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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서양

역사 기본 요약 : 독일 (Germany) ①

by 당대 제일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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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Germany)"은 1871년 "비스마르크"가 "통일 독일제국"을 건설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1914.07.28~1918.11.11 : 4년 4개월)"의 패배 후, 많은 영토와 모든 식민지를 잃었다. "세계경제 대공항 (1929~1939)"으로 인한 자본주의 체제가 부실한 "독일"은 심각한 상태에 빠진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1939.09.01~1945.09.02 : 5년)이 유발되었다.

 

1. 독일 역사의 흐름

갈리아 지역 동 프랑크 작센 공국 신성 로마제국(오토 대제) 왕위 쟁탈전 종교개혁 30년 전쟁 프로이센 7년 전쟁미국 독립전쟁 지원 나폴레옹비스마르크 세계 제1차 대전 (1914) 독일제국 붕괴 (1918) 바이마르 공화국 (1919) 히틀러 등장 세계 제1차 대전 (1939)

고대 게르만족 : 유목생활을 하던 게르만족 중 일부가 "갈리아 지역(, 프랑스벨기에서부 북부 이탈리아 일부)"에 정착한다. 게르만족이 세운 왕국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나라가 "프랑크 왕국"이었다.

"프랑크 왕국""프랑크족"이 세운 나라로, 프랑크족은 "앵글로색슨족부르군트족동고트족" 등과 같이 "라인강다뉴브강"을 넘어온 부족들(게르만)의 이동에 의해 연쇄적으로 이동한 "비라틴 부족들" 중 하나이다.

6C : "게르만족의 이동 시기"가 정리되면서, 현재 "프랑스 (피레네산맥까지)독일 (엘베강까지)ㆍ이탈리아 (로마)"에 이르는 거대한 "프랑크 왕국"이 자리를 잡는다.

481~ 961 : "프랑크" 왕국의 흥망 /  751 : "프랑크 왕국"은 실력자 "카롤루스 가문"에 떨어진다.

481~751 : 메로빙거(Merovinger) 왕조

751~843 : 카롤링거(Carolinger) 왕조 카롤루스 대제

962~ 1806 : 신성 로마 제국 (Heiliges Römisches Reich der Deutscher Nation)

독일어 "라이히"(Reich)라는 일반명사로는 "국가나라왕국제국영토(세력권)(생물학)" 등을 뜻한다.

1701~1918 : 프로이센 왕국(Königreich Preußen)쾨니히라이히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1(호엔촐레른가()의 초대 국왕)"01.18"칼리닌그라드"에서 건국

"호엔촐레른 가"가 지배했던 "독일 북부 지역"에 위치한 왕국 /  "독일 제국"의 중심적 역할을 한 국가

1871 : 독일국(Deutsches Reich)독일 황제 명칭 선포

"빌헬름 1(프로이센 왕국 7대 국왕)비스마르크 수상""보불전쟁"의 승전 겸 왕국의 성립 170주년 기념일인 1871.01.18일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국 수립독일 황제"의 명칭을 선포했다. 단일 국가가 등장한 것이다.

1871, "빌헬름 1수상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 제국""지금 독일 지역프로이센알자스로렌 지역"을 합쳐 성립된 때이다.

이전의 "독일"은 여러 개의 "영방국가"로 나뉘어 있었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프로이센" 지역은 "폴란드", "알자스로렌""프랑스"에 넘어갔다.

1918.11 : "독일 11월 혁명독일 제국의 1차 세계대전 패전바이마르 헌법(Weimarer Verfassung 1919.08.11)공포" 이후로도 "독일국(Deutsches Reich)"은 공식 국명

"독일 제국(Deutsches Kaiserreich)"이란 1차 세계대전 항복에 이르러서야 통용되는 사후적인 명칭이다.

1919~1933 : 바이마르 공화국(Weimarer Republik)

"바이마르"라는 이름은 공화국의 헌법제정단이 처음으로 회의를 개최한 "바이마르" 도시 이름에서 따왔다.

1933.02.27 : 3 라이히

"바이마르 공화국을" 탈취한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은 자신들의 정치 체제를 "3 라이히(Drittes Reich)"로 불렀다. "나치""3 라이히"라는 명칭을 법제화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1 라이히(신성로마제국)2라이히(독일제국)" 계승한다는 선언이었다.

1943.06.26 : 대독일국(Großdeutsches Reich)

"나치당""대독일국(Großdeutsches Reich)"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45,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고, 연합군이 독일을 점령하면서 "독일국"이라는 명칭은 완전히 폐지되었다.

 

2.  역사의 시작을 언제로 볼것인가? ( 시작점은 논란의 대상이다 )

 800 : "샤를마뉴 대제(카를 대제)"가 즉위한 시점

 843 : "베르됭 조약" 이후, 세워진 "동 프랑크" 때 

( 베르됭 조약 : "카를 대제"의 아들인"루도비쿠스1세 피우스"의 세 아들이"베르덩"에서"카롤링거 제국"을 세 왕국 (동 프랑크중 프랑크서 프랑크) 로 분할 )

 911 : "콘라두스 1" "독일 왕국"의 왕으로 뽑힌 때

 936 : "오토 대제(오토 1)" "독일의 왕"으로 뽑힌 때

 962 : "오토 대제"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제국 황제"로 인정받아, "신성 로마 제국"이 성립한 때

"동 프랑크 왕국" 이후, 911"동 프랑크""4개 게르만 부족(프랑크슈바벤바이에른작센)" 모여, "독일 왕국"을 세웠을 때이다 925,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던 "로타링기아 지역""독일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하인리히 1""오토 왕조"를 창건한 뒤, 아들 "오토 1""서로마 제국 황제"가 되어, "독일 왕국"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이탈리아 북부" 지방까지를 통치했다

"오토 왕조"에 이어, "잘리어 왕조와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통치 아래서, "기독교(로마 가톨릭교)""엘베 강" 너머로 전파되었으며, "엘베 강" 동쪽 지역도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엔슈타우펜 왕조"는 곧 "벨프 가문"과의 대립으로 권력을 상실하고, "프랑스, 오스리아의 성장종교 개혁30년 전쟁" 등을 계기로, "독일""오스트리아프로이센바이에른" 등을 비롯한 2,000개에 가까운 "영방국가"로 쪼개졌다.

남부의 "오스트리아"는 명목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국"을 겸하면서, 북동부에서 성장하던 "프로이센"과 대립하였다1806, "신성로마제국""프랑스 나폴레옹 1"의 정책으로 해체되고, "독일" 서부 지역에서는 "나폴레옹 법전"을 받아들인 "라인 연방"이 세워져, "프랑스"의 간섭을 받았다.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이후, "영국러시아"의 주도로 독일 지역에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포함한 39개의 국가들이 모인 "독일 연방"이 세워졌다가, 1871"빌헬름 1수상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통일된 "독일 제국"이 세워졌다.

"독일 제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기존의 열강들과 대립하다가, "1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으나 결국 패배하고,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조항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호엔촐레른 왕가"가 추방당한 뒤, 세워진 "바이마르 공화국"UN에 가입하고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세계 대공황"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1933, 경제난의 책임을 "유대인집시"에게 전가한 "히틀러나치"는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집권했으며, "3제국(나치 독일)"을 선포했다.

"나치" "베르사유 조약"을 폐기하고,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 등을 무단으로 점령했다. 1939"중앙 유럽"을 지배하기 위해, "이탈리아일본"등과 손을 잡고,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으며, 수백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학살했다.

1945, "나치 독일"은 멸망했으며, "독일 지역""영국, 프랑스, 미국, 소비에트 연방"이 분할하여, "영국·프랑스·미국령""독일 연방 공화국(서독)", "소비에트 연방령""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으로 분단되었다.

분단된 "독일"의 두 나라는 "나치 독일"의 잔재를 청산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나갔으나, "동독"은 재정 관리에 실패하여 곧 경제가 악화되었다.

결국 "동독"은 합의를 통해, 1990.10.03"독일 연방 공화국의 주"로 가입하는 형식으로 흡수되었고, 독일은 재통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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