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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건- 상식ㆍ논쟁-개화파ㆍ북학파

사건- 1670 : 경신 대기근 (현종)ㆍ을병 대기근 (숙종ㆍ1695)

by 당대 제일 202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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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 대기근"은 "현종" 재위기간, 1670년(경술년)~ 1671년(신해년)에 있었던 "대기근"이며,  "을병 대기근"은 169525년 뒤인 "" 재위기간, 1695(을해년)~ 1696(병자년)에 있었던 "대기근"이다. 2번의  "대기근" 모두, 100만 명 이상 (조선 총 인구의 20%)이 사망하였다.

 

1. 1670 :  경신 대기근 (庚辛 大飢饉)ㆍ100만 명 이상 (조선 총 인구의 20%)

"현종" 재위기간, 1670년(경술년)~ 1671년(신해년)에 있었던 "대기근"이다. 1669년 당시 조선 총 인구 516만 명중 100만 명이 "기근ㆍ전염병"으로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1671.12월, 사간원 관리 "윤경교(송시열 계 서인)"가 장문의 상소문에서 언급한 사망자 수이다.)

"경신 대기근"의 결과는 파멸적이었는데, "조선 8도 전체의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상저온으로 "우박ㆍ서리", 때 아닌 "폭설"이 그칠 줄 모르고 내렸고, "가뭄ㆍ홍수"까지 덮쳤다.

"제주도"에서 "함경도"까지, "조선 8도" 전역에 "역병" 등 전염병이 유행하는 등, 말 그대로 "재앙의 종합세트"가 밀어닥쳐, "초근목피"와 "인육"까지 먹는 참상이 일어났다. 이듬해인 1671년에 조정에서 "구휼"에 적극적으로 나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수의 백성들이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굶어서 죽어나갔음"을 알 수 있다.

역사상 전대미문의 "기아 사태"였으며, "임진왜란" 때부터 살아온 늙은이들이 "전쟁 때도 이것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경신대기근"은 "소빙기(小冰期)"로 인한 17세기의 범세계적 "기상이변의 연장선"에 있었으며, 25여년 뒤 "숙종" 재위기인 1695년의 "을병 대기근" 때, 다시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① "경신 대기근" 때, 신하들의 입장

그 해 말 "기아"를 구제하느라, 조정의 창고가 완전히 바닥나자, "현종"이 다시 신하들에게 "청나라 곡식 도입 건"을 꺼낸다. 신하들은 "국가 위신 때문에 불가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명분에 사로잡혀, 반대 논리만 집착하던 대신들을 향해, "현종"은 다시 "이곳의 사세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다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역시 신하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청나라 쌀 도입"은 논의가 시작된 지, 30여년 만에 실행에 옮겨진다. 1695년, 조선에 다시 100만 명이 굶어 죽는 "을병 대기근"이 찾아온 것이다. 1697년, "조선 정부"는 마침내 "청나라"에 양곡 지원을 요청한다. 1698년, "청나라"는 "압록강 변 중강"에 쌀 3만석을 실어와, 1만석은 "무상"으로, 2만석은 "유상"으로 판매했다.

2. 1695 : 을병 대기근 (乙丙 大飢饉)100만 명 이상 (조선 총 인구의 20%)

1695년, 25년 뒤인 "숙종" 재위기간, 1695년(을해년)~ 1696년(병자년)에 있었던 "대기근"이다. 조선에 다시 100만 명이 굶어 죽는 "대기근"이 찾아온 것이다.

① 조선 시대 인구 추정치

 조선 초기 : 약 500 만 명           16C중반 : 약 1,000 만 명           18C 중반 : 약 1,400 만 명

•  19C 초반 : 1,200~1,600 만 명 (삼남지방 50%ㆍ북부지방 30% 정도, 중부지방 (경기도ㆍ강원도) 20%)

② 한양 (서울) 인구

 1428 : 11 만 명           1467 : 38 만 명           1956 : 150만 명           1966 : 379 만 명 

 1976 : 725 만 명         1986 : 980만 명          1996- 1,047 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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