희"를 암살한 장본인이 "차지철"이었다고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1. 김재규 : 혁명의 목적 (1심 재판, 최후진술 내용)여러분,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야 합니다. 이것은 건국의 이념이요, 우리의 국시입니다. ①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②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③번째는 우리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④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 2022. 10. 2.
사건- 1979.10 : 10ㆍ26 사태- 2 (시해준비ㆍ실행) 1979.10.16~ 20일까지, 민주화의 성지인 "부산ㆍ경남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한 반독재 투쟁 항쟁인 "부마민주항쟁(釜馬民主抗爭ㆍ부마민중항쟁(釜馬民衆抗爭)ㆍ부마사태)"이 올랐다. 무차별한 폭력과 마구잡이 연행에도 불구하고 "시민혁명"의 봉화불은 끊임없이 타올랐다. 유신의 핵심세력들은 당황했고, 점점 더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1. 사건 결과ㆍ파장"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남산의 부장들"에 기록된 바로는, "보안사 분실"에서 조차도 수사 초기에는 수사관들이 함부로 "김재규"를 다루지 못했다. 일종의 "군사혁명" 즉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저격함과 동시에, "김재규"와 밀통한 군 사단이 서울로 진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게다가 "김재규"는 "현직 정보부장"으로, "중.. 2022. 10. 2.
사건- 1979.10 : 10ㆍ26 사태- 1 (박정희 시해사건) "10ㆍ26 사태"는 1979.10.26일, 저녁 7:40분경, 서울 "궁정동"에 위치한 "중앙정보부 안전가옥(나동)ㆍ현, 무궁화동산"에서 "박정희 대통령ㆍ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ㆍ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과의 식사 도중,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정희(②오른쪽 가슴 ④뒷목덜미-확인사살)ㆍ차지철(①오른손목 ③복부)"을 "발터 PPK 권총" 4발로 살해한 사건이다. 1. 10ㆍ26 사태1979.10.16~ 20일까지, 민주화의 성지인 "부산ㆍ경남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한 반독재 투쟁 항쟁인 "부마민주항쟁(釜馬民主抗爭ㆍ부마민중항쟁(釜馬民衆抗爭)ㆍ부마사태)"이 올랐다. 무차별한 폭력과 마구잡이 연행에도 불구하고 "시민혁명"의 봉화불은 끊임없이 타올랐다. 유신의 핵심세력들은 당황했고,.. 2022. 10. 2.
사건- 1979.10 : 부마 민주항쟁 → 10ㆍ26 사태 "부마민주항쟁 (釜馬民主抗爭ㆍ부마사태)"는 1979.10.16~ 20일까지, "부산ㆍ경남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한 항쟁으로, 부마 민주항쟁"을 기리는 "민주공원"이 "부산"에 조성되었고, "마산(현, 창원시)"에도 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설치되었다. 1. 부마 민주항쟁 (釜馬民主抗爭)ㆍ부마 민중항쟁 (釜馬民衆抗爭)ㆍ부마사태1979.10.16~ 20일까지, "부산ㆍ경남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한 항쟁10.16일, "부산대" 학생들이 "유신철폐"의 구호와 함께, 민주화 시위를 시작했다. 17일부터, "시민 계층"으로 확산된 것을 시작으로 해서, 18일ㆍ19일에는 "마산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10.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계.. 2022. 10. 2.
사건- 1896.02 : 아관파천→ 친러 내각→ 대한제국 선포 (환구단) "아관파천"은 1896.02.11~ 1897.02.20일 (1년간) 있었던 사건으로,  1895.10.08일에 발생한 "을미사변 (乙未事變ㆍ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신변의 위협을 받게 된 "고종"이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파천한 사건으로, "러시아"에서는 "고종 러시아공관 망명"이라고 불렀다. 1. 아관파천 (俄館播遷ㆍ노관파천 (露館播遷))→ 친러 내각→ 대한제국 선포 (환구단)"고종ㆍ세자(순종)ㆍ엄상궁(순헌황귀비 엄씨)*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제국 공사관 (정동)"으로 옮겨서 거처한 사건, "김홍집(내각 총리대신)ㆍ정병하(농상공부대신)ㆍ어윤중(탁지부대신)" 등이 백성들에게 살해되었고, "유길준(내부대신)ㆍ조희연(군부대신)"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이완용ㆍ이범진"등의 "친러 내각.. 2022. 9. 30.
사건- 1895.10 : 을미사변 ② 시해진행ㆍ증언ㆍ사후처리 "을미사변 (乙未事變)"은 1895.10.08일(음력 08.20) 새벽 6시경, "경복궁"에서 "명성황후 민씨 (明成皇后ㆍ민자영ㆍ민비ㆍ1851~1895.10.08ㆍ43세)"가 "미우라 고로(三浦梧樓ㆍ조선주재 일본공사)"가 지휘하는 일본 낭인 등에게 시해된 사건이다. 1. 사건(1895.10.08일) 진행과정① 일본 낭인 자객 (30여 명ㆍ규슈ㆍ구마모토 현 출신) 입국 "일본 낭인"들은 "일본"을 출발하여, "인천 제물포 항구"를 거쳐, "조선인 군관들"의 경호ㆍ길 안내로 "경복궁"까지 반나절 (3시간) 내에 진입했다.② "미우라" 지시ㆍ일본인 60여 명(공사관 직원ㆍ고문관ㆍ순사ㆍ기자 등) "대원군" 별장으로 집합 또한 "일본"은 "낭인ㆍ일본 군인ㆍ명성황후에 불만을 품은 조선인 군인" 등 300여 명가량.. 2022. 9. 26.
사건- 1895.10 : 을미사변 ① 명성황후 시해 "을미사변 (乙未事變)"은 1895.10.08일(음력 08.20) 새벽 6시경, "경복궁"에서 "명성황후 민씨 (明成皇后ㆍ민자영ㆍ민비ㆍ1851~1895.10.08ㆍ43세)"가 "미우라 고로(三浦梧樓ㆍ조선주재 일본공사)"가 지휘하는 일본 낭인 등에게 시해된 사건이다. 1. 을미사변 (乙未事變ㆍ명성황후 시해사건ㆍ명성황후 시해참변)1895.10.08일(음력 08.20) 새벽 6시경, "경복궁"에서 "명성황후 민씨"가 "미우라 고로(三浦梧樓ㆍ조선주재 일본공사)"가 지휘하는 일본 낭인 등에게 시해된 사건이다. "일본 낭인들"은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한성"으로 잠입, "명성황후의 암살"을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 병사들"을 훈련하여, 표면적으로 앞세웠다."암살 과정"에서 "조선인 병사들"이 길안내를 했..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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