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보병사단"에서 "법무참모(소령)"으로 근무할 당시, "박정희(사단장)ㆍ김재규(참모장)이었다. 1972.10월, "법무부 장관"으로 "유신헌법"을 사실상 만든 사람이다. "유신정권" 기간 동안, 인권유린 문제에 있어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로, "검찰총장ㆍ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동백림 사건ㆍ유럽 간첩단 사건ㆍ민청학련 사건ㆍ인민혁명당 사건ㆍ장준하 의문사 사건"이 일어났다. "홍석현(1949ㆍ중앙그룹 회장)"의 장인이며, "홍진기 (洪璡基ㆍ1917~1986ㆍ69세)"와는 사돈관계이다.
1. 신직수 (申稙秀ㆍ1927~2001ㆍ향년 74세)
중앙정보부 부장(이후락 후임ㆍ7대)ㆍ법무부 장관(22대)ㆍ검찰총장(11대)ㆍ유신헌법 기획 책임자 (당시 44살ㆍ법무부 장관)ㆍ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장인 ㆍ관련 사건 : 사카린밀수사건ㆍ민청학련사건ㆍ인혁당사건ㆍ코리아게이트
"군 법무관 임용시험 합격자 (최초이자 마지막)"출신으로, "검찰총장ㆍ법무부 장관ㆍ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인물ㆍ"법무부 장관ㆍ중앙정보부장"과 달리, "고등고시ㆍ사법시험"의 기수가 생명과 같은 "검찰총장"이 "고시출신"이 아닌 "군 법무관 임용고시"출신이 만 7년을 재직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 출 생 : 충남 서천군 • 사 망 : 서울대학교 병원 • 사 인 : 숙환 • 종 교 : 천주교 (세례명 : 요셉)
• 호 : 인강 (仁崗) • 학 력 : 1946 : 전주사범학교 → 1953 : 서울대학교 법학사 → 1959 :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 처 : 김순아 (金順兒) 국립대전 현충원 • 자 녀 : 3남 2녀 / 장남 : 신창균 (1950) 동광기업 대표 / 장녀 : 신연균 (1953) 중앙일보사 홍석현(1949) 회장 아내 • 가 족 : 손자 : 신현성 (1985) 티켓몬스터 대표
• 수 상 : 화랑무공훈장ㆍ보국훈장 천수장ㆍ청조근정훈장ㆍ보국훈장 통일장ㆍ중화민국 특종대수운마 훈장
• 경 력 : 1952~1961 : 육군 소령 (육군 갑종사관 군법무관 장교) → 1961 : 국가재건최고회의 법률고문ㆍ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 1963 : 중앙정보부 차장 → 1963.12~1971.06 : 검찰총장 (제11대) → 1971.06~1973.12 : 법무부 장관 (제22대) → 1973.12~1976.12 : 중앙정보부장 (제7대)

1951.03~1960.06월까지 "군법무관"으로 복무하고,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전역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원용덕 중장"이 "김성주 살해사건"으로 재판받을 시, 변호인을 맡았다. "5ㆍ16 군사정변" 이후인 07.31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법률고문"에 임명되었다. "신직수"는 "박정희"가 5사단장으로 근무할 당시, "법무참모"였다. 군정 하에서 "서울지검 검사"에 임명되었으며, "헌법심의 특별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63.07월 "중앙정보부 차장"에 임명되었고, 12.06일 "검찰총장 (36살 최연소)"에 임명되었다. 1966년,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1971.06월, "법무부장관"에 임명되었다. 1972.10월, "박정희"의 지시로, "유신헌법 초안"을 "검사 김기춘"과 함께 작성하였다.
1972.10월, "궁정동 밀실(1979.10.26일 궁정동 중정별관에서 박정희 살해"에서 "3인 회의(박정희 대통령ㆍ이후락 중앙정보부장ㆍ김정렴 비서실장)"를 거쳐, 10.17일 44살의 "신직수 법무장관"은 불과 32살의 나이의 "검사 김기춘"과 같이,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ㆍ독재 상징인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하였다. 10.26일, 이 법안은 "일본의 명치유신"을 본뜬 것으로, "10월 유신"이라 명명되었다.
1973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김대중 납치사건"에 연루되어 경질되자,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중앙정보부장" 취임 이후,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정보부 제6국"을 강화하고, 공안사건을 조작하여, 각종 간첩 조작 사선을 지휘하여, 수많은 민주인사를 고문해 빨갱이로 몰아 처형하도록 하였다. "문인간첩단ㆍ민청학련사건ㆍ인혁당사건 (1차ㆍ2차)"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이후, "박정희"의 지시를 받아, "조총련계 모국방문사업"을 추진했다. "동아일보"의 광고주들을 협박하여, 광고를 해약시키는 등의 언론탄압을 기획하였다. 1976년, "코리아게이트" 사건이 발생하고, "김상근(중앙정보부 요원)"이 미국에 망명하자, 12.04일 경질되었다. "중앙정보부장" 퇴직 후, 1977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1981년부터 "일양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로 활동했다.
2. 1975.04.09 : 인혁당 (2차) 사건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독대 (55분간)
"인혁당 사건"과 관련하여, "신직수(중앙정보부장)"가 사형 집행 당일, "청와대 서재"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보고 차, "55분간 독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백재현 의원"은 국가기록원에서 입수한 청와대 의전일지를 공개하며, "의전일지에 따르면, 신 전 중정부장은 1975.01.01일 이후 사형이 집행된 04.09일까지 총 21차례에 걸쳐,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신 전 중정부장은 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인혁당 사건"에 대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발표한 당사자"라고 말했다.
3. 인혁당 (2차) 사건 : 민청학년의 배후 조종죄→ 사법 살인 행위ㆍ법이 정치권력의 시녀
① "조봉암"이 교수대에서 사라진 이후, 냉전시대의 살인
② 1975.04.09 새벽 05:00 대법원 사형 확정된 다음날 새벽
"여정남ㆍ도예종ㆍ서도원ㆍ하재완ㆍ송상진ㆍ이수병ㆍ김용원" 등 8인 사형집행 : 시체 8구중 3구만 가족에게 인계 후, 3구는 나중에 인계, 2구는 가족의 동의없이 화장처리 → 극심한 고문에 의해 엉망 → 가족 면회도 불허 → 장례식 거행될 성당으로 가던 중, 교도소 영구차가 기동경찰버스 3대와 출동 후 화장터로 직행 → 화장터에서 장례식
③ "이철ㆍ유인태"가 접촉한 "여정남"으로 엮은 사법기술자
"이철ㆍ유인태"가 "대구 학생운동"의 중심인물로 접촉한 "여정남"이 대구의 "도예종ㆍ서도원ㆍ하재완"과 알고 지냈다는 것이 인혁당과 민청학년을 연결하는 실마리라고 판단
④ 민청 배후 지원세력 조사
• 김동길 연세대 교수 : 민청학련 배후로 구속 → 75.02월 집행정지ㆍ73.10월 천마산 등산 시에 반유신 토론 : 내란 예비음모 • 윤보선ㆍ지학순 주교 : 민청학련에게 돈을 준 것이 내란 선동죄로 처벌 (윤보선→ 박형규 목사→ 나병식ㆍ지학순→ 김지하→ 서중석)
⑤ 1974년, 강신옥ㆍ홍성우 변호사 (민청학련사건 담당 변호사)→ 정보부 조사 후, 강신옥 구속 법정
• 1974.07.08 강신옥 : 악법은 지킬 필요 없다ㆍ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 : 강경변론으로 긴급조치 위반 및 법정 모독 혐의로 구속→ 88.03월 무죄선고→ 75.02월 형 집행정지
• 1,024명 조사, 745명 훈방, 253명 비상 군법회의 공판 : 07.08 인혁 : 사형 7명ㆍ무기 8명ㆍ징역 20년 6명 / 07.09 민청 : 사형 7명ㆍ무기 7명ㆍ징역 20년 12명ㆍ15년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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