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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사건 • 전쟁 • 혁명 • 학살

전쟁- 1936~1939 : 스페인 내전ㆍ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화)

by 당대 제일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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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Spanish Civil Warㆍ에스빠냐 공민 전쟁)"은 1936.07~1939.04월까지 벌어진 전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리허설(제2차 세계 대전의 전초전 양상)ㆍ세계 양심의 시험대"라고 불린다,  1939.04월, "스페인 내전"의 끝난 바로 직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제2차 세계대전 : 1939.09.01~1945.09.02 : 5년)

 

1. 스페인 내전 (Spanish Civil Warㆍ에스빠냐 공민 전쟁)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파시스트)" 사이에 있었던 "스페인의 내전"이다. 1936.07.17일, "모로코"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다. 1939.03.28일, "프랑코 군"이 "수도 마드리드"에 입성하면서, "파시스트"의 승리로 끝났다. 1939.04.01일,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되었으며, "프랑코 정권"은 무수히 많은 공화파들을 처형하고 장기 독재를 이어갔다. "영국ㆍ프랑스"는 "공화국 정부"에 군수 물자를 지원하였으나,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이유로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스페인 제2공화국과 지원국 소련" 측에는 비행기를, "스페인 반군" 측에는 가솔린을 팔았다.

  •  일 시 : 1936.07.17~1939.04.01           
  •  장 소 : 스페인 전역           
  •  결 과 : 프랑코 파의 승리ㆍ프랑코 정권의 수립ㆍ제2공화국 정권 붕괴           
  •   피 해 : 총 사상자 - 500,000여명 (폭격ㆍ처형ㆍ암살 등)            
  •  병 력 : 프랑코파 - 보병(600,000명)ㆍ전투기(600대)ㆍ대포(290문)  /  공화파 - 보병(450,000명)ㆍ전투기(350대)ㆍ대포(200문)
  •  교 전 : 프랑코파 - 파시스트ㆍ국가주의자 : 스페인의 로마 가톨릭 교회ㆍ군부세력ㆍ토지소유자ㆍ기업가 ← 독일ㆍ이탈리아 지원ㆍ나치 독일ㆍ이탈리아(베니토 무솔리니 정권)ㆍ포르투갈(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ㆍ스페인의 로마 가톨릭교회ㆍ왕당파ㆍ민족주의 동맹ㆍ팔랑헤당ㆍ알폰스주의자

공화파 : 반파시즘ㆍ인민전선 - 도시노동자ㆍ농업노동자ㆍ교육받은 중산층 ← 소련국제 여단(소비에트 연방과 각국에서 모여든 의용군)스페인 제2공화국/인민전선소련코민테른멕시코

"스페인 내란"은 수십 년 동안, 스페인 역사ㆍ정치가 양극화한 결과로 일어났다. "내란"은 유혈폭동, 군사 봉기, 암살 등으로 이어졌다. "독일ㆍ이탈리아"가 "국가주의자"를 도왔고, "소련"이 "공화파"에 장비와 물자를 공급했다. 1939년, "공화파 정부ㆍ군인"은 "프랑스"로 망명했고, "국가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스페인 내란"의 정치적ㆍ감정적 여파는 한 국가의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들은 각기 자국의 관점에서 "스페인 내란"을 "전제주의와 민주주의ㆍ파시즘과 자유ㆍ공산주의와 문명" 사이의 국제적 갈등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독일ㆍ이탈리아"에 있어서 "스페인 내란"은 새로운 모델의 탱크ㆍ비행기 등 자국의 군비를 시험하는 장소가 되었고, "영국ㆍ프랑스"에 있어서 "스페인 내란"은 자신들이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제적 평형상태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었다. 

결국 이 평형상태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1939.09.01~ 1945.09.02 : 5년)"으로 깨졌다. "제1차 세계대전(1914.07.28 ~ 1918.11.11 : 4년 4개월 14일)"이 끝난 후, 유럽에 울린 첫 포성은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에스파냐 내전"이었다. "내전"이라고는 해도 "독일ㆍ이탈리아ㆍ소련" 등이 개입했고 전 세계에서 "공화주의"를 지키려는 "의용군이 참전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국제전"이었다.

1936.07.17일,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군부를 중심으로 한 "파시즘 진영"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좌파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5개월 전, 정교 분리와 토지 개혁을 내세워, "노동자ㆍ농민"의 지지를 받은 "인민전선 정부"가 출범했지만, 기득권층인 "군부ㆍ가톨릭교회ㆍ왕당파ㆍ지주ㆍ자본가"들은 권력을 순순히 내놓지 않았다. 처음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가 전국을 장악하는 데 실패하자, "군사반란"은 잔인한 유혈 내란으로 확산되었다. 내란이 본격화하자 암살과 폭력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2. 너무나 다른 내란 양측의 구성세력

"반란군"은 "보수주의자ㆍ파시스트 이탈리아ㆍ나치 독일"의 지원을 받았으며, "공화파"는 유럽 각국ㆍ 미국에서 온 대규모 지원병 부대인 "국제여단과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국가주의자"는 스페인의 로마 가톨릭 교회ㆍ군부세력ㆍ토지소유자ㆍ기업가 등이었고, "공화파"는 도시노동자ㆍ농업노동자ㆍ교육받은 중산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세력의 차이는 정치적으로 "파시스트적 팔랑헤당(국가주의자)"과 "호전적 무정부주의(공화파)"라는 극단적이고 격렬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이 양극단 세력 사이에는 "군주주의ㆍ보수주의"를 비롯해 "자유주의", 그리고 소련 지도자 "요시프 스탈린"과 그의 최대 라이벌 "레온 트로츠키"의 추종자로 양분되어 있는 소규모 공산주의 운동을 포함한 "사회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3. "에스파냐"는 "프랑코파ㆍ공화파"로 완전히 분열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복잡한 국제 역학 구도 속에서 주변 국가들이 가세했다. "파시즘 정권"이던 "독일ㆍ이탈리아"는 15만의 대군을 보내 "프랑코"를 전폭 지원했지만, 확전을 우려한 "영국ㆍ프랑스"는 불간섭 원칙을 고수했다. "소련"이 "공화파"를 지원했지만, 거리상의 이유로 한계가 있었다. 대신 전 세계의 "좌파 지식인ㆍ공화주의자ㆍ자유주의자ㆍ무정부주의자" 등이 의용군 "국제여단"을 결성해, "공화파 시민군"과 연대해 싸웠다. "앙드레 말로(프랑스 작가/정치가)ㆍ어니스트 헤밍웨이(미국 소설가/저널리스트)ㆍ파블로 네루다(칠레 민중시인/사회주의 정치가)" 등 세계적 지성과 문호들도 총을 들고, "에스파냐 전선"으로 향했다.

1937.04월, "독일 공군"은 "공화파"를 지지하는 지역에 있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융단 폭격해 1,600여 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순전히 신무기를 시험해 볼 요량으로 전략적 요충지도 아닌 "게르니카"를 초토화한 이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피카소"가 이 비보를 전해 듣고, 전쟁의 참상을 그려낸 작품이 "게르니카"다. "피카소"는 "파시스트"들이 집권한 조국에 이 걸작이 반입되는 것을 거부했고, "게르니카"는 "스페인"이 민주화된 후인 1981년에야 스페인에 전시되었다.

4.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 영화ㆍ소설

① 소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장편 소설로, "스페인 내전"을 무대로 "로버트 조던ㆍ마리아"의 사랑을 그린다. 제목은 "존 던 신부(17C세기 영국 성공회 성직자)"가 쓴 시의 구절을 인용하였다. 1939.03월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1940년에 발표하였다.

② 1943년 영화 (감독 : 샘 우드) : "게리 쿠퍼ㆍ잉그리드 버그만"주연의 영화로 제작

제16회 "아카데미"서 9개 부분에 후보에 올랐으며, 이 중 "여우주연상"을 수상

④ 시 : 존 던 신부 (17C세기 영국 성공회 성직자)

나 자신이 이 인류의 한 부분이니, 친구의 죽음은 곧 나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하지 마라. 그것은 곧 너 자신을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④ 줄거리

미국에서 "반파시스트 군"으로 지원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로버트 조던(게리 쿠퍼)"는 작전상 중요한 교량을 폭파하는 임무를 짊어지고, "파블로"가 이끄는 게릴라 부대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리고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의 부모는 게릴라 부대에 숨어 있다가 살해되고, 로버트는 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후, 그는 작전을 수행 중, 적의 계획이 바뀌어 자신의 임무인 교량 폭파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연락이 되지 않아 작전을 중단하지 않았고, 쓸모없는 줄 알면서도 다리를 폭파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로버트 자신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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