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는 "미국 전쟁" 역사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이 후퇴작전이 "1ㆍ4후퇴"의 시작이었다. 1950.11.26일, "동부전선"의 "미 10군단" 예하, "미1 해병사단"이 "서부전선" 부대와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 "중공군 9병단" 예하, "7개 사단"과 충돌하여, "중공군"이 포위망을 형성한 "장진호 계곡"을 벗어나기 위해, 2주간에 전개한 철수작전이다.
1. 장진호 (長津湖) 전투
이 전투에서, "미1 해병사단"은 자신의 10배에 달하는 12만의 "중공군" 남하를 지연시켰으며, "중공군" 12만 명의 포위를 뚫고, "흥남"에 도착, "흥남 철수"를 통해, 남쪽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후퇴작전이 "1ㆍ4후퇴"의 시작이었다. ※ 피로스의 승리 (Pyrrhic victory): 많은 희생적 비용의 대가를 치르는 승리를 말한다. 이러한 승리는 최종적으로는 패배와 다름이 없는 승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 일 시 : 1950.11.26~ 12.13 (2주간) • 장 소 : 함남 장진호
• 결 과 : 중공군의 피로스의 승리ㆍ미군의 전략적 승리ㆍ중공군의 북한 점령ㆍ미군의 함경도 철수ㆍ중공군의 장진호 포위전 실패 (1951.03월까지 중공군 40%가 회복되지 못함)
• 지휘관 : 미국 - 더글라스 맥아더ㆍ에드워드 알몬드ㆍ이종찬 장군ㆍ송요찬 장군 / 중화인민공화국 - 마오쩌둥ㆍ펑더화이
• 병 력 : 미 군 - 30,000여 명 / 중공군 - 120,000여 명
• 피 해 : 미 군 - 사망 및 실종(5,923명)ㆍ사망(1,029명)ㆍ실종(4,894명)ㆍ부상(4,582명) / 중공군 - 사상자(19,202명)
"장진호 전투"는 여러 측면에서 전선에 영향을 주었다. "중공군"은 "장진호" 부근 전투에서 전투손실 뿐 아니라, 비전투손실도 상당히 입게 되었다. 이에 따라, 더 이상의 군사작전 수행이 불가능하여, "중공군 9병단 지휘부"는 3개월에 걸쳐, 부대를 재편성하기 위해, 후방으로 철수하였다.
반면, "미1 해병사단"은 "중공군"의 강력한 포위망을 돌파하여, "함흥지역"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공군 9병단"이 "서부전선"의 "13병단"을 증원할 수 있는 역량을 소멸시킴으로써, "서부전선"의 "미 8군"이 위기를 모면하는데, 일조하였다.
"중공군"의 한반도 진입 목적ㆍ병력규모를 1950.11월 초까지도 경시했던 "UN군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선제공격을 단행하기로 결심함에 따라, "동부지역"을 담당한 "미 10군단 알몬드 소장"은 국경선을 목표로 한 북진을 재개하기로 결정하였다. 11.01일, "미 10군단장"은 "미 1해병사단을 좌측ㆍ미 7사단을 중앙ㆍ국군 1군단을 우측"으로 하여 국경선으로 진격하는 공격명령을 하달하였다. 이 무렵, "중공군"은 "미 10군단" 정면에 "제9병단"을 투입하고 있었다. "제9병단"은 예하에 "제20군단ㆍ제27군단ㆍ제26군단"을 두고 있었다.
11.27일, "중공군"이 "유담리"의 "미 해병대"를 공격하며, 전투가 개시되었다. "중공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장진호" 지역의 전황이 급변하자, "미 10군단장"은 11.30일 "하갈우리"에서 작전회의를 열고, 기존의 북진 계획을 재검토하였다. 회의에서 "알몬드 소장"은 "장진호" 부근의 모든 부대를 "함흥~ 흥남의 작전기지로 이동한다"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유담리"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에, "미 1해병사단의 제5연대ㆍ제7연대"가 각각 이를 격파하고, 12.04일 "하갈우리"에 진입함으로써, "유담리" 포위망 돌파작전은 일단락되었다. 한편 "장진호" 동쪽에서 고립된 "미 7사단"은 구출이 지연되자,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하갈우리"로 이동하였다. "하갈우리"에 대한 공격은 "중공군 58사단"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다.
또한 "중공군 60사단"은 이미 "고토리"까지 남하하여, "하갈우리"에 이르는 보급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 1 해병사단"의 분전으로, 12.07일 "고토리"로 모든 병력을 집결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 "진흥리"를 통과한 "미 1 해병사단"은 12.11일 "함흥지역"에 모두 진입함으로써, "장진호 전투"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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