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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서양

독일 : 게르만족 대 이동 (4~6C)ㆍ훈족

by 당대 제일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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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의 대이동"은 375년(빠르면, 300년)~568년까지 지속된 시기이며, "서로마 제국"의 쇠퇴가 진행ㆍ멸망한 이후 시기, "게르만 민족"이 서유럽ㆍ남유럽 방면에 이동한 것으로, 넓게는 노르만인의 이동도 포함시켜, 11C경까지 보는 경우도 있다. 이동 원인으로서는 일반적으로 인구의 증가ㆍ경지의 부족ㆍ타민족의 압박 등을 들고 있으나, 구체적인 대이동의 계기는 "훈족의 서진(西進)"이며, "게르만"의 여러 족속은 보다 좋은 기후ㆍ 비옥한 땅을 찾아, 당시 방위력이 약화되었던 "로마 제국"으로 대거 침입했다.

 

1. 게르만족 대이동 중세시대

4C~ 6C 경에 걸쳐, "게르만 민족관련 여러 민족""서유럽남유럽" 방면에 이동한 것.  4C 후반, "훈족(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의 유럽 침입을 계기로 마침내 게르만 족의 대이동이 일어났다서유럽은 약 2C 동안에 걸친 "민족 대이동"의 물결에 휩쓸렸고, 이내 "중세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 이동원인 : 인구의 증가ㆍ경지의 부족ㆍ타민족의 압박 등을 들고 있으나, 구체적인 계기는 "훈족"의 서진(西進)이며, "게르만" 여러 족속은 보다 좋은 기후와 비옥한 땅을 찾아 당시 방위력이 약화되었던 "로마 제국"으로 대거 침입했다. 침입한 "게르만" 민족은 "동게르만서게르만북게르만" 민족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동게르만 민족 : 반달족부르군트족고트족 등 "훈족" 이동의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프랑스, 에스파냐아프리카" 등으로 이동 대부분 그곳 민족과 동화

서게르만 민족 : 앵글로 색슨족롬바르드족프랑크족 등 "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서 건국

북게르만 민족 : 노르만인 10C 이후에 남하

게르만족 대이동

"게르만족" , "서고트족""로마 황제 발렌스"의 허락을 받고, "도나우 강"을 건너, "제국"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인 "훈족"이 동유럽으로 진출해, "동고트족"을 정복하자 "훈족"의 침략을 피해, "로마제국"의 보호를 구한 것이었다이후 약 200년에 걸쳐,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계속된다.

"게르만족""라인강도나우강" 북동쪽에서 수렵목축농경에 종사하며, 부족 단위의 원시적인 생활을 하던 민족이었다.  부족마다 왕이 있었지만 그 힘은 강하지 않았으며, 전사들은 우두머리에게 충성을 바치고, 우두머리는 전사들을 보호하고 부양해 주는 "코미타투스"라는 전사 조직을 중심으로 전쟁을 치렀다.

"게르만족"의 일부는 이미 3C부터 "로마제국"의 힘이 약해지고, 국경 방위에 소홀해진 틈을 타서 제국 영역으로 들어와, 하급 관리농민용병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적인 이주는 곧 군사적인 침략으로 바뀐다 378, "서고트족"은 반란을 일으켜,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군"을 격파하고, 황제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396, "알라리크"의 지휘 아래 "그리스"를 침범하고, 410"이탈리아"에 침입해, 3일간 "로마" 약탈한다 "로마제국"의 분열(로마제국 동서 분열 참조) 이후, 476"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키는 인물도 "르만족 용병 대장인 오도아케르".

이후 "부르군트족반달족앵글족색슨족동고트족프랑크족" 등도 "제국"을 침입해 각각의 점령지에서 차례로 왕국을 건설한다. 그러나 이들이 세운 왕국들은 대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원래의 근거지와 너무 멀리 떨어진 점, 현지 "로마인"들에 비해 인구와 문화적 수준에서 크게 열세인 , "로마 교회"가 이단으로 지목한 "아리우스파 크리스트교"를 믿어 현지인들로부터 배척당한 점 등이 원인이었다.

다만 이들 가운데, "프랑크족"만은 새로운 지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다.

원래 근거지가 "라인강" 바로 북쪽이라, 이동 거리가 짧았던 데다, "로마 교회"로 개종하고(클로비스), "아리우스파"를 따르는 다른 게르만족으로부터 교회를 수호해 준 덕분에 현지인들의 호감을 샀던 것이다.

"프랑크 왕국""가톨릭교회"와 손을 잡고, "게르만 문화로마 문화크리스트교"를 한데 융합시켜 훗날 중세 유럽 문화의 기틀을 마련한다.

2. 훈족(Huns)흉노족? : 4~ 6C, "중앙아시아코카서스"에서 거주했던 "투르크 민족"이다.

훈족

"고조선" 연방을 서변에서 지키던 소수의 "(산융)"""을 동력으로 하여, 유럽에 들어가서 AD 4~5C "··동유럽"을 포괄하면서, "·서 로마제국"에 맞서는 거대한 "훈 제국(Hun's Empire)" 건설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훈족""카르파티아 분지(판노니아 평원)" 점령과 정착을 계기로, "게르만인"을 비롯한 모든 유럽민족이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옮겨 다니면서, "민족대이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민족대이동" 중에 각처에서 약탈을 자행했는데, 이것이 마치 "훈족"이 행한 것처럼 전해졌다 이 시기 "민족대이동"이 현재의 유럽 각 민족의 정착이 되었다.

"(Hun, 흉노)"은 그사이에 중부 유럽에 "훈 제국"을 세웠는데, "아틸라(Attila)" 때에는 그 영역이 동쪽은 "우랄산맥/스피해"서쪽은 "알프스산맥"북쪽은 "발트해"남쪽으로 "다뉴브강"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아틸라 (Attila)" 외모 : 영락없는 동아시아인

"칭기즈칸"을 제외하고, 세계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목민 지도자를 꼽으라면 단연 "아틸라 (Attila406~45347훈족 최후의 왕가장 강력한 왕)"가 꼽힐 것이다.

그가 이끈 "훈족" 위세는 한때 "로마제국게르만족"을 두렵게 할 정도였다 "아틸라"의 외모에 대해서는 그를 몇 미터 앞에서 본 "프리스쿠스(Priscus동로마 역사가)"의 기록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프리스쿠스""그는 키가 작고 어깨가 넓었으며, 머리는 매우 컸고, 눈은 작았다. 수염이 성기게 나 있고, 머리털은 흰 머리가 섞여 있었다. 코는 납작하였고, 피부색은 엷은 갈색이었다. 출신 족에 의한 특징이 현저하였다"고 하였다.

"아틸라"의 외모는, 서양 초상 그림과는 전혀 달리 전형적인 "동아시아인"이었다 "아틸라"와 그의 정치를 분석적으로 연구한 "엣셰(Katalin Escher)레베딘스키(Lebedensky)"에 의하면, "아틸라"는 언제나 검소하고, 솔직했으며, 매우 겸손하고 관대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황금을 전혀 탐하지 않았으며, 거두어들인 황금을 모두 통치자금에 쓰거나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Huns)""흉노"

"훈족"은 동아시아에 있을 때도 스스로를 "(Hun)"족이라고 했다. "따뜻한 사람"의 뜻이라고 한다 "몽골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고 중국"에서 다른 민족에게 나쁜 뜻 한자를 붙여 작명하는 악습으로 ""을 비하하여, "흉노()"라고 주로 칭했는데, "흉측한 노예"라는 뜻이다 "마천의 사기"에는 뒤에 "흉노(匈奴)"라는 호칭을 썼지만, "훈육(葷粥)훈육(薰育)"으로도 나온다 "맹자"에는 "훈죽(獯鬻)"으로 나온다.

여기서 "(Hun)"""등 여러 글자로 표기한 것은 "흉노족"이 자기를 "(Hun)"으로 호칭한 것을 동일 "음차(音借) 표기"한 것이고, "" 등은 비하하는 의미를 붙인 "꼬리표"이다. 비칭 "꼬리표기"를 떼어버리면, "흉노족"이 곧 "(Hun)"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훈족"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계통의 집단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흉노족훈족은 같은 집단인가? 훈족이 과연 흉노족의 후손인가?" 하는 것이다

"흉노족" "몽골-투르크" 계통의 유목 민족으로, 원래 몽골 초원에 살면서 한때는 중국 "한나라" 위협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한나라의 맹렬한 공격에 "북흉노남흉노"로 분열되어, "북흉노" 멀리 "중앙아시아"로 달아났고, "남흉노""한나라"에 복속했다 "흉노(흉악한 노비(凶奴)"는 극도로 모욕적인 뜻이 담겨있으며, 스스로가 아니라, 그들의 적인 중국인들이 붙인 명칭이다.

3.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 "고조선" 후예 "훈 제국"세워, "유럽 민족 대이동" 폭풍 불러

"고조선 문명"은 한국 문명의 기원일 뿐 아니라, 세계 최초 5대 문명의 하나이다. "고조선 국가"BC 108년 해체될 때, 고조선 서변 국경을 지키던 "기마 민족" 일부는 "중앙아시아" 이동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다시 그중의 일부는 "유럽"에 진출하여 새 국가를 건설하고, 조선 언어문명을 전파했다.

"고조선" 서쪽에 살던 기마족 "산융" / BC 108년 이후, 중앙아시아 거쳐 유럽에  "역공 기마전술""서로마"도 삼켜 / "우랄~ 알프스산맥" 대제국 일구었으며,  쫓겨난 "서고트족", 이베리아 반도로 / "게르만색슨족 "등 연쇄 이동 일으켰다.

"고조선" 문명의 후예인 "훈족(Huns, 중국 호칭 흉노족)"4C 후반에 유럽에 들어가서 거대한 "훈 제국"을 세우고, "유럽 민족 대이동"을 일으키며, 결국 거대한 "서로마 제국"을 붕괴시켰다면 아마 대부분 놀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우선 "훈족""고조선 문명"의 후예인가부터 물을 것이다.

"훈족""고조선" 연방 제국의 서변에 거주하던 "산융(山戎)"이라는 "유목 기마족"인데, 서방을 방위하던 "후국족"이 그들이었다. ""은 군사집단의 뜻이다. 당시 그들은 자신을 반드시 "(Hun)"이라고 불렀다.

"고조선""훈 족장"에게 "두만(만 명 사령의 뜻)"의 직책을 주었다. "두만""총사령관"의 고조선 말이었다. "훈의 두만" 성명은 "단자(檀柘)"였다 성을 "()"으로 쓴 것은 "고조선 왕족" 계열의 정체성을 취한 것이다. "훈족 두만"의 군대는 기병부대였다. 모두 큰 활과 창을 썼으며, 모든 기병이 말 달리며 활을 쏘는 "기사법(騎射法)"의 달인으로서 막강한 군대였다

"두만아틸라(Attila)"을 포함하여 모든 "훈족"의 종교는, 7C "아르메니아 사가 모오제"에 의하면, "탱그리칸(Tangri-quan)""조상신"으로 모셨다. "단군 신앙"이었다. 전쟁 전에는 "소의 어깨뼈"로 점을 치는 예언 점술사의 말을 일단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중국()"()"가 고조선과 친했던 "()"을 멸망시킨 후인 BC 771"""()"를 공격하여, 수도 호경(鎬京)을 점령했다.

""""에 패배하여 동쪽으로 천도하는데, 이후부터 "동주(東周)"시대가 시작되고, 조정은 약화되어 군웅이 할거하였다. BC 664, 고중국 "동주""()황공(桓公)""()()()()()" 등과 "고 중국 연합군"을 편성하여 "고조선"을 공격해서, "주 전쟁"이 일어났다. "산융()고죽불령지불도하""고조선 연합군"을 편성하여 "고 중국 연합군"을 격퇴하였다. ""이 전쟁 때, "고조선 연합군"의 주력이었는데, """고조선 후국"이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고조선 후국" 멸망 후, "두만"의 아들 "모돈(冒頓모돌)"BC 3C"훈족"의 독립을 선언하고, "탱그리고도단우(撑犁孤塗單于)"라는 호칭의 황제에 올랐다.

"훈족" 황제 호칭을 "단우(單于)"라 쓰고, 중국한국에서는 "선우"라고 읽는데, 원래는 "단우"라는 고조선훈어이다. "= = = 하늘"의 뜻이며, "= 황제"의 뜻이다. "단우 = 천왕(天王)천제(天帝)"의 뜻이다 "모돈"은 자기가 "단군 조선의 계승자임"을 주창한 것이었다.

"고조선" 연방 제국의 서변에서 "고조선"을 지키는 역할을 해오던 막강한 유목 기마 민족 "산융" "위만조선 멸망(BC 108)" , "한나라 무제(武帝)"가 이끄는 새 기병 부대의 총공격을 받고 패배하여 "몽골고원"으로 후퇴하였다.

BC 57년경, 왕위 계승문제로 권력투쟁이 일어난 "흉노""동흉노(호한야(呼韓邪) 단우)서흉노(질지(郅支) 단우)"로 분열되었다. 두 흉노는 전쟁을 하여, "서흉노"가 패배하였다 "동흉노""중국"에서 "후한(後漢)"이 수립된 후, 다시 남북으로 분열되어, "북흉노"AD 72"후한"의 공격을 받고, 서방으로 이동하여 "몽골고원"을 떠났다.

"남흉노""()" 장군들이 AD 349년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흉노족"을 대대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했으므로, 서방 이동을 감행하게 되었다 "흉노족"은 서방으로 이동하여, "카스피 해" 북쪽 "볼가강카마강"이 합류하는 지역의 초원지대에서 상당 기간 정착해 유목생활을 하면서 힘을 배양했다.

"흉노족"은 한발이 장기화되어 목초지가 메마르게 되자, AD 375년경 "볼가강"을 건너서 "동유럽 판노니아 평원"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고트(Goths)"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고 신민으로 삼았다.

"(흉노)""동아시아 식 경기병(輕騎兵) 부대강력한 활질풍노도 같은 기동성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기습/돌격위장 후퇴"로 적의 튼튼한 대오를 분산시킨 후, 전격적 급반전 역공의 "기마전술" 등을 유럽 민족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연속 패하였다.

"훈족""카르파티아 분지(판노니아 평원)"를 정복하여 이곳을 자기의 정착지로 삼고, "훈족의 땅(The Land of HunsHungary)"이라고 칭하였다 "가리(gary)"는 흉노어로 ""의 뜻이었다. "가리"는 현대 몽골어에서도 ""의 뜻이다.

"훈족"은 이어서 "서고트족"을 공격하여 내쫓았다.

정착지를 빼앗긴 "서고트족"AD 378"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서로마 영토"로 이주해서 자치권을 획득했다가, 410년에 4일간 "로마"를 약탈하고, "이베리아 반도"로 이동 정착하였다"프랑크족""갈리아(, 프랑스)" 지방의 북부에, "부르군드족""갈리아" 지방의 남부에 이동 정착하였다.  "랑고바르드족""이탈리아" 북부로 남하 이동하였다"라인강" 유역에 거주하던 "반달(Vandal)""이베리아 반도"를 통과하여, 지금의 "아프리카 튀니시아 지방"에 정착해서, 455"로마시"를 습격 약탈하기도 하였다"유트족색슨족"은 바다를 건너, "브리타니아 섬"에 들어가 선주민 "켈트족"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각각 "소왕국"을 세웠다"수에비족""이베리아 반도"를 통과하여, 지금의 "포르투갈""수에비 왕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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