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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서양

역사 기본 요약 : 영국 ( United Kingdom )

by 당대 제일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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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United Kingdom)"의 일반 명칭은 "영국 연합왕국 (United Kingdom)"이고, 정식 국호는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으로, "브리튼"을 이루는 "잉글랜드 (England)ㆍ스코틀랜드 (Scotland)ㆍ웨일스 (Wales)ㆍ북아일랜드 (Nothern Ireland)"로 구성되어 있다.

 

1. 영국 연합 왕국 = 잉글랜드 (런던) +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 웨일스 (카디프) + 북 아일랜드 (벨파스트)

BC 6000년 경 : 대륙에서 분리

BC 2000년 경 : 스톤헨지 (농사 결과를 좌우하는 태양을 숭배하던 종교적 공간)

BC 55: 카이사르의 로마 군대가 영국 땅을 침략하지만, 큰 성과를 보지 못한다.

43: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40,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브리튼 섬"을 재침략잉글랜드 정복

122: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켈트족"의 저항을 대비하기 위해,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세운다. 그 덕에 "브리튼 섬" 남부는 300년간 평화를 유지한다.

3C : "켈트족"의 침략으로,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무너져 혼란해지면서, 407"로마 점령"시대가 끝이 난다. "로마"의 통치는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심어주었고, 도시마다 광장사원대중목욕탕 등 웅장한 "로마식 건축물"이 세워진다 "로마군"이 철수한 이후, "영국" 땅은 계속해서 주변의 침략을 받는다.

영국

2. 287년을 시작으로 "게르만 계"의 "앵글로색슨족 해적"들이 "브리튼 섬"을 침략한다.

주변 침략자들로부터, 땅을 지키기 위해 "브리튼인"들은 "앵글로색슨족 전사"들을 "용병"으로 불러들인다. 도움 받으려고 부른 용병들이 오히려 "브리튼 섬"을 장악하여, "앵글로색슨족"은 땅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원래 "브리타니아"라고 불리던 "브리튼 섬"은 이후, "앵글로인의 땅"이라는 뜻의 "잉글랜드"로 불린다. "앵글로색슨족"이 지역을 나눠, "7개의 작은 왕국"을 세운다. 이후 200년간 "7왕국"은 끝없는 전쟁을 벌인다.

8C부터 "대서양"에는 "바이킹"이라 불리는 "북유럽 해적 데인인"이 출몰했다.

"앵글로색슨 왕국"들에게 곡식ㆍ재물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러다 "7왕국" 중, "웨식스의 알프레드 대왕"이 "바이킹족"의 식량 줄을 끊는 전략으로 "바이킹족"을 굴복시킨다.

"브리튼 섬"을 통일한 "알프레드 대왕"은 국가의 기반을 잡는데, 막대한 공헌을 한다.

그 뒤를 물려받은 "에드워드"는 북방에서 살던 "바이킹족"을 정복하고, "웨일스ㆍ스코틀랜드"에 살던 "켈트족"도 복종시켜, "브리튼 섬"의 명실상부한 통치자가 된다.

3. 1015년, "덴마크 왕자 크누트"가 "잉글랜드ㆍ노르웨이ㆍ덴마크"를 모두 정복해, "북해제국"을 건설했으나, 그가 죽은 후, 다시 앵글로색슨족인 "에드워드"가 국왕이 되면서, "덴마크인의 영국통치"는 막을 내린다.

1066년, 역사상 최후의 "영국" 정복전쟁인 "헤이스팅스 전투"가 펼쳐진다.

"헤럴드(잉글랜드 왕)"와 "윌리엄(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에서 온 자)"의 싸움인데, 결국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하면서 "노르만 왕조"가 들어선다. "헤이스팅스 전투" 이후로는 그 누구도 "영국"을 정복하지 못했다.

"노르망 왕조의 윌리엄 1세"는 토지를 하사받은 모든 이는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는 "솔즈베리의 서약"을 통해, 중앙집권적 "봉건국가"의 토대를 세운다. 역사가들은 이때부터 영국의 정통역사가 시작됐다고 표현한다.

100여 년간 "잉글랜드"를 통치한 "노르망 왕조"가 끝나고, 21세 젊은 나이의 "헨리 2세"가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면서, "플랜태저넷 왕조"의 시대가 시작된다. "헨리 2세"는 "아일랜드ㆍ웨일스ㆍ스코틀랜드"를 복속시켰고, "프랑스"를 거의 점령해, 왕권을 크게 강화한다. 또한 오늘날 "영국헌법"의 기초가 된 "코먼로"를 제정하면서, 강력한 사법개혁을 추진한다.

이어 영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사자왕 리처드 1세"가 국왕이 된다.

그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대 번영을 이끈 "불세출의 영웅"으로 평가된다. 그는 "3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해, 수차례 전투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과거 그에게 모욕을 당했던,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5세"에게 포로로 잡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넘겨졌고, 감옥에 갇혀 지내게 된다. "하인리히 6세"가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자, 용맹한 그를 숭배하던 국민들이 모금하였고, 결국 왕이 귀환한다.

※ 리처드 1세 (1157~1199ㆍ42세)

재위 시 본국인 잉글랜드에 체재했던 기간이 불과 6개월이었으므로 통치력에 대해서는 뚜렷이 알려진 바가 없다. 치세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고 통치자로서 무능하였으나, 용감ㆍ관용 등을 겸비한 중세의 전형적 기사였다.  "아이반호"에서는 리처드가 동생 "존"의 폭압적인 정치에서 나라를 구하고, "의적 로빈훗"과 의형제를 맺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 산적이 늘어난 것은 "리처드"가 부과한 과중한 세금 때문이었다.

※ 로빈 후드 (Robin Hood)

여러 잉글랜드 민담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ㆍ민담에서 로빈 후드는 60여명의 호걸들과 함께 불의한 권력에 맞서고 "부자들을 약탈하여 가난한 이를 돕는 의적"으로 그려진다.

4. 1295년, "전쟁 군자금" 마련을 위해 "에드워드 왕"이 의회를 소집하는데, "영국 의회구성"에 모범이 되었다고 하여, "모범 의회"라고 불린다. 최초 의회의 탄생은 영국 정치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337년, 풍요와 번영을 누리던 "영국 에드워드 3세"는 영토 분쟁ㆍ왕위계승권 등을 문제 삼아, "프랑스 북부"를 침공하고, 유럽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인 "백년 전쟁"이 시작된다. 1번째 대전투는 "지중해"에서 벌어졌는데, 섬나라 영국함대가 해상 전투력을 발휘해, 승리한다. 6년 뒤, "영국"이 "노르망디(프랑스 북부)"에 상륙 후, "크레시 지방"에서 맞붙게 되는데, 영국군이 구릉지였던 "크레시의 언덕"을 선접하고, 원거리 "장궁 공격"을 펼치면서, "프랑스"가 치명타를 입는다. 당시 최첨단 무기였던 1.5m짜리의 "장궁의 활"은 170m 거리에서도 적군의 갑옷을 관통했다.

결국 프랑스군은 10,000명이 전사했으나, 영국은 단 250여 명만이 전사했다. 이것이 "백년 전쟁" 최초의 대규모 전투인 "크레시 전투"이다. 이후 "백년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프랑스 중요항구 "칼레 항"이 영국의 점령지가 된다. 이때 공포의 흑사병이 유럽전역에 퍼지기 시작한다.

휴전 이후 전투에서, 프랑스가 다시 대패하고, 국왕이 포로로 잡혀, 1360년 "브레티니 조약"을 맺는다. 이후 장기간에 걸친 영국군의 침략ㆍ약탈로 프랑스인들의 반영감정이 폭발한다. 이때, 초토화된 프랑스를 구원할 영웅이 탄생하는데, 바로 "잔 다르크" 이다.  이후 "마녀사냥"에 희생된 "잔 다르크"는 화형장의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 잔 다르크ㆍ성녀 요안나 아르켄시스 (Jeanne d'Arcㆍ1412~1431ㆍ19세(만17세)ㆍ흰 갑옷)

프랑스 북동부 지방 "동레미"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백년 전쟁에 참전하여,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왕세자였던 "샤를 7세"가 프랑스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전세가 자신에게 기울었다고 판단한 "샤를 7세"는 잉글랜드와 평화협정에 몰두하고자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녀는 "샤를 7세"의 의견을 끝까지 반대하여 잉글랜드가 항복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자신이 지시를 내린 적도 없었음에도 적진을 공격하는 그녀의 행동이 계속되어 협정에 찬물을 끼얹자 그녀에 대한 분노가 점점 커진다. 1430년 "오를레앙"이 잉글랜드에게 함락된 것이다. 게다가 "오를레앙"을 지키던 그녀도 포로가 되고, 잉글랜드는 이를 이용하여 "샤를 7세"에게 몸값을 요구하였으나 지금까지 자신에게 많은 승리를 안겨준 그녀를 매정하게도 몸값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버린다.

5. 1453년, 영국이 "칼레 항"을 제외한 프랑스 내의 모든 땅을 잃고, 쫒겨 난다.

1455년, "백년전쟁"이 끝난 후, "랭커스터 왕조"의 통치가 시작된다.

왕조 3대째인 "헨리 6세"는 나이가 어려서 "요크 공작 리처드"가 섭정을 맡는다. 이후 "헨리 6세"에게 왕자가 태어나자, 쫒겨났던 "리처드"가 내전을 일으킨다.

"랭커스터 가문" 문양은 "붉은 장미", "요크가"는 "흰 장미"였기 때문에, "장미 전쟁"이라고 불린다.

30년간 이어진 "장미전쟁"의 결과, "요크 왕조"가 들어섰으나, 내분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1485년, "랭커스터가" 외손인 "헨리 튜더"가 "요크 왕조"를 격파하고, 왕위에 오른다. "튜더 왕조"가 시작된다. 1503년, "헨리 7세"가 "요크 왕조"의 "엘리자베스"를 왕비로 맞이하면서, "장미전쟁"의 양 당사자가 함께, "튜더 왕조"의 계승자가 된다.

6. "헨리 8세"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한다.

이때부터 잉글랜드 국교는 "잉글랜드 성공회"가 된다. 이후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기 45년간, 잉글랜드는 국빈국에서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했고, "대영제국"으로 발전할 토대가 마련된다.

이 시기에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탄생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해적들에게, 신대륙에서 금ㆍ은ㆍ보화를 싣고 들어오는 "스페인 상선"을 공격하도록 한다당시 가장 유명한 해적은 "존 호킨스ㆍ프랜시스 드레이크 (존의 사촌)"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들과 함께, 강력한 "해군 건설 작업"에 들어갔고, 눈부신 활약으로 영국함대는 세계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다. 이로써 영국은 해상권을 장악하고,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ㆍ신항로 개척"에 합류한다. 이 시기에는 서로의 존재도 모른채 살아가던, 각 문명권이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이후 자식이 없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을 끝으로 "튜더 왕조"는 막을 내린다. 이어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조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한다. 이에 "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가 결합하면서, "대 브리튼 왕국"의 기초가 확립된다.

1607년, 잉글랜드는 "북아메리카"에 "제임스"이름을 딴 최초의 식민지 "제임스 타운"을 건설한다. 이는 잉글랜드 식민지 개척사업의 신호탄이 된다.

7. "제임스 타운"을 포함한 13개 주가 영국의 식민지에 속했는데, 이로 인해 줄무늬 13개로 이뤄진 비공식 국기가 탄생했고, 이는 미국 국기의 유래가 된다.

16C 말부터, 영국에서는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는데, "청교도"는 "잉글랜드 국교"에 남아있던 "가톨릭"의 전통을 완전히 없애고, 종교의식을 간략히 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왕권신수(신이 내린 왕권)"을 신봉하던 "찰스 1세"가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국왕과 의회가 정면으로 대립한다. 이에 1642년 "왕당파ㆍ의회파"의 "잉글랜드 내전"이 시작된다.

8.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가 "찰스 1세"를 처형하고, "공화제 국가"를 수립한다.

이로써 영국은 "절대 왕정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민국가시대"로 들어선다. "크롬웰은 "스코틀랜드ㆍ아일랜드"를 정복하고, 1653년 "호국경(왕을 섭정하던 귀족)"이 되어 세 나라를 통치한다.

1660년, 왕정이 복구됨에 따라, 망명생활을 하던 "찰스 2세"가 "런던"으로 돌아온다. "찰스 2세"의 뒤를 이은 "제임스 2세"가 (신교도로 이뤄진 영국 사회에서) 자신이 "가톨릭교도임"을 공개 선언한다. 또한 의회 동의 없이 세금을 걷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의회와 갈등을 빚는다. 의회는 오랜 기간 내전으로 이뤄놓은 "종교개혁"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

이로써 "명예혁명"이라고 불리는 정변이 시작된다.

1688년, "제임스 2세" 폭정에 불만을 가진 의회가 "네델란드 총독 윌리엄ㆍ메리" 부부를 소환하였고, 1689년 "제임스 2세"를 폐위시키며, "윌리엄 부부"를 왕위에 추대한다.

이때 부부가 승인한 "권리장전"은 법률로 왕권을 제약하고, "국왕의 계승"까지 의회가 결정하는 의회중심의 "입헌군주제"를 확립한다.  이로써 국왕 1인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는 끝이 난다.

1707년, "연합법"에 의해, "잉글랜드 왕국ㆍ스코틀랜드 왕국"이 합병한다. 이로써 1명의 군주로 통치되는 "왕국연합ㆍ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탄생한다.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의 수도는 "런던", 의사당은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된다. 1714년, 후계자가 없던 "스튜어트 왕조"가 막을 내리고, "독일 하노버가"의 "조지 1세"가 왕위를 계승하여, "하노버 왕조"가 시작된다. 1721년, 왕의 신임을 받던 "로버트 월풀"이 "제1 재무장관"이 되면서 역사상 최초의 총리가 탄생한다.

9. 1775년을 시작으로 "영국"과 "13개 식민지의 전쟁", 즉 "미국독립혁명"이 시작된다. 18C 말, 영국을 필두로 "미국ㆍ프랑스ㆍ독일" 등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다.

기계 기술자였던 "제임스 와트"에 의해,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세상은 크게 변화한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산업의 진화와 교통발전을 가져오면서, 전대 미문의 경제발전을 이룩한다. 1801년, "아일랜드"가 연합왕국에 편입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이랜드 연합왕국"으로 바뀐다.

1837년, 유럽의 대모,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면서,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된다.

19C는 "빅토리아 시대"였는데, 이시기 활발한 산업혁명과 막강한 해군력, 식민지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대영제국"이라 불린다. 영국의 완벽한 "입헌군주제"로 인해, 국왕은 그저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해가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한다.

19C 말부터, 주요 자본주의국가에서 "전력 혁명"인 "제2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

이에 "미국"이 세계 1위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했고, "독일"이 그 뒤를 바짝 뒤쫒게 된다. 경제 발전에 힘입은 "독일"이 해외시장 개척에 발 벗고 나서면서, 나라간 충돌이 심화됐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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