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Pyramidㆍ피라미스(고대 그리스어) ㆍ메르라 (이집트어)"는 정사각뿔 꼴의 고대 유적을 가리킨다. "이집트 나일 강" 서쪽의 "바위 고원"에 세워진 것으로, "피라미드 시대"라 부르는 제3왕조(BC 2700?)~제6왕조(BC 2200?)의 "고왕국(古王國)시대 왕묘"로서, 크고 작은 9개 피라미드가 있다. "대ㆍ소 피라미드" 140여 개가 건설됐으며, 현재 위치가 확인된 것은 80여 개이다. 대부분은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남북 약 90km인 "나일 강" 서안 사막연변에 있다.
1. 이집트 기자의 "쿠푸 왕(王)"의 피라미드 (H= 137mㆍL= 230.3m)
① 이집트 왕 파라오를 위한 1인용 무덤이라 추측하지만, 왕의 관이 발견된 적은 없음. 공사 : 하루 10만여 명이, 1년에 3~ 4개월씩 20여년(총 2,000여 일)동안, "연인원 2~3억 명"이 동원된 대규모 공사로서, 용도는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
② 높이 : 146.5m (현재 137m) 밑변 1변 길이 : 230.3m / 계단 : 돌을 쌓은 단층의 수는 원래 "210 계단"이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은 "203 계단"이다.
③ 돌 (화강암): 평균 2.5ton의 돌이 235~268만 개나 사용ㆍ"카이로" 남쪽 850km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 강"을 통하여, 운반 / 석회암 : "모깔담"과 기자 남동쪽 15km 지점의 "엘뚜르" 등에서 캐내어, 이용 / "카프레 왕" 피라미드의 기초를 쌓은 데에는 "이디오피아 산"의 다양한 색깔의 돌을 사용하였다. 겉 표면에 있었던 "돌 17만여 개"는 "아랍ㆍ터키 점령 하"에서 건축자재로 재활용 되느라 벗겨졌다. "칼리프 알마문"이 뚫은 구멍을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으며, 원래의 입구는 이보다 위쪽 10m 지점에 있다.
2. 피라미드의 신비
원래 "파라오 (Pharaohㆍ왕ㆍ최고 통치자)"는 "큰 집"이라는 뜻으로, "왕의 궁정ㆍ왕궁"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왕"과 동격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파라오"는 "호루스의 현신"으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이 아닌 "신"으로 숭배되기도 하며, "파라오"가 죽으면 육체를 모두 소진하고 영혼으로서 다스린다고 생각했기에, "파라오"가 영원히 사는 궁궐의 의미로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① "피라미드 높이"의 정확히 2/3되는 지점에 "기의 공명"이 발생 ② "피라미드" 네 모서리는 정확히 "동서남북 4방위"를 가리키고 있음 ③ 물의 분자구조를 바꾸어, 6각수로 변함
④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유도 ⑤ "히란야" 위에서는 부패를 촉진하는 곰팡이나 균의 발생을 억제한다.→ 우유는 요구르트나 치즈로 변함 ⑥ 식물의 씨앗 발아와 생장을 촉진ㆍ식품의 맛을 변화시킴ㆍ탈수현상이 일어난다.
3. 스핑크스 (Sphinxㆍ교살자ㆍH= 20mㆍL= 57m): 그리스 신화의 상상 괴물
그리스어로 "교살자"라는 의미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괴물이다. 여자의 머리ㆍ가슴을 지녔고, 몸은 사자이며, 등에는 새의 날개를 달고 있다. 괴물 "에키드나"와 "튀폰(또는 키마이라와 오르토로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서, 형제인 "네메아의 사자"가 "네메아 땅"을 황폐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스핑크스"는 "펠롭스"의 아들 "크리시포스"를 범한 "테베의 왕 라이오스"의 죄에 대해, "테베 시민들"을 징벌하기 위해 "헤라"가 파견하였다.
"스핑크스"는 "헤라"의 명령을 받들어, "테베" 근처의 "피키온 산"으로 갔으며, 거기에 있는 벼랑 위에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붙잡고, "아침에는 네 발, 점심때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기묘한 수수께끼를 내서 풀지 못하는 자를 가차 없이 죽이는 방식으로 테베 시민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하지만 "오이디푸스"가 나타나, 지혜롭게 수수께끼를 풀자, 굴욕감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슬피 울며 자살하고 만다. "테베 시민들"은 기쁘게 환호하여 "오이디푸스"를 자신들의 왕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집트"에서 기원하여, "시리아ㆍ아나톨리아ㆍ지중해ㆍ그리스 본토"등지로 전파되었다. 처음에는 "그리스"에서 죽음을 감시하는 신화적인 존재로서, 액막이의 목적으로 방패ㆍ묘 등에 조각하였는데, 후에 "테베"의 전설을 둘러싸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4. 피라미드 : 쿠푸 왕 (王)ㆍ카프레 왕 (쿠푸 왕 아들)ㆍ멘카우레 왕 (카프레 왕 아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건조물인 "피라미드"는 "고 왕국의 전성기(BC 2700년 경)에 만들어 졌으며, 이집트 전체에 "80기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이다. "쿠푸 왕(王)의 피라미드"는 역사상 최고의 미스터리로, 지구촌 최대의 불가사의한 건축물이다. 주변에 "카프레 왕(쿠푸 왕의 아들)ㆍ멘카우레 왕(카프레 왕 아들)"의 것이 있다. "카프레 왕(쿠푸 왕의 동생)"은 56년간 통치하였다. "쿠푸 왕ㆍ카프레 왕"은 106년간을 통치하였다. "멘카우레 왕"은 "신전"을 다시 열고, "노역"에서 해방시켜 생업에 종사토록 하였으며, 종교적인 관습을 실행하도록 허용하였다.
① 최고는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 "제세르 왕"의 계단 피라미드로, "재상 임호테프"가 설계한 것이다.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 보다 한층 발전한 "방형추체(方形錐體) 형태"를 갖추었는데, 주위에는 "현관(顯官)들의 마스타바 분묘"가 둘러싸고 있다. 크기ㆍ설계의 치밀함ㆍ주변 환경과 조화되어 있고, 천문학적 지식을 집대성하고 있는 피라미드는 "심오한 우주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건설되었다"고 한다. "헤로도투스(BC484(?)~ 430(~420)ㆍ그리스 역사가)"의 기록에 따르면, 50년간 통치한 "쿠푸 왕"은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제사를 금지시키고, 자기만을 숭배토록 했다.
② 돌을 옮길 "둑길"을 만드는 데만도 10년이 소요되었는데, 전체 길이가 1km, 폭이 18m, 가장 높은 곳의 높이가 14.4m였다. (돌 길이는 90cm이하가 없다)
이 길에 여러 가지 동물의 모습을 새겨 장식하였고, "다듬은 돌"로 축조하였다. 돌을 잘라 나르고, 지하 수로를 파는 데만도 적잖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지하의 "쿠프 왕"의 현실은 "나일 강"의 물을 운하로 끌어드린 물로, 마치 "섬"처럼 만들어 졌다.
③ "상형문자"로 공사에 동원된 일꾼들이 먹어치운 "무ㆍ양파ㆍ마늘"의 양이 기록되어 있다.
액수는 은 1,600 달란트에 해당되는데, 이것이 맞다면, 공사용 자재ㆍ노무자들의 주식ㆍ부식ㆍ작업복 등을 지급하는데, 따른 비용은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달란트 : "1달란트"는 20~40kg정도이며, 보통은 34kg정도라고 한다. "금 1달란트"의 가치는 당시 장정 1명이 약 20년 동안 받을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로, 현재 시세로 약 13억 원이다.)
④ 가장 경이로운 점은 아마 그 거대한 "구조물의 방향"일 것이다.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각도의 오차는 "진북(眞北)"에서 5분밖에 벗어나 있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어서, "우연의 배열 결과"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또한 현대 20세기의 건축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정확성은 도저히 인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다. "상승 통로(105m 높이)"는 완벽한 배열에서 1cm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 "피라미드"가 건조될 당시 "천구(天球)의 북극"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용자리의 알파별"을 지표로 삼아 이 통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놀라운 배열로 미루어 보아,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해시계"이고, "달력"이고, 동시에 "천문대"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⑤ "그림자 길이"를 이용하여, 하루의 시간 계산
원래 높이는 147m지만, "동지" 무렵에는 80m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봄에는 길이가 거의 "0"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그림자 길이"를 이용하여, 하루의 시간을 재고, 계절을 식별하고, 한해의 정확한 길이를 측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5. 피라미드ㆍ메르 인 (이집트 인)
① 상부가 편평하고, 옆이 경사진 무덤 "마스타바" 축조 시작
"왕조 시대"로 들어서자, "이집트인"들은 "진흙 벽돌"로 상부가 편평하고, 옆이 경사진 무덤 "마스타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피라미드"의 기원이다. "마스타바"는 "사자(죽은 사람)"가 환생할 때까지, 영원한 삶을 누리는 "직사각형의 묘"다. "마스타바"의 지상부나 지하부에 몇 개의 방이 있는데, 한 방에는 "죽은 사람의 미라"를 안치하고, 다른 방에는 "사자"를 위한 물건들을 넣었다. 세계 최초로, "돌"을 가공해 만든 "피라미드"는 "사카라 제3왕조(BC 2600년 경)죠세르 왕 시대"에 이뤄졌다. (이 웅대한 건축물을 "피라미드 복합 건축물"이라고 부른다. 묘지는 물론 신전이나 부속 건물을 비롯해 장례와 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구조다.)
"제4왕조"에 이르면, "피라미드"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계단식 피라미드"의 건축술을 숙지한 건축가들은 가장 단순하면서, 순수한 형태로, 하늘을 직접 향한 모습의 "피라미드"를 현실화시킨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는 바로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피라미드 건설"은 "4~ 5왕조"에 절정을 이루고, "13왕조"까지 지속된다. "피라미드"의 건설 시기는 "이집트"가 "정치적ㆍ경제적"으로 절정기에 달할 때였다.
② 파라오 (Pharaohㆍ왕ㆍ최고 통치자)
"파라오"는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했고, "중앙집권체제"에서 사회는 안정돼 있었다. 이 시대가 500년 쯤 계속되다가, 실질적인 지배자가 "파라오"에서 "지방 제후"로 바뀌기 시작했다. "파라오"의 권위는 약해지고, "피라미드"는 약탈당하고, 파괴된다. 심지어 자신이 건설하는 무덤의 부장품을 확보하기 위해, "파라오" 스스로가 "선대 피라미드"를 공개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쿠프 왕의 대 피라미드"도 당시(BC 2000이전) 약탈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폐단을 잘 알고 있는 "후대 파라오"들은 이후, "대 피라미드"와 같은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이집트 피라미드"를 거론할 때, 대부분 "기자"에 있는 3개의 "대 피라미드"를 연상한다. 이것은 "이집트 제4왕조 시대(BC 2613~ 2494)"에 세워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국왕ㆍ왕비ㆍ왕족" 무덤의 한 형식으로, 어원은 그리스 어인 "피라미스(pyramis)"이며, "이집트" 인은 "메르"라 불렀다. "피라미드"는 "초기 왕조시대"의 "마스타바"에서 발전된 것으로, "제18왕조" 초에 "왕묘"가 "암굴묘(岩窟)"의 형식을 취할 때까지 계속된다. 최성기는 제3~5왕조로 "피라미드 시대"라 부른다. 처음에는 1변이 63m인 "직사각형 석조 마스타바"로, 중앙에 깊이 28m의 "수혈(竪穴)"을 파고, 그 밑에 "매장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확장공사가 시작되어, 결국 "마스타바"를 "6단" 포개놓은 모양의 높이 62m, 밑변 109x126m의 "계단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
"태양신"과의 결부는 후의 정통 "피라미드"의 출현으로 한층 긴밀해졌다. 이것은 종교적으로는 "헬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예로부터 존재했던 "태양신 숭배"가 피안(彼岸)의 신앙과 결부된 결과로, "계단"은 죽은 왕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피라미드" 자체는 "왕의 미라"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음식물과 가지각색의 물품을 진열하여, 제사를 지내는 장소도 필요했다. 그래서 "피라미드" 북측에 "장제전(葬祭殿)"이 건조되고, 다시 동쪽에 "세드제"의 의식을 행하는 "신전ㆍ소 신전ㆍ중정"이 남쪽에는 계단이 있는 "대중정"이 축조되었다. 그것들을 높이 10m, 동서 277m, 남북 545m의 사각형의 주벽으로 둘러, 장대한 묘소를 형성하였다.
6.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관"
"피라미드"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이집트"의 특이한 기후의 산물인 "미라"와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관"을 알아야 한다. 고대 초기 "이집트"에서 사망한 사람을 매장하는 일은 매우 간단했다. "사막 경계지역"에서 시체를 약간 깊은 구덩이에 넣고, 모래로 덮었을 뿐이다. 건조한 공기와 더운 모래의 접촉을 받은 시신은 급속한 탈수 현상이 일어났다.
이때 "수의"가 썩기 전에, 자연적인 방법으로, "미라"가 만들어지곤 했다. "이집트인"들은 우연히 육신이 보존된 "미라"를 발견하고, "내세"에서 생을 영위하기 위해, "미라처럼 시신이 보존돼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구덩이가 "커다란 무덤"으로 변하고, "관"이 사용되자, 시신은 모래와 직접 접촉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인공적으로 "미라"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편 공 들여서 "미라"를 만들어도 끊임없이 불어 닥치는 "사막 바람"이 무덤을 흩날려 버리고, 자칼과 같은 동물이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훼손하곤 했다. 그래서 "무덤"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도 동시에 생각해야 했다.
7. 미이라 (MummyㆍMirraㆍ목내이)ㆍ몰약 (沒藥ㆍMyrrh)
"미이라 (MummyㆍMirraㆍ목내이)"는 화학물 또는 춥거나 건조한 환경에 노출되어, 피부ㆍ살이 말라서 보존된 시체로, "미라"라는 명칭은 "Mirra (포르투갈어)"를 통해 들어온 말로,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만들 때, 방부제로 썼던 "몰약(沒藥ㆍMyrrh)"을 부르는 말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콧구멍으로 뇌를 뽑아내고 장기를 꺼낸 다음, 몸에 방부제를 집어넣어서 시체가 썩지 않게 만들었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사후세계를 믿고 있어, 죽어도 몸이 썩지 않도록 유지했다고 한다. 그래야 영혼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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