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는 "선감학원 (仙甘學園)" 운영에 필요한 보조 인원 15가구 70여 명만을 남겨 놓고, "선감도"에 거주하던 주민 400여 명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 "선감학원"을 설치했다.
1. 1942.04월 : 선감학원 (仙甘學園) : 조선총독부 직속의 소년 수용소ㆍ소년 감화원 (感化院)ㆍ선감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섬)
• 변 천 : 1941.10월 "조선총독부" 지시에 의해 세워져, 1942.04월에 200명의 소년을 처음 수용하였고, 해방 이후인 1946.02월 경기도로 관할 기관이 이관 → 1954년, 새 건물을 짓고, 부랑아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변모되어, 1982년(제5공화국 초기)까지 40년 동안 운영
• 위 치 : 선감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섬) 현재 "경기 창작센터 자리"
• 목 적 : 소년들을 감화시킨다는 목적에서 출발한 "선감학원"은 실제적으로는 어린 소년들의 조선 독립 의지를 말살시키고 나아가 전쟁의 소모품으로 이용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 수용피해 아동 : 4,691명
• 이러한 인권의 사각 지대에서 탈출을 기도하다가 사망하거나, 구타로 인하여 또 영양실조로 죽은 경우, 굶주림을 참지 못하여 초근목피(草根木皮)를 씹다가 독 버섯류를 잘못 먹어 죽는 경우 등 수많은 어린 소년들이 희생되었다.
• 1942년 "감화령(感化令)"을 보다 강화시킨 "조선 소년령(朝鮮少年令)"을 발표하면서, "안산 선감도"에 "선감학원"이라는 감화원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1942년 당시,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인적ㆍ물적 자원을 수탈해 가는 시기로서, "감화"의 단계를 벗어나 군사를 양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 1942.07월, "조선총독부 소년계 판검사회의 서류철"에 의하면, "선감학원" 등 감화원의 목적은 "사회 반역아 등을 보호ㆍ육성하여 대동아 전쟁의 전사로 일사순국(一死殉國)할 인적 자원을 늘리자"는 취지로 변모되어 있었다. "황국 신민화 교육"은 물론 군사 교련까지 받고 있었으며, 장차 "소년병"으로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내보낼 계획이었다.
• "선감학원"의 수용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고, 외부와의 접촉이 불가능한 섬 지역에 설치하였기 때문에 많은 인권 유린 사태가 일어났다. "자급자족"이라는 미명하에 어린 소년들에게 무제한적인 노동을 강요하였으며, 육지로의 탈출을 막기 위하여 갖가지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2. 1924.10월 : 영흥학교 (永興學校)ㆍ함남 영흥
1923년, 일본은 "감화령(感化令)"을 발표하고, 1924.10.01일 "함경남도 영흥"에 총독부 직속의 "감화원(感化院)"으로 "영흥학교(永興學校)"를 설치하였다.
• 설립 목적 : 8~ 18세의 소년으로 불량 행위를 하거나, 불량 행위(항일 독립운동ㆍ가벼운 절도 등)를 할 우려가 있는 자를 감화시킨다는 것
• 교육 내용 : 일반 학교와 동일한 교과 수업과 식민지 지배 정책에 철저히 순응할 수 있도록 교육
3. 1938.10월 : 목포학원 (木浦學園)ㆍ고하도 (古下島)
• 전라남도 목포 고하도 (古下島)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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