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 • 현대사)/사건106 사건- 47.03 : 트루먼 독트린ㆍ해리 트루먼 "트루먼 독트린 (Truman Doctrine)"이란, 1947.03월, "미 대통령 트루먼"이 의회에서 선언한 "미국 외교 정책"에 관한 원칙으로, 내용은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1. 트루먼 독트린 (Truman Doctrine)1947.03월, "미 대통령 해리 S.트루먼"이 의회에서 선언한 "미국 외교 정책"에 관한 원칙으로, 내용은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자유와 독립의 유지에 노력하며, 소수의 정부 지배를 거부하는 의사를 가진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하여 군사적ㆍ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따라서 당시 이 원칙에 따라, "그리스ㆍ터키"의 반공 정부에 미국이 군사적ㆍ경제적으로 원조를 했다. 전후 문제 처리에 이어, "트루먼"이 "소련"과의 협조에 우려를 표했던 것은 결.. 2022. 11. 9. 사건- 46.10 : 대구 10ㆍ1사건 (대구 10월 사건)ㆍ추수 봉기ㆍ대구 소요 "대구 10ㆍ1 사건 (추수 봉기ㆍ10월 인민항쟁ㆍ10월 항쟁ㆍ대구 소요ㆍ영남 소요)"은 1946.10.01.일, 미군정 영역인 "대구부 지역"에서 시작되어, 3개월간 지속된 "공산 폭동"이다. 좌파 세력과 민중이 "대구"를 시작으로 남한 전역에서 "미군정"의 실정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경찰과 시민들 간의 충돌로 시작된 대규모 유혈사건이다. 1. 대구 10ㆍ1 사건 (추수 봉기ㆍ10월 인민항쟁ㆍ10월 항쟁ㆍ대구 소요ㆍ영남 소요) • 일 시 : 1946.10.01.~ 12월 말경 (3개월간) • 성 격 : 대중적 민중항쟁 (참가자 : 전국적으로 230여 만 명) • 관련 인물ㆍ단체 : 박헌영ㆍ조선공산당ㆍ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ㆍ전국농민조합총연맹ㆍ인민위원회 • 영 향 : .. 2022. 11. 9. 사건- 46.03 : 미ㆍ소 공동위원회 → 미ㆍ소 냉전의 시작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이미 냉전이 시작되고 있었고, 결국 "38선"을 기준으로 남측에는 미군이 북측에는 소련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진주"는 무조건 항복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자국의 이익을 위한 주둔"으로 성격이 변화하였다. 1. 미소공동위원회 (美蘇共同委員會)① 일 시 : 1946.03.20~1947.10.27 (10.27일, 소련 철수) ② 장 소 : 덕수궁 석조전ㆍ이곳에서 "미소공위"가 개최되어, "좌우합작위원회 회담"이 열리곤 했다. ③ 내 용 : "한반도"의 "임시정부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이 개최한 회의. 개최 초기부터, "미국ㆍ소련"의 의견차이로 인해 갈등을 빚었으며, 결국 "제.. 2022. 11. 9. 사건- 45.12 : 모스크바 3상회의ㆍ카이로회담ㆍ얄타회담ㆍ포츠담회담 한국 문제 처리를 위한 주요 회담으로는, "카이로 회담 (1943.11.22~26ㆍ1943.12.02~07)ㆍ얄타 회담 (1945.02.04~11)ㆍ포츠담 회담 (1945.07.17.~08.02)ㆍ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1945.12.16~ 25)"가 있다. 1. 카이로 회담 (Cairo conferences): 제2차 세계대전 때,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2차례의 회담① 일 시 : 1차 : 1943.11.22~26ㆍ2차: 1943.12.02~07 (제2차 세계대전 때) ② 장 소 : 이집트 카이로③ 참 석 : 루스벨트(미국 대통령)ㆍ처칠(영국 수상)ㆍ장제스(중화민국 총통)④ 내 용 : 세계대전에서 대일전에서의 협력, 일본의 영토문제에 관해 결정→ 카이로 선언 발표(11.27)3국(미ㆍ영ㆍ중).. 2022. 11. 9. 사건- 45.09 : 포고문ㆍ더글러스 맥아더ㆍ 치스차코프 "광복회"는 포고문은 굉장히 강압적이고, "점령"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사용했으며, 이는 역사학계에서도 학술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맥아더 (MacArthurㆍ1880~1964ㆍ84세)"는 미군정 실시와 동시에 국내의 "여운형 (呂運亨ㆍ1886~1947.07.19ㆍ61세)"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를 강제해산시켰고, "임시정부"도 해체하도록 강요했으며, "친일파들을 중용했다"고 밝혔다. 1. 1945.09.07일 : 더글러스 맥아더 (태평양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소련"은 "해방군"으로 들어왔고, "미군"은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조선인민에게 고함.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으로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함. 일본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항복은 우 제국(.. 2022. 11. 9. 사건- 45.09 :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이유 1948.09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이 제정된다. 이 법에 입각해서 "반민족행위처벌 특별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된다. 친일파 중, "이승만 정부"에서 중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색출에 소극적이었다. "이승만"은 "빨갱이"를 언급하며, 반공 투사들을 잡아들이는 "반민특위"를 비난하는 연설을 한다. 잡아들인 친일파들은 단 1명도 법적으로 처벌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 2차대전 승리 후, "중국"은 가장 먼저 한 것이 "친일파들"의 처형이었다. 한국에는 아직도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했고,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산다. 왜 한국에서는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한 것인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부터 먼저 알아야 된다.① 프랑스 처형.. 2022. 11. 9. 사건- 45.08 : 군정 (1945.09.09~1948.08.15)ㆍ해방직후의 활동 처음엔 좌우 관계없는 인사들이 "인민위원회"에서 일을 했지만,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단체들이 "사회주의 계열"이었고,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좌익계열 인사들"이 점점 늘어났다. "소련"은 "인민위원회"를 인정했지만, "미국"은 "인민위원회"를 "공산당"으로 간주하며, 이들의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 "소련 치스차코프 포고문"의 내용 : 조선의 독립을 축하하고, 건국은 조선인들의 능력에 달려있다 • "미국, 맥아더 포고문"의 내용 : 38선 밑으로는 미국의 "명령"에 따라야 하고, 공용어는 "영어"를 써야 한다. 1. 해방이후 활동 (조선인민공화국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5.08.15 : 조선 건국준비위원회 (치안대 조직) → 여운형을 중심으로 발족 • 1945.09.0.. 2022. 11. 9. 사건- 1937.08 : 수양동우회 사건 → 친일파 논란 발생 "수양동우회 (修養同友會)"는 1926.01월, "수양동맹회(修養同盟會)ㆍ동우구락부(同友俱樂部)"가 "안창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 조직격으로 통합해 운영되었던 단체였다. 주로 "안창호"를 따르는 "서북 지역(평남 일대)" 지식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지도이념은 "안창호"의 "무실역행(務實力行)"이었다. "수양동맹회(안창호ㆍ이광수)"에 대항하여, "기호"지역 지식인 중심으로 결성된 "흥업구락부(이승만)"와는 일종의 경쟁 관계였다.. 1. 수양동우회 사건 (修養同友會ㆍ1937.08~ 1938.03)이 사건은 "민족분열 통치의 기폭제"라고 봐야할 것이며, "친일파 논란"에서도 빠질 수 없는 사건으로, "사회의 명망가ㆍ지식인" 등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친일로 전향시키기 위해, "일제"가 주도적으로 .. 2022. 10. 12. 사건- 1932.11 : 민생단 사건 → 조선인 마녀사냥 "민생단 (民生團 ) 사건"은 1932.11~ 1936.02월까지 발생한 사건으로, "중국 공산당"이 친일 단체인 "민생단"과 관련된 혐의로, "조선인 공산당원"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조선인들을 체포ㆍ살해한 사건이며, 동만(東滿)의 한ㆍ중 연합 항일유격대와 공산주의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한 일제의 공작사건이다. 1. 민생단 사건 (民生團)ㆍ반(反) 민생단 투쟁사건"중국 공산당 동만특위"의 "조선인 마녀사냥"으로, "간도참변"에 이어 "조선족 사회"를 작살냈다. 수많은 "좌익계 독립군들"과 후배지 역할을 하던 "조선족 인사들"이 "일본제국 밀정"으로 의심 받아, 처형당했으며, 이런 마녀사냥을 주도하던 조선인도 막판에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되고, 그 처형을 주도하던 인사들까지 "민생단"으로 처형당한 후.. 2022. 10. 12. 사건- 1932.01 : 상하이 사변 ㆍ지나사변 ②→ 중일전쟁 (1937~1945) "루거우 다리 (盧溝橋ㆍ노구교) 사건ㆍ7.7사변"은 "중일전쟁 (中日戰爭ㆍ1937.07.07~1945.09.02)"의 발단이 된 사건이며, 사건의 배경이 된 "루거우차오(盧溝橋ㆍ노구교)"는 "베이징 시 펑타이 구"에 있는 다리로, 서양에선 "마르코 폴로"가 이 다리를 언급했던 탓에 "마르코 폴로 다리"라고도 부른다. 1. 루거우 다리 (盧溝橋ㆍ노구교) 사건ㆍ7.7사변이 사건은 뒷날 일본군이 조작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루거우 다리"에서 "베이징" 서쪽의 "펑타이"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과 중국군이 무력 충돌했다. 사건의 발단은 야간 전투훈련 중이던 일본군 1개 중대의 머리 위로 10여 발의 총탄이 날아온 직후, 일본군 사병 한 명이 행방불명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사병은 용변 중이어서 20분 후에 .. 2022. 10. 12. 사건- 1932.01 : 상하이 사변 ㆍ지나사변 ① → 중일전쟁 (1937~1945) "중일 전쟁 (中日戰爭ㆍ1937.07.07~1945.09.02)"은 1937.07.07일,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 "중화민국과 일본제국" 사이의 전쟁으로, "중일 전쟁"은 20세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1. 중일 전쟁 (中日戰爭ㆍ1937.07.07~ 1945.09.02)중국항일전쟁 (中國抗日戰爭→ 중국)ㆍ일중전쟁 (日中戦争ㆍ지나사변→ 일본)ㆍ제2차 중일 전쟁 (2nd Sino-Japanese War→ 서양)이라고 부른다.• 일 시 : 1937.07.07~ 1945.09.02 (소규모 충돌 : 1931.09.18~ )• 장 소 : 만주ㆍ중국 본토ㆍ버마• 결 과 : 연합국의 승리ㆍ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ㆍ일본은 만주/ .. 2022. 10. 12. 사건- 1932.01 : 상하이 사변 → "윤봉길"의 홍커우 폭탄투척 "상하이 사변 (1차 상하이 사변)"은 1932.01.28일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중국은 "28사건"이라고도 부르고, 구미에서는 "상하이 사변", 일본에서는 "제1차 상하이 사변"이라고 하며, "상하이 전투 (2차 상하이 사변ㆍ중일전쟁의 일부)은: 1937.08월, "중ㆍ일 전쟁"시, 일본 제국이 "상하이"에 상륙ㆍ전투했던 전쟁을 말한다. 1. 제1차 상하이 사변 : 상하이 사변 (28사건): 1932.01.28~04.29"상하이 사변 (1차 상하이 사변)"은 1932.01.28일, "상하이 국제 공동 조계주변"에서 일어났던 중화민국과 일본제국의 군사적 충돌로, 1937년에 발발한 "중일전쟁"의 전초전 성격을 지닌 충돌이었다. "중국군 19로군"의 철수로 인해, "상하이"는 군대의 무장해제를 당했고, 자.. 2022. 10. 8. 이전 1 ··· 3 4 5 6 7 8 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